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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81화 (81/314)

81화.

그렇기에 혈살객의 살생부에는 주로 무림 백대고수나 그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가진 자들이 적혀 있었다.

하나같이 혈천의 대업을 위해서는 제거해야 하는 자들이었다. 맹검은 그런 자들 중에서도 상위에 꼽힐 정도로 강하고 위험한 고수였다.

회귀 전, 맹검의 암살을 맡은 자는 혈살객의 수좌인 혈검살객 혁련후였다.

그는 휘하 혈살객 서른 명을 이끌고 맹검을 암살했다.

그 과정에서 혈살객 열을 잃었고, 나머지 역시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혁련후 본인도 내상을 입었을 정도다.

초절정고수 한 명 암살한 것 치곤 피해가 너무 막심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맹인인 맹검에게는 은신이 통하지 않았다.

맹검은 눈이 없는 대신 초감각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혈살진(血殺陣)과 극독이 아니었다면 맹검을 제거하는 것이 실패했을지도 모른다.

덕분에 혁련후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물론 살생부가 작성된 시기와 지금은 시기적 차이가 있는 만큼 무위에도 차이가 있었다.

그럼에도 이현성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강자였다.

‘칫, 역시 영약부터 확보하는 건데…….’

이 순간 내공이 부족한 것이 가장 안타까웠다.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한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채 잠이든 영약의 소재를 몇 개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현성은 찾지 않았다.

삼목금섬의 내단과 귀혈삼을 복용한 이상 더 이상 영약에 욕심이 없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조차 완벽하게 소화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지금 영약을 더 복용했다고 내공이 느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화가 될 수도 있었다. 허나 영약은 내공을 증진하는 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소모한 내공을 빠르게 회복시켜줄 수도 있었다.

물론 운기조식을 통한 안정적인 흡수가 아닌 만큼 태반을 허공에 날리겠지만 그럼에도 절실했다.

“이런, 이런! 네 녀석 같은 놈을 왜 이제야 알았지?”

맹검은 천사교주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우고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무광(武狂)이었다.

강자와의 싸움은 언제나 환영이었다.

처음에는 천사교의 고수들과 실전에 가까운 비무를 했으나, 그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자 천사교주가 막았다.

물론 반발했으나 천사교주는 그가 반발하기에 너무 높은 산이었다. 사경을 헤맬 정도로 강한 경고(?) 받은 후 더 이상 천사교의 고수와는 싸우지 않았다. 맹검이 교령이 아닌 호교사자에 남은 가장 큰 이유였다.

내부가 안 되면 외부의 고수와 싸우기 위해서.

‘아쉽군. 그 멍청이들을 상대로 힘을 빼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야.’

이현성은 맹검의 호승심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상대였다. 다만 만전의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 맹검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소혼쌍귀와 하북삼흉을 베고, 환야로부터 도주를 했다.

그 와중에 쉬지 못한 채 광쇄와 광요까지 죽였다.

체력과 내공이 바닥난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그에게 내공을 회복할 시간을 줄 수는 없었다.

적을 눈앞에 두고 운기행공을 할 기회를 준다고 해서 무방비하게 제안을 수락할 멍청이는 세상에 없었다.

맹검의 호의를 담은 제안이라도 이현성은 물론 그 누구도 수락할 자는 없었다. 그러한 사실을 맹검 역시 알기에 멍청한 제안은 하지 않았다.

“넌 내가 전력을 다해 벨 자격이 있는 자다. 최선을 다해 죽여주마!”

“…….”

지금의 이현성은 맹검이 전력을 다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인정한 강자인 만큼 그만한 대우를 해주려는 것이다. 물론 이현성은 전혀 원하지 않았다. 도망칠 수 있는 작은 희망조차 사라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오냐! 와라! 나도 그냥 죽지는 않겠다!’

이현성은 호락호락하게 죽어줄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아직 포기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살수(殺手). 내공이 부족하다고 해서 적을 죽이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그에게는 비장의 패가 있었다.

‘마지막 기회가 남아 있어. 아직 포영진기(泡影眞氣)가 남았으니까.’

아직 소화하지 못한 삼목금섬의 내단과 귀혈삼의 영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십여 년간 근골과 혈맥에 쌓은 포영심결의 기운을 일컫는 것이다.

포영심결의 특성상 단전이 깨지거나 내공이 바닥났을 때 움직이는 신비한 기운이었다.

현재 이현성의 단전에는 바닥이라 말해도 좋을 정도로 내공이 거의 소모된 상황이었다.

허나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주 미량이 남아 있고, 그조차 빠르게 소모되고 있었다.

지금 상황은 차라리 완전히 바닥나주는 것이 차라리 낫다. 마지막 기회라도 가질 수 있게.

“이만 끝을 내자. 파천참사(破天斬邪)!”

맹검이 펼친 마지막 일격, 파천참사.

명칭만 본다는 어이가 없었다.

하늘을 부수고 사를 벤다. 사파고수인 그가 사파를 죽이겠다는 의미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칠사 중에서도 수위를 차지한 천사(天邪)의 별호는 사존(邪尊) 혹은 천사존(天邪尊)이라고 불린다.

즉, 베려는 사파는 바로 천사교주를 지칭하는 것이며, 그 원한 속에 탄생한 절초가 바로 파천참사였다.

그런 절초이니 그 위력이 가공하지 않을 리 없었다.

아직 천사교주를 벨 수는 없으나 언젠가 그의 심장에 검을 꽂아 넣는다면 그건 파천참사일 것이다.

‘젠장. 이렇게 끝낼 수는… 아!’

포기할 수 없었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 순간 하늘은 그에게 기회를 주었다.

그토록 원하던 포영진기가 움직여주었다.

남은 기회는 단 일검(一劍).

이 일검에 모든 것을 담아야 했다.

포영진기가 움직여줬지만,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구명을 위한 마지막 발악이기 때문이다.

고민할 것이 없었다. 마지막 일검은 정해졌다.

“일! 점! 혈!”

애초 천중비화를 펼칠 정도의 내공은 되지 않았다.

가장 손에 익힌 초식은 바로 일점혈이었다.

그만큼 완벽하게 펼칠 수 있는 초식이기도 했다.

마지막 선택 역시 일점혈이었다. 그렇게 맹검의 파천참사와 이현성의 일점혈이 충돌했다.

콰콰쾅!!

초절정고수 두 사람의 전력을 다한 격돌이었다.

그 파장이 작을 리가 없었다.

주변 일대를 황폐하게 만들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곧 자욱했던 흙먼지가 가라앉았다.

어쩌면 당연했던 결과가 드러났다.

“쿨럭… 역시 아까워.”

피가 섞인 기침을 하는 맹검은 아쉬워했다. 만전이 아닌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내상을 입힌 이현성이었다.

자신의 성장에 밑거름이 되어줄 좋은 상대를 이렇게 죽인 것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억울해! 겨우 다시 얻은 기회인데! 복수도 못하고 이렇게 다시 죽어야 하다니!!’

죽어가는 이현성은 분하고 억울했다.

혈천과 혁련후에게 복수하고, 혹시 살아남았을지 모를 가족들을 지켜주고 싶었다.

그것을 위해 그동안 죽도록 검을 휘둘렀었다. 그런데 이렇게 죽게 되었으니 도저히 눈을 감을 수 없었다.

그의 간절함에 하늘이 감동을 한 것인지, 아니면 아직 죽을 때가 아닌지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왼손에 쥐고 있던 검집이 부서지면서 안쪽에 새겨진 흠집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왜 그것이 눈에 들어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건 기연이자 기적이었다. 부서진 검집 안쪽에 새겨진 것은 흠집이 아닌 문장이었다.

정확히는 내공구결이었다.

이현성은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읽었다.

거의 본능적인 끌림이었다.

―본디 혼원(混元)은…….

석가장주이자 혈천의 흡정혈왕 석대환의 가설은 옳았다.

혼원신공의 구결은 검이 아닌 검집에 숨겨져 있었다.

게다가 물유각주(物有各主)라는 말처럼 각 물건에는 주인이 따로 있는 법인지, 결국 혼원신공은 혈안이 되어서 찾고 있는 흡정혈왕이 아닌 이현성의 품에 들어왔다.

그 순간 검집은 완전히 수명을 다했는지 바스러져서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다.

허나 혼원검왕의 염원이 담긴 혼원신공.

그 혼원신공이 숨겨진 검집은 수명이 아닌 소명(召命)을 모두 이루었기에 소멸한 것일지도 모른다. 한때 주화입마로 인해 내공을 잃었던 혼원검왕의 염원을 통해 탄생한 혼원신공이 진정한 새 주인을 찾게 된 것이다.

두근!

혼원신공이 이현성의 영혼에 각인된 순간 그의 상단전이 반응했다.

정확히는 상청도량심결(上淸道場心訣)이 움직였다.

‘아…….’

순간 이현성은 희열에 빠졌다.

혼원신공과 상청도량심결이 만나면서 지금까지 보지 못한 또 다른 세계를 보게 되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잠자고 있던 삼목금섬의 내단과 귀혈삼의 마지막 영기까지 혼원신공에 녹아들었다.

그것만도 놀라운데 포영심결과 혈영공, 상청도량심결 그리고 삼라만상과 암천살무 등 그의 모든 것이 혼원신공 안에서 하나가 되어갔다.

혼원신공은 한층 더 진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로 인해 혼원검왕의 혼원신공을 넘어선 또 다른 절대신공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렇게 이현성은 천재일우의 기연을 맞이하게 되었다.

허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이렇게 죽이긴 아깝지만 죽… 컥!”

원수이긴 하지만 현재 맹검은 천사교주의 명을 받는 입장이었다. 때문에 이현성의 끝을 지어야 했다.

그의 검이 이현성을 베려는 순간, 죽어가던 이현성의 검이 움직였다.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를 베려던 맹검이 나가 떨어졌다. 그로 인해 진화를 이루던 혼원신공 역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중간에 중단되었다.

삼라만상과 암천살무는 혼원신공과 합을 이루지 못한 채 깨달음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광세절학임은 부정할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 역시 하늘의 뜻일지도 모른다.

감당할 수 없는 것은 오히려 화를 불러일으키는 법이었다.

“우웩! 뭐…야. 어떻게…….”

피를 토한 맹검은 이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조금 전까지 죽어가던 이현성이었다.

굳이 자신이 베지 않아도 이대로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자신은 임무를 완수하고, 그의 고통을 끝내주기 위해서 검을 들었다.

그 결과 나가떨어진 것은 오히려 자신이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과였다.

게다가 분명 조금 전까지 죽어가던 이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감사하오. 귀하 덕분이오.”

이현성의 말은 진심이었다.

화경이라는 지고무상(至高無上)한 경지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현성은 찰나이자 억겁과 같은 순간 동안 한 계단 아니, 두 계단을 밟을 수 있었다.

그야말로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셈이었다.

분명 맹검의 무위에 비해 손색이 있었던 이현성이 지금은 오히려 그를 넘어서고 말았다.

허나 깨달음이란 그런 것이다. 찰나로 지나갔으나 억겁과 같으며, 바람처럼 왔다가 구름처럼 사라지는.

“귀하의 소원, 그것을 이룰 수 있게 돕고 싶소.”

“그게 무슨…….”

맹검의 사연은 워낙 유명해서 모를 수가 없었다.

당연히 그의 소원이 뭔지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 이현성은 맹검이 천사교주를 죽일 수 있게 돕겠다는 뜻이었다.

물론 고마운 마음 때문만은 아니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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