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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101화 (101/314)

101화.

무림과 불가침 조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방관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만약을 대비해서 중요한 지역에 비밀거점을 만들어두었다.

이곳 태가장이 그중의 하나였다.

태천광은 그런 장원 중 하나를 맡길 정도로 황제의 신임이 두터운 사람이었다.

문제는 이번 일로 태가장에 많은 희생이 났다는 점이다.

그래서 앞으로 황제의 명을 수행하기 곤란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장공주인 주가려가 먼저 보고해준다고 하니 태천광으로서는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보다 장주, ‘그분’은…….”

“산문을 떠나셨다는 보고를 받았으니 곧 도착하실 겁니다.”

“다행이군. 혹시 그분께서 응해주지 않으실까 걱정했거늘…….”

황족인 주가려는 기본적으로 하대를 했다.

그녀가 존칭을 사용하는 경우는 같은 황족 내지는 친왕, 군왕 정도였다.

관리 중에서는 종1품 이상에게만 존대했다.

예외가 사부인 혜원사태 정도였다.

그런 그녀가 그분이란 극존칭을 사용했다?

주가려가 은밀하게 태가장에서 만나려는 존재가 예사 인물이 아니란 뜻이었다.

“그분을 모시는데 만전을 기해주게. 장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마마.”

그녀가 만나려는 존재. 그리고 그를 통해서 실현하려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황실은 물론, 무림의 평안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니 주가려가 이렇게 신경을 쓰는 것은 당연했다.

용무를 마친 주가려는 일어나려고 하다가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다.

“그보다 ‘그’가 이곳에 있는 줄은 몰랐군.”

“‘그’라시면… 아, 이 대협을 말씀하시는군요. 내각대학사인 문 대인의 소개장을 가지고 와서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이라도 다른 곳을 소개하겠습니다.”

“아닐세. 장주. 그럼 오히려 의심을 살 수 있네. 그보다 내각대학사께서 소개장을 써주었다고?”

“예. 마마.”

태가장은 황실에서 세운 비밀거점이었다.

자칫 외부에 정보가 유출될 수도 있었다.

그 점 때문에 태가장의 가솔들은 전부 황실고수 및 금군의 가족들로 구성되었다.

물론 황실의 모든 비밀거점을 이런 식으로 운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학관이나 무관으로 둔갑된 곳도 있고, 상회나 표국 등의 형태로 운영되기도 했다.

그런 경우는 외부인의 출입이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그런 장소는 기밀을 보관하지 않았다.

하남성에는 황실 비밀거점이 셋 존재하는데, 기밀을 보관하는 곳은 태가장뿐이었다.

그것이 주가려가 직접 방문하는 회담장소가 된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 태가장에 외부인이 와 있다는 것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이현성을 보낸 자가 내각대학사인 문종학이라면 상황이 달랐다.

“내각대학사는 분명 이곳에 대해서 모르지 않던가?”

“예. 그는 관련자가 아닌 만큼 알지 못합니다.”

“그럼 우연이란 말인가?”

“제가 젊은 시절 문 대인과 동문수학을 한 사이라서 소개해줬을 겁니다.”

“그렇군… 알겠네.”

외인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주가려가 이현성에겐 관심을 보였다.

혜원사태는 그 점을 느꼈으나 모른 척했다.

황실에서 지내다 보면 보고 듣고 느낀 점을 겉으로 드러내서 좋을 것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아미파 출신이었지만 주가려의 사부로서 황실에서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황실은 그야말로 복마전이었다.

용무를 마친 두 사람은 장주의 거처에서 나왔다.

‘이현성이라…….’

* * *

“다들 열심히 하니 이 선생님의 기분이 좋구나.”

이현성의 말에 지도를 받고 있던 아이들은 쑥스러운 듯 몸을 배배 꼬았다.

아이들의 그런 순수한 모습에 이현성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그런 의미로 상을 주마.”

“상이요?”

이현성의 말에 아이들은 눈을 끔뻑거리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시동의 신분인 아이들에게 상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니 아이들로서는 생소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조만간 내공심법을 가르쳐주마.”

“내공심법? 그게 뭐예요, 선생님?”

무공은 비인부전이며, 내공심법의 경우는 더욱 심했다.

무공지식이 일천한 아이들이 내공심법을 모르는 것은 당연했다.

“기(氣)를 모을 수 있는 방법이란다. 고수가 되기 위해선 내공심법을 무조건 익혀야 하지.”

“와~! 그럼 우리도 고수가 될 수 있는 건가요?”

아이들은 무척이나 좋아했다. 허나 문제가 있었다.

“열심히 한다면 그렇지. 그런데 너희 혹시 글을 아느냐?”

“천자문이라면 조금…….”

“저, 저는 잘…….”

예상치 못한 문제에 봉착했다. 아이들이 글을 모르는 것이다.

물론 아는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조차 학문적인 소양이 부족했다.

글을 모르는 상태로 내공심법을 전수하는 것은 어렵다.

무척 번거로우며 제대로 가르치기도 힘들다.

과거 혈무곡에서 아이들에게 천자문을 익히게 한 이유이기도 했다.

‘글부터 가르쳐야 하나? 그럼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데?’

혈무곡에서는 구타라는 강제성을 띄었음에도 천자문을 제대로 익히는데 제법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물며 이곳의 아이들은 시동으로 일을 하고 있고, 밤에 무공의 기초를 배우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천자문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장주님께 도움을 청해야겠다.’

어디까지나 자신은 객(客)일 뿐이었다.

자신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태천광 장주에게 독대를 신청했다.

황실 요상약 덕분에 많이 쾌차한 태천광 장주는 독대를 받아들였다.

“이번에 신세를 졌습니다. 이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아닙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태천광으로서는 이현성에게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가 장원에 신세를 지고 있는 입장이라고 하지만 도움을 청한 것은 예가 아니었다.

하물며 사소한 부탁도 아니고 그런 위험한 일을 부탁했으니 큰 은혜를 입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보다 어쩐 일이십니까?”

“황 총관께 보고를 받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 보고받았습니다. 저희 가솔들이 이 대협을 귀찮게 했군요.”

“아닙니다. 대단한 걸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그저 기초를 잡아줬을 뿐입니다.”

시동이라는 명목으로 거두었으나 실상은 태가장 그리고 황실을 위해 순직한 혹은 지금도 봉사 중인 자들의 아이들이었다.

장주로서 신경 쓸 것이 많다 보니 그 아이들에 대해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외인에 불과한 이현성이 그들을 돌봐주었으니 미안할 뿐이었다.

“아이들의 꿈이 이곳, 태가장의 무사가 되는 거라고 하더군요.”

“허허… 그렇습니까.”

“열정도 대단하더군요. 그래서 육합검법을 가르쳤습니다만…….”

“…말씀하십시오.”

이현성이 말끝을 흐리는 것을 보니, 원하는 것이 있어 보였다. 태천광은 그에게 신세를 졌으니 무리한 것만 아니면 수용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현성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의외였다.

“아이들에게 내공심법을 전수할까 합니다. 대단한 것은 아니고, 풍운심법을 조금 손보고 있습니다. 허나 제 마음대로 전수하는 것이 폐가 되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

“아… 그러시군요. 아이들이 괜찮다면 뭐가 문제겠습니까?”

태천광은 그리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공심법을 전수한다고 해서 살짝 놀랐으나 가르칠 내공심법이 풍운심법이기 때문이다.

말이 내공심법이었지만 호흡법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며, 저잣거리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흔한 심법이었다.

그러니 대단할 것도 없었다.

허나 이현성이 전수할 내공심범은 흔한 풍운심법이 아니었다. 그의 손을 한번 거친 풍운심법이었다.

정확히는 혈운심법을 다시 한번 개량하고 있었다.

태천광은 그 점을 예상치 못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글을 모르더군요.”

“아… 그렇겠군요.”

아이들과 아이들의 가족들이 먹고 살 수 있게끔 금전적 지원은 하고 있으나 글을 배울 정도로 넉넉하진 못했다.

황실의 비밀거점이라고 하나 주변의 눈을 의식해 황실에서 재정지원을 해주지 못했다.

다른 비밀거점이 표국이나 상회의 형태를 취한 이유가 바로 자생적인 재정확충을 위함이었다.

그러한 상황이니 태가장의 재정이 풍족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 대협의 뜻을 알겠습니다. 총관에게 지시를 해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장주님.”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합니다. 장주인 제가 신경 쓰지 못했는데, 이 대협께서 대신 신경 써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그들은 몰랐다.

이 결정이 장차 무림에 풍운팔협(風雲八俠)이란 미래의 신성들을 탄생시켰다는 것을.

* * *

―오살, 육살, 칠살은 나와 함께 가고, 나머지는 퇴로를 확보하라.

―명!

어둠을 틈타 몇몇 그림자가 태가장의 담을 넘었다.

그들은 살수들이었다.

허나 호락호락한 자들은 아니었다.

무영살(無影殺)이란 살수(殺手)가 있었다.

나이, 성별, 어떤 무기를 사용하는지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무영살은 개인인 동시에 집단이었다. 그들은 열 명으로 구성되었음에도 무영십살이 아닌 무영살이었다.

열 명이면서 한 명이고, 한 명이면서 열 명인 무영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모든 살행의 수법이 일반적인 살수들과 다를 수밖에 없었다.

설사 의뢰를 실패하고 자결한다고 해도 새로운 무영살이 임무를 수행했다.

하남성 제일의 살수이자 살문이 바로 무영살이며, 천하 십대살수이자 살문이기도 했다.

그런 무영살… 아니, 무영살들이 태가장의 담을 넘고 있었다.

‘고작 계집 하나 베는데 의뢰비가 과해. 그 말은 뭔가 있다는 것이겠지.’

이살(二殺)은 암살을 수행함에 있어서 조심스러웠다.

청부금액이 은(銀) 십만 냥이나 되었다.

태가장주의 목도 은 이만 냥을 넘지 않는다.

그럼에도 청부금액이 은 십만 냥이라면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은 표적인 계집에 대한 정보가 얼마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무영살(일살)은 의뢰를 거절할 수 없었다.

은 십만 냥짜리 청부는 흔치 않으며, 최근 들어 경쟁 살문들 때문에 의뢰가 줄고 있었다.

자신이 거절하면 결국 다른 살문만 배부르게 만들고, 무영살의 명성에 금이 간다.

결국 무영살의 일살과 견줄 수 있는 이살이 직접 살행에 나섰다. 특급살수인 이살이라면 변수가 있다고 한들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제법 무사들이 많군. 허나…….’

이살은 살짝 놀랐다.

태가장은 정주에서 제법 이름이 알려진 장원이었다.

그걸 감안해도 무사들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무영살이란 이름은 허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만약을 대비해서 무영살을 다섯이나 대동했다.

그러니 실패할 이유가 없었다.

‘저기군.’

장원에서 제일 많은 무사들이 지키고 있는 전각을 발견했다. 보통 장원에서 제일 많은 무사들이 지키는 장소는 장주의 거처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그만큼 표적의 신분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허나 문제는 아니었다. 어차피 죽음 앞에서 누구나 평등하다는 것이 무영살의 지론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이 표적의 신분을 알아내지 못했음에도 의뢰를 받아들인 이유였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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