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아니, 설사 제거했다고 해서 그대로 떠날 줄은 몰랐다.
그들도 자신들이 천웅방의 사자도패를 제거하기 위해서 움직였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그러했다.
허나 ‘교령 둘이 나서서 사자도패 하나 제거를 못하겠나?’라고 생각하며 돌아갔을 수도 있었다.
실제로 그들이라면 아무리 사자도패라도 죽은 목숨이었다. 문제는 그가 혼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자, 잠깐! 저들이…….”
“마, 말도 안 돼!!”
그 순간 두 사람은 경악했다.
시체가 된 광쇄와 광요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서, 설마 맹검도!”
“그럴 리가… 그럴 리 없소! 저 둘은 몰라도 맹검이 애송이에게 당할 정도로 약한 자가 아님을 천살 그대도 잘 알지 않소!”
“그럼 어찌 맹검이 보이지 않소? 그가 당한 것이 아니라면 저들의 시체가 이곳에 남아 있을리 없지 않소!”
죽었어도 천사교의 호교사자였다. 그들의 시체를 이대로 둔다면 천사교의 이름에 먹칠을 하게 된다.
그렇기에 시체라도 회수했어야 했다.
그때 환야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설마 방해꾼이 있었던 건가?”
“그러고 보니…….”
환야는 물론 살수인 천살 역시 정체불명의 흔적을 발견했다.
즉, 중간에 누군가 방해가 있었단 뜻이었다.
그들은 순간 천웅방을 지목했다. 설마 상가인 석가장일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천웅방 이놈들이!”
“젠장! 우리가 완전히 당한 것 같소!”
사자도패를 돕기 위해서 암월영패가 나타난 것처럼, 이곳 역시 천웅방의 고수가 나타났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흔적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하마터면 놓칠 뻔한 희미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어딘가로 향하는 미세한 흔적이.
“저쪽에는 석가장?”
“석가장 따위가… 젠장!”
혈천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았고, 석가장이 혈천십삼세라는 사실 역시 모르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무림은 상계를 무시하는 경향이 크고, 오만한 사파사세의 초절정고수라면 그 경향이 더더욱 심했다.
하지만 더 깊이 생각할 수는 없었다.
“고작 도망친 곳이 이곳이더냐!!”
우드득……!
“음흉스러운 놈들!”
환야와 천살의 뒤를 추적한 사자도패는 그들을 향해 칼을 겨누었다.
그런데 저들이 시답지 않은 소릴 하니 어이가 없었다.
음흉스럽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운 놈들이 바로 천사교였다.
“이제 와서 무슨 헛소리지? 죽을 때가 되어서 그런가.”
“본교의 고수들을 유인한 후 뒤를 치다니, 사내대장부인 척하더니 창사(槍邪)가 고작 이 정도였군.”
“늙은이 감히 주군을 모욕해! 어디서 그런 개소리야! 죽여줄 테니까, 그만 애원해라!”
환야가 주인인 천웅창제를 모욕하자 사자도패는 흥분하고 말았다.
그런 그의 곁에 암월영패가 나타났다.
“도패, 적의 도발에 놀아나지 마시오.”
“저 개소리를 듣고도 그딴 소리를 하는가!”
뒤에서 나타난 암월영패가 자신의 말을 도발로 치부해버리니 오히려 환야가 발끈해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의 손이 가리킨 곳에는 죽은 시체들이 보였다.
알아보기엔 상태가 영 좋지 않았다.
그런 두 사람을 향해 천살이 차갑게 말했다.
“누구냐? 본교의 호교사자들을 이 지경으로 만든 자가!”
“호교사자? 아. 그렇군. 크크크. 음흉스러운 놈들…….”
천살은 그들의 죽음이 이현성의 짓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직접 겪어보지 않았기에 그의 무위를 모를뿐더러, 천하의 맹검이 호교사자들과 함께 있었다는 점 때문이다.
맹검이 포함된 호교사자 셋은 그라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 따라서 고작 애송이가 감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긴 어렵다.
“호교사자들을 숨겨두고 날 유인한 것이군. 영패. 자네 말고 지원이 더 있었나?”
“…본인이 알기론 없소.”
천웅방 팔패 중 두 사람인데, 더 이상 무슨 지원이 필요한가.
그 이상 움직였다간 다른 사파사세는 물론 정파에게도 틈을 보일 수 있었다.
그건 천웅방도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팔패 중 둘을 보낸 것도 천웅방주로서는 무리를 했다고 볼 수 있었다.
자칫 명분을 줄 수 있는 일이었다.
그에 비해 교령 둘과 천살문으로 부족해 호교사자 셋, 그것도 초절정고수인 맹검까지 움직인 것은 천사교가 막나가려고 작정했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개소리! 그럼 저들을 누가 저랬단 말이냐!”
“그걸 우리가 어찌 알아! 흐흐흐. 그보다 이제 어쩌나? 숨겨둔 패가 사라져서?”
사자도패와 암월영패의 말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면 호교사자들을 누가 죽였단 말인가.
천살은 환야에게 전음을 보냈다.
―정말 저들이 아니라면… 설마 진짜 애송이에게 당한 거란 말이오!
―호교사자 셋 중에는 맹검이 있었소. 애송이가 그렇게 강할 리가 있소? 만약 그랬다면 내가 그댈 도우러 어찌 갔겠소? 그들과 함께 그놈부터 죽였을 거요!
―그야… 설마 진짜 석가장이란 말인가.
―그럴 리는 없지만… ‘그’ 석가장이니…….
상계를 무시하지만 석가장의 끝없는 재력은 인정하는 바였다.
돈은 귀신도 부린다는데, 석가장이 미친 척 돈을 쏟아붓는다면 어떤 사고를 쳤을지도 모른다.
약관의 애송이보단 석가장이라는 것이 더 그럴듯했다.
그러한 생각이 드니 석가장을 향한 의심의 씨앗이 무의식중에 심어졌다.
이현성, 그가 노린 것 이상의 수확이 아닐 수 없었다.
허나 수확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잔머리 그만 굴리고 이제 죽어라!!”
“이익!!”
그렇게 이곳은 다시 격전지로 변했다.
초절정고수 넷의 충돌로 이현성의 흔적 조작을 덮어버렸다. 이젠 천사교라도 그의 조작을 눈치챌 수 없었다.
덕분에 의심의 눈초리는 석가장으로 향하게 되었다.
이현성의 노림수가 그대로 적중하고 말았다.
그 시각. 석가장은 발칵 뒤집어졌다.
* * *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애송이라면서! 왜 사파 새끼들이 내 앞마당에서 분탕질이야!!”
대노하는 석대환을 보며 그의 심복들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그들 역시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답도 못 하는 그들을 보며 화만 끓어올랐다.
순간적으로 혈기가 치솟은 석대환은 그들 중 한 명의 머리를 부숴버렸다. 아니, 으깨버렸다.
“으아아악!!”
“사, 살려주십시오!!”
“당장 알아내! 구차한 목숨을 조금이라도 더 유지하고 싶으면!!”
“조, 존명!”
그들의 무능함에 석대환은 도저히 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건 그가 마공을 익힌 부작용 중 하나였다.
특히 흡정마공은 인성과 감정에 영향을 준다.
안목, 결단력과 함께 감정조절은 상인의 중요한 덕목이었다.
모욕을 당해도 웃으며 적에게 물건을 팔아 이득을 취할 수 있어야만 진짜 상인이었다.
과거 석대환은 그런 상인이었다.
허나 지금은 그러지 못했다. 손이 먼저 움직인 것이 그런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총당주. 설마 꼬리가 밟힌 것은 아니겠지?”
“염려 마십시오. 완벽하게 숨기고 있습니다. 게다가 만약을 대비해 미끼도 준비해뒀으니 걱정하실 일은 없습니다.”
흡정마공의 부작용을 앓고 있었다고 해도 그는 석가장주였다.
대비책 하나 마련하지 않을 리 없었다.
삼당(三堂)의 존재가 드러났을 때를 대비해서 그들 대신 내놓을 미끼 역시 준비해뒀다.
“그래도 상대는 사파사세니, 자네가 직접 신경 쓰게.”
“존명!”
돈은 똥파리가 꼬이게 만드는 법이다.
그렇기에 똥파리를 치울 대비책이 있어야 했다.
상재(商才)와 달리 무재(武才)는 전혀 타고나지 못한 석가장으로서는 부족함을 돈으로 채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호위단은 석가장의 재산을 보호했다.
허나 열 자루의 칼도 한 자루의 비수를 막기 힘든 법.
하물며 돈으로 산 호위단이라면 더욱 어렵다.
그렇기에 막대한 돈을 들여서 석가장주의 분신(分身)을 만들었다.
무골이 뛰어난 아이를 사서, 주인에 대한 충성을 세뇌시킨 후 신공절학을 전수했다.
물론 영약 역시 복용시켰다.
수십 년에 걸친 수련과 세뇌는 절대 배신할 수 없는 석가장주만의 방패이자 분신이 된다.
그게 바로 현무(玄武)였다.
대대로 현무는 석가장주를 수호했다.
역대 현무들의 정화가 바로 당대 현무인 총당주였다.
주인에 대한 절대적 충성심, 총당주로서의 능력 그리고 무위까지 어느 하나 부족하지 않았다.
“무리해서 한 녀석을 더 만들었어야 했어. 한 놈만 더 있었어도 이렇게 번거롭지 않았을 텐데.”
석가장주 한 명의 안위를 위한 현무였다.
그 한 명이라면 석가장주를 충분히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석대환은 석가장주인 동시에 혈천의 호법이었다.
질만큼 양도 중요하기에 은밀하게 삼당을 만들었다.
무림세가의 정예무력대와 비교해도 꿇리지 않는 고수집단이었다.
허나 현무의 양산형이라고 할 수 있는 삼당은 지원을 한 사람에게 집중시켜서 탄생시킨 현무와 같을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석대환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 현무가 하나라는 것이 아쉽기만 했다.
물론 석가장의 재력이라면 현무를 서너 명도 양성할 수 있었다. 거대한 출혈을 감수했다면 가능한 일이었다.
석가장이 대대로 한 명의 현무만 만든 것은 재정적 출혈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게 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석가장주가 필요한 것은 보이지 않은 비수이지, 드러난 창이 아니었다.
괜히 주변을, 무림을 자극해서 좋을 것은 없다.
때문에 현무의 양성을 한명으로 제한한 것이다.
석대환은 그 제한을 깨고, 삼당을 양성했다.
그런 그였으니 현무를 더 양성하지 않은 것이 아쉬울 뿐이다.
“어쩔 수 없지. 나에게 없으면 남의 것을 취하면 되니까.”
석가장주 석대환, 그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무서운 인물이었다.
신마릉
“우웨엑!!”
암영월패는 피를 토하고 있었다.
허나 그의 부상은 넷 중 그나마 제일 얕았다.
그만큼 초절정고수들의 격전은 대단했다.
“네놈, 네놈들! 기필코 죽여주마!!”
“쿨럭… 미친 늙은이…….”
환야는 사자도패의 한쪽 팔을 가져간 대신 자신의 한쪽 눈을 내놓아야 했다. 거대한 도를 사용하는 사자도패로서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셈이었다.
물론 독안(獨眼)이 된 것 역시 가볍게 볼 부상은 아니었다.
눈이 하나뿐이면 거리감 등의 문제로 오히려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두 사람의 싸움에선 환야의 승리라고 할 수 있었다.
계속 싸운다면 사자도패의 목을 취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야는 도망쳤다.
도망치는 그의 옆구리에는 누군가가 들려 있었다.
놀랍게도 그는 바로 천살이었다.
암영월패도 극심한 내상을 입긴 했으나 천살의 목숨을 취할 수 있었다.
도주하는 것은 환야로선 어쩔 수 없는 결단이었다.
결과적으로 천사교가 패한 셈이었다.
“젠장!!”
“…….”
팔 하나를 잃은 사자도패는 분이 가시지 않았다.
팔을 잃은 대가로 환야의 목을 베었어도 분한데, 고작 눈 하나를 빼앗았다. 늙은 생각이 더 맵다고 환야는 생각보다 더욱 노련하고 능숙했다.
이를 예측 못한 것이 사자도패의 패인이었다.
그런 그의 곁에 있던 암월영패는 입을 다물 뿐이다.
그때 암월영패의 눈이 어딘가를 향했다가 다시 바닥에 널브러진 사자도패의 한쪽 팔을 주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