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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97화 (97/314)

97화.

장공주(長公主)

따그닥… 따그닥…….

이십 여 인마(人馬)가 하나의 마차를 호위하며 이동하고 있었다.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사두마차는 제법 고급스러웠다.

마차 안에는 네 명의 여인들이 앉아 있었다.

나이가 제법 많이 보이는 노(老) 비구니와 젊은 여인 셋이었다. 그중에 한 여인이 유독 남달랐다.

아름다운 외모는 물론 고급스러운 복장, 자연스럽게 풍기는 위엄이 그녀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때 노 비구니가 나직하게 말했다.

“…마마. 아무래도 손님이 온것 같습니다.”

“사부님. 태가장에서 사람을 보내온 것일 겁니다.”

놀랍게도 노 비구니가 아름다운 여인에게 마마라고 불렀다. 그녀의 신분이 황족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잠시 후, 마차가 멈추었다.

“마마. 태가장에서 보낸 이들이 도착했사옵니다.”

“알겠네.”

마부… 아니, 호위장의 말에 여인이 간결하게 대답했다.

그조차 위엄이 물씬 풍겼다.

몇몇 사내들이 마차 옆으로 와서 부복했다.

“신(臣), 서문경이 공주마마를 뵙습니다!”

“공주마마를 뵙습니다!”

그렇다.

마차 안에 타고 있는 여인은 황실의 공주.

정확히는 황제의 누이인 장공주(長公主)였다.

장공주의 행차치곤 호위 병력이 간소했다.

이는 외부엔 알려지지 않은 비공식적인 행차였기 때문이다.

허나 수가 적은 것이지, 결코 호위 수준이 허술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 전원이 절정고수였다.

대규모 병력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기에 소수정예만 차출한 것이다.

“그래. 오느라 수고들 했다. 태 장주(莊主)는 잘 있느냐?”

“예. 공주마마. 장주께선 마마를 뵙길 학수고대하고 계십니다.”

“그렇군. 합류해도 좋다.”

“충(忠)!”

장공주의 허락이 떨어지자 부복했던 태가장의 고수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녀를 호위하기 위해서 각자의 자리로 향했다.

아니, 향하는 척하더니 그들 중 셋이 갑자기 마차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에 놀란 황실고수들이 즉각 반응했으나, 나머지 태가장의 고수들이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그러는 사이 태가장의 세 고수가 마차를 부수며 안으로 들이닥쳤다. 목적은 장공주의 목숨이었는지 지체 없이 검을 찔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주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아미타불… 어디서 오신 분들인지 모르나 아니 될 일이외다.”

장공주를 향한 검은 당장 그녀를 난도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이 찌른 검들은 장공주의 몸에 닿지 않았다.

언제 움직였는지 노 비구니가 그들의 검첨(劍尖 : 검끝)을 엄지와 검지로 잡고 있었다.

아미파의 절학인 공공일지선(空空一指禪)이란 지법(指法)을 펼쳐서 공격을 무산시키는 것이다.

당황한 태가장 고수들은 검을 있는 힘껏 당겼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쾅!!

안간힘을 써도 검을 회수하지 못했다.

오히려 마차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그들의 가슴에는 장흔(掌痕)이 깊게 남아 있었다.

장흔은 흡사 새가 날개를 활짝 펼친 듯한 모습이었다.

“사부님의 천봉장(天鳳掌)은 언제 봐도 대단하군요.”

“과찬이십니다. 마마.”

위급한 순간에서도 그녀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의연한 태도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은 사부인 노 비구니가 곁에 있기 때문이다.

혜원이란 법명을 가진 그녀는 무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아미파의 고수로, 아미파를 대표하는 금정신니와 대정신니의 사매이기도 하다.

장공주가 나직하게 말했다.

“너희는 누구냐? 태가장에서 온 것이 아님을 이미 알고 있다.”

“크크크 역시 쉽지 않군. 모두 죽여라!”

그렇다.

그들은 태가장에서 온 고수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장공주를 노리고 온 적들이었다.

정확히는 혈천의 상위조직인 오당팔각(五堂八閣)의 하나인 손풍각(巽風閣)의 고수들이었다.

더 이상 정체를 숨기지 않아도 되자 그들은 숨기고 있던 기운을 마구 드러냈다.

무척이나 흉흉한 기운들이었다.

허나 황실고수들 역시 만만치 않은 자들이었다.

“공주마마를 호위하며 적을 섬멸하라!”

“황실 애송이들에게 진짜 하늘(天)이 어딘지 알려줘라!”

그렇게 황실과 혈천의 고수들이 격돌하게 되었다.

챙! 채챙! 챙챙!!

황실고수들은 강했다.

황제의 누이를 호위하기 위해 선별된 고수들다웠다.

허나 문제는 적들이 혈천의 상위조직인 손풍각의 고수들이라는 점이었다.

이백 명으로 구성된 손풍각은 구성원 전원이 초일류고수일 뿐만 아니라 조장급은 절정고수였다.

아무리 황실고수들이 강해도 소수인 그들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전력이었다.

“모두 정신 차려라! 우리가 죽으면 공주마마께서 위험해지신다!”

“충!!”

호위장의 외침에 황실 비밀고수들은 다시 한번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지만 수적 열세는 쉽게 메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적은 숫자만 많은 것이 아니라 능력 또한 뛰어났다.

시간이 흐를수록 유리한 건 황실고수들 쪽이 아니었다.

“마마. 아무래도 빈니가 도와야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사부님.”

“아미타불…….”

장공주의 허락이 떨어지자 혜원사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공주의 안위를 위해 그녀의 곁을 떠나선 아니 되었지만, 이대로 가다간 황실고수들이 전멸할 수도 있었다.

기울어진 승기를 되돌리기 위해선 단숨에 적의 기세를 꺾을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에 혜원사태가 직접 움직인 것이다.

“아미타불…….”

“컥!”

“큭!!”

“으아악!!”

과연 아미파의 숨은 고수다웠다.

그녀의 장법에 손풍각 고수들이 하나같이 나가떨어졌다. 혜원사태의 등장만으로 꺾였던 사기가 충만해지는 듯싶었다.

그녀의 등장만으로 황실고수는 숨통이 트일 수 있었다.

혜원사태는 완전히 승기를 되찾기 위해 다시 한번 권격을 날렸다.

쾅!

“허… 복호권(伏虎拳)이 이렇게 강력했던가?”

“아미타불… 귀하는 누구이십니까?”

복호권은 아미파를 대표하는 권법이자, 기본 권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풍각의 고수들이 나가떨어졌다.

일개 복호권도 혜원사태의 손에서 펼쳐지니 대단한 절학이 되었다.

그런 그녀의 권격이 너무도 간단히 무력화되고 말았다.

갑자기 나타난 노인에 의해서.

그는 바로 손풍각주였다.

“죽을 자에게 내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아미타불…….”

오만한 손풍각주의 말에 혜원사태는 불호를 읊을 뿐이었다. 하지만 결코 오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만한 자격이 있었다.

혜원사태가 긴장할 정도로.

‘전력을 다한다.’

그녀가 지금껏 복호권이나 대라장 등만 펼친 이유는 내공 소모를 최소한으로 하기 위함이었다.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니 내공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자 했다. 허나 눈앞의 노고수를 상대로 뒤를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었다.

순간 혜원사태의 손에 붉은 기운이 어렸다.

“적하신장(赤霞神掌)이라… 허나…….”

혜원사태의 손에서 구현된 장법은 아미파에서도 익힌 자가 몇 없는 적하신장으로, 그녀의 성명절학이기도 했다.

순간 손풍각주의 손에서도 그에 못지않은 기운이 풍겼다. 붉다 못해 피가 뚝뚝 떨어질 것 같은 기운이었다.

콰콰쾅!!

강기(罡氣)와 강기(罡氣)의 격돌.

놀랍게도 혜원사태는 물론이고 손풍각주 역시 초절정고수였다. 두 사람의 격돌은 다른 황실고수와 손풍각 고수들의 격돌과는 격이 달랐다.

‘쉽지 않겠어…….’

혜원사태는 손에서 느껴지는 반탄력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달았다.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을.

* * *

“합! 합! 합!”

“좋아. 조금 더 혼신을 다해서.”

“예! 선생님!”

열두어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들이 목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수련하는 아이들의 자세를 지적한 사내는 놀랍게도 이현성이었다.

그는 며칠 전부터 자신을 훔쳐보는 시선을 느꼈다.

하지만 굳이 내색하지 않았다. 무공을 익힌 자의 시선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어린 소년의 시선이었다. 소년은 태가장의 하인이었다. 정확히는 시동(侍童)이었다.

태가장에는 제법 시동들이 많은데, 가솔들의 아이들이었다.

이현성을 훔쳐보던 소년도 그중 한 명이었다.

정확히는 태가장의 가솔이었던 자의 아이였다.

소년의 부친이 임무 중 순직했기에 태가장에서는 그를 돌보기 위해 시동으로 삼는다는 명목으로 삼았다.

이 소년만이 아니었다. 태가장의 시동, 하인, 시녀 중에는 이런 경우가 많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육합검법(六合劍法)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기에 하찮게 여길 뿐, 결코 무시할만한 검법이 아니다. 검의 명문인 화산파에서 육합검법으로 기초를 닦는 이유이기도 하지. 그러니 너희도 그런 생각하지 말고 열심히 익히거라.”

“예! 선생님!”

소년에게는 꿈이 있었다.

무공을 익혀서 선친처럼 태가장의 무사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태가장의 시동으로 일하면서도 틈틈이 목검을 쥐었다.

허나 가르쳐주는 사람 없이 목검을 휘두르니 자세가 엉성할 수밖에 없었다.

이현성은 우연히 소년이 늦은 시간 목검을 휘두르는 것을 보고 가벼운 조언을 해주었다.

그 후 소년은 매일 그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목검을 휘둘렀다.

소년의 열정을 인정한 이현성은 기초이지만 확실하게 가르쳐주었다. 소문을 들었는지 같은 처지의 소년들이 하나둘씩 동참했다.

이현성은 그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게 어느덧 여덟 명이나 되었다.

‘혈운심법이라도 전수해줘야 하나? 아니, 조금 손을 봐야겠다.’

혈운심법(血雲心法)은 혈무곡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친 기초심법이었다.

삼재심법, 육합심법과 함께 저잣거리에서도 구할 수 있는 풍운심법을 조금 개량한 삼류심법이었다.

내공심법이라 부르기에는 손색이 있었지만, 그릇을 닦기에 부족함이 없는 심법이었다.

열두어 살은 분명 어린 나이였다.

허나 내공을 익히기에는 결코 이른 나이도 아니었다.

보통 무림인들은 8살 전후에 내공을 익힌다.

그리고 명문의 경우는 그보다 어린 6살 전후에 내공을 익히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는 혈맥이 막히기 전에 내공을 익히기 위함이었다.

태어날 때 깨끗했던 혈맥이 탁기 등 세상의 것으로 인해 점점 막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혈운심법이라면 어느 정도 그릇을 만들어줄 거라 생각했다.

문제는 혈천의 혈운심법을 그대로 전수하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기에 조금 개량해줄 생각까지 했다.

이현성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시간을 낭비하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가르치면서 배운다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무공에 대한 열정을 다시 느끼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때 누군가 다가왔다.

“황 총관님? 어쩐 일이십니까?”

“이 대협,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황연 총관의 등장에 아이들은 움찔했다.

그들의 신분은 어디까지나 태가장의 시동이었다.

그런데 태가장의 귀빈을 귀찮게 하고 있었으니 혼이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움츠러든 것이다.

물론 황연 총관은 이미 알고 있었고, 혼을 낼 생각도 없었다.

이를 눈치챈 이현성이 나직하게 말했다.

“오늘은 이쯤하자구나. 참, 제가 허락도 없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대협께 가르침을 받다니, 저 아이들의 복입니다.”

황연 총관은 이현성의 의도를 눈치챘는지,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제야 아이들은 안도했는지 얼굴이 밝아졌다.

그렇게 아이들을 돌려보낸 후, 이현성은 황연 총관과 별채로 들어갔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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