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그런 그에게 절대고수인 신마의 무덤은 포기할 수 없는 욕망 그 자체였다.
결국 뒤도 보지 않고 태산으로 향했다.
장원의 호위무사들만 대동한 채였다.
이를 뒤늦게 알게 된 마가장주는 억지로 끌고 오는 것은 힘들다고 생각했는지 낭인을 고용해 아들을 지키려고 했다.
낭인 따위에게 귀한 자식의 목숨을 맡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지만, 모든 낭인들이 실력과 신용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마가장주는 매우 운이 좋게도 비싸지만 실력과 신용을 가진 낭인을 구할 수 있었다.
“백랑. 어쩔 수 없네. 우린 받은 만큼 하세나.”
“흑운 형님… 후… 알겠소.”
마가장주가 소장주를 위해 고용한 낭인은 흑운(黑雲)과 백랑(白狼)이란 낭인이었다.
낭인계에서도 흔치 않은 절정고수들로, 실력은 물론 임무 성공률도 매우 높은 자들이었다.
그 때문인지 두 사람의 몸값은 웬만한 낭인대를 고용하는 것보다 비싸다.
그럼에도 마가장주는 그들을 고용하는 걸 고민하지 않았다. 장남을 잃는 것보단 낫기 때문이다.
피융~!
챙!!
“으아아악!!”
“공자를 보호하라!!”
고작 이류에 불과한 소장주는 사실상 짐에 불과했다.
그러나 동시에 돈줄이기에 버릴 수도 없었다.
이는 흑운, 백랑만 아니라 마가장의 호위무사들 역시 다르지 않았다.
덕분에 그들은 죽을 맛이었다.
“보, 보물만 차지하면 그만한 보상을 해줄 테니까 나, 날 잘 지켜라!”
“끄응… 공자. 그 말 잊지 마시오!!”
위기는 곧 기회였다.
이 위기만 넘어선다면 그만큼 달콤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휘두르는 칼에 다시 힘이 붙었다.
허나 의욕만으로 살아남기에 이곳 신마릉은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큭!”
“장철! 왕추!”
일개 장원의 호위무사들이 강해봤자 얼마나 강하겠는가.
그들이 이 자리에 온 것은 소장주의 명령 때문만은 아니었다.
신마릉에서 기연만 손에 넣는다면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었다.
그런 헛된 희망이 그들을 이곳까지 오게 했다.
그러나 현실은 잔혹했다.
그들의 희망은 그저 가볍게 짓밟히고 있었다.
“나, 날 지키란 말이야!!”
“젠장!!”
고용된 몸이지만 그래도 수년간 함께 생활해온 동료들이었다.
그런 그들을 이렇게 놔두고 떠나야 하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제 코가 석자이며, 소장주라는 짐까지 있는 상황에 죽어가는 동료들의 시체를 수거할 여유는 없었다.
덕분에 마가장의 호위무사들은 눈물을 머금고 움직였다.
하지만 시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흐흐흐… 더 이상은 못 들어간다!”
“미, 미친!!”
신마릉을 지옥으로 만든 것은 함정만이 아니었다.
신마의 유진을 독차지 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곳을 더욱 잔혹하게 만들었다.
앞서 들어간 자들이 길을 막으며 자신들을 향해 칼을 겨누고 있었다.
“백랑. 내가 뚫을 테니 자네가 공자를 지키게.”
“예. 형님.”
부슬부슬한 턱수염을 한 흑운은 넓적하고 두툼한 칼을 휘둘렀다.
그 모습이 마치 촉의 장비를 연상케 했다.
적을 베어 넘기는 흑운의 실력은 일당백(一當百)이란 말이 절로 나왔다.
덕분에 그들을 막고 있던 무리는 당황하고 말았다.
“주, 죽여! 고작 한 명이다!!”
“제기랄!!”
흑운은 그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덕분에 마가장 무리가 도망칠 길을 열어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흑운은 십여 명의 무림인들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본능적으로 강자를 먼저 없애야 한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마가장 무리는 멀리 도망칠 수 있었다.
“혀, 형님!!”
“머, 멈추지 말고 날 지키라고, 이 새끼야!!”
“닥쳐!!”
마가장 소장주에게 흑운의 목숨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돈으로 고용한 자에 불과했다.
허나 백랑은 달랐다. 돈과 임무는 뒷일이었다.
의형인 흑운의 목숨이 먼저였다.
이런 마음가짐은 분명 낭인으로서는 실격이었다.
그러나 생사고락을 함께해온 의형 흑운을 구하지 못한다면 의뢰를 완수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백랑이 뛰쳐나가려 하자 마가장의 수석 호위무사가 나직하게 말했다.
“임무를 포기하다면 더 이상 낭인계에 발붙이지 못할 것이다.”
“상관없다!”
임무를 실패한 낭인보다 임무를 포기한 낭인의 신용이 더 낮다.
신용이 낮은 낭인은 무공이 뛰어나도 고용될 가능성이 낮다.
흑운과 백랑이 지금까지 높은 의뢰금을 받을 수 있는 이유가 실력은 물론 신용까지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년간 쌓은 신용을 한순간에 잃을 상황이었다.
“백랑! 나 때문에 임무를 포기하지 마라!”
“혀, 형님! 괜찮으십니까!”
다행히 흑운은 무림인들의 포위를 뚫고 돌아올 수 있었다. 허나 그 역시 쉽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듯 전신에 혈흔이 엿보였다.
“공자. 아직 포기하지 않았소.”
“흥. 한 번만 더 포기하다면 그땐 계약 위반이야.”
마가장의 소장주 입장에서도 두 사람이 필요했기에 못마땅하면서도 당장은 내칠 수 없었다.
천한 낭인들이지만 그들이 제법 뛰어난 고수란 것 역시 알기 때문이다.
호위무사들 역시 다르지 않았다.
고깝지만 자신들보다 뛰어난 고수인 그들이 함께 있는 것이 더욱 안전하기에 못마땅하면서도 내색하지 않았다.
“잠깐!”
“이봐! 아직 계약…….”
다시 달리던 마가장의 무리는 백랑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이미 앞서간 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꾸물거리면 얻을 것이 더 줄어든다.
한시가 급한데, 방해를 하니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허나 백랑이 외친 이유는 방해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게 아니라… 포위되었소.”
“……!!”
백랑의 말에 마가장의 호위무사들은 칼을 겨누며 주변을 경계했다.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듯 십여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호? 제법이군. 하지만 그만 죽어줘야겠다.”
정체는 불분명하지만 그럼에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고수란 것을. 허나 이곳에 있는 정체불명의 고수들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신마릉이라고 할 때부터 설마했는데… 정말 혼세교일 줄이야.’
은신하고 있던 이현성의 얼굴이 굳어졌다.
신마릉 안에 침입한 무림인들을 학살하는 정체불명의 괴한들, 그들의 정체를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무림에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백 년 전, 태산에는 하나의 사교집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원(元)나라가 점점 기울고 있던 시기인 만큼 나라가 혼란스러웠고, 수많은 사교집단이 기승을 부렸다.
혼세교(混世敎)도 그런 집단 중 하나였다.
아무리 원의 황실이 기울고 있었다고 한들 아직, 한족의 시대는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황보세가와 산동악가 등 무림세력들은 힘을 숨기고 웅크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사교집단들은 더욱 기승을 부릴 수 있었다.
허나 난세는 영웅을 탄생시키는 법.
세상을 바로 잡고자 누군가 분연히 일어났다.
그가 바로 패왕이고, 혼세교의 교주가 혼세신마(混世神魔).
바로 신마릉의 주인이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자칫 혼세교의 존재가 드러날 수도 있는데…….’
세상은 패왕과 신마만 기억할 뿐, 혼세교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사교집단이 신성한 태산에 자리 잡았음에도 이를 보고만 있었다는 것이 창피한 산동무림이 의도적으로 혼세교의 존재를 숨겼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패왕과 신마라는 절대고수의 격전만 알려졌을 뿐, 혼세교의 존재는 알려지지 않게 되었다.
백 년이 지난 지금은 산동 출신 중 혼세교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전무했다.
혼세교가 산동무림에 뿌리 깊숙이 스며들었다는 것도 모른 채.
―어쩔 생각이더냐?
―…….
위지천의 물음에 이현성은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무림에서 자취를 감추었다고 하나 혼세교는 결코 만만한 세력이 아니었다.
게다가 혼세교가 끝이 아니란 점이 문제였다.
혈천(血天)!
혼세교는 혈천십삼세의 하나이며, 교주인 당대 혼세신마가 바로 혈천의 대장로였다.
즉, 이 일에 관여하여 존재가 드러나면 혈천 역시 자신의 존재를 눈치챌지도 모른다.
혼세교는 물론 혈천이 원하는 바를 이루게 놔둘 순 없었다. 하지만 아직 자신의 존재를 혈천이 알게 해서도 안 된다. 그러기에는 아직 이현성 자신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혈천이 본격적으로 움직인 것은 아닐 거야. 아무리 변수가 존재하다고 해도 아직 때는 아니니까. 그럼 대장로의 독단에 의한 움직임이란 뜻인데…….’
혼세교는 아직 세상에 나올 시기가 아니었다.
회귀 전에도 패왕도법을 미끼로 산동무림을 흔들었던 혼세교였다.
그런 그들이 이렇게 꼬리를 드러냈다.
이는 그만한 내부 사정이 생겼다는 의미였다.
아니라면 존재하지 않는 신마릉을 만들어서 혈겁을 일으킬 이유가 없었다.
―황보세가에 빚을 지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들을 영웅으로 만들자는 겐가? 복면을 쓰게 되겠지.
위지천은 이현성의 말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개입하되, 자신들의 존재를 부각시키지 말자는 뜻이었다. 그럼 이 일을 종식시킨 몫은 황보세가로 넘어갈 것이다.
굳이 황보세가만 좋은 일 시키는 것 같으나, 사파사세는 물론 혈천의 눈에 드러나선 곤란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이를 위해 얼굴을 가리는 것은 물론 독문무공 역시 자제해야 했다.
고수는 상흔만으로도 어떤 무기로, 어떤 방식으로 상흔을 남겼는지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일에 투입된 인원은 분명 혼세교에서도 고수로 분류되는 자들일 것이다.
그런 자들을 독문무공도 펼치지 않은 채 제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보통 고수에게 해당되는 일이었다.
허나 이현성과 위지천은 초절정고수였다.
때문에 결코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무슨 속셈인지 모르겠지만… 너희가 원하는 대로는 이루어지지는 않을 거다. 절대로!’
* * *
“어, 어떻게든 해봐!”
“입 좀… 다무시오!”
신마릉 안에 침입한 수백의 무림인 중 절반 가까이가 죽었다. 신마릉의 함정과 신마의 유진을 독차지하기 위한 무림인들의 욕망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불행은 복면인들이 나타나고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그들은 강했다. 그리고 잔혹했다.
자신들보다 몇 배나 많은 무림인들을 베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동료의 죽음에도 동요하지 않았다.
사실 객관적인 전력만 본다면 무림인들이 괴한들보다 못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위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괴한들이 죽음을 도외시하며 싸웠고, 수백의 무림인들이 힘을 합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백랑, 내가 길을 열 테니…….
“아니, 제가 열겠습니다!”
괴한들의 습격에 마가장 호위무사들 역시 상당히 죽어갔다.
이제 남은 자는 수석 호위무사를 포함한 호위무사 넷과 소장주 그리고 흑운, 백랑뿐이다.
소장주는 반쯤 실성했다.
호위무사들은 그를 버리고 싶었으나 그럴 수도 없기에 이를 악물었다.
그는 여전히 그들에게 짐이었다.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선 포위한 괴한들의 길을 여는 것뿐이다.
흑운은 조금 전처럼 길을 열기 위해서 움직였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움직인 자가 있었다. 바로 백랑이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