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천사교가 팔패인 사자도패를 노리고, 오대교령 중 천살과 환야를 움직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천웅방에 대한 선전포고와 다를 바가 없었다.
사파사세의 하나로서 결코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허나 상대 역시 사파사세였다. 그러다 보니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몇날 며칠 언쟁만 오갈 뿐이었다.
“허면! 참아야 한단 말이오! 그럼 본방을 어찌 보겠소!”
“허나 본방의 상대는 천사교 하나가 아니오! 사해련과 지옥성은 물론 정파놈들만 좋아할 거요!”
그들은 팔패와 호법, 당주 등 의결권을 가진 천웅방의 중추들이었다.
의견은 다르지만 결국 천웅방을 위함은 같았다.
때문에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언쟁이 오갔다.
“첩보에 의하면 천사교의 호교사자가 셋이나 죽었다고 합니다. 그중에는 맹검도 포함되었다고 하니, 생각보다 본방이 유리하오.”
“매, 맹검도 죽었단 말이오!”
“방주님! 이건 기회입니다! 도패 님과 영패 님께서 오대교령인 천살과 천살문이 죽었는데, 맹검까지 죽었다면 천사교의 전력이 2할 가까이 줄었단 뜻입니다!”
과연 천웅방다웠다.
천사교의 호교사자인 광쇄, 광요 그리고 맹검이 죽었단 정보를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가뜩이나 사파사세 중에서 규모가 제일 작은 천사교인데, 이렇게 고수의 전력이 감소했다면 승산 정도가 아니라 자신들이 입을 피해 역시 상당히 줄어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이 파악하지 못한 점이 있었다.
그때 누군가 그들에게 찬물을 끼얹었다.
“도패. 그를 죽이면 본방과 전면전이란 것을 몰라서 천사교가 움직였다고 생각하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풍패 님.”
천웅방의 눈과 귀라는 천리풍패의 말에 분위기는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음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천리풍패가 나직하게 말했다.
“환희루가 천사교에 손을 내밀었다는 첩보가 있소. 아직 확실하지 않으나 제법 신빙성이 높소.”
“환희루라면… 강서 환희루를 말하는 겁니까! 그녀가 왜…….”
강서 환희루는 일개 기루가 아니었다.
강서 소주의 상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막대한 재력과 정보력 그리고 인맥을 가지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사파사세를 제외하고 사파무림에서 열손에 꼽히는 세력이기도 했다.
환희요후와 환희루라면 죽은 천살과 천살문을 충분히 대처할 수 있었다.
“황금방이 소주에 뿌리를 내린 듯하네.”
“화, 황금방이라면 천사교에 의해 멸문한 그들 말입니까!”
그제야 아쉬울 거 없던 환희요후가 천사교와 손을 잡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천웅방의 중추들은 이런 중요한 사항을 왜 이제야 말하냐는 듯 천리풍패를 바라봤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정황뿐일세. 허나 아니라면 천사교의 이런 어리석은 움직임을 설명할 수가 없지.”
“그, 그런…….”
그게 사실이라면 천사교와의 전면전에서 승산이 줄어든다. 아니, 그만큼 피해가 커진다.
허나 그들과 전면전을 하면 안 되는 이유가 또 있었다.
천리풍패의 시선이 천웅방주인 천웅창제에게 향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좌중의 시선 역시 그에게 향했다.
천웅창제는 한숨을 쉬곤 나직하게 말했다.
“부상을 입은 도패가 복귀 중인 것을 알고들 있을 걸세.”
“예. 방주님.”
“도패만 복귀할 걸게.”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의 말에 천리풍패를 제외한 좌중이 어리둥절했다.
허나 몇몇 눈치 빠른 자들은 방주의 말뜻을 알아들었는지 얼굴이 굳어졌다.
“암월영패께선…….”
“…탈퇴했네.”
“예?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분이 왜 본방을 탈퇴하십니까!”
암월영패가 천웅방을 나갔다면, 맹검을 잃은 천사교와 전력 차이가 비슷해졌단 것을 의미했다.
좌중은 팔패의 한 명인 그가 탈퇴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방주를 제외한 천웅방 최고 권력자인 팔패의 일인이 갑자기 탈퇴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때 천웅창제의 무거운 입이 다시 열렸다.
“비밀이었으나 더 이상 비밀일 이유가 없으니 밝히겠네. 암월영패는 본방에 입방한 것이 아닐세. 본 방주와 계약에 따라서 이십 년간 본방에 몸담고 있었던 것일세. 그리고 그 계약이 끝났네.”
“그, 그런!!”
좌중은 경악했다. 설마 그런 비밀이 존재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팔패의 일인이 계약에 의해 몸담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때 뭔가를 생각한 좌중은 다시 얼굴이 굳어졌다.
“그럼 다른 분들도…….”
“아닐세. 입장 차이는 있으나 계약을 맺은 것은 영패뿐일세.”
그제야 좌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칠패 역시 계약에 의해 임시로 몸담고 있는 거라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현재 천웅방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은 바뀌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천사교와 전면전은 불허하네. 대신 항의와 본방의 전력을 강화할 방도를 강구하길 바라네.”
“존명!”
천웅방주가 결론을 내린 이상 천사교와의 전면전에 대해선 왈가왈부할 수 없었다.
소집이 해제되어 홀로 남은 천웅방주는 후회했다
“이렇게 갑자기 떠날 줄 알았다면 그를 보내는 것이 아닌데… 그보다 왜 갑자기 떠난 거지?”
분명 암월영패를 설득할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비록 계약에 의해 묶인 관계였지만, 이렇게 급히 떠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허나 결국 그는 떠났다.
“지금은 보내지만, 적이 된다면 무조건 죽인다. 암월영.”
* * *
“지금… 뭐라고 했소?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오?”
천사교의 사절단이 석가장에 당도했다.
절강성에서 하북성까지 오기 위해 강소성과 산동성을 지나야 했다.
두 달도 채 걸리지 않고 도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천사교의 사절단은 해냈다.
육로가 아닌 해로를 통해 이동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렇게 석가장에 도착한 그들은 황당한 요구를 해왔다.
천사교의 호교사자 셋을 죽인 것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지금 본교를 만만히 보는 것이오. 장주! 광쇄, 광요 그리고 맹검 호교사자를 죽이지 않았소! 본교가 모를 거라 생각하시오!!”
“오해요! 소교주! 애초 본장이 무슨 힘이 있어서 귀교의 호교사자를 벤단 말이오! 이건 억지요!”
일견 보면 타당했다. 아무리 석가장이 천하제일의 부가라고 하지만 상대는 사파사세인 천사교였다.
미치지 않고 천사교를 건들 리가 없으며, 그럴 힘도 없었다.
그때 소교주의 곁에 있던 아름다운 여인이 반박했다.
“억지라니요? 장주님의 비밀호위라면 가능하지 않나요?”
“네년…! 소저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오. 본인의 비밀호위라니…….”
“본 소교주도 현무에 대해 알고 있으니 발뺌을 하지 마시오. 장주.”
눈빛으로 사람을 태워죽일 수 있다면, 그녀는 석대환의 눈빛에 타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석대환은 그녀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네년이 감히! 이게 무슨 개수작이더냐! 요후가 지금 본천을 배신하는 걸로 봐도 되겠느냐!
―시작은 혈왕께서 하셨어요.
그들이 주고받는 전음의 내용은 놀라웠다.
요후와 혈왕 그리고 본천.
그렇다. 석가장만 아니라 환희루 역시 혈천십삼세의 하나이며, 환희요후 역시 혈천의 호법이었다.
현무의 존재가 기밀 중의 기밀임에도 알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녀 아니, 환요의 행위는 혈천에 대한 반역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같은 혈천십삼세를 공격해서 대업에 지장을 준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뭘 시작했단 말이더냐!
―황금방!
―……!!
―황금방이 소주에 침범할 수 있던 것, 뇌전궁과 손잡을 수 있던 것 역시 혈왕 님의 작품 아니셨나요?
유령살군을 이용해 유령왕을 견제한 것처럼, 석대환은 황금방을 이용해 환희루를 견제했다.
환희루와 강소성의 패권을 두고 경쟁하는 뇌전궁을 황금방의 곁에 붙이면서까지 그렇게 했다.
그러므로 혈천에 대한 반역은 환희루가 아닌 석가장이 한 셈이었다.
―헛소리 그만해라! 내가 그런 멍청한 짓을 하겠느냐!
―혈왕께선 본루를 너무 무시하셨군요. 발뺌하신다고 해서 우리가 넘어갈 거라 생각하십니까!
석대환은 순간 저들을 모두 죽이고 싶다는 살심에 사로잡혔다.
아무리 천사교 사절단의 전력이 대문파급에 버금간다 해도 석대환은 흡정혈왕이었다.
그가 마음먹으면 순식간에 절반을 죽일 수 있었다.
게다가 현무와 삼당까지 움직인다면 천사교의 사절단은 아무도 이곳을 살아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석가장의 숨은 힘이 밝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왜 대답이 없으시오, 장주.”
“본 장주의 대답은… 부(不)요.”
“……!!”
석대환의 대답에 소교주는 물론 환요 역시 당황했다.
설마 그가 거부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소교주의 호위를 위해 동행한 호교사자인 사도(死刀)가 도파(刀把, 칼자루)를 쥐며 나직하게 말했다.
“감히 소교주님의 말씀에 거부를 해!”
“소교주의 말씀처럼, 본인의 비밀호위가 귀교의 호교사자 셋을 죽였다면 과연 그대들이 걸어서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소.”
움찔.
석대환의 말에 천사교의 사절단이 움찔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사도를 포함한 사절단의 고수 중 맹검보다 강한 자가 없었다.
그러므로 장주의 비밀호위 현무가 나선다면 위험한 쪽은 오히려 자신들이었다.
“지금 본교를 협박하는 거요. 장주.”
“만약을 말씀드린 것이외다. 소교주.”
소교주는 이를 악물었다.
고작 상인 나부랭이에게 이런 대우를 받을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의 경지로는 석대환의 힘을 파악할 수 없기에 발생한 오해였다.
그때였다.
“장주님. 진주언가의 언중경 가주께서 뵙기를 청하십니다.”
“곧 갈 테니,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하게.”
“예. 장주님.”
천사교의 사절단은 얼굴이 굳어졌다.
석가장주가 만약을 대비해서 언중경을 끌어들였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진주언가 쯤은 천사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들은 명문정파였다.
천사교가 진주언가와 싸우게 된다면 정파문파들이 끼어들 수 있었다.
그게 두렵지는 않으나 그때를 노려 천웅방 등이 움직인다면 곤란했다.
“장주. 오늘의 대접은 결코 잊지 않겠소.”
“소교주. 기억하시오. 장사꾼은 결코 손해 볼 짓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오.”
소교주는 분노로 부르르 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사교의 사절단 역시 치욕에 이를 악물었다.
그들이 자리를 박차고 나갈 때, 석대환이 환요에게 전음을 보냈다.
―천사교가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만약 저들이 움직이면 난 혈천대회의를 소집할 테니까 말이야.
―같이 죽자는 말인가요!
석대환은 혼자 죽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천사교에 대항하기 위해서 혈천에 도움을 청하겠다는 뜻이었다. 대업을 준비하고 있는 혈천으로서는 움직이기가 여의치 않았다. 하지만 혈천십삼세의 하나인 석가장을 버릴 수도 없었다.
아니, 버림받고 가만히 있을 석대환도 아니었다.
당연히 혈천의 존재를 폭로하고도 남을 자였다. 그게 싫다면 결국은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까지 간다면 혈천은 물론 환희루 역시 곤란한 상황이 된다.
그렇기에 환요와 환희루는 천사교가 석가장을 공격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래도 최소한의 성의표시는 하지. 중소 상단 하나와 표국 하나. 그걸로 해결해라. 내가 해줄 수 있는 성의는 거기까지다.
석대환의 제안이 환요는 이를 악물었다.
그가 제안한 중소 상단과 표국은 삼당 대신 제물로 준비해둔 것이다.
다만 호교사자 셋, 특히 맹검을 생각하면 부족한 대가였다.
하지만 석대환의 입장에서는 그 이상 내놓을 생각이 없었다.
애초 자신이 벌인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천사교의 사절단이 돌아가자, 석대환이 이를 악물었다.
“환희루의 수작일까,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장난질일까. …현무, 알아봐라.”
이현성은 큰 기대없이 한 것이지만, 의외로 큰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