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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70화 (70/314)

70화.

“그, 그러니까…….”

“이놈! 소저, 걱정 마십시오! 저 납치범으로부터 저희가 구해드리겠습니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이대로라면 자신은 제갈세가의 영애 납치범이 된다. 해명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결국 이곳을 빠져나가려면 제갈현지를 인질로 삼는 방법밖에 없었다. 허나 그럼 그녀의 납치범임을 시인하게 된다.

그때 예상치 못한 반전이 일어났다.

“납치…범이라니요? 혹시 이 대협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건 오해십니다. 오히려 납치당한 절 구해주신 분이 바로 이분이십니다.”

“그, 그게 사실입니까! 시, 실례했습니다.”

“아! 그럼 그렇지. 오라버니께서 그럴 리가 없지.”

“아… 예…….”

제갈현지의 기지로 이현성은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그녀는 현재 상황을 알 수 없으나 진주언가 호법의 말에 대충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지봉다운 뛰어난 오성이었다.

“납치범은 어찌 되었습니까?”

“이 대협께서 절 지켜주시느라 복면인을 쫓지 못하셨어요. 그리고 창피하지만 제가 너무 놀라서 내기가 진탕이 되어… 대협께서 진정시켜주시고 계셨어요. 그러니 오해는 마셔요.”

“무, 물론입니다. 저희가 어찌 오해를 하겠습니다. 하하하.”

이현성이 그녀의 복부에 손을 올리고 있었던 이유까지 단번에 해소 시켰다.

그가 제갈현지의 심마를 해소 시키려고 했으니 거짓말은 아니었다.

덕분에 의심을 풀 수가 있었다. 그로 인해 진주언가의 무사들은 머쓱해졌다. 하북팽가의 무사들은 이현성은 존경의 눈으로 바라봤다.

“죄송하지만 자리를 비켜주시겠어요. 아직 이 대협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지 못해서요.”

“알겠습니다. 저흰 납치범을 수색하겠습니다.”

제갈현지의 청에 그들은 객실 밖으로 나갔다. 그들의 기척이 사라졌을 때, 그녀가 나직하게 말했다.

“이 대협. 어떻게 된 건지 알려주시겠어요?”

“예… 그러니까…….”

이현성은 알고 있는 것을 모두 밝혔다.

도왕의 부탁으로 이곳에 온 것부터, 감시의 시선 때문에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단 것.

그리고 그녀를 겁탈하려는 언유광을 제압했고, 그녀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고독을 배출한 사실 등을 모두 밝혔다.

모든 사실을 들은 제갈현지는 제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이현성은 당황했다.

“제갈세가의 여식 제갈현지가 은공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이, 일어나시오. 소저.”

“이 은혜는 꼭 갚겠어요.”

“알겠으니 그만 일어나시오.”

“예…….”

천하의 이현성도 이 상황만큼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그를 보며 제갈현지는 작은 부탁을 했다.

“고독을 제게 주실 수 있으세요?”

“조심하시오. 위험한 물건이니까.”

이현성은 고독을 봉해둔 호리병을 건넸다.

호리병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본 제갈현지는 두 손으로 공손히 건네받았다.

‘언유광… 언중경… 결코 당신들을 가만두지 않겠어!’

제안

“…무사해서 다행이구나.”

천하의 언중경조차 당황하고 말았다.

사경을 헤매고 있어야 할 제갈현지가 너무도 멀쩡하기 때문이다.

열락음양고의 음고를 복용한 그녀였다. 당연히 자신의 아들처럼 사경을 헤매고 있어야 정상이었다. 이렇게 멀쩡한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예. 걱정을 끼쳐 드려서 죄송해요.”

“미안하구나. 신경 쓴다고 썼는데, 어찌 본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언중경은 그녀의 표정에서 적의(敵意)를 느낄 수 없어 의아했다.

이는 제갈현지가 사건의 전모를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그렇기에 그는 미안한 척 가증스럽게 연기했다.

허나 그런 그의 생각과 달리 이미 전모를 눈치채고 있던 제갈현지는 속으로 분노하고 있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그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비록 열락음양고의 음고를 손에 넣었지만, 그것이 언중경의 소행이란 증거는 없었다.

궁서설묘(窮鼠齧猫)라고 그가 궁지에 몰려서 사과 대신 살인멸구를 택할 지도 모른다. 이곳은 진주언가의 본가인 만큼 자신들이 불리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죄송하지만 이번 혼사는…….”

“네 뜻이 정 그렇다면 없었던 일로 하자구나.”

언중경으로서는 못마땅하였지만 더 이상 반대할 수가 없었다.

진주언가의 본가 내에서 그녀가 납치를 당했다. 이 일로 책임을 묻는다면 곤란한 것은 자신과 진주언가였기 때문이다.

아들과의 혼사만 무산시키는 것으로 물러나 준다면 오히려 고마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건 본가가 준비한 거예요.”

“으음… 알겠다.”

제갈현지가 건넨 검은 팽군악에게 전해 받은 보검으로, 제갈인겸이 잃어버린 혼원신검 대신 배상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

화는 나지만 배상할 건 확실하게 배상해야 진주언가와 싸울 때, 걸리는 점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언중경의 입장에서는 고작 검일 뿐이었다. 그러나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이것으로 제갈세가에 지운 빚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럼 저흰 이만 본가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조금 더 있다 가지 그러느냐.”

“납치를 당할 뻔한 기억 때문에… 죄송해요.”

“그, 그렇구나. 알겠다.”

납치를 당할 뻔한 것을 명분으로 내세우니 언중경은 그녈 붙잡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제갈현지가 밖으로 나가자, 언중경은 이를 갈았다.

‘빌어먹을 년! 네년이 감히! …그보다 어떻게 된 거야! 늙은이가 분명 음고를 복용했다고 했거늘… 설마 날 속인 건가!’

진실을 알지 못한 언중경은 이미 죽은 의약당주만 욕할 뿐이었다.

* * *

“이 대협, 은혜는 꼭 갚을게요.”

“고맙다. 정말 고맙다.”

제갈세가로 돌아가기 전, 제갈현지는 다시 한번 이현성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평생 한을 가슴에 얹고 아니, 생을 유지하지 않았을 테니 감사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 그녀의 말에 규염이 이현성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자신이 술에 정신을 팔려서 친손녀처럼 아끼던 제갈현지가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자신만 멀쩡했다면 감히 납치범 따위가 얼씬도 못 했을 것이다.

제갈현지는 규염에게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그의 성격에 진실을 알게 된다면 무슨 짓을 벌일지 잘 알기 때문이다.

복수는 뜨거운 심장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제갈세가의 후손답게 차가운 머리로 할 생각이었다.

“도움이 되어서 다행입니다. 저희도 이만 돌아가야 합니다. 다음에 뵐 기회가 있다면 그때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어르신.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돌아가는 것은 제갈세가만이 아니었다. 팽군악 등 하북팽가의 무인들과 이현성 역시 돌아갈 준비를 마쳤다.

보검을 전하는 임무를 완수한 지금 계속 진주언가에서 지낼 이유가 없었다.

특히 진주언가의 검은 속내를 엿본 이현성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이런 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들과 더 이상 얽히는 것은 사절이었다.

그렇게 하북팽가의 무인들은 북상(北上)을, 제갈세가의 무인들은 남하(南下)하며 헤어지게 되었다.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규염이 홀로 중얼거렸다.

“허허. 참 멋진 녀석이야.”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예상치 못한 제갈현지의 말에 규염은 물론 마차 안에 타고 있던 제갈인성과 그녀의 시비의 눈이 커졌다. 사내를 돌처럼 보는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치고는 나무 의외인 상황이었다.

“그, 그 말은 네가 그에게 마음이 있단 말이더냐?”

“저는 멋진 분이란 것에 동감했을 뿐이에요.”

“그, 그렇지? 하하. 그렇구나.”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 제갈현지를 보며 그들의 어색한 웃음소리만 들려왔다.

하지만 그녀는 진심이었다.

‘이 대협 아니, 이현성… 당신…….’

그녀의 마음속에 한 사내가 들어왔다.

은혜 때문인지 아니면 환락음양고의 부작용인지. 그것도 아니면 삼라만상의 영향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녀가 진심이라는 것이다.

지봉 제갈현지. 그녀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은애(隱愛)의 감정을 알게 되었다.

‘찾아갈게요. 기다려주십시오.’

이현성은 몰랐다. 그녀와의 인연이 아주 길다는 것을.

그리고 사랑에 빠진 여인이 얼마나 강한지를.

* * *

“해, 해약은 조금 더… 컥!”

“죽여달란 말이지.”

환락음양고를 복용한 언유광은 폐인이 되기 직전이었다. 제갈현지를 놓아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언중경은 급한 불을 끄기 위해서 시비를 통해 일시적으로 해소했다.

하지만 환락음양고는 한 번만으로 끝나는 물건이 아니었다.

해약을 통해 고독을 배출하기 전까지 계속 성욕을 자극할 테니까.

결국 언중경은 중원상단 안평지부장을 찾아왔다. 그를 통해서 고독을 받았으니 해약 역시 그를 통해 얻기 위함이었다.

“컥, 컥, 컥…….”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라.”

초절정고수인 언중경의 살기를 상인인 지부장이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선을 넘지 못한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현재 아쉬운 쪽은 언중경이었으니까.

“무, 물론입니다. 그리고 가주님의 전언이 있으셨습니다.”

석가장은 상가였다. 그것도 천하제일의 부를 가진 가문이었다. 결코 손해를 볼 가문이 아니었다.

원래의 목표였던 제갈현지가 복용하지 않았다면 진주언가에서 뜯어낼 수 있는 것은 다 뜯어낼 생각이었다.

언중경도 거절할 입장은 아니었다.

“…좋다. 그렇게 하지.”

“감사합니다.”

결국 손해만 본 언중경은 이를 갈았다.

‘이번에는 내가 한발 물러나지만, 다음에는 다를 것이다. 석대환!’

* * *

“배경이 없다는 것이 확실한가?”

이현성이 도왕의 부탁으로 진주언가에 다녀오고 있을 때, 그의 존재는 조금씩 세상에 알려지고 있었다.

제법 입단속을 시켰다고 하지만 봉황지회에서 사천당가가 망신을 당했다는 사실을 완전히 막을 순 없었다.

특히 제법 정보력을 갖춘 세력들은 이미 이현성의 신상조사까지 마쳤다.

“확인되지 않는 약 5년간의 공백 기간 동안 은거기인의 가르침을 받지 않았을까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 후 귀망산에서 홀로 수련한 것을 봐선 거의 확실합니다. 방주님.”

“하긴 그런 경우가 비일비재한 곳이 무림이니까.”

어린 소년이 은거기인의 눈에 들어서 제자가 된 후 무림고수가 되는 경우는 흔하다고 할 수 없지만 아주 드문 일도 아니었다.

5년간 가르쳤던 은거기인이 귀천했다면 어린 나이에 홀로 산에서 수련하다가 하산한 것일 테니까.

그러다 보니 이현성의 신상조사를 하던 세력들은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아무리 그들이라도 혈천이 작정하고 조작해둔 흔적을 알아차릴 순 없었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무조건 잡아야 합니다. 어떤 대가를 지불한다고 해도…….”

“어떠한 대가라도? 하긴 약관의 애송이가 절강수를 쓰러트렸다면 그럴 만도 하지. 방심한 일이라도 말이야.”

절강수 갈엽이 누군가. 오대세가 중에서도 제일 폐쇄적인 사천당가의 호법이었다.

당가의 성을 가지지 않은 자가 호법에 올랐다는 것은 그만큼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그가 아무리 방심했다고 해도 제압되었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걸 약관의 청년이 해낸 일이라면?

천금 아니, 만금을 줘서라도 잡아야 한다.

“그런데… 주변에 정파 놈들이 많다던데, 스승이 정파 출신인 것 아닌가?”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으나 정파 출신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손속이 단호하다고 합니다.”

“그렇단 말이지?”

예를 중시하고,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는 정파무림은 고고한 척하는 것을 좋아하기에 실전적인 무학은 저급하다고 폄하하는 성향이 있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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