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참, 늦긴 했지만 내 누이를 소개해줄게. 너를 내일 소개해주면 아마 날 죽이려고 할 거야.”
“음? 그게 무슨 말이야?”
“누이가 형님을…….”
“흠흠…….”
누군가 문 밖에서 헛기침을 하며 대화를 의도적으로 끊었다.
종리우와 이현호는 밖에 누군가 와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무공을 익힌 덕분에 인기척을 느꼈기 때문이다.
다만 무공을 익히지 않은 여인의 인기척이었기에 시비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문가장의 시비가 아니었다.
물을 활짝 연 문태규는 깜짝 놀랐다.
“어? 누이. 언제 와 있었어? 아, 알겠다. 호현아. 소개시켜줄 사람이 있는데 들여보내도 되지?”
“무, 물론 되지. 숙부님은…….”
“나도 상관없다.”
“…실례하겠습니다.”
문이 열리면서 한 소녀가 들어왔다. 무척이나 곱고 청초한 여인이었다. 천중산장의 꽃, 한은설과는 다른 매력을 가진 아름다운 소녀였다.
그녀는 바로 문교교였다.
“두 분께 소개할게요. 제 누이인 문교교예요.”
“처음 뵙겠습니다. 문교교예요.”
“하남 천중산장에서 온 종리우라고 하오. 만나서 반갑소, 문 소저.”
“…한호현입니다.”
문교교는 동생인 문태규를 바라봤다. 그녀는 이현성의 동생이 왔다고 듣고 왔다.
그녀도 이현성에게 동생에 대해서 들은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즉, 이현호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한호현이라고 하니 당황한 것이다.
이에 문태규가 빠르게 대답했다.
“사정이 있어서 한호현이란 가명을 사용하고 있다고 해, 교 누이.”
“아… 실례를 했어요.”
“아, 아닙니다.”
한은설을 제외하곤 여인과 인연이 없는 이현호로서는 문교교가 어려운 것은 당연했다.
그에 반해 문교교는 은애하는 이현성의 동생에게 호감이 가득했다.
그래서인지 문교교는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얼굴에서 이현성이 엿보였다.
두 사람이 형제라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였다.
이런 그녀의 행동에 좌중은 당황했다.
“누, 누이… 호현이가 부담스럽겠어.”
“아… 죄송해요. 제가 너무 실례를 했네요.”
문태규의 말에 그제야 실책을 깨닫고 민망한지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그녀를 본 문태규는 장난끼가 발동되었다.
“히히… 형님 없다고 호현에게 마음을… 윽! 누이!”
“우윽…! 태규 너!”
“풋!”
투닥거리는 두 사람을 보며 이현호는 자신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그리고 곧 정색하고 말았다. 너무 실례를 범했기 때문이다.
“아, 죄송합니다. 제 누이들이 생각나서…….”
“네? 누이들이오? 오라버니께 듣기로 누이는 한 명뿐이라고…….”
이현성은 삼남매였다. 하지만 이현호에게 누이는 둘이었다.
그는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제겐 누이가 둘이 있습니다. 아니, 있었지요. 한 분은 십여 년 전에 죽었고… 나머지 한 분은 절 십여 년간 돌봐주었습니다.”
“아… 죄, 죄송해요. 그런 것도 모르고…….”
문씨 남매는 그제야 이현성과 이현호의 친누이가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직접 물은 문교교는 사색이 되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이현호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현영 누이가 죽은 건 십 년도 더 지난 일이니까요.”
“…….”
이현호는 몰랐다. 이현영이 살아 있다는 것을…….
한승이 그에게 말하지 못했다. 아니, 말할 수 없었다.
십여 년 전에 그 자리에 있었으면서도 두 남매를 구하지 못했다는 것을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사부이자 장인의 유언 때문에 나서지 못했고, 막상 유언을 어기고 움직이려 할 때는 먼저 움직인 여고수 때문에 나서지 못했다.
어쨌든 구하지 못한 것은 변하지 않은 사실이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말해주지 못했다.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자 문태규가 종리우에게 말했다.
“대협. 술 한잔하시겠습니까?”
“하하… 그게 좋겠소.”
“누이…….”
“아… 자,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문교교는 술상을 차리기 위해서 밖으로 나갔다.
물론 그녀가 직접 준비할 것은 아니지만, 사내 끼리가 편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현호는 두 남매의 배려가 고마웠다.
‘형님은 좋은 분들과 인연을 맺고 계셨구나. 형님… 곧 찾아뵙겠습니다.’
* * *
“30년간… 봉문하겠소.”
산동악가주인 창군은 눈물을 머금고 30년 봉문을 선언했다.
창군의 부인이자 산동악가의 가모인 모 부인의 장례가 진행하는 동안, 황보세가를 필두로 산동무림에서 편성된 조사단이 파견되었다.
그들은 산동악가를 모욕하지 않는 선에서 샅샅이 조사했다.
그 결과 두 가지 결론을 내렸다.
산동악가 내에 스며든 세력이 있다는 점과 그들이 신마릉 혈사의 주범이란 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산동악가의 죄가 없다는 점은 아니었다.
설사 그들이 산동악가에 스며든 세력일지라도 어쨌든 가모의 오라버니가 그 주축이라고 판별되었다.
또한 산동악가 고수들 역시 어느 정도 관여했기에 죄는 분명 있었다.
창군은 가주로서 이를 단속하지 못한 책임이 있었다.
그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 해도 죄를 회피할 순 없었다.
그렇기에 창군은 그 책임으로 가주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은 물론, 30년 봉문을 선택했다.
산동악가로서는 치욕이며, 막대한 피해를 감수하게 되었지만 가문을 지킬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기도 했다.
“좋소. 가주께서 주도하시지 않은 점과 이용당한 점을 감안해서 귀가의 결정을 따르겠소.”
“고…맙소.”
산동무림의 조사단은 창군의 결정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마음 같아선 봉문이 아닌 멸문을 시키고 싶었으나 지금은 이성적인 판단을 할 때였다.
특히 산동악가가 주범이 아니란 말은 결국 주범이 따로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더 이상 헛된 곳에 힘을 쓸 때가 아니었다.
게다가 권왕이 은연중에 살 구멍을 열어주길 바랐다. 물론 이현성의 부탁 때문이다.
그것이 산동악가의 숨통을 열어준 셈이었다.
만약 조사단이 끝까지 산동악가의 멸문을 원했다면, 산동악가 역시 필사적으로 저항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산동무림 역시 적지 않은 피를 흘리게 된다.
이것이 현재 할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인 셈이었다.
“…내가 말할 입장은 아니나, 그들의 정체가 밝혀지면 한 팔 거들 수 있게 해주시오. 이 빚… 죽기 전에 꼭 갚고 싶소.”
“약속드릴 순 없으나… 그렇게 하겠소.”
창군은 속에서 열불이 났다.
평생소원이었던 황보세가를 넘어서기는커녕 지금까지 쌓은 지위마저 잃어버렸다.
이 모든 것이 누군가의 수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때문에 이대로는 절대 눈을 감을 수 없었다. 이 분노를 풀기 전에는.
조사단장인 황보세가의 장로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황보세가의 아성을 넘보던 산동악가의 몰락이건만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이번 일은 그들만 아니라 황보세가와 산동무림에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까딱했으면 황보세가 역시 휘청일 뻔했다.
천왕대의 반파는 황보세가에 큰 타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천왕대를 재결성하기 위해선 10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전원이 천왕기공을 7성까지 익힌 절정고수로 양성하는 것은 10년도 최소였다.
‘어느 놈들인지 모르지만, 끝까지 쫓는다!’
하지만 혼세교는 이미 자취를 감추었다. 백 년이나 숨어 지낸 혼세교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동시에 다시 모습을 드러낼 날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산동무림은 좀처럼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산동성을 쥐 잡듯이 파헤치고 다녔기 때문이다.
혼세교의 야욕으로부터 산동무림을 구한 이현성은 발길을 하남성으로 돌렸다.
* * *
챙! 챙! 채챙!!
두 자루의 검이 노닐고 있었다.
검객들이 검에 끌려다닌다는 말이 아니었다.
물 흐르듯 너무도 자유롭게 자연스럽게 검을 휘두른다는 의미였다.
“정말 강하군. 좋네.”
“형님. 역시 강하십니다.”
두 사람은 맹검 위지천과 이현성이었다.
위지천의 내상이 나은 후 가능하면 매일 검을 나누었다. 두 사람이 동역하게 된 것은 결국 서로가 강해지기 위함이었다.
그러니 비무는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비무가 끝이 아니었다.
무리를 논하며 서로의 발전에 도움을 주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현성은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혼원신공의 공이 컸다.
더 정확히는 혈영공, 포영심결 그리고 상청도량심결이 섞인 혼원신공은 그의 성장을 보다 빠르게 촉진시켜주었다.
그로 인해 위지천은 부러움과 자극을 받고 있었다.
콰쾅!!
힘 조절을 한다고 했음에도 초절정고수들의 격돌에 여파가 없을 수 없었다.
하지만 최소한으로 겨루는 만큼 여파도 크지는 않았다.
“후… 이쯤하시죠.”
“그러세나. 점점 강해지는군. 이러다가 상대도 되지 않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
“그럴 리가요.”
농담처럼 말했지만, 완전히 농담은 아니었다.
맹검 위지천도 무위에 비해 어린 편이고, 빠른 성장을 보여준 측에 속했다.
하지만 이현성은 차원이 달랐다.
천재? 아니었다. 괴물. 이 외에 어울리는 단어가 없었다.
허나 그렇다고 꺾일 위지천이 아니었다. 오히려 호승심을 불태웠다.
“그보다 며칠 후면 하남성에 도착할 것 같은데, 어디로 갈 생각인가?”
“정주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숭산이 있는 등봉현으로 가고 싶었으나 자칫 소림의 오해를 살 수 있었다.
그럼 그나마 가까운 낙양이 적격이었다.
문제는 낙양을 대표하는 무림문파인 낙양검문의 호법 제의를 거절했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낙양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낙양검문이라도 수십만이 기거하는 낙양에서 두 사람을 발견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과하다.
하지만 절대라곤 말할 수도 없었다.
“정주라… 그런 대도시라면 시선을 끌지 않겠는가?”
“오히려 설마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인적이 드문 곳에 숨는 것보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 속에 들어가서 흔적을 숨기는 것이 낫다.
정주는 낙양, 개봉과 함께 하남성을 대표하는 도시다.
무엇보다 정주는 정파무림의 연합체인 무림맹이 세워질 장소였다.
‘그들도 내가 설마 무림맹의 지척에 숨어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못하겠지. 여차하면 무림맹의 그늘에 숨어도 되고.’
회귀 전과 달리 현생에서는 살수도 아니었다. 따라서 무림맹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만한 그늘도 없는 셈이었다.
물론 천사교 호교사자 출신인 위지천의 입장에선 무림맹의 그늘에 숨는 것은 곤란했다.
허나 무림맹은 최악의 상황을 염두한 최후의 보루일 뿐, 무조건 무림맹의 그늘에 숨을 생각은 아니었다.
게다가 내각대학사인 문종학이 동문에게 써준 소개장이 있었다.
그가 바로 정주에 있었다. 잠시 의탁할 수 있단 의미였다.
“알겠네. 그렇게 하세나.”
“감사합니다.”
아무리 목적이 있어서 동역하고 있지만, 자신의 의견을 따라주는 그가 고맙기만 한 이현성이었다.
위지천은 이현성이 궁금했다.
그가 숨기고 있는 것이 뭔지, 노리는 것이 뭔지 그리고 그가 얼마나 더 강해질지 궁금했다.
그렇기에 옆에서 지켜볼 생각이었다.
왠지 그것이 자신에게 많은 영향을 줄 거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하남성의 성도 정주로 향했다.
* * *
“좌시하시면 안 됩니다. 방주님!”
“천사교와 전면전은 본방에도 득이 아니오!”
천웅방은 때아닌 논쟁이 벌어졌다.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