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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100화 (100/314)

100화.

장공주의 신분을 아직 이현성에게 밝힐 수 없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들은 어정쩡하게 예를 표하는 웃픈 상황이 벌어졌다.

그 후 위지천과 태가장의 일부 고수들 역시 합류했다.

당연히 그들이 상대했던 혁련세가의 고수들은 전멸한 상태였다.

이현성의 부탁대로 위지천이 자비를 베풀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경에 있어야 할 그가 왜 이곳에 있는 거지? 그것도 맹검과 함께?’

그녀는 태가장 고수를 통해서 이현성의 신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각대학사 문종학의 은공이자, 북경 젊은 무관들에게 교두라 불렸던 이현성의 신분을 알고 있었다.

이현성은 그녀가 전음으로 자신에 대해 알아보고 있음을 눈치챘으나 그냥 모른척했다.

어차피 곧 알려질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가려가 알아차린 것은 이현성의 신분만이 아니었다.

그의 곁에 있는 중년 맹인의 정체까지 알아차렸다.

무림에서 맹인고수가 흔치는 않으나 없지도 않았다.

그 태가장 고수를 통해 들은 무위를 가진 자는 더더욱 적었다.

덕분에 주가려는 위지천의 신분 역시 눈치챌 수 있었다.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내각대학사의 은공인 그와 천사교의 호교사자가 동행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태 장주가 저들을 보냈다는 것은 신뢰한다는 의미겠지만… 후…….’

육안(肉眼) 대신 터득한 초감각 덕분에 위지천은 그녀가 자신들을 힐끔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삼라만상으로 인해 기감이 예민한 이현성도 다르지 않았다.

―우리가 누군지 아는 눈치군.

―그러게요. 형님께선 가려라는 이름을 들어보셨습니까?

―글쎄. 잘 모르겠군.

두 사람도 그녀가 성을 숨긴 것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문제는 성을 모르니 떠오르는 인물도 없었다.

태가장의 숨겨진 정체를 모르는 두 사람으로서는 그녀가 장공주란 사실을 눈치챌 수 없었다.

그저 막연하게 고관의 여식이라고만 생각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의문은 생각보다 쉽게 해결되었다.

얼마 후, 정주에 도착하자 태가장의 고수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공… 아가씨, 죄송합니다. 소장이 부족해서 공… 아가씨를 위험하게 만들었습니다.”

주가려와 혜원사태는 내상 때문에 서둘러 이동할 수 없었다.

그래서 태가장 고수 몇을 먼저 보내 의원을 준비시켰다.

그 과정에서 태천광 장주에게도 보고되었다.

그는 암습을 당해 중상을 입은 상태였지만, 직접 정주의 입구까지 나와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장공주인 주가려가 내상을 입었는데, 장원 안에서 기다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지휘사 출신인 태 장주께서 아가씨라 부르며 어려워한다? 그리고 저 어색한 호칭…….’

처음부터 태천광 장주가 전직 지휘사(指揮使)였단 걸 알았던 것은 아니다.

허나 정주 사람 대부분이 아는 사실이다 보니 어렵지 않게 알게 되었다.

지휘사는 정삼품에 해당되는 고위직이었다.

그런 태천광이 아가씨라고 부를 여인은 흔치 않았다.

순간 이현성의 눈이 커졌다.

드디어 그녀의 신분을 눈치챈 것이다.

‘황족! 최소한 왕족이란 말인데…….’

공주(公主) 혹은 군주(郡主)란 뜻이었다.

황실에서 왕작을 하사받은 친왕(親王)과 군왕(郡王)은 여럿 있었기에 군주는 제법 많이 존재했다.

그런데 태천광 장주는 실수로 ‘공’이란 말을 흘렸다.

‘설마 공주? 허나 황제의 딸이라면 나이가 맞지 않다.’

선황(先皇)이 너무 일찍 승하(昇遐)했기에 현 황제는 어린 나이에 황좌를 승계했다.

젊은 황제의 자식들은 아직 십대 초반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이십대의 공주는 있을 수 없었다.

‘아니, 황제의 누이라면 가능해.’

황제의 딸만 아니라 누이에게도 공주라고 칭했다.

다만 황제의 딸과 구분하기 위해서 황제의 누이에겐 장공주라고도 부른다.

주가려는 그가 자신의 신분을 눈치챘다는 것을 간파했다.

허나 태도를 바꿀 수는 없었다.

그녀는 모종의 임무를 위해 암행 중이었다.

태가장 안이라면 몰라도 정주 입구에서 신분이 드러나면 무척 곤란했다.

그렇기에 굳이 내색하지 않았다.

“주변의 눈이 많으니 장원으로 갔으면 좋겠구려.”

“예. 바로 모시겠습니다.”

태가장 고수들이 그녀들을 호위했다.

이에 주가려는 태천광 장주에게 전음을 보냈다.

―황실고수들의 시신을 회수해주시게.

―충!

그녀의 명령에 태천광 장주는 태가장 고수 몇몇을 보내 죽은 황실고수들의 시신을 회수하게 했다.

비밀 임무를 수행하던 중 순직했기에 공적을 드러낼 순 없으나 그들의 시신을 짐승들의 먹이로 전락시킬 수는 없었다.

그녀의 생존을 정주안가의 안제명 역시 알게 되었다.

* * *

쾅!!

“병신 같은 놈! 그렇게 자신하고도 실패하다니!!”

태천광을 암습하고, 태가장의 고수들을 막은 것은 결국 주가려를 암살하기 위함이었다.

정확히는 그녀가 태가장에 들어가지 못하게 해야 했다.

그런 주가려가 정주에 입성했다.

이는 자신의 임무가 결국은 실패했다는 뜻이었다.

“아니! 절대 팽(烹)당할 수 없어!”

사냥이 끝난 사냥개만 삶아 먹는 것이 아니었다.

사냥에 실패한 사냥개 역시 살려두지 않는다.

어차피 혁련중광에게 안제명과 정주안가는 그저 쓸 만한 장기짝 중 하나일 뿐이었다.

제몫을 못했다면 버려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지만 힘들게 지금의 위치까지 오른 그로서는 절대 버림받을 수 없었다.

아니, 이대로 여기서 죽고 싶지는 않았다.

“그년만… 그년을 죽이기만 하면 돼…. 그럼 그분께서도 날 버리지 않으실 거야!”

이성을 잃은 안제명은 평소와 다른 크나큰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황제의 누이를 죽이겠다니.

아니, 사실 그도 주가려의 정확한 정체는 모르고 있었다.

다만 매우 대단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설사 알았다고 해도 그의 선택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를 죽이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으니까.

혁련세가에서 보내준 고수들을 모두 잃은 안제명의 선택은 이제 한 가지 밖에 없었다.

“얼마가 든다고 해도 무조건 죽여주마!”

결국 안제명은 살수집단에 의뢰를 하려고 했다.

주가려를 반드시 죽이기 위해서.

* * *

“흡…흡… 하하…….”

태가장에 도착한 주가려와 혜원사태는 고수들의 엄중한 호법 속에서 운기행공을 했다.

내상을 치료하기 위함이었다.

요상약이야 진즉에 복용했으나 쫓기는 와중이었기에 운기행공을 하지 못했다.

그래도 무려 황실 태의(太醫)가 제조한 요상약이었다.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요상약과는 격이 달랐다.

도주하는 와중에도 내상이 더 깊어지지 않은 것도 그 덕분이었다.

운기행공 중인 주가려의 머리 위에 세 송이의 꽃이 피었다.

놀랍게도 그녀는 삼화취정(三花聚頂)의 경지에 올랐다.

절정고수에 불과한 그녀였지만 내공만은 초절정고수 못지않았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벌모세수(伐毛洗髓)에 개정대법(開頂大法).

그리고 영약을 밥 먹듯이 복용한 그녀였다.

내공만 본다면 이현성보다 심후했다.

그렇기에 깨달음이 부족함에도 삼화취정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운기행공이 마무리 단계에 도달했는지 머리 위에 피었던 세 송이의 꽃이 연기가 되어서 그녀의 몸속에 흡입되었다.

번쩍!

운기행공을 마친 그녀의 안광이 빛났다.

“후… 이제 좀 살겠네.”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단기간에 완쾌할 내상이 아니었다.

태의의 요상약과 황실의 비밀신공 덕분에 이 정도로 빠른 회복이 가능했다.

아니었다면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물론 황실이었다면 태의의 치료를 받아 더 빨리 회복했을 테니, 그의 치료를 받지 못한 상황이 조금 아쉽기는 했다.

운기행공을 마친 그녀가 밖으로 나가자, 수십여 명이 전각을 포위하고 있었다.

운기행공을 하는 동안 누구도 출입할 수 없게 지키기 위함이었다.

“앗! 마마! 몸은 괜찮으십니까!”

“괜찮네. 사부님은 어떠신가?”

“아직 운기행공 중이십니다.”

“그렇군. 난 이제 괜찮으니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게.”

태가장 고수들은 순간 당황했다.

그들의 공식적인 소속은 태가장이었지만, 지금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단언 주가려였다.

그런데 호위하지 말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라고 하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때 전각의 다른 객실의 문이 열렸다.

“아미타불… 마마는 빈니가 모실 테니, 그대들은 마마의 뜻대로 하시게나.”

“추, 충!”

마침 혜원사태 역시 운기행공을 마칠 수 있었다.

그녀가 공주의 사부이자 아미파의 고수임을 모르지 않는 태가장의 무인들은 주가려의 명령대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혜원사태가 있다면 자신들이 주가려의 호위를 서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사부님.”

“아미타불… 많이 좋아졌습니다. 마마께선 어떠십니까?”

혜원사태 역시 아직 내상을 완전히 회복하지는 못했다.

허나 황실의 요상약과 아미파의 신공 덕분에 움직이는데 지장은 없었다.

손풍각주에게 당했으나 그건 주가려를 지켜야 하는 입장 때문에 전력을 다하지 못해서 그런 것일 뿐.

그녀가 약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많이 좋아졌습니다.”

“다행이군요. …이제 장주께 다녀오실 겁니까. 마마.”

“우선 그래야겠지요.”

태가장주인 태천광과는 아직 정식으로 인사도 나누지 못한 상황이었다.

내상 치료가 먼저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태천광 장주의 거처로 향했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마마, 혜원사태님.”

“아미타불…! 많이 좋아졌습니다.”

“장주께선 어떻소?”

사실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은 주가려와 혜원사태만이 아니었다.

태천광 역시 암습으로 인해 중상을 입은 상황이었다.

“마마께서 주신 환단 덕분에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오. 장주.”

다행히 요상약의 여유분이 있기에 주가려는 태천광에게도 하나 나눠주었다.

황실의 요상약은 효과가 무척 뛰어나다.

태의와 황실 의원들이 제조했으니 당연했다.

그런 황실의 요상약은 아무나 구할 수도, 사용할 수도 없었다.

허나 태천광은 낙향을 했음에도 여전히 황제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했고, 비밀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입장이었다.

때문에 황실의 요상약을 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덕분에 태천광은 완쾌되지 않았으나 많이 회복된 상황이었다.

“그보다 그들은 누군가? 감히 황족인 본녀를 노리다니!”

“송구스럽습니다만… 모든 흔적을 철저히 숨긴 상태라 확인이 어렵습니다.”

동창의 도움을 받는다면 몰라도 태가장의 힘만으로는 적의 배후를 찾아내는 것이 불가능했다.

주가려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에 혜원사태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마마, 분노를 가라앉히십시오. 자칫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사옵니다.”

“후… 감사합니다. 사부님.”

내상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분노를 제어하지 못한다면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었다.

고수에게 가장 무서운 것이 바로 주화입마이니 조심해야 했다.

“이번 일이 끝나는 대로 황상께 이 일을 고하겠네. 장주의 노고도 함께 말이네.”

“망극하옵니다. 마마.”

태천광 장주는 낙향했다고 해도 여전히 황제에 대한 충성이 대단했다.

그랬기에 황제가 모종의 임무를 부여한 것이기도 했다.

태가장은 공식적으로 황실과는 무관한 장원이었지만, 비공식적으로는 황제의 밀명으로 세워진 장소였다.

황실의 입장에선 무림의 일에 직접 관여할 수가 없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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