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불청객
“건방진 놈! 감히 본교의 일을 방해해!”
“천사교 따윈 내 알 바 아니었다.”
거대한 도를 쥔 거구의 중년 사내. 그는 하북팽가의 도객들을 연상케 했다. 허나 그는 결코 하북팽가의 도객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패도적인 기운을 풍겼다.
“처, 천사교 따위…! 오냐! 창사(槍邪) 대신 내 오늘 개새끼 교육을 다시 시켜주마!”
“늙은이. 조잡한 환술 따위가 나에게 통할 거란 희망은 버려라!”
불청객들의 등장에 이현성은 골치가 아팠다. 그들은 그냥 불청객이 아니라 사파무림을 대표하는 초절정고수들이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강렬한 기세에 전각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젠장. 이러다가 일이 커지겠어.’
그들의 등장에 당황한 이현성은 방관하고 있었으나 더 이상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기세만으로도 이 정도인데, 두 사람이 실제로 충돌한다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아무리 변두리에 위치했다고 해도 북경 안이다.
금의위라도 출동한다면 여간 골치 아파지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이현성은 검을 쥐었다.
번쩍!
이현성의 검이 두 사람 사이를 베었다. 정확히는 초절정고수들의 기와 기의 사이를 갈라놓은 것이다.
“헉! 네, 네놈의 짓이더냐!”
“…….”
경악한 환야와 달리 중년인은 입을 다물었다. 허나 그 역시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설마 자신들의 기의 충돌을 갈라놓을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게 가능하려면 최소한 초절정고수이며, 섬세한 기의 운용이 가능해야 한다. 그런데 절정 극의 수준으로 알려진 이현성으로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해냈다는 것은 정보에 문제가 있음을 의미한다.
당황하는 두 사람을 보며 이현성은 나직하게 말했다.
“본인을 높게 평가해주셔 감사하외다. 환야(幻夜) 선배, 사자도패(獅子刀覇) 선배.”
천사교의 오대교령인 환야와 대치하고 있는 중년 도객은 바로 천웅방의 팔패 중 사자도패였다. 천웅방의 팔패(八覇)는 천사교의 오대교령과 비견되는 초절정고수들이다.
그중 사자도패는 천웅방주의 심복 중의 심복으로 유명한 사내였다. 그렇다. 천사교는 물론 천웅방 역시 이현성을 원하고 있었다.
“허나 본인은 천사교는 물론 천웅방 역시 들어갈 생각이 없소. 그러니 부디 돌아가 주십시오.”
“네놈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었군… 호교사자가 아닌 교령(敎領)의 자리를…….”
“주군께 청해, 구패(九覇)와 태아검을 주마.”
이현성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었단 걸 깨달은 두 사람은 새로운 제안을 해왔다. 진면목을 알고 난 이상 더욱 상대에게 빼앗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절정고수도 하찮지 않거늘, 주인 없는 초절정고수의 등장은 결코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천사교의 교령과 천웅방의 구패를 제시한 것이다.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사자도패는 태아검까지 제안했다.
“미, 미친! 태아검을!! 으으… 원한다면 본교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보물을…….”
“주군! 무슨 일이십니까!”
태아검이 뭔가. 전설의 보검이다.
이러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단 생각에 환야는 그에 상응하는 보물을 주겠다고 제안을 꺼냈다.
검객이라면 당연히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일 테니까.
이현성의 손에 암천(暗天)이 없다면 흔들렸을지 모르지만, 그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현성에게 암천은 그 어떤 검보다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애검이었기 때문이다.
순간 환야의 말이 끊겼다. 거대한 기의 기파를 느낀 흑룡당주 묵장진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흑룡방에 기거하는 이들 역시 몰려오고 있었다.
자칫 일이 커질 수 있다고 판단한 이현성이 외쳤다.
“아무것도 아니니 그만 돌아가라.”
“…존명!”
이현성의 명령에 묵장진은 순간 당황했으나 곧 평정심을 되찾고 몰려든 무리를 되돌려 보냈다. 주군의 명에 절대복종하는 것이 수하의 덕목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여든 기척들이 사라지자 이현성이 나직하게 말했다.
“감사한 제안들이오나, 거절하겠소.”
“네놈이 감히 교주님의 성은을 저버리겠단 말이더냐!”
“주군께선 내게 널 데려오라고 하셨다.”
차라리 한곳에서 온 제안이라면 고민조차 안 할 텐데, 사파사세의 두 곳에서 같이 제안이 들어오니 선택할 수가 없었다. 선택하는 순간 자신은 거대한 적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현성의 뜻을 존중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쯤 되니 이현성은 더욱 곤란했다.
한 명도 버거운데, 초절정고수가 두 명이니 물리치는 것도 불가능했다.
“돌아가 주시오. 힘으로 날 데려가려고 한다면 다른 세력에 들어가겠소.”
“크윽! 네놈이 감히!!”
“…좋다. 허나 주군께선 다음에도 살아 있는 널 원하실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대놓고 분노하는 환야보다 사자도패의 경고가 더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굴복할 이현성이 아니었다.
“금의위가 몰려오면 곤란한 것은 본인만이 아니오.”
“…….”
그의 축객령에 사자도패가 먼저 물러났다. 이에 환야는 잠시 고민을 하는 듯싶었다.
그런 그를 보며 이현성이 나직하게 말했다.
“환야 선배. 본인이 도망치려고 한다면 불가능하지 않소. 그게 더 곤란하지 않겠소?”
“우드득…! 정말 건방진 놈이구나. 오냐. 오늘은 이만 돌아가마. 하지만 본교가 아닌 다른 곳에 들어가는 순간 편히 잠잘 생각은 버려야 할 것이다.”
결국 환야 역시 돌아갔다. 무시무시한 경고를 남기고.
홀로 남은 이현성은 한숨만 나왔다.
“하… 이제 떠날 때가 된 건가…….”
* * *
“보, 보여주시겠소. 소림주.”
노인들은 떨리는 목소리로 청했다. 이에 젊은 여인은 주저 없이 손을 뻗었다.
“살(殺)! 회(回)!”
그 순간 바닥에 구멍이 생겼다. 그 구멍에서 빠져나온 반지가 그녀의 손에 다시 돌아왔다. 그녀는 바로 귀왕야가의 비역에 들어갔던 야래향이었다.
이에 노인들은 부복한 후 외쳤다.
“귀백(鬼伯)이 귀왕을 뵙소.”
“귀노(鬼老)들이 귀왕을 뵙습니다!”
“귀왕을 뵙습니다!
그들은 귀림의 귀백과 귀노들이었다.
살수에게 은퇴는 오직 죽음뿐이다.
그리고 암행을 할 수 없는 살수는 죽은 것과 같다.
허나 희망이 없다면 발전이 없는 법.
귀림에서는 노쇠할 때까지 봉사한 살수들을 존중하기 위해서 ‘귀노’란 직위를 만들었다.
장로와 같은 권력은 없으나 그들에겐 자유가 주어졌다.
보통 귀노들은 여생을 편히 지내거나 제자를 키운다.
그렇기에 귀림살수들의 꿈이기도 했다.
“제가 귀왕임을 인정하시나요?”
“물론입니다. 귀왕이시여!”
그들을 대표해서 귀백이 대답했다. 귀노들 역시 어느 한 명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감격했다.
자신들이 죽기 전에 새로운 귀왕을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벅찬 듯싶었다. 귀림은 살수집단이지만 그들에게는 집이요, 고향이기 때문이다.
“허나 본인이 아직 귀왕으로서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해요.”
“아, 아닙니다. 귀왕이시여!”
귀노들은 고개를 저었다. 귀왕인을 자유롭게 다룬다는 것 자체가 귀왕의 자격을 충족한 것이기 때문이다.
귀왕인(鬼王引). 십대암기답게 죽이려고 한다면 죽이지 못한 자가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귀왕의 자격은 충분하였다. 하지만 야래향의 생각은 달랐다.
“제가 아직 살왕을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그렇게 말할 필요 없어요. 허나 그건 지금일 뿐이에요.”
“물론입니다. 귀왕이시여!”
“귀노들의 휴식을 방해해서 미안해요. 허나 긴 잠을 잔 본림의 옛 영광을 되찾기 위해선 반드시 귀노들의 도움이 필요해요. 절 도와주시겠어요?”
“영광이옵니다! 귀왕이시여!”
“늙은 퇴물이 필요하시다면 얼마든지 사용하십시오!”
일개 살수집단에는 있을 수 없는 진정한 충성과 존경.
삼대 살종 중에서도 오직 귀림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다. 물론 그 충성은 귀왕인의 주인 귀왕에게만 향하는 것이다. 즉, 귀왕인의 새로운 주인이 탄생하면 전 주인은 더 이상 충성과 존경의 대상이 아니게 된다.
물론 수백 년간 귀왕야가의 혈족 이외에 귀왕인의 주인이 된 자는 없었다.
“이대로라면 옛 영광을 되찾을 수 없어요. 귀노들은 귀목(鬼木)들을 훈련시켜서 귀영(鬼影)으로 키워주세요.”
“존명!!”
귀림은 일급살수인 귀영부터 진정한 일원으로 받아들인다. 귀목은 귀영으로 인정받지 못한 예비 살수들이다.
다른 살문에서는 충분히 현역으로 활동하는 살수들이 귀림에서는 예비전력에 불과했다.
그게 바로 귀림, 살종으로서 그들의 자존심이었다.
허나 귀왕의 부재로 귀림은 봉문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이백도 되지 않은 인원으로 살종의 자존심을 되찾을 수는 없었다. 질만 아니라 양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법이었다.
“귀백께선…….”
“귀영 중에서 귀령, 귀혼이 될 재목들을 골라 가르치겠습니다.”
“부탁드리지요.”
귀림의 특급살수는 귀림삼령(鬼林三靈)과 귀림구혼(鬼林九魂)뿐이다. 물론 살막을 제외한 십대살문 중 특급살수를 열 명 이상 보유한 곳은 없었다.
그러니 귀림의 전력은 결코 약한 것이 아니었다.
허나 귀림은 삼대살종이다.
그들이 경쟁할 곳은 십대살문이 아닌 살막이었다.
일급살수만 아니라 특급살수의 숫자 역시 이대로 만족할 순 없었다. 그렇기에 귀림의 이름에 걸맞은 상태로 만들려는 것이다.
‘나 역시 귀왕으로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실력을 더욱 갈고 닦아야 해.’
귀왕진결을 익히고 회령환을 복용한 덕분에 특급살수 수준까지 실력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그녀 역시 인정했다.
게다가 실전에선 특급살수의 기량을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아직은 갈 길이 멀었다.
‘그분은 잘 계시려나…….’
* * *
“하아… 떠나야…겠지.”
문가장으로 돌아온 이현성은 북경의 생활을 정리할 생각이었다. 아니, 결국은 정리해야 한다. 환야와 사자도패가 돌아갔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미 무림의 시선이 북경으로 향한 이상 더 이상 현재의 신분을 유지할 수는 없었다. 내각대학사의 귀빈이란 신분만이라면 어찌 되겠으나, 흑룡방주란 신분까지 드러난 이상 외부의 눈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문가장까지 휘말릴 수도 있었다.
“아쉽구나. 흑룡당만이라도 제대로 키워보고 싶었는데…….”
혈천이 전면에 나설 때까지 십 년의 시간이 있다. 아니, 혈살객이 움직일 시간을 생각하면 그만큼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흑룡방 전체를 최정예로 키우진 못해도 흑룡당만이라면 불가능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흑룡당을 챙길 여유가 없었다.
게다가 아직 이류에 불과한 그들을 데려가는 것도 불가능했다. 오히려 발목만 잡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그들과의 연은 여기까지다.
“흑룡방도 해체해야겠지.”
흑룡방의 다섯 당주들도 나름 인재들이다.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