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천하제일부가인 석가장 역시 막대한 자금을 들여 구축한 정보망을 통해 얻는 정보가 어마어마하였다. 특히 앞마당이라고 할 수 있는 하북성의 일은 손바닥 보듯 했다.
덕분에 천사교가 움직인 사실 역시 알 수 있었다.
“내각대학사의 빈객이었던 이현성을 노린다는 첩보입니다. 장주님.”
“뭐? 으음… 이현성이라.”
석대환의 눈빛이 번쩍였다. 사천당가의 호법을 쓰러트린 고수. 그것도 현재는 주인이 없는 고수였다.
석대환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손을 쓸 수는 없었다.
천사교가 끼어든 상황이었다.
인재 한 명 얻겠다고 천사교와 척을 질 순 없었다.
석가장이 혈천십삼세의 하나이지만, 단독으로 상대할 수 없는 곳이 바로 천사교이기 때문이다.
“탐이 나는 녀석인데… 어쩔 수 없지. 괜히 천사교와 시비가 생기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라.”
“존명!”
천하일통을 목표로 감고 있는 혈천이었다.
천사교 역시 굴복시켜야 하는 세력이었다.
허나 그건 지금 당장이 아닌 훗날의 일이었다. 그렇기에 당장은 천사교와의 시비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과의 분쟁이 대계에 막대한 지장을 줄 수도 있었다.
“지금만 참아주지. 내가 혼원신공만 익힌다면 그때는…….”
석대환, 그는 아직도 혼원신공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혼원신공이 어디에서 잠자고 있는지도 모른 채.
* * *
“커어억……!”
“후우.”
마지막 습격자의 숨을 끊은 이현성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북경을 벗어난 지 얼마 후부터 하루에 한 번 이상씩 습격을 받았다.
처음에는 중소형급 살문이나 사파문파의 습격이었다.
그런데 하북성 남부에 도착한 지금은 제법 이름이 알려진 사파고수인 소혼쌍귀와 하북삼흉의 습격을 받았다.
그들이라면 절정고수의 목도 충분히 벨 수 있는 전력이었지만, 이현성의 목을 베기엔 한참 부족했다.
호흡은 흐트러졌으나 상처 하나 입히지 못했음이 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정말 대단하군. 저들이 네놈의 목은 몰라도 팔 하나는 가져올 줄 알았는데 말이야.”
“이제 직접 나설 생각이오?”
지난 열흘간 기척만 드러낼 뿐,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환야가 처음으로 다가왔다. 이현성은 그가 직접 나설 작정임을 알 수 있었다.
환야는 그의 물음에 대답 대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사자도패, 그자는 진짜 어디로 간 거야? 계획을 변경해야 하나…….’
천사교 오대교령 환야.
분명 가볍게 볼 수 없는 초절정고수였다.
허나 그가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의 뒤에 있는 천사교가 귀찮은 것이다.
끝없이 귀찮게 둘 천사교가 신경 쓰였다.
그렇기에 사자도패와 양패구상 당하길 바랐는데, 그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복귀한 건가? 이렇게 간단히?’
사자도패가 정말 천웅방으로 복귀한 거라면 진짜 곤란하다. 하지만 이제는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했다.
보이지 않는 사자도패를 마냥 기다릴 순 없었다.
“죽을 준비는 끝났느냐. 애송이.”
“마지막 기회 같은 건 안 물어보오?”
이현성의 물음에 환야는 눈이 빛났다.
“오호? 이제야 정신을 차렸나 보군, 교주님의 성은에…….”
“아, 물론 거절이오.”
“뭐, 뭐! 이 개 같은!!”
당연히 기가 꺾였다고 생각했던 이현성이 오히려 자신을 가지고 놀았음을 깨달은 환야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이현성은 내색하지 않았으나 속으로 웃었다.
‘그래. 더 흥분해라.’
이현성은 일부러 환야를 도발했다. 어차피 싸워야 한다면 환야를 흥분시켜서 보다 유리한 싸움으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흥분한 환야의 손에 사이한 기운이 어렸다.
이에 이현성은 검을 쥐고 대응할 준비를 했다. 이현성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검을 휘두르는 대신 물러났다. 그를 보며 환야는 입맛을 다셨다.
“애송이가 제법이야.”
“당할 뻔한 건 나였군.”
그제야 다시 한번 깨달았다.
상대가 천사교를 대표하는 고수라는 사실을.
환야는 단순히 강한 고수가 아니었다.
경험 많은 노련하고 간괴(姦怪)한 노고수였다.
조금 전, 자신의 도발에 넘어가서 흥분한 것도 실제로 흥분한 것이 아닌 척했을 뿐이다.
오히려 자신의 자만을 이용하려고 했다.
‘상대는 천사교 오대교령이다. 방심하지 말자. 적은 진짜 고수이니까.’
그렇게 환야와 이현성의 진짜 싸움이 시작되었다.
“언제까지 도망칠 생각이더냐!”
환야는 강했다.
괜히 천사교를 대하는 오대교령이 아니었다.
즉, 이런 고수가 넷이나 더 있다는 말이었다. 천사교가 왜 사파사세에 속하는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소혼쌍귀와 하북삼흉을 상대로 부상을 입은 것은 아니지만, 체력과 내공 소모가 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환야를 연이어 상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현성은 위험하다고 판단한 순간 도주를 선택했다.
쾅! 쾅! 쾅!!
이현성의 뒤를 쫓던 환야는 짜증이 났는지 장법을 마구 난사했다. 허나 이에 당할 이현성이 아니었다.
환야의 장법은 모조리 피하며 도망쳤다.
‘조금만 더 가면 돼… 조금만…….’
이현성은 환야가 두렵기에 도주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계획대로였다.
그가 있는 곳은 하북성 남부, 곧 석가장의 권역이었다.
상가인 석가장이 아무리 대단한 금력을 가졌다고 해도 강력한 무력을 가진 천사교와 싸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상가인 석가장이 아닌 혈천십삼세의 석가장이라면 상황이 다르다.
이현성은 사자도패 대신 석가장을 엮을 생각이었다.
석가장의 숨겨진 신분은 혈천십삼세(血天十三勢), 적인 이상 문제될 것이 없었다. 아니, 일석이조였다.
역시 환야 아니, 천사교는 결코 가볍게 볼 자들이 아니었다. 이현성이 앞을 막은 남녀가 있었다.
“흐흐흐. 죽어라!!”
“호호호. 아주 귀엽게 생긴 동생이네?”
“…….”
참으로 어울리지 않은 이남일녀였다.
허나 이현성은 그들을 무시하고 지나갈 수가 없었다.
그중 거구의 사내는 전신을 감은 쇠사슬 중 하나를 쥐더니 흡사 비단끈처럼 가볍게 휘둘렀다.
후우웅!!
콰쾅!
허나 그 위력은 결코 비단끈처럼 가볍지 않았다.
쇠사슬이 허공을 거스르는 소리가 무척이나 섬뜩했다.
이현성이라 하더라도 결코 무시할 수 없기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의 결정이 현명했다는 것을 알려주듯 쇠사슬이 내려찍은 땅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다.
꼴칵.
“호호. 이 누나가 놀아줄게.”
허나 위험을 따지면 중년 미부 아니, 요부 쪽이 한 수 위였다.
요사스러운 웃음은 사내의 흑심을 불태우게 만든다.
허나 그 순간 바로 지옥을 맛보게 된다. 날카로운 손톱은 인간의 육신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평범한 손톱이 아니었다. 철로 만든 철조(鐵爪)의 일종이었다. 인간의 육신쯤은 간단히 해체(?)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무기였다. 그녀의 길고 날카로운 손톱(?)을 본 이현성은 등골이 오싹했다.
“광쇄(狂鎖)와 광요(狂妖)라니.”
그제야 이현성은 두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쇠사슬을 이용해 상대를 곤죽으로 만든다는 광쇄.
천요(天妖), 환요(幻妖)와 함께 삼요(三妖)의 일인인 광요.
두 사람의 정체는 바로 천사교의 호교사자(護敎使者)였다. 잔악함만은 천사교 호교사자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였다.
허나 저들은 둘이 아닌 셋. 광쇄, 광요와 동행했다면 장님의 사내 역시 호교사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천사교의 호교사자 중 장님은 단 한 명이었다.
“맹검(盲劍)까지…….”
광쇄와 광요는 잔악함으로 손꼽히지만, 무위는 호교사자 중에서 중간에 불과하다. 하지만 맹검은 다르다.
호교사자 중 제일 뛰어났다. 아니, 오대교령에 필적했다. 맹검의 맹자는 소경(盲)이란 뜻이지만, 동시에 맹세(盟)의 의미이기도 했다.
언젠가 천사교주의 심장에 검을 꽂겠다는… 그의 눈을 앗아간 자가 바로 천사교주이기 때문이다.
천사교주가 그에게 약속했다.
자신에게 도전하고 싶다면 언제든 도전하라고. 대신 도전할 실력을 쌓을 때까지는 자신의 명을 따르라고.
그렇게 호교사자가 된 맹검은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둘렀다. 원수인 천사교주의 검으로서.
그 결과 오대교령과 필적하는 초절정고수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령이 아닌 호교사자로 남았다.
오대교령은 직접 싸우는 경우가 흔치 않고, 교주를 증오하는 그에게 교령위를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광자, 광요에 이어서 맹검까지 보냈다는 것은 이현성을 기필코 죽이겠다는 천사교주의 의지이자, 그의 죽음을 통해서 천사교의 공포를 천하에 각인시키겠단 의도가 숨어 있었다.
“왜 이렇게 늦었나!”
“먼길 오는 게 쉬운 줄 아시오?”
“호호호. 영감탱이가 오랜만에 왜 앙탈이야?”
환야는 광쇄, 광요를 보며 골치가 아팠다.
광자들답게 제어가 쉽지 않았다.
오대교령인 자신에게까지 거스를 정도였다. 게다가 맹검은 환야가 함부로 명령하기 껄끄러운 강자였다.
“썩을 연놈들, 지랄 그만하고 어서 처리해. 난 천살(天殺) 놈을 도우러 갈 테니까.”
“흐흐흐…….”
“그러든가.”
이곳에 나타난 천사교의 무리는 저들 삼인이 전부가 아니었다. 환야와 같은 오대교령인 천살과 그의 천살문 역시 움직였다.
이현성보다 더 먹음직한 먹이를 노리고 있었다.
그 말을 남긴 환야는 바로 자리를 떠났다.
호교사자 셋이면 초절정고수를 죽일 순 없어도 발을 묶는 것은 가능하다. 하물며 초절정고수인 맹검이 포함되었다면 굳이 환야가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흐흐흐… 내가 먼저다!”
눈에 광기가 번들거린 광쇄는 쇠사슬을 빙글빙글 휘둘렀다. 쇠사슬은 이현성을 노렸다. 허나 그는 호락호락한 자가 아니었다. 가벼운 몸놀림만으로도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 민첩한 몸놀림은 이현성의 큰 무기였다.
“흐흐흐. 언제까지 피할 수 있나 보자.”
광쇄의 쇠사슬은 집요하게 이현성을 노렸다.
결국 이현성을 검을 꽉 쥐었다.
더 이상 피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었다. 피하기만 해선 결국 체력만 깎인다. 광쇄 한 명이라면 몰라도 광요와 맹검까지 있는 이상 속전속결로 정리해야 했다.
채~앵~!
제법 강도가 높은지 광쇄의 쇠사슬이 암천에 의해 베이지 않았다.
“좋은것 좀 써라. 고작 검 하나 못 부수냐?”
“이년이!! 이 새끼 죽어라!!”
이현성의 입장에선 암천에 베이지 않은 쇠사슬이 제법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광쇄의 입장에선 달랐다. 그의 쇠사슬에 걸리면 무기는 모두 부서지고, 바위는 박살난다. 그런데 저런 얇은 검(劍)을 부수지 못한 것을 보며 광요가 광쇄의 성질을 긁었다. 덕분에 성이 난 광쇄는 더욱 광분해서 이현성에게 달려들었다.
챙! 챙! 채챙! 챙챙챙!!
무식하고 힘만 센 바보처럼 보이지만, 전투에 대해서는 제법 뛰어난 감각을 가진 광쇄였다.
전투감각에 신력까지 가지고 있는 광쇄였기에 쇠사슬을 채찍처럼 현란하게 휘두르는 것 역시 가능했다.
힘과 내공만 아니라 기교까지 갖춘 광쇄를 보며 이현성은 검막(劍幕)을 펼쳤다.
콰쾅!!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