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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88화 (88/314)

88화.

흑운의 부상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챙! 챙!

“큭!”

“지금!!”

낭인답지 않은 무위와 낭인다운 풍부한 실전 경험 덕분에 백랑은 일시적으로 괴한들의 포위를 열 수 있었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마가장의 소장주와 호위무사들이 빠져나갔다.

이제 흑운과 백랑만 빠져나가면 된다.

“이, 이봐!”

“켈켈켈… 배신당했군. 그만 죽어라!”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괴한들의 포위를 일시적으로 열었으나 다시 막힐 수밖에 없었다.

원래라면 흑운과 백랑이 빠져나갈 수 있게 마가장의 호위무사들이 도와줘야 했다.

그런데 마가장의 호위무사들은 저만 살겠다고 그대로 도망쳤다.

그들의 입장에선 괴한들의 시선을 흑운과 백랑에게 붙잡아둬야 추적도 피할 수 있으니 도와줄 이유가 없었다.

흑운과 백랑은 서로 등을 붙인 채 자신들을 포위한 괴한들을 경계했다.

상처가 벌어진 흑운과 상당히 지친 백랑은 괴한들의 포위를 다시 뚫기는커녕 더 이상 버틸 여력도 없었다.

“미안하다… 흑… 의뢰를 받지 말았어야… 으윽…….”

“아닙니다. 형님.”

마가장주의 의뢰는 신마릉의 유진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었다.

철부지 아들을 무사히 구해오는 것이다.

게다가 알(?)부자라고 소문난 마가장주답게 의뢰비가 제법 짭짤했다.

은퇴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탕하려고 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챙!

서걱!

“컥!”

“형, 형님!!”

한 손이 열 손을 감당할 수 없는 법이었다.

낭인계에서도 흔치 않은 절정고수인 흑운도 부상을 입은 몸으로 사방에서 날아오는 칼을 막는데, 한계가 있었다. 등을 맡겼던 흑운이 무너지자 백랑 역시 같이 무너지는 것은 당연했다.

“컥!!”

“크으윽!!”

“누구냐!!”

백랑의 가슴을 노리던 칼은 닿지 않았다. 그전에 칼을 휘두르던 괴한들의 목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괴한들은 불청객의 존재를 눈치채고 주변을 경계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불청객은 그들이 경계했다고 해서 감당할 수 없는 강자였기 때문이다.

“으아악!”

“크윽!”

“제, 젠장!!”

적의 기척이 없었다. 그럼에도 죽어가는 자가 발생했다. 절대적인 죽음의 그림자에 괴한들조차 당황하고 말았다. 허나 그런 마음의 틈은 그들을 더욱 죽음의 구렁텅이 속에 빠트리고 있었다.

“누, 누구냐! 나와라! 당장… 컥!”

“…….”

그 많던 괴한들이 어느새 쓰러지고 결국 마지막 괴한 역시 쓰러졌다. 그곳에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복면을 쓴 누군가가 서 있었다.

순간 그와 백랑의 눈동자가 부닥쳤다.

허나 그는 그대로 사라졌다.

“도대체… 아… 혀, 형님!”

“으…으…….”

흑운은 아직 절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치명적인 부상으로 인해 그에게 시간이 없어 보였다.

태의나 성수와 같은 신의(神醫)라면 일말의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안타깝게도 이곳에 그런 존재는 없었다.

“아… 아우… 내… 내 가족…….”

“돈은 형수님과 조카에게 전할 테니, 걱정 마십시오.”

“고… 고맙…….”

“혀, 형님!!”

대부분의 낭인들은 가족이 없었다. 아니, 가족을 만들지 않는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들에게 가족은 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이가 가족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칼을 든 자도 있었다.

흑운은 후자에 속했다.

가족들을 위해서 칼을 들었고, 무인의 명예도 지킬 수 없는 낭인이 되었다. 그 대가로 가족들을 먹여 살릴 수 있었다. 아니, 풍족한 삶을 주었다.

그런 흑운도 지쳤다. 이제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작은 객잔 하나 차려서 평범한 행복을 누리고 싶었다.

마가장주의 의뢰는 그것을 위한 은퇴 전 마지막 의뢰였다.

허나 낭인 아니, 칼을 쥔 자의 은퇴는 죽음뿐이라는 듯 그 역시 칼과 함께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죽은 흑운을 어깨에 짊어진 백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개자식… 살려서 잔금을 받는다. 형님의 마지막 소원을 위해서…….”

백랑은 다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움직였다.

마가장의 소장주를 위함도, 낭인으로서 신용을 위함도 아니었다.

의형 흑운의 꿈인 가족들의 평안을 위한 잔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 *

“헉헉… 헉…….”

신마릉 깊숙이 들어갈수록 더욱 험난했다.

황보세가의 소가주인 천황신권과 천왕대가 이곳까지 오는 것이 그리 수월하지 않았음을 알려주듯 그들의 외형은 심상치 않았다.

그들의 수 역시 처음과는 달랐다.

그럼에도 눈빛은 죽지 않았다. 아니, 활활 불타고 있었다. 아직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 드디어!”

그간의 고생을 보상해주듯 진짜 신마릉에 도착했다.

정확히는 동굴의 끝에 도달했다.

이곳이 진짜 신마릉임을 확신한 것은 벽에 적혀 있는 문구 때문이다.

[나의 평강을 방해하는 자, 오직 죽음만이 기다릴 것이다.]

이런 오만한 말을 남길 자가 신마릉에 신마를 제외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하나의 석관이 놓여 있었다.

당연히 신마가 영원히 잠든 석관이었다.

“으음… 석관 안에 있다는 말인데… 열어라.”

“존명!”

주변을 수색했지만 석관 이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신마가 생전이 사용했던 마검(魔劍)과 신도(神刀)는 물론 그의 절학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그 말은 그의 시체와 함께 석관 안에 잠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천왕신권은 천왕대에게 석관을 열라고 명했다.

“드디… 헉!”

콰콰쾅!!!

천왕신권은 한껏 흥분했다.

신마의 절학이 황보세가의 절학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나 발전의 밑바탕은 되어줄 거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허나 그의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

석관이 열리는 순간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은 뚜껑을 연 천왕대원은 물론 주변까지 집어 삼켰다.

그 충격으로 인해 동굴 전체가 흔들리며 천장에서 돌가루가 떨어졌다.

아직 무너지지 않았으나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크윽… 우웩!!”

천왕신권이 토한 피가 한 웅덩이였다.

이는 그의 내상이 심각하다는 뜻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폭발에 의한 충격은 상당했다.

이 자리에 있던 자 중 오직 그만 살아남을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그것도 그가 본능적으로 호신강기를 펼쳐 육신을 보호했기에 내상을 입었을지언정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단 뜻이다. 즉, 초절정지경에 오르지 못했다면 그마저 죽었을지도 모른다.

“소가주!!”

“소가주님!!”

멀리서 천왕신권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식이 희미해진 천왕신권은 목소리의 주인공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다행히 그들은 적이 아닌 아군이었다.

“소, 소가주! 괜찮으시오!”

“대, 대주님… 무사하셔서 다행…….”

“소가주!!”

그들은 갈림길에서 헤어졌던 천왕대주와 대원들이었다.

그들 역시 쉽지 않은 시간이었는지 멀쩡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천왕신권에 비해서는 양호했다.

천왕대주는 급하게 천왕신권의 몸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의식을 잃었을 뿐 목숨을 부지한 상태였다.

하지만 치료가 급한 상황이었다.

“시간이 없다! 빠르게 돌아간다!”

“존명!”

천왕대주는 천왕신권을 업었다.

천왕대원들은 그의 호위를 서기 위해서 앞에 두 명, 뒤에 한 명이 섰다.

하지만 당장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들의 앞을 막은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막는 자가 있다면 뚫고 가면 된다.

허나 천하의 천왕대조차 주춤거릴 정도로 범상치 않은 고수들이 길을 막고 있었다.

“여기서 죽어줘야겠어.”

“…천붕도(天崩刀)? 그대가 왜… 서, 설마 신마릉이 악가의 수작이었단 말이오!”

천붕도 모관형.

산동악가의 호법이었다. 그리고 가모(家母)의 오라버니이기도 했다.

다만 소가주의 친외숙이 아닌 만큼 큰 권력을 가지지는 못했다. 현(現) 가모는 소가주의 친모가 죽은 이후 가주의 부인이 된 여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산동악가의 호법이자, 가모의 오라버니였다.

그런 그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수작이라니… 천왕대주께서 입이 너무 험하군.”

“본가는 절대 이 일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오!”

신마릉처럼 중요한 장소에 악가사십구창이 보이지 않아서 이상했다. 그런데 신마릉 자체가 함정이었고, 산동악가의 수작이라면 앞뒤가 맞았다.

천붕도가 나직하게 말했다.

“천왕신권과 천왕대가 몰살당했으니 황보세가가 본가를 어찌할 힘이 있겠나?”

“소가주…께선 아직 살아계시고, 나와 천왕대는 아직 무너지지 않았소! 그리고 권왕께서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오!”

천왕대주의 고함에도 천붕도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 모습이 묘하게 천왕대주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었다.

“틀렸어. 천왕신권과 천왕대는 몰살당할 것이네. 바로 나에게 말이야. 그럼 권왕도 본가의 일을 알 수 없네. 오 년? 아니, 십 년 후 권왕이 죽으면 과연… 황보세가가 그때도 오대세가일까?”

“미, 미친! 미친놈에게는 매가 약이지!”

천왕대주의 주먹에 강렬한 빛이 어렸다.

권기(拳氣)? 아니었다. 권강(拳罡)이었다.

황보세가 등 오대세가가 그 외의 무림세가와 다른 점은 화경고수 혹은 그에 버금가는 존재가 있다는 점이다.

그들을 뒤에서 받쳐주는 초절정고수들이 여럿 있었다는 것 역시 오대세가의 위대한 점이다. 소가주인 천왕신권 이외에도 천왕대주 역시 초절정고수였다.

그에 반해 산동악가는 가주인 창군(槍君)을 제외한 초절정고수가 없었다. 아니, 없다고 알려졌다.

쾅!!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천왕대주의 권강을 천붕도가 베었다.

아무리 강력한 도기도 권강을 벨 수는 없었다.

강기는 오직 강기로만 상대할 수 있었다.

“어, 어떻게…….”

“왜? 내가 도강을 펼친 것이 놀라운가?”

그렇다. 천붕도가 천왕대주의 권강을 벨 수 있었던 것은 그 역시 강기. 정확히는 도강을 펼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그가 초절정고수라는 것을 의미했다.

차가운 미소를 짓던 천붕도가 나직하게 말했다.

“천왕신권을 죽여라, 천왕대주는 내가 맡을 테니…….”

“존명!”

천붕도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 역시 고수들을 대동했다. 그들 역시 예사롭지 않았다.

‘쉽지… 않겠어.’

고작 셋 남은 천왕대원들이지만, 하나같이 절정권사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지쳐 있었다.

의식을 잃은 소가주를 지키며 적을 격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 그만 죽어라!”

* * *

“크윽!”

천왕대는 황보세가의 호법에 준한 지위를 갖는다.

그만큼 까다로운 조건을 갖춘 자들이었다. 그 조건 중 하나가 천왕기공(天王氣功)을 7성 이상 익히는 것이다.

천왕대주는 천왕기공이 무려 9성에 올랐고, 벽력신권을 대성한 인물이었다.

무위는 아직 소가주인 천왕신권보다 반수 위였다.

그런 천왕대주가 밀리고 있었다.

아무리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해도 믿기 어려운 일이다. 설령 천붕도가 무위를 숨기고 있었다고 한들 이건 놀라운 일이었다.

문제는 밀리고 있는 것은 그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커억!!”

“안 돼!!”

천왕신권을 지키던 천왕대원 중 한 명이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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