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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80화 (80/314)

80화.

“제~엔장! 보통 검이 아니구나!! 그렇다 해도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아무리 검막을 펼쳤다고 해도 평범한 검이었다면 광쇄의 공격을 몇 번이나 받아내고 멀쩡할 리가 없었다.

아니, 광쇄에게 부서진 명검이 수십 자루였다.

그럼에도 금조차 가지 않은 이현성의 검을 보니 더욱 짜증이 났다. 결국 몸에 두른 또 다른 쇠사슬을 풀었다.

두줄의 쇠사슬을 쥔 광쇄가 다시 달려들었다.

“만쇄지옥(萬鎖地獄)!!”

피할 수 있는 모든 방위를 점해서 도망치지 못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사방에서 조여오게 만드는 절초였다.

게다가 쇠사슬을 쳐내면 그 반동을 이용해서 또다시 옭아매려고 하기에, 그야말로 쇠사슬의 지옥인 셈이었다.

허나 이현성은 애초 피할 생각이 없었다.

숨을 가다듬으며 차갑게 말했다.

“후… 영광인 줄 알아라. 천중비화(千重飛花)로 인한 첫 죽음이니까.”

이현성은 지금까지 숨기고 있던 새로운 절초를 꺼냈다.

절대쾌검인 일점혈에 이은 암천살무(暗天殺舞)의 또 다른 절초, 천중비화. 초식명에서 알 수 있듯 천 겹의 꽃잎이 흩날리는 듯한 아름다운 절초였다. 환검(幻劍)과 산검(散劍)의 극치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름답기만 한 검초가 아니었다. 검강(劍罡)으로 펼치는 초식인 만큼 그 위력 역시 가공하였다.

일점혈에 이은 암천살무의 절초다웠다.

쩌어억!

광쇄의 쇠사슬 역시 특별한 금속으로 제련해서 엄청난 강도를 자랑했다. 하지만 검강이 실린 암천의 천중비화를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현성을 옭아매려던 광쇄의 쇠사슬은 산산조각이 나서 사방으로 비산하고 말았다. 그렇게 비산한 쇠사슬 조각은 암기처럼 주변을 파괴했다.

“비, 빌어먹을…….”

“머, 멍청아!!”

사방으로 비산한 쇠사슬 조각 중 일부는 광쇄에게 쇄도했다. 당황한 광쇄는 피하려 했으나 너무 가까운 거리였다. 쇠사슬 조각이 한두 개가 아니다 보니 피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푹! 푸푹! 푹푹!!

결국 쇠사슬 조각 중 일부가 그의 몸에 박히고 말았다.

그래도 본능적으로 사혈(死穴)은 피했기에 절명할 정도로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진짜 치명적인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이현성의 검이었다.

“커어억!! 비, 빌어먹…을…….”

비산한 쇠사슬 조각으로부터 사혈만이라도 피하려다가 이현성의 검을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아니, 설사 인지했다고 해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검은 피하려 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검이 아니었다. 가슴에 검이 꽂힌 광쇄는 혼자 죽기 억울한지 이현성을 저승길 동반자로 삼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조차 불가능했다.

이현성은 단순히 그의 가슴에 검을 꽂은 것이 아니라 심장을 완전히 파괴해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광쇄는 동귀어진(同歸於盡)을 마음먹는 순간 이미 절명하고 말았다. 허나 광요와 맹검은 그를 돕지 못했다.

파괴되어 비산한 쇠사슬 조각은 광쇄에게만 쇄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새끼! 죽어라!”

이현성의 검에 광쇄가 죽는 것은 막지 못했으나, 그의 희생(?)으로 인해 만들어진 기회를 포기하지 않았다.

특히 광요는 쇄도한 쇠사슬 조각을 쳐내며 이현성의 지척까지 도달한 상황이었다. 육신을 깊숙이 파고든 검을 뽑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검이 찔린 순간 근육이 수축되면서 순간적으로 강하게 검을 압박하기 때문이다.

물론 살인에 정통한 살수에게는 쉽게 찌르고 쉽게 뽑는 비법이 있었다. 물론 이현성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 찰나의 시간이 필요했다. 광요는 그 찰나의 순간을 포기하지 않고 손톱을 휘둘렀다.

챙! 쩌어억!!

광요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베인 것은 이현성이 아니었다. 그는 검 대신 다른 것을 이용해 광요의 손톱 아니, 철조를 막아냈다.

바로 왼손에 쥐고 있던 검집으로 해냈다.

제법 잘 만들어진 검집이었기에 광요의 철조를 막긴 했는데, 완전히 막긴 어려웠는지 그만 금이 갔다.

당장이라도 부서질 판이었다.

“컥!”

“후… 위험했다.”

광요의 철조를 검집으로 막은 덕분에 이현성은 검을 회수할 찰나의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광요는 방심했다.

당연히 이현성을 베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방심은 다시 한번 이현성에게 기회를 줬다.

검을 거둔 순간 일점혈을 펼칠 기회를.

결국 그녀 역시 심장에 검이 꽂히며 절명했다.

내공 소모가 큰 천중비화에 이어서 일점혈을 펼치는 것은 분명 부담이 되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천사교의 호교사자를 둘이나 제거한 것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로써 그는 천사교와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이었다.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이대로 저들의 손에 죽을 수는 없었다.

허나 아직 위험은 끝나지 않았다. 광쇄, 광요 두 사람을 합친 것보다 더욱 위험한 고수가 남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내키지 않았는데… 재밌게 되었어.”

“…….”

맹검의 차가운 미소는 너무도 섬뜩했다. 그를 보며 이현성은 다시 한번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후…! 할 수 있을까? 아니, 해야 돼.’

환야만큼이나 강한 고수인 맹검.

허나 긴장되는 것은 그의 강함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자신의 상태 때문이다. 깨달음 덕분에 초절정고수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삼화취정(三花聚頂) 아니, 이화취정(二花聚頂)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이는 삼목금섬의 내단과 귀혈삼의 영기를 8할 가까이 자신의 내공으로 만든 결과물이었다.

그렇게 얻은 삼갑자(三甲子, 180년)의 내공이건만, 천중비화와 일점혈을 연이어 펼친 덕분에 내공이 제법 소모된 상황이었다. 만전이 아닌 상황에서도 버거운 상대인 맹검을 내공 소모가 극심한 지금 상대한다는 점이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시작해볼까?”

* * *

“뭐, 뭐야. 어떻게 된 거야!”

호교사자들에게 이현성을 맡긴 환야는 천살을 돕기 위해서 이동했다. 천사교주가 원하는 목은 이현성이 아니었다. 바로 사자도패였다.

환야가 직접 나서지 않고 시간을 끈 것도 천사교의 지원이 도착할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다.

천사교의 입장에서 이현성은 언제든 죽일 수 있지만, 사자도패는 아니었다.

천웅방의 팔패가 홀로 나와 있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이런 기회를 놓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같은 사파이고, 사파사세였지만 동료는 아니었다.

오히려 굴복시켜야 할 대상이었다. 사파사세의 나머지 셋을 무너트려야 사파지존으로 군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천사교주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나머지 삼세의 주인들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천웅방주의 칼이라는 사자도패를 제거할 기회를 포기하기에 천사교주의 야심은 작지 않았다.

“천살지망(天殺地網)이 파괴되었다고? 그사이에?”

도망치는 적을 궁지에 몰아세우는 방법 중에 천라지망(天羅地網)이라는 것이 있었다.

다수의 인원으로 주변을 포위해서 퇴로는 막는 것은 물론 정신까지 압박하는 전술이었다. 천살지망은 천라지망의 일종으로 천살문만의 전법이었다.

천살은 십대살수 중에서도 상위에 꼽히는 절대살수였다. 그는 알고 있었다. 살왕과 살막을 넘어서기에는 자신과 천살문의 힘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그렇기에 천사교주의 밑으로 들어가서 오대교령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천살의 힘이 약한 것은 아니었다.

비교 대상이 살종인 살왕과 살막이었을 뿐이다.

그런 천살문의 천살지망이 반파되어 있었다. 지척에 가득 쌓인 천살문의 살수들 시체가 그 증거였다.

“사자도패가 이 정도였단 말인가!”

물론 사자도패는 강하다. 그렇기에 그라면 천살지망 속에 갇혔다고 해도 그만큼의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

하지만 천살이 직접 나선 천살지망이라면 말이 다르다.

그렇기에 환야는 당혹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사자도패의 솜씨가 아닌데?”

살수들의 시체에 남은 상처는 도흔(刀痕)이 아니었다.

물론 사자도패라도 무조건 칼로 죽여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의 솜씨는 아니었다.

너무도 깔끔한 죽음.

이건 살인의 대가만 할 수 있는 솜씨였다.

즉, 이들을 죽인 자 역시 살수란 뜻이며, 보통 살수가 아니란 의미였다.

지원이 도착한 것은 천사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천웅방에서 이런 솜씨를 가진 자는… 암월영패!!”

천웅방주의 그림자인 그만이 가능하였다.

기겁한 환야는 서둘러 다시 움직였다.

사자도패 한 명이라면 몰라도 암월영패까지 왔다면 천살문은 물론 천살마저 위험했다. 천웅방의 팔패 하나를 지우려다가 이쪽의 전력이 감소할 판이었다.

사파일통을 목표로 삼는 천사교로서는 치명적이었으니 다급한 것은 당연했다. 시체들을 따라 움직인 환야는 곧 다른 격전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젠장!”

천살은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천살지망을 통해 사자도패를 몰아세울 때까지만 해도 득의에 차 있었다. 천웅방 팔패의 일인을 벤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위상과 입지가 높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단 사람의 참전 때문이다.

천사교에 자신이 있다면 천웅방에는 그가 있었다.

암월영패(暗月影覇).

그는 자신이 암월영패의 아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자신에 한해서일 뿐, 천살문의 살수들은 아니었다. 암월영패는 자신을 직접 노리지 않고, 천살문의 살수들을 먼저 제거하는 영악함을 보여주었다.

그로 인해 천살지망에 구멍이 생겼고, 여유가 생기는 순간 사자도패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사자포효(獅子咆哮)!”

“커어억!”

“으아악!!”

사자도패는 양떼 속에 뛰어든 맹수처럼 천살문 살수들을 유린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살은 그들을 도울 수가 없었다.

이 일의 원흉인 암월영패가 그의 발을 묶고 있기 때문이다. 사자도패가 반격을 시작한 이상 암월영패가 살수들을 제거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천살의 발을 묶는 것이 낫다.

천살은 분통이 터졌다.

그로 인해 무심(無心)을 유지할 수 없었다.

무심을 유지할 수 없는 천살은 암월영패를 벨 수 없었다.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아직 포기하긴 이르다.

그 순간 동아줄이 내려왔으니 말이었다.

“사자도패 이놈!!”

“음? 늙은이. 좀 늦었군.”

드디어 환야가 도착한 것이다. 그라면 사자도패와 싸워볼 만하다. 환야가 도착한 덕분에 천살은 다시 무심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허나 그가 다시 무심을 유지했다고 해서 쉽게 벨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

암월영패는 어려운 상대였다.

그리고 그는 아직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환야와 사자도패, 천살과 암월영패. 천사교와 천웅방의 자존심을 건 혈전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전화위복과 호사다마

‘정말 강해! 혈검 그놈이 이를 간 것도 이해가 되네.’

맹검은 회귀 전에 혈살객의 살생부에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그것도 상위에 올라 있었다.

아무리 혈천이 심혈을 기울여서 양성한 혈살객이라도 화경의 절대자들을 암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들은 암살이 통하지 않는 초인이기 때문이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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