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한호현
“실례하겠습니다. 이곳이 내각대학사님의 장원이 맞습니까?”
두 명의 사내가 북경 문가장의 문을 두들겼다.
그중 젊은 아니, 어린 청년은 검을 소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관부나 군부 출신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즉, 무림인이란 뜻이었다.
그로 인해 문가장의 경비를 맡고 있는 금의위사들의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맞소만. 무슨 일이오?”
“저흰 하남 천중산장에서 왔습니다.”
금의위사들의 기억에는 없으나 예상대로 관인은 아니었다.
덕분에 그들의 태도 역시 곱지 않았다.
두 사람은 그들의 이런 반응이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중년인은 경험이 많은지 유연하게 대처했다.
“이현성이란 분이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그분을 뵙고 싶은데…….”
“교두님께서 떠난 지가 언젠데, 아직도 너희 같은 놈들이 찾아오는 거야?”
이현성이 문가장을 떠난 지 한 달이 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를 만나기 위해 찾아오는 무림인들이 있었다.
덕분에 금의위사들의 심기가 편치 않았다.
“혀, 형님께서 떠나셨다고요!”
“혀, 형님? 너 아니, 소협께서 교두님의 동생분이십니까?”
문가장을 찾아온 사람은 천중산장에서 온 의독선생 종리우와 한호현이었다.
이곳에 있다는 이현성이란 사람이 정말 한호현 아니, 이현호의 형이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찾아온 것이다.
허나 이현성은 이미 떠난 뒤였다.
이현호의 말에 금의위사들의 태도가 바뀌었다.
조금 전과 같은 사람이 맞나 헷갈릴 정도였다.
“아… 그게… 그러니까.”
“교두님의… 동생분이 맞소? 아니오?”
이상한 반응에 금의위사는 살짝 의심이 들었다.
두 사람은 더욱 난감했다.
그들 역시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찾아온 것이니, 맞는지 확실하게 대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더욱 그가 이곳에 없다면 확인할 길도 없었다.
결국 대답을 못하는 그들을 보며 금의위사들의 손이 검파(劍把)로 향했다.
그들이 너무도 수상쩍기 때문이다.
이현호와 종리우는 난감할 따름이었다.
저들의 복장만 봐도 금의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저들과 싸워 좋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때였다.
“무슨 일인데 이리 소란스러우냐?”
“조장님. 교두님을 찾아온 자들인데…….”
“교두님을 찾는 자가 한둘도 아니고, 돌려보라.”
“그게 아니라 교두님의 동생이라고 해서…….”
금의위사가 조장이라고 부른 자는 금의위 선임 위사이자, 시백호(試百戶)인 엄환이었다.
엄환은 문종학을 북경까지 호위한 금의위사 중 한 명이었다.
즉, 이현성과 생사고락을 함께한 자란 뜻이었다.
그렇기에 문가장 식솔 중에서도 제법 친한 측에 속한 자였다.
“헉! 교두님의 동생분이시라고! 그럼 당장 모시지 않고 뭐하느냐!”
“그, 그게 확실치 않아서… 본인도 확실하게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엄환은 이현호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 나직하게 물었다.
“교두님과 닮은 것 같긴 한데… 소협이 교두님의 동생분이 맞소?”
“제게는 십여 년 전에 헤어진 형님이 계십니다. 그분의 성함이 이가 성에, 현성이란 이름을 가지고 계십니다. 저는 이곳에 계신 분이 제 형님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해서 교두님이라고 불리는 분이 제 형님인지 확실하게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차분하게 대답한 이현호의 말에 그제야 금의위사들은 그가 왜 이상한 반응을 보인 것인지 알 수 있었다.
확인을 하기 위해서 온 것이니 아닐 가능성도 있단 말이다.
“하긴 교두께서도 헤어진 가족을 찾는다고 하셨지. 허나 아직 확인된 것은 아니니, 검은 잠시 우리가 보관하겠소. 동의하겠소?”
“예…….”
이현성이 문가장에 없다면 굳이 방문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혹시 어디로 떠난 것인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 형이 맞다면 그간 그가 지낸 곳이 어떤 곳인지 궁금했기에 엄환의 지시대로 검을 맡겼다.
두 사람을 객당으로 안내했다.
아직 신원이 확인된 것이 아니었기에 이현성의 거처로 안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문가장의 장주이자 내각대학사인 문종학이 두 사람을 청했다.
“처음 뵙습니다. 문종학이라고 합니다.”
“명성이 자자하신 내각대학사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희는 하남 천중산장에서 온 종리우라고 하오.”
“한호현입니다.”
문종학의 허락이 있었으나 아직 두 사람의 신원이 확실하지 않기에 위표와 금의위사들이 문종학의 곁을 지켰다.
“성함이 한호현이십니까?”
“아… 죄송합니다. 제 본명은 이현호가 맞습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한호현이란 가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현호의 이름은 5살까지만 사용했고, 12년을 한호현으로 살아왔다.
그런 그였기에 긴장하니 자신도 모르게 한호현으로 소개한 것이다.
그만한 사정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쉽게 수긍하기도 어려웠다.
“소협이 이 대협의 동생분이라는 증거가 있소이까? 이름 하나만으로는 인정하기가 어렵소. 이 대협의 가족을 찾기 위해 수소문하는 과정에서 그 이름이 새어나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니 말이오.”
문종학은 이현성 대신 그의 가족을 찾기 위해 지인들의 도움을 받았다.
당연히 기본적인 신상정보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의 남동생의 이름이 이현호이고 16세 아니, 이제 17세가 되는 청년임을 알고 있었다.
허나 그 정도 정보는 충분히 유출되었을 수 있었다.
즉, 이걸로는 증명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당황한 이현호 대신 곁에 있던 종리우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건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세한 건 말씀드릴 수 없으나 이 아이가 이현호란 이름 대신 한호현으로 살게 된 것은 의형께서 이 아이를 보호하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이 대협이란 분이 이 아이를 찾아내기 위해 가짜 이름을 사용한 것이 아니란 증거도 없습니다.”
“감히…….”
“그만. 종리 대협의 말씀도 틀리지 않네. 실제로 우리 역시 이 대협의 신분을 확신할 수 없으니까.”
“대, 대인…….”
종리우의 말에 금의위사가 발끈했으나 오히려 문종학이 그를 두둔했다.
그것 역시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덕분에 금의위사들과 이현호가 당황했다.
물론 문종학도 이현성에 대해서 알아봤다.
그를 못 믿기 때문이 아니라 가족에 대해 조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현성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 사부를 만나서 무공을 익혔다고 하지만 그 점은 확인되지 않았다.
즉, 자신 역시 이현성 본인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그 이 대협이란 분이 계셔야 모든 것이 확인된다는 뜻이군요.”
“맞습니다.”
모든 열쇠는 이현성 그에게 있었다.
문제는 그가 이곳에 없으며, 언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종리우가 나직하게 물었다.
“이 대협을 어디 가야 만날 수 있는지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대인.”
“아쉽게도 저희에게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언젠가는 오신다고 하셨을 뿐이지요.”
문종학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소개장을 써주긴 했으나 그가 하남성에 기거하는 동문에게 간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군요. 만약 그분을 만나게 되신다면 당신의 남동생일지도 모르는 청년이 하남 천중산장에 있다는 말을 전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전해드리지요. 그리고 거처를 정하지 않으셨다면 오늘은 저희 장원에서 묵으시지요.”
“예가 아닌 줄 아나, 하루만 신세를 지겠습니다.”
이현성이 없는 이상 문가장에서 지내는 것은 불편했다. 결국 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에 지냈다는 자가 동명이인이 아닌 동일인물인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렇기에 문종학은 물론 종리우 역시 이현호에게 시간을 주고 싶었다. 본인은 만날 수 없으나 그 자취라도 느끼라는 배려였다.
“반 위사는 하인에게 두 분이 쉬실 곳을 안내해달라고 전해주게.”
“예. 대인.”
“그럼 저는 이만…….”
문종학의 지시를 받은 반예는 종리우, 이현호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하인과 함께 두 사람에게 거처를 내주기 위함이었다.
문종학은 하인에게 말을 전하라고 했으나 만약을 대비해서 금의위사가 동행할 필요가 있기에 반예가 동행했다.
그들이 나가자 위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인께선 저들이 가짜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닐세. 난 저 소협이 이 대협의 동생이라고 생각하네.”
“그럼… 왜…….”
“그들 형제 사이에 사정이 있을 것이네. 내가 아니, 우리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은 여기까지이네.”
이현호의 얼굴만 봐도 두 사람이 형제란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닮은 부분이 많았다.
그럼에도 문종학은 확정 짓지 않았다.
그들 형제 사이에 자신들이 모르는 사정이 있을 수도 있으며, 그 부분을 관여해선 안 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뭘 숨기고 있는지 모르지만, 이 대협. 본인은 그대가 행복하셨으면 좋겠소.’
* * *
“와! 정말 형님의 동생이시구나! 아, 저는 문태규라고 합니다. 아버님께서 내각대학사입니다.”
문태규는 이현호에 대해서 이미 들었다.
하지만 부친과 대담 중이었기에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현호는 너무나 친근하게 대하는 문태규를 보며 얼떨떨해했다.
“저는 하남 천중산장에서 온 한호 아니, 이현호입니다.”
“현호의 숙부인 종리우이오. 문 공자. 만나서 반갑소.”
“잘 오셨습니다. 형님께서 계셨으면 정말 좋아하셨을 텐데 아쉽네요.”
이현호는 문태규의 입에서 형에 대해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동시에 왠지 형을 빼앗긴 기분이 들었다.
“형님…에 대해서 잘 아시나 봅니다.”
“형님께서 절 친동생처럼 많이 챙겨주셨지요. 아마 당신 대신이셨겠지요.”
“아…….”
이현호는 자신이 유치한 생각을 했단 것을 깨닫고 얼굴을 붉혔다.
너무 솔직한 그의 반응에 문태규는 미소를 지었다.
그 역시 순수한 청년이지만, 아무래도 내각대학사의 아들로서 북경 생활을 하다 보니 마냥 순수할 수만은 없었다.
그런데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형님의 동생이 이리 좋은 사람인 것을 보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거 아십니까? 우리가 동갑인 것을? 그래서인지 형님은 절 더 친동생으로 대해주셨지요.”
“그러시군요.”
“괜찮으면 우리 친구 할래요? 불편하십니까?”
“아, 아닙니다. 좋습니다. 친구…….”
갑작스러운 제안에 이현호는 당황스러웠으나 결코 싫은 기분은 아니었다.
사실 이현호에겐 친우가 없었다. 또래라곤 누이인 한은설뿐이다. 그 외에는 천중산장에서 일하는 하인이나 시비 정도였다. 아무래도 그들은 입장 차이가 있으니 거리가 좁혀질 수 없었다.
지금까진 무공을 익히는데 정신을 쏟아서 굳이 친우가 필요하단 생각은 하지 않았다.
허나 그의 제안을 거부할 생각도 없었다.
“그럼 우리 말을 놓을까요? 아니, 놓을까? 날 태규라고 불러줘.”
“저는… 후… 난 호현이라고 불러줘.”
“음? 호현? 현호가 아니라?”
“사정이 있어서 한호현이란 이름을 가지게 되었어. 언젠가 이현호로 불릴 날이 있겠지만 아직은…….”
그에게 사정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문태규는 자세히 묻지 않았다. 그리고 화제를 바꾸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