102화.
―오살이 암살하고, 육살과 칠살은 만약을 대비하라.
―명!
굳이 이살이 직접 전각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나머지 무영살들 역시 특급살수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살과 달리 절정지경에 오르진 않았다.
허나 그들의 살법은 충분히 절정고수도 암살할 수 있었다. 무영살이 천하 십대살문이자 십대살수인 이유이기도 했다.
태가장 무사들의 기감을 속인 그들은 전각 안에 잠입했다.
‘죽이기에 아까운 계집이군. 허나 무영살의 표적인 된 이상 죽…….’
“…….”
“…천한 것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주가려를 암살하려던 오살의 심장에 검이 꽂혔다.
그저 미색이 뛰어난 계집이 자고 있었다고 생각했기에 오살은 방심한 듯했다.
그는 대처도 하지 못한 채 절명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말마의 비명조차 없었다.
과연 무영살, 특급살수다웠다.
‘살(殺)!’
육살과 칠살은 당황했으나 본능적으로 그녀에게 비수와 칼을 찔렀다.
어떤 상황에서든 살법을 펼칠 수 있게 단련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허나 그들은 상대를 잘못 만났다.
서걱!
일검(一劍).
고작 검을 한번 휘둘렀을 뿐인데, 육살과 칠살이 절단났다. 구룡검의 날카로움과 그녀의 심후한 내공 때문만이 아니었다.
주가려는 검술 역시 뛰어났다. 게다가 살인을 함에서 있어서 그 어떤 주저함도 없었다.
황실은 그 어떤 지옥보다 무서운 곳이었다.
괜히 복마전이고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살아남기 위해 비수를 쥐고 잠을 잔 그녀였다. 이런 경우는 그녀에게 흔한 일에 불과했다.
살기 위해 적을 베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적어도 주가려에겐 그러했다.
“내려오지? 아니면 도망칠 텐가.”
“…….”
주가려는 나직하게 말했다. 바로 지붕 위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이살에게 한 말이었다.
이살은 순간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동시에 위험하다는 것을 느꼈다.
허나 자신은 저들과 달랐다. 같은 무영살이고 같은 특급살수였지만 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주가려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니, 들어가려고 했다.
‘뭐, 뭐지… 몸이…….’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몸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이살은 이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허나 곧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점혈법(點穴法)으로 제압되었다는 사실을.
그건 더더욱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이 누군가. 이살, 또 다른 무영살이었다.
방금 당한 무영살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오직 일살만이 자신과 견줄 수 있었다. 그런 자부심을 가진 그로서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수고하셨군요. 제가 처리해도 되는데…….”
“마마, 수고랄 것이 있겠사옵니까. 오히려 빈니가 늦어 마마께서 피를 보셨으니 송구할 뿐입니다.”
‘……!!’
이살은 경악했다.
자신이 암살하려는 계집이 황족일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신분이 파악되지 않았음에도 그것을 무시하고 일을 진행한 대가는 너무나 혹독했다.
그를 제압한 사람은 바로 혜원사태였다.
주가려의 옆방에서 지내던 그녀는 무영살의 은밀한 움직임을 간파해냈다.
내상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해도 초절정고수였다.
물론 무영살의 과도한 자신감도 이 어이없는 결말에 한몫했다고 할 수 있었다.
“저자를 장주에게 넘겨주십시오. 배후를 알아봐야겠습니다.”
‘흥. 내 입에선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
비록 점혈로 인해 제압된 상황이었지만, 자신은 무영살이었다. 어떤 고문에도 입을 열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게 무영살로서의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고문은 처음에 군(軍)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게다가 살수의 침입을 막아내지 못한 것에 자존심이 상한 태천광이 과연 살수의 입을 열지 못할까?
이살을 넘기기 위해 혜원사태가 움직였다.
홀로 남은 주가려는 한숨이 나왔다.
‘부상 때문인가. 아니면 황실에서 나왔다고 감각이 무뎌진 건가.’
그녀는 자책했다.
사실 무영살의 암행을 눈치채지 못했다.
하남 제일이라는 무영살이었다.
그들의 은신술은 매우 뛰어나다고 할 수 있었다.
괜히 절정고수도 암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오살의 암살을 무산시킨 것은 누군가의 전음 때문이다. 덕분에 본능적으로 검을 움직여서 오살을 벨 수 있었다.
‘그의 목소리였어…….’
‘늦지 않았군.’
주가려의 전각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한 사내가 서 있었다.
바로 이현성이었다.
수면 중 잡스러운 움직임에 그만 깨고 만 것이다.
천하의 무영살도 그의 앞에선 일개 살수에 불과했다.
물론 표적이 자신이 아님을 아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모른 척할 수도 없었다. 암살표적이 장공주인 주가려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있는 태가장에서 황족이 암살을 당한다? 자신이 한 짓이 아니라 해도 귀찮은 일이 벌어질 수 있었다.
그렇기에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직접 나서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결국 전음으로 경고를 해주는 걸로 그쳤다.
그녀의 경지를 이미 예측하고 있었기에 굳이 직접 나설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물론 그 판단은 옳았다.
‘깬 김에 산책이나 해볼까?’
이살이 대동한 무영살은 다섯. 주가려의 검에 죽은 셋을 제외해도 아직 둘이 더 남아 있었다.
그들은 퇴로를 맡고 있었는데, 일이 틀어진 것을 느꼈는지 그대로 도주했다.
이현성은 산책을 할 겸 그들의 뒤를 쫓았다.
살아남은 무영살들은 몰랐다.
자신들의 뒤를 은밀하게 따르는 자가 있다는 것을.
‘안가(安家)인가?’
의외로 그들이 들어간 곳은 평범한 장원이었다.
그것도 작고 허름한 장원이었다. 기껏해야 십여 명 정도만 살 수 있는 규모였다. 살수문파의 본거지답지 않았다.
그렇기에 은신처인 안가라 판단했다. 그런 착각을 할 만했다. 설마 고작 열 명으로 구성된 살문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열 명으로 구성되었는데, 전원이 특급살수다?
상식적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무영살은 실존했다.
그만한 비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제법… 설마 무영살인가?’
기감에 잡힌 살수들은 하나같이 특급 혹은 그에 근접했다. 하남성의 살문 중 특급살수를 다수 보유한 살문이 많을 리가 없었다.
하남이 아닌 천하로 범위를 넓혀도 많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현성은 무영살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지.’
그날 천하 십대살수이자 천하 십대살문인 무영살이 사라졌다. 고작 한 사람에 의해.
* * *
쾅!!
“너희는 포위되었다! 저항하면 즉결처분…….”
수백의 군사들이 개미 새끼 하나 빠져나갈 수 없게 어느 장원을 포위했다. 완벽하게 준비를 마친 군사들이 드디어 장원을 급습했다.
이 와중에도 장원 안은 조용했다.
그렇다면 모두 도주했단 말인가?
“혈향(血香)? 수색하라!”
지독한 혈향이 풍겨왔다. 지휘관으로 보이는 장수의 명령에 군사들이 장원 안을 살폈다.
그리고 여섯 구의 시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발견된 것은 시체만이 아니었다.
“자, 장군! 이걸 봐주십시오!”
수색에 참여했던 군사 중 한 명이 두툼한 장부를 가져왔다. 장군이라 불린 장수는 장부를 펼쳤다.
다수의 이름과 매력적인 숫자들이 적혀 있었다.
그는 직감했다. 이것이 청부를 기록한 명부라는 것을.
그들은 인근 천호소의 군사들로, 상부의 긴급 명령을 받은 후 이른 아침에 출동했다.
이에 천호소(千戶所)의 지휘관인 정천호가 직접 나섰다.
상당히 위에서 하달된 긴급 명령이었기에 본능적으로 완벽하게 수행해야 함을 느껴서였다.
다만 원래 명령과 달리 범인들을 구속하지는 못했다.
범인들은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다.
다행히 그것을 대신할 수 있을 거라 판단되는 장부를 찾아낼 수 있었다.
무영살을 전멸시킨 것도, 장부를 발견하기 쉽게 해둔 것도, 모두 이현성의 작품이었다.
이 일이 빨리 정리될수록 자신에게 귀찮은 일이 벌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군사 일부만 남겨둔 채 수백의 군사들이 다시 바쁘게 움직였다.
* * *
“헉… 헉… 헉…….”
중년 사내가 거친 숨을 내쉬며 뛰어가고 있었다.
쫓기고 있는지 자꾸 뒤를 돌아봤다.
‘젠장! 젠장! 젠장!’
힘든 듯 입으로 거친 숨을 내쉬었으나 속으로는 욕을 한 바가지 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는 평생 이룬 것을 모두 버리고 도망치고 있었다.
‘이 안제명, 이렇게 안 죽는다! 기필코 다시 돌아온다!’
사내의 정체는 바로 정주안가의 가주인 안제명이었다.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며 무영살에 청부를 했다.
거금이 들긴 했으나 팽 당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끈만 잘 붙잡을 수 있다면 십만 냥쯤은 다시 거둬들일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기다렸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청천벽력과 같았다.
이른 새벽 군사들이 움직였단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안제명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조건 도망쳤다.
처자식도 버린 채, 겨우 전낭만 챙겨서 도망쳤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조건 자기 자신이었다.
예상이 틀리지 않았는지, 해가 중천에 뜨기 전에 수백의 군사들이 정주안가를 들이닥쳤다.
장부를 통해 청부자가 안제명임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정주안가의 가솔들은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모두 붙잡혔다. 오직 가주인 그만을 제외하고.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돼…….’
서두른 덕분에 겨우 정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허나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관병이 아니라 군사들이 움직였다. 이는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 대단한 배경을 가진 여인이란 뜻이었다.
그렇다면 정주를 벗어난 것 정도로는 안심할 수 없었다. 그는 다리가 후들거림에도 걸음을 멈추지 못했다.
말만 구할 수 있다면 더 빨리, 더 멀리 벗어날 수 있었기에 조금만 더 참았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는 자들이 있었다.
“안제명… 맞나?”
“아, 아니오! 나, 난 그런 사람이 아니오!”
그는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하지만 누가 봐도 당황하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의 말이 거짓임을 알 수 있었다.
무표정한 사내들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린 혁 대인께서 보내 사람들이다. 다시 한번 묻지. 안제명 맞나?”
“저, 정말 그, 그분께서 보내셔서 오신 부, 분들이 맞으십니까?”
그제야 안제명은 안도할 수 있었다.
저들의 말이 맞다면 자신은 버려진 것이 아니다.
다시 일어날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래! 그분께서 날 버리실 리 없지! 하하!! 그래! 그렇고말고!!’
그가 알고 있는 혁 대인은 대단한 사람이었다. 돈, 권력, 인맥 하다못해 무력까지 손쉽게 움직이는 존재였다.
자신이 정주의 유력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혁 대인의 도움 덕분이었다.
이번 일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서 다음에는 절대 이런 실패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허나 아쉽게도 그에게는 반면교사로 삼을 기회가 없었다.
“맞다는 말이군.”
“맞습니다. 제가 안제… 컥!”
사내의 검이 안제명의 가슴에 꽂혔다.
안제명은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는 얼굴이었다.
검을 뽑자 안제명의 가슴에서 피가 솟구쳤다.
“도…대체 왜…….”
“감히 사고를 쳐놓고 도망가면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느냐.”
“비, 빌어…먹…을…….”
결국 안제명은 목숨이 끊겼다. 그의 죽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 후 사내들 역시 사라졌다.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