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그건 왜…….”
“성수(聖手)라면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오.”
“고맙네.”
베인 팔을 다시 잇는 것은 불가능했다.
허나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신의 의술을 가진 자가 있다.
황실의 태의(太醫)가 그 첫 번째고, 지옥성의 부성주 독왕(毒王)이 그 두 번째였다. 마지막은 성수의가의 성수(聖手)였다.
거리상 태의가 가장 가깝지만, 황실에서 보호받는 태의의 도움을 받는 것은 불가능했다. 독왕은 칠사 중 독사이며, 사파사세 중 지옥성의 부성주였다.
사파사세는 같은 사파였지만, 오히려 정파보다 서로를 더 싫어하기에 독왕의 도움을 받는 건 어렵다.
결국 남은 사람은 성수의가의 성수였다.
그는 빈부(貧富), 정사(正邪)를 가리지 않고 환자를 돌본다.
그렇기에 성수의가가 성지(聖地)라 불리고 있었다.
물론 그로 인해 성수의가를 눈엣가시처럼 보는 자들도 적지 않지만 성수의가에 신세를 진 자가 워낙 많았고, 민심이 그들에게 향하니 대놓고 괴롭히는 자는 없었다.
“부축까진 됐다.”
“그럼…….”
암월영패는 사자도패를 부축하려고 했으나 그는 거절했다.
그의 마지막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 사람마저 격전장을 떠났다.
그리고 일각이 지났을 때였다.
“아쉽군. 사자도패. 온전할 때 싸웠어야 했는데…….”
“다음에 기회가 있을 겁니다.”
‘제때 성수의가에 도착한다면 말입니다.’
암월영패와 사자도패가 사라진 후 모습을 드러낸 자들은 바로 맹검 위지천과 이현성이었다.
싸움이 끝날 때까지 몸을 숨기고 있던 그들이었다.
모습을 드러낸 두 사람은 아쉬움만 가득했다.
강자인 그들과 싸우지 못함이 아쉬웠다.
허나 그들 개개인이 아닌 천사교와 천웅방을 생각하면 참을 수밖에 없었다.
사파사세는 괜히 사파사세가 아니었다.
“이제 어쩔 겐가?”
“산동을 통해 돌아가는 것이 낫겠습니다.”
최종 목적지는 여전히 하남이었다.
하지만 만약을 대비해서 산동성을 지나가기로 결정했다.
자신들의 죽음을 의심해서 하남을 조사하는 자들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런 김에 산동성에서 볼일도 볼 생각이었다.
‘산동의 고랑과 패왕도법도 회수하고 말이야.’
이현성은 물론 위지천 역시 검을 익힌 만큼 패왕도법이 탐나는 것은 아니었다.
허나 회수하지 않으면 무림의 분란거리가 될 것이며 혈천에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세상에 드러나기 전에 회수할 생각이었다.
가능하면 산동의 고독한 늑대 고랑 역시 끌어들일 생각이었다. 찾을 수 있다면 반드시 그렇게 해야 했다.
“그렇게 하세나. 바쁜 것도 아니니까.”
“감사합니다.”
맹검 위지천 역시 찬성하자 두 사람은 하남성이 아닌 산동성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현성은 자리를 떠나며 한 가지를 떠올렸다.
‘그보다… 그자 분명 나를 봤어. 분명…….’
은신한 이현성, 그를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런데 암월영패는 한순간이지만 이현성과 위지천이 숨은 부근을 바라봤다.
아니, 눈이 마주쳤다.
불가능했다고 생각하지만 께름칙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야. 아닐 거야. 알았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겠지.’
이현성은 자신들이 들통 났을 가능성을 애써 무시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옆길로 빠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두 사내가 이곳을 지나게 되었다.
“헉! 대단하구나.”
“숙부님. 도대체 이건…….”
40대로 보이는 중년 사내와 10대 중후반쯤으로 보이는 청년은 황폐해진 주변 일대를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군부의 포탄이 터져야 이런 흔적이 남을 것 같았다.
하지만 군대가 움직였다는 소문은 듣지 못했으며, 포탄은 아무 데나 보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설마… 이곳에서 초절정고수들이 싸움이라도 했단 말인가.”
“예? 이게… 인간에 의해 벌어진 흔적이란 말입니까!”
초롱초롱한 조카의 눈을 보며 중년인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불가능하지만, 형님… 그러니까 네 사부님은 가능할 거란다. 형님은 초절정고수이시니까.”
“역시 사부님은 대단하시군요. 이런 것이 가능하시다니요.”
청년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부가 대단한 고수란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런 대단한 힘을 가졌다는 것까지 몰랐다.
‘돌아가면 사부님께서 비전을 전수해주신다고 하셨지. 그럼 나도 언젠가는…….’
청년은 기대에 찼다.
언젠가 자신도 막강한 초절정고수가 될 거라는 희망을 품었다.
그 기대는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
고수가 되기 위해선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본인의 자질, 옳은 길을 인도한 스승 그리고 뛰어난 무공. 청년은 이 셋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무림세가의 후기지수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은 무골과 오성, 초절정고수인 스승.
마지막으로 천검비록이란 광세절학.
두 사람은 의독선생 종리우와 한호현이란 가명을 가진 이현호였다.
그리도 보고 싶은 두 형제, 이현성과 이현호.
그들은 간발의 차로 재회가 불발되고 말았다.
너무도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이 하늘의 뜻이라면…….
“그보다 빨리 가자구나. 괜히 오해를 받아서 좋을 것이 없으니.”
“예. 숙부님.”
* * *
쾅!!
“뭐, 뭐라고! 누가 죽어!!”
한쪽 눈을 잃은 환야의 긴급서신이 절강성에 도착했다.
바로 사파사세의 하나인 천사교에게.
그의 서신을 받은 천사교주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내용은 그가 원하는 것과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천살 교령이 고작 암월영패 따위에게 당하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으윽…….”
환야에 의해 사자도패가 외팔이 되었다고 하지만 그 역시 눈을 잃은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오대교령 중 천살이 죽었다.
이는 뼈아픈 실책이 아닐 수 없었다.
과연 천사존(天邪尊).
그의 살기에 대전 안에 있는 고수들이 휘청거렸다.
그들은 교령 혹은 호교사자 그리고 천사교 수뇌급의 고수들임에도 천사교주의 살기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칠사 최강 아니, 사파제일의 고수다웠다.
“게다가 광쇄, 광요는 물론 맹검까지 당했다고? 지금 나와 장난하자는 거야!! 본교가 고작 천웅방 따위에게 밀렸단 말이야!!”
콰콰쾅!!!
폭사한 그의 살기에 결국 대전의 기둥과 벽 등이 부서지고 말았다.
화경고수, 그것도 현경을 바라보는 천사존의 기세를 감당할 수 있는 존재는 이곳에 없었다.
“호, 호교사자들은… 석가장에…….”
“석가장 따위가 호교사자들, 그것도 맹검을 베었다는 것이 가능하더냐! 이 머저리야!!”
괜히 말을 꺼냈다가 호교사자 한 명이 목숨을 잃은 상황이었다. 그때였다.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랍니다. 교주시여.”
“환요(幻夭). 그게 무슨 말인가.”
사파제일의 고수임에도 천사존은 사파일통을 이루지 못했다. 그건 천사교의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파제일고수 천사존의 천사교(天邪敎).
칠사 둘을 보유한 지옥성(地獄城).
사파제일의 세력을 자랑하는 사해련(四海聯).
사해련 다음으로 규모가 크고, 천사존 다음으로 강한 천웅창제의 천웅방(天雄幇).
이렇게 사파사세는 서로 다른 특성을 가졌다.
그렇기에 어느 한 세력이 사파무림을 장악하는 것은 어렵다.
그런데 천사교주가 다시 사파일통을 꿈꾸게 되었다.
바로 환요, 정확히는 요후가 굴복했기 때문이다.
환희요후(歡喜夭后).
환희루의 주인으로 사파사세를 제외한 사파무림에서 열 손가락에 꼽히는 세력과 무위를 가진 여고수였다.
환요는 그 요후의 손녀였다.
“석가장의 재력은 본루를 몇 배 아니, 그 이상 상회하는 곳이에요. 그들이 드러내지 않았을 뿐, 가진 무력도 웬만한 대문파를 넘어설 정도예요.”
“그렇다 해도 본교의 호교사자를 당해낼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호통을 쳤겠지만, 천사존은 환요에게는 화를 내지 않았다.
소주를 꽉 쥔 환희루의 재력과 정보력, 무력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었다.
그런 환희루주 환희요후가 천사교에 굴복했다.
그 증거로 손녀인 환요를 천사존의 손자에게 보냈다.
즉, 환요는 천사존의 손자며느리인 셈이었다.
지금까지 버티던 환희루가 갑자기 천사교에 굴복한 것은 의심스러운 일이었다.
그 내막을 모른다면 당연히 의심을 가질 만했다.
환희후가 눈치채지 못할 사이에 그들과 대적할 수 있는 세력이 생겨났다.
황금방(黃金幇).
천사교에 의해 항주에서 쫓겨난 그들이 은밀하게 소주에 뿌리를 내렸다.
수십 개로 쪼개 소주에 뿌리를 내렸다가 최근 황금방의 이름으로 다시 등장했기에 환희루의 눈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런 황금방이 뇌전궁과 손을 잡은 상태였다.
뇌전궁의 힘은 환희루도 무시할 수 없는 거대사파였다.
재력과 무력의 만나자 환희루는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천사교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혹시 현무라고 들어보셨어요?”
“현무(玄武)?”
“석가장의 재력으로 탄생한 괴물로, 무림백대고수 중에서도 수위를 차지할 정도로 강하다고 해요.”
“그런 자가 있단 말인가. 그런 자가 왜 알려지지 않았지?”
그런 강자라면 알려지지 않을 리가 없었다.
허나 환요가 헛소리를 할 리가 없었다. 그것도 감히 자신에게.
천사존이 관심을 보이자 환요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건 석가장이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기 때문이에요. 애초 현무는 석가장주의 안위만을 위해서 만든 괴물이라서요. 그런데 당대 석가장주가 욕심을 부리는 듯싶더군요.”
“오호? 상인 나부랭이가 겁도 없이 말이지?”
무시하고 있지만 ‘석가장이라면?’이란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만큼 상계라도 석가장은 예외적인 세력이었다.
그들의 거대한 부는 언제든 화근이 될 정도로 막대했다.
“지금 당장!!”
“…교주님. 석가장을 무너트려봤자 본교에 득이 될 것이 많지 않아요.”
“감히 본교를 향해 칼을 겨누었다! 다른 이유 따윈 필요 없다!!”
자존심 강한 천사존에게 상인 나부랭이가 자신을 우습게 봤다는 것은 결코 참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
자존심을 회복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천사존에겐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교주님의 일을 방해한 석가장은 죽어 마땅합니다. 허나 그렇게 되면 정파와 일전을 치러야 합니다.”
“정파 따윈!”
“…천웅방은 물론 사파무림을 굴복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교주님.”
우드득…….
버럭 화를 내려던 천사존은 환요의 말에 이를 갈 뿐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았다.
사파일통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환요. 네 말은…….”
“본교가 입은 피해에 대한 보상! 현무 그자를 내놓으라고 하십시오.”
“……!!”
호교사자 셋을 죽였을지도 모를 석가장의 비밀병기.
그를 얻는다면 충분한 보상이 된다.
허나 석가장이 순순히 비밀병기를 내놓을 리가 없었다.
“내놓겠느냐?”
“내놓기 싫다면 그에 상응하는 것을 내놓지 않겠습니까? 본교가 양해해주는 한계선이라는 것이 있으니 말입니다.”
“흐흐흐. 그렇지. 본교와 전면전을 치르기 싫다면 알아서 처신하겠지. 흐흐흐.”
천사존은 언제 화가 났냐는 듯 화통하게 웃었다.
그런 그를 보며 천사교의 수뇌들은 안도하며 환요에게 눈인사를 했다.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