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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78화 (78/314)

78화.

물론 흑룡대가 떠난 후 폐쇄될 마을이기도 했다.

묵장진과 흑룡대 역시 더 이상 깊이 알 생각은 없었다.

이현성의 직속부하가 된 이후 처음으로 받은 명령이 바로 강해지는 것이다. 때문에 강해지는 것 이외에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녹혼(綠魂), 그들이더냐?”

“예. 귀노(鬼老) 어르신.”

묵장진은 깜짝 놀랐다. 노인이 지척에 다가올 때까지 전혀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귀림의 은퇴살수들 귀노. 그들 대부분은 은퇴 전에 귀령 혹은 귀혼의 직위에 있었다.

살수는 무인과 다르다. 심후한 내공보다 단련된 외공과 감각에 더 의지했다. 그렇기에 나이를 먹을수록 현역으로 활동하기 힘들어진다.

물론 귀림은 일개 살문과 비교할 수 없는 곳이다. 그렇다고 해도 떨어지는 근력과 감각을 대신할 내공이 심후하지 못하다면, 생존확률이 적어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노구가 될 때까지 귀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은퇴할 때까지 살아남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귀노 중에는 귀영살수로 은퇴한 자가 많지 않았다.

눈앞의 귀노 역시 귀령 출신이었다.

“이곳에선 자네들만 지낼 것이 아니다. 자네들 외에도 훈련을 받게 된 자들이 있으며, 그들과 경쟁하게 될 것이다. 여기까지가 내가 받은 명령이다. 그 이상은 스스로들 얻어라.”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어르신께 뭐라고 부르면 되겠습니까?”

“노사(老師)라고 부르면 된다.”

“예. 노사님.”

저들이 누구인지 모른다. 하지만 주군인 이현성이 보낸 이상 무조건 저들을 따라야 했다. 그것이 주군의 뜻일 테니까.

그렇게 구십육 명의 흑룡대와 일백 귀목(鬼木)들이 지옥 속에 들어왔다. 혈천의 혈무곡보다 더한 지옥에.

‘더 이상 주군의 짐이 되지 않겠어. 더 이상은.’

* * *

“모 총관님. 업무는 파악하셨습니까?”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림주님.”

묵장진과 흑룡대가 귀림의 그림자 마을에서 지옥훈련을 받고 있을 때, 모유환은 쾌활림에 총관으로 취임했다.

평생 해왔던 일이기에 총관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쾌활림은 일개 기루가 아니었다.

고관이나 권문세가의 수뇌부, 대형 상단의 간부 그리고 명문세가의 장로급만 상대하는 최고급 비밀화원이었다.

그만큼 뭐든 최고급이며, 오가는 돈과 정보는 상상을 초월했다. 암상단과 흑룡방의 안살림을 맡았던 모유환조차 놀랄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단 며칠 만에 모든 것을 파악했다고 말하긴 어려웠다.

“일전에도 말씀드렸으나 제가 아니, 저희가 모 총관님을 지원하는 것은 일 년뿐입니다. 그 이후에는 모 총관께서 림주로서 쾌활림을 꾸려 가셔야 해요. 물론 저희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도움을 드릴 수 있지만…….”

“그전에 자리를 잡겠습니다. 림주님.”

그는 놀랐다. 설마 북경 사대세력이었던 쾌활림조차 주군과 연이 있을 줄은 몰랐다.

모유환은 저들의 정확한 정체는 알지 못했다.

그저 주군인 이현성에게 호의적인 세력에 속한 자들이란 것뿐, 그 이상 아는 것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계속 저들의 도움에 의지할 순 없었다.

최대한 빠르게 저들의 도움 없이 독립해야 했다.

그것을 위한 일 년이었다.

‘역시 주군을 따른 것이 정답이었어. 주군께서 흑룡방의 재정에 연연하지 않으신 이유가 있었군.’

흑룡방의 이름은 사라졌다. 흑룡방이 가졌던 이권은 삼분되어서 단벽호, 곡우경, 염일평의 손에 떨어졌다.

아직은 그전과 다를 바가 없이 운영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른다.

흑룡방주라는 고삐가 풀렸으니 불안할 따름이었다.

그런 그들을 생각하던 모유환은 순간 비웃음이 나왔다.

그들이 가져간 껍데기와 비교도 되지 않는 알짜배기는 자신의 손에 떨어졌다. 그렇기에 더욱 이를 악물었다.

주제 넘는 욕심으로 모든 것을 잃지 않기 위해서.

‘그분의 명을 반드시 완수해야 해.’

* * *

“그게 무슨 말이오. 이 대협께서 안 계시다니?”

제갈세가주의 밀명을 받고 북경 문가장에 온 제갈인성은 당황스러웠다. 그를 보며 금의위사는 차가운 얼굴로 나직하게 말했다.

“그대와 같은 자들이 자꾸 찾아와서 교두 아니, 이 대협께서 떠나셨소. 이제 되었소?”

“그, 그럼 어디로 가셨소!”

금의위사들은 천사교와 천웅방의 일까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현성이 북경을 떠난 이유가 그를 끌어들이기 위해 무림세력들이 찾아오는 일과 연관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현성을 존경하는 금의위사들이 제갈세가에서 온 제갈인성을 대하는 태도가 고울 수가 없었다.

“장난하는 거요! 당신들 때문에 떠나신 분의 행선지를 밝히게!”

“아, 아니. 우리는…….”

제갈인성은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화가 난 금의위사들이 바로 검을 뽑았기 때문이다.

이에 제갈인성을 호위하던 제갈세가의 호위무사들 역시 검을 뽑았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오대세가의 장로 치곤 약한 측에 속한 제갈인성이라도 절정고수였다. 일류 혹은 초일류고수인 금의위사 서너 명을 베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동행한 제갈세가의 호위무사들도 금의위사들의 아래가 아니었다.

허나 상대는 금의위. 황제의 검이었다. 그들을 벤다는 것은 황실이 제갈세가를 공격할 명분을 만들어주는 것이 된다.

“그만! 검을 거두어라!”

“너희도 검을 거두어라.”

그때 중년 사내가 문가장의 입구로 나왔다. 그를 본 제갈인성 역시 황급히 동행한 호위무사들의 검을 거두게 했다. 그리고 중년 사내를 향해 포권을 취했다.

“제갈세가의 장로인 제갈인성입니다.”

“본관은 문가장의 경비책임자이자, 금의위 부천호 위표이외다.”

분란을 막기 위해서 나선 위표였지만, 그 역시 제갈인성을 환영하는 입장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표정 역시 밝지는 않았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희는 이 대협께 폐를 끼치려는 것이 아닙니다. 본가의 영애와 혼…….”

“그게 바로 폐를 끼치는 것이오. 본관 역시 귀가에 대해서 알고 있소. 제갈세가가 명문이라는 것 역시… 허나 이 대협께서는 원하지 않소. 그렇기에 떠나신 것이오.”

“…….”

“그리고 이 대협께서 어디로 가셨는지는 우리 역시 모르오. 누구에게도 말씀하지 않으셨으니 말이오. 언젠가 돌아오신다고 하셨으나 그게 언제일지도 우리 역시 모르오. 이 정도면 대답이 되었소? 제갈 대협.”

제갈인성은 물러났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 역시 오는 동안 본가에서 보내온 정보를 받았다.

하나같이 쟁쟁한 세력들이 접촉해왔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현성이 모두 거절했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허나 그들과 제갈세가는 다르다. 오대세가이며, 지봉 제갈현지와의 혼사를 제안할 예정이었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교섭은커녕 말을 붙여볼 수조차 없었다.

이미 문가장 아니, 북경을 떠났다고 하니 그저 망연자실할 따름이었다.

“뭔가 있어. 그때 본 그가 고작 이 정도로 떠났을 리가 없다. 다른 이유가 있을 거야.”

제갈인성. 제갈세가의 혈족 중에서도 제일 외향적이고 자유분방한 편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제갈세가의 장로였다.

이 정도 통찰력이 없을 리가 없었다.

“이 일을 성공하려면 본가의 정보력만으로는 어려울 수도 있겠어. 우선 형님께서 결단을 내려주시겠지.”

그날 전서응 한 마리가 북경 하늘을 날아올랐다.

반격

“큭!”

“아아악!!”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수많은 생명이 사라지는 소리였다.

실제로 수십여 명이 싸늘한 시체로 변해갔다.

그들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자는 자가 있었다.

‘내 체력을 빼겠단 말이지.’

이현성은 관도를 이용해서 남하했다. 삼라만상을 이용하면 존재감을 지울 수 있으나, 아무리 이현성이라도 몇날 며칠간 계속해서 삼라만상을 펼칠 순 없었다.

그럴 바에는 오히려 사람 속에서 자신의 자취를 가리는 것이 나았다. 흔적을 지우고 자취를 감추는 것쯤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도 보통은 아니었다.

북경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습격자가 나타났다.

‘고작 이들 따윈 내 체력조차 뺏지 못해.’

이현성을 습격한 이들은 천사교나 천웅방이 아니었다.

고만고만한 수준의 사파방파나 중소형급의 살수집단 등이었다.

대부분이 이류급이고, 일류고수는 몇 되지도 않았다.

그 정도로는 이현성에게 아무런 해를 끼칠 수 없었다.

‘이유가 뭐지?’

시체들을 정리하고 서둘러 흔적을 지운 이현성은 다시 움직였다. 그런 동시에 이 일을 벌인 자들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아직은 알 수가 없었다.

‘이번에도 직접 움직이지 않고, 지켜만 보는 거야?’

일부러 모른 척했지만, 자신을 지켜보는 눈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눈이 누구인지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섣불리 제거할 수가 없었다. 상대는 자신도 버거운 천사교 오대교령인 환야이기 때문이다.

즉, 이 무의미한 습격은 환야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고 해도 그를 제거할 순 없었다.

제거하는 것 자체도 힘들지만, 설사 제거한다고 해도 천사교의 대대적인 공격을 받게 된다.

아무리 초절정고수가 되었다고 해도 환야 한명이 아닌 천사교의 대대적인 공격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다. 게다가 자신을 노리는 자가 천사교의 환야만이 아니었다.

‘그보다 사자도패, 그 양반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그냥 떠났을 리가 없는데…….’

처음 환야가 지켜볼 뿐 직접 움직이지 않은 이유가 사자도패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자신과 싸우다가 중간에 그가 끼어들면 낭패를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사자도패의 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사이한 기운을 가진 환야보다 패도적인 사자도패의 기운은 숨기기가 더 어려운 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현성이 그의 기척을 감지 못했다는 것은 두 가지 중 하나였다. 이 근처에 없거나, 아니면 알려진 것보다 더 뛰어난 경지에 올랐거나.

허나 후자보단 전자의 가능성이 더 높다.

‘곤란하게 되었어. 공멸, 하다 못해 양패구상(兩敗俱傷)을 해주면 좋을 텐데 말이야.’

자신을 향한 칼을 서로에게 향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것만이 자신이 사는 길이었다. 아니라면 아무리 하남성에 숨는다고 해도 안전하지 않았다.

그런 판단을 하며 남하하는 이현성을 환야가 짜증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저 애송이 놈을 베고 싶은데, 교주님의 명이니 어쩔 수 없지. 애송아. 운이 좋은 줄 알아라. 교주님께서 원하는 목이 네놈이 아님을…….”

이현성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속사정이 있었다. 그 덕분에 아직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러한 사실을 모른 채 이현성은 천사교가 쳐놓은 음모 속에 서서히 들어가고 있었다.

아니, 미끼가 되어주었다.

* * *

“천사교가 왜 내 권역에서 분탕질을 친단 말이더냐!”

상계는 정보에 민감하다. 남보다 한보 아니, 반보만 앞질러도 큰 이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상계는 정보에 투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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