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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82화 (82/314)

82화.

“나와 동역자(同役者)가 되어주시오. 그대가 더 강해질 수 있게, 그 소원을 이룰 수 있게 돕겠소. 그대 역시 내가 더 강해질 수 있게, 나의 소원을 이룰 수 있게 도와주셨으면 하오.”

“…….”

순간 맹검은 머리가 멍해졌다.

참으로 웃긴 말이었다.

조금 전까지 목숨을 걸고 싸웠던 두 사람이었다.

특히 이현성은 조금 전 맹검에게 죽임을 당할 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역자가 되어달라는 위대한 제안을 하고 있었다.

어차피 그와 천사교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사이였다. 그러니 말이 안 되는 제안도 아니었다.

“천사교주의 그늘 안에서 발버둥질해도 결국 그를 넘어서긴 힘들 것이오. 안 그렇소?”

“……!!”

이현성이 혈천을 나온 이유이기도 했다.

어차피 그의 목적은 혈천으로부터 도망이 아닌, 그들을 무너트리는 것이다.

혈천 안에 있어도 충분히 강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무너트릴 정도로 강해질 순 없었다.

그걸 알기에 죽음으로 위장해서 벗어났다. 의제들의 마음에 비수를 꽂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리했다.

맹검은 그의 말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천사교주의 강압에 의해서 호교사자가 되었으나 결국 강해졌다.

절정고수였던 그가 초절정고수가 되었으니까.

그렇기에 천사교주의 그늘에 있는 것이 옳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은연중에 가졌다.

무의식중에 그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네 나이가 어떻게 되지?”

“…? 조만간 약관(弱冠, 20세)이 되오.”

“…!! 푸하하하!!”

맹검은 앙천대소(仰天大笑)를 했다. 그렇게 한바탕 웃어재끼던 그가 갑자기 웃음을 뚝 그쳤다.

그리고 나직하게 말했다.

“이 우형은 위지천이라고 하네. 잘 부탁하네. 아우.”

“……!!”

이현성의 눈이 커졌다.

맹검은 무림 백대고수 중에서 제법 젊은 축에 속했다.

그럼에도 지천명(知天命, 50세)을 바라보고 있었다.

심후한 내공과 깨달음 덕분에 나이보다 젊어 보였지만, 이현성보다 서른살 가까이 나이가 많다.

즉, 숙질지간(叔姪之間)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런데 맹검 위지천은 이현성에게 아우라고 칭했다.

당황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예. 형님!”

당황했으나 그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열 살 많은 친우 유백도 있는데, 서른 살 많은 의형이 있는 게 안 될 건 또 뭐가 있겠는가.

그렇게 이현성은 의형이자 동역자가 생겼다.

또 다른 의형인 팽천악과는 성질이 다르다.

팽천악은 이현성을 배신할 위인은 아니었지만, 하북팽가라는 가문에 얽혀 있었다.

그렇기에 온전히 그의 편이 되어줄 수는 없었다.

최우선은 가문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

위지천은 다르다. 언제든 배신할 수 있었다.

인품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한 신뢰가 형성된 것이 아니며, 서로 필요에 따라서 동역자가 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서로에게 온전히 도울 수 있었다.

팽천악과 위지천의 차이였다.

“환야. 그가 돌아오기 전에 피하는 것이 좋겠는데… 계속 천사교의 추적을 받아서 좋은 것은 없으니까.”

“그렇지요.”

지금의 이현성이라면 환야도 벨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충분히 벨 수 있었다. 하지만 호교사자 둘을 베고, 한 명은 함께 떠나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오대교령까지 벤다면 눈이 뒤집어진 천사교의 대대적인 추적을 받게 된다.

그게 두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귀찮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때 이현성의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떠나기 전에 할 것이 있습니다.”

“……?”

“흔적을 손보려고요.”

“천사교의 눈을 속이는 것은 불가능해.”

천사교(天邪敎).

단순히 천사(天邪)를 교주로 삼은 종교집단이 아니었다.

사술(邪術)에 정통한 집단이었다.

만약 혈천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천사교야말로 사술의 총본산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천사교의 눈을 속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밑져야 본전이잖아요. 그리고 어쩌면 통할지도 모르고요.”

“아우의 뜻이 그렇다면…….”

이현성은 잠시 잊었던 계략이 떠올랐다. 그걸 지금 실현하려는 것이다.

‘성공만 한다면 일석이조 아니, 일석삼조지.’

그가 노린 것은 바로 석가장이었다.

흔적을 조작해서 석가장만 엮을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을 순 없었다. 천사교의 시선을 석가장에게 돌릴 수 있고, 혈천의 주구인 석가장의 힘을 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와 위지천의 존재를 잊게 만들 수 있기에 충분히 해볼 만한 일이었다.

‘너희끼리 실컷 치고받으라고.’

* * *

‘젠장! 일이 이렇게 꼬였다니!’

환야는 분노를 떨칠 수가 없었다.

천웅방의 전력을 감소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팔패의 한 명을 지울 수 있는 기회였다.

허나 상황은 역전되었다.

자신들이 생각한 것을 그들 역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천살의 천살문은 이미 반파되었고, 오대교령인 자신들 역시 승기를 못 잡고 있었다.

이대로 자신들 중 한 사람이라도 위험해진다면 나머지 한 사람 역시 위험해진다.

물론 반대의 경우에는 그야말로 절호의 기회가 된다.

하지만 그런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디서 한눈을 파느냐! 나 도패가 우습더냐! 사자군림(獅子君臨)!”

“빌어먹을! 천환장(千煥掌)!”

“그깟 눈속임이 얼마나 통할 거라 생각하더냐!”

천 개의 불꽃이 눈앞에서 피어오르는 천환장은 무시무시한 장법이었다.

하지만 미혹을 기반으로 둔 장법인 만큼 심기가 굳은 사자도패의 눈에는 장난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허나 고작 그것에 불과했다면 환야는 오대교령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애초 천환장은 사자도패의 시선을 끌기 위함이었다.

“환령마수(幻靈魔手)!”

“큭!!”

환야는 비장의 절초인 환령마수로 사자도패를 날려버렸다. 허나 이 정도로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음을 모르지 않았다.

환령마수가 사자도패에 닿는 순간 손을 통해 전해진 반탄력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그렇기에 그는 결단을 내렸다.

―움직입시다.

―그, 그걸 말이라고 하시오! 본문이 반파되었소! 그리고 교주가 우릴 가만둘 것 같소!

암월영패와 싸우고 있던 천살은 환야의 전음에 기겁했다. 천살문의 살수들이 반파된 상황이었다.

이대로 돌아가면 자신의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허나 진짜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천웅방의 팔패 중 한 명도 죽이지 못하고 도망친 것을 천사교주가 알게 된다면 자신들을 가만둘 리가 없었다.

사파일통과 사파지존을 노리는 천사교주에게는 치욕이 될 테니까.

그걸 알기에 천살은 환야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물론 환야라고 그걸 모르면서 제안한 것은 아니었다.

―이가 애송이를 죽이기 위해서 호교사자가 셋이 움직였소. 그중에 맹검도 있소.

―그, 그럼…….

―그리 멀지 않소. 저들이 눈치 못 차리게 유도합시다.

―그런 거라면 좋소, 환야교령. 그럽시다.

무림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삼푼의 실력은 숨겨야 하는 법. 충분히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암월영패가 숨긴 실력은 고작 삼푼이 아니었다. 덕분에 천살도 그를 상대로 애를 먹는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천살 역시 죽을 맛이었다.

그러던 차에 환야의 제안은 마른 땅에 단비와 같았다.

지금은 자존심을 부릴 때가 아니었다.

천웅방의 팔패 중 둘이나 죽일 수 있다면 오늘 잃은 것을 만회가 아니라 그 이상 얻을 수 있었다.

그러니 자존심 따윈 잠시 죽이기로 했다.

허나 그들은 몰랐다.

호교사자 중 둘은 이미 죽었고, 맹검은 흔적을 조작하고 있는 이현성과 손을 잡았다는 사실을…….

―모두 퇴각하라!

천살의 명에 그나마 살아 있는 살수들은 모두 물러났다. 그 수가 겨우 수십에 불과했다.

6할 이상이 죽은 탓이었다.

천살과 환야는 계획대로 움직였다.

“이 빚은 기필코 갚아주마!!”

“갈(喝)! 미친 늙은이야! 누가 놔줄 줄 알고!!”

예상대로 사자도패는 건재했다.

환령마수의 위력은 결코 가볍지 않았으나 호신강기로 위력을 최대한 감소시킨 덕분이었다.

그렇게 사자도패가 환야와 천살의 뒤를 쫓았다.

“…….”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본 암월영패는 뒤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계약에 의해 천웅방주의 지시를 받고 있었다고 하지만 아직은 그 역시 팔패였다.

때문에 사자도패가 죽기라도 하면 곤란했다.

환야의 의도대로 사자도패와 암월영패는 함정 속으로 향하게 되었다.

물론 그곳은 그가 의도한 함정이 아니었지만.

* * *

“후… 이쯤이면 되겠군요.”

이현성은 광쇄와 광요의 몸에 남은 상흔을 살짝 조작한 후 주변의 흔적 역시 조작했다.

그리고 석가장으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그것을 곁에서 지켜보던 맹검은 감탄을 했다.

“대단한 솜씨군. 아우… 혹시 살수 출신이었나?”

“뭐, 반은 그렇다고 할 수 있지요.”

이현성 역시 놀랐다. 맹검은 맹인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맹인 같지 않았다.

초감각 덕분임을 알지만, 그럼에도 실제로 육안으로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동시에 드는 궁금증이 있었다.

‘과연 삼라만상은 형님의 초감각을 속일 수 있을까?’

혈살객의 은신술도 무력화시키는 맹검의 초감각.

은신술의 차원을 넘어선 공부인 삼라만상.

삼라만상으로도 그의 초감각을 속이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그의 이목을 속일 수 없었다.

설사 살왕이라도 그러할 것이다.

반대로 맹검의 초감각을 삼라만상이 속인다면, 이현성은 살왕보다 뛰어난 은신술을 손에 넣은 것이다.

‘나중에 확인해볼 필요가 있겠어.’

아무리 동역자이자 의형이 된 위지천이라지만, 모든 것을 드러낼 상대는 아니었다.

숨겨진 패가 많을수록 목숨을 부지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삼라만상은 만약을 대비한 비장의 패였다.

삼라만상이야말로 이현성의 숨겨진 삼푼인 셈이었다.

“나라도 깜빡 속았을지 모를 정도다. 다만 천사교에는 나보다 이쪽 분야에 정통한 녀석들이 여럿 있지. 과연 그들에게까지 통할까?”

“두고 보면 알겠지요. 음?”

그 순간 두 사람은 동시에 한곳을 바라봤다.

미세하지만 누군가가 다급하게 접근하는 기척이었다.

이만큼 미세하다는 것은 제법 먼 거리란 뜻이지만, 삼라만상을 익힌 이현성과 초감각을 익힌 위지천이기에 그 미세함을 포착할 수 있었다.

“어설프게 움직이는 것보다 은신하는 것이 낫겠네요.”

“동감이야.”

자신들이 떠나는 과정에서 발생한 흔적도 지워야 하기에 급히 움직일 순 없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저들이 떠난 후에 움직이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몸을 숨기고 있을 때, 누군가는 그들과 더욱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는 아니, 그들은 천사교의 환야와 천살 그리고 천웅방의 사자도패와 암월영패였다.

“뭐, 뭐야!”

“그들은 어디에 있소. 환야 교령!”

천사교의 두 교령은 호교사자들과 헤어진 지점에 도착했다. 격전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그러나 정작 호교사자들은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 복귀한 건가…….”

“그럼 곤란하지 않소!”

이현성을 애송이라고 불렀지만, 나름 초절정고수였기에 제법 버티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설마 벌써 제거하고 떠났을 줄은 몰랐다.

이건 완전히 계산 밖의 일이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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