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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66화 (66/314)

66화.

“이 둘을 잘 감시해라.”

“존명!”

애초에 언중경은 두 사람을 현혹시키기 위해 수많은 명주를 내놓았고, 마지막에 용화주로 속인 천일취를 마시게 했다.

제갈현지에게 열락음양고를 복용시켜 언유광과 몸을 섞는 것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고자 벌인 일이었다.

규염과 제갈인성을 제외해도 제갈세가의 고수들이 있으나, 그들 정도는 진주언가 앞에 무의미한 존재일 뿐이었다.

“날 원망하지 마라. 네가 자초한 일이니까.”

순간 언중경의 눈에서 광기가 번쩍였다.

지봉 제갈현지.

그녀는 일생일대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다.

* * *

“흐음… 도대체 왜 이러지?”

제갈현지는 속이 편치 않은지 손을 배 위에 얹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시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아가씨. 무슨 일 있으세요?”

“별거 아니니 걱정… 흐음…….”

“아가씨! 안 되겠어요! 의원님을 청할게요!”

“아, 아니야. 그럴 필요는 없어.”

지혜가 하늘에 닿았다고 소문난 재녀인 그녀였지만 그녀도 결국 꽃다운 여인이었다.

속이 좋지 않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 부끄럽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참기 어려울 정도로 괴로워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안 되겠어요! 이러다가 큰일 나겠어요!”

이쯤 되니 제갈현지도 더 이상 만류할 수 없었다.

참을 수 있는 수준의 고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도 금창약(金瘡藥)이나 요상단(療傷丹), 해독단(解毒丹) 등은 가지고 있었다.

무림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무서운 곳이기 때문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허나 그녀가 보유한 약은 그야말로 위급시를 대비한 것들이지, 지금 상태(?)에 적합한 약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진주언가의 의원에게 진료받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 후, 나이 지긋한 노의원이 안으로 들어왔다.

제갈현지는 창피하지만 노의원에게 진맥을 받았다.

“속이 많이 좋지 않겠구려. 이 단약을 깨물지 말고 삼키면 속이 진정될 게요.”

“감사… 흐음… 합니다.”

속이 불편하고, 창피해진 그녀는 노의원이 건네준 단약을 단숨에 삼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노의원이 나직하게 말했다.

“곧 속이 진정될 테지만 혹시라도 나아지지 않으면 다시 연락하시오.”

“감사합니다. 의원님. 살펴 가십시오.”

힘들어하는 제갈현지를 대신해서 시비가 노의원에게 감사 인사했다.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 노의원이 밖으로 나갔다.

“아가씨. 좀 누우셔요.”

“그래야 할 것 같구나.”

제갈현지가 시비의 도움을 받아서 몸을 누일 때.

그녀의 방에서 나온 노의원은 의약당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했다.

“가주님. 지시하신 대로 처리했습니다.”

진주언가의 의약당주인 노의원이 도착한 곳은 바로 가주전이었다.

그런 의약당주를 향해 언중경이 나직하게 말했다.

“수고했네. 오늘 일은…….”

“저는 그저 제갈 소저를 치료했을 뿐입니다. 그 외에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좋군. 돌아가서 평소처럼 해주게.”

“예. 가주님.”

의약당주가 돌아간 뒤 언중경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입을 다물게 해라… 영원히…….”

“존명.”

언중경의 명령이 떨어지자 누군가 사라졌다.

살인멸구(殺人滅口).

그는 의약당주를 믿었고, 그의 의술 역시 인정했다.

하지만 언중경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믿지 않았다.

의약당주를 그냥 믿기에는 위험도가 너무 컸다.

그렇기에 아예 입을 막으려고 했다.

시체는 말이 없는 법이니…….

“네년이 아무리 똑똑한 척을 해도 결국은 내 손바닥 안에 있지.”

제갈현지의 복통은 우연이 아니었다.

복통이 일어나도록 그녀의 식사에 수작을 부렸다.

그녀가 먹을 음식에 고독을 숨겨서 복용시키는 것은 위험했다. 자칫 깨물어서 고독이 죽기라도 한다면 낭패기 때문이다.

결국 유도한 대로 복통이 일어났고, 의원을 찾았다.

이에 의약당주는 가주의 지시대로 열락음양고의 음고를 넣은 단약을 건넸다.

깨물지 말고 삼키라는 말과 함께.

그렇게 제갈현지는 스스로의 손으로 열락음양고 아니, 환락음양고를 복용한 셈이었다.

“이제 거치적거리는 것들을 잠재운 후 광이를 보내면 끝이군.”

마음 같아서는 제갈세가의 떨거지를 제거하고 싶었다.

하지만 뒷일을 생각하면 손을 거칠게 쓸 수 없었다.

그렇기에 미혼약 등을 이용해서 그들도 모르게 잠재운 뒤 거사를 치르게 할 생각이었다.

언유광 역시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언중경의 말에 난색을 표하기는커녕 오히려 반기는 눈치였다.

한시라도 빨리 그녀를 제 것으로 만들고 싶어 달아오른 듯싶었다.

그간 그에 대해 지저분한 소문이 없던 것이 아니었다.

나름 잘 단속시켰던 것이다.

물론 애초부터 이런 성격은 아니었다.

안하무인인 모습이 있긴 했으나, 이렇게까지 변한 것은 구룡에게 무시당한 후부터였다.

제갈현지를 사모하는 그들로부터 승리감을 느낄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누구도 내 일을 방해할 순 없어! 그 누구도!”

* * *

“속은 가라앉았… 흐음… 는데…….”

노의원의 의술이 보통은 아닌지, 그가 건넨 단약을 복용한 이후 복통은 점차적으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대신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몸 안에서부터 열기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날이 결코 덥지 않음에도 말이다.

“단아… 아무래도… 찬물로 씻어야… 단아?”

제갈현지는 열기를 식히기 위해 찬물에 몸을 담글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부름에도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이상하다고 여길 때쯤에 문이 열렸다.

“단아… 찬물 좀 받아… 어, 언 공자님? 이, 이게 무슨 무례인가요?”

“이런. 제가 실례가 많았소.”

문을 열고 들어온 자는 시비가 아니었다.

진주언가의 대공자인 언유광이었다.

예상치 못한 그의 등장에 당황해하던 제갈현지는 곧 평정심을 되찾고 차갑게 물었다.

아녀자의 방을 허락도 없이 불쑥 들어오는 것은 무척이나 큰 실례였다. 명가의 후손인 언유광, 그가 이런 예도 모른다는 것이 제갈현지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언유광은 불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시면 그만 돌아가세요.”

그녀가 몸을 달구는 열기를 애써 참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언유광은 돌아갈 기색이 전혀 없었다.

평소의 그녀라면 의연하게 대처했겠지만, 열기로 인해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는지 결국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언 공자! 본녀의 말이 우습게 들리나요!”

“흐흐흐. 우습게 들리는데 어쩌나.”

예상치 못한 그의 반응에 제갈현지는 매우 당황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깨닫지 못했다.

이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무리 그녀가 뛰어난 오성의 소유자라고 해도, 무의식중에 갖고 있는 편견 때문이다.

제갈세가의 영애인 자신에게 함부로 할 수 없었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무의식이 그녀를 위험에 노출시키고 말았다.

“다, 다가오지 마세요.”

그녀의 경고에도 언유광은 성큼성큼 다가왔다.

여전히 비열한 미소를 지은 채로.

그런 그의 거침없는 행동에 제갈현지의 눈동자가 심히 흔들렸다.

언유광은 제갈현지의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며 나직하게 말했다.

“본능을 속이려 들지 마.”

“무, 무슨 소리예요! 저리 비켜요!”

언유광은 얼굴이 붉어진 그녀를 보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작은 호리병이었다.

그가 호리병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술처럼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꿀꺽!

“참는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지.”

“그, 그게 무슨…….”

두근!

갑자기 제갈현지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해할 수 없는 신체반응으로 당황해하던 그녀는 언유광과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두근! 두근! 두근두근!!

그녀의 심장이 거칠게 그리고 빠르게 뛰었다.

덕분에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그 모습이 그녀를 더욱 매혹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언유광의 눈에 흑심이 번들거렸다.

제갈현지는 혼란스러웠다.

‘왜, 왜지… 언 공자가… 왜 멋있어 보이는 거지…….’

지금까지는 언유광에게 이성적 호감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아니, 아예 안중에도 없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눈길을 사로잡으니 제갈현지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탐욕스러운 눈빛조차 매력적으로 보일 정도였으니 결코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그런 변화를 깨닫지 못한 채 그녀는 더욱 그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흐흐흐. 네년은 이제 내 거야.’

환희음양고의 양고를 복용한 언유광 역시 성욕이 스멀스멀 끓어올랐다. 아니, 양고가 아니라 해도 매혹적인 그녀를 보고 있자니 탐심이 끓지 않을 수 없었다.

언유광이 제갈현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찌릿!

그의 손이 닿자 제갈현지는 주체할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흐으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흘린 신음 때문에 당황하고 말았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색기 어린 신음이 언유광의 탐심을 더욱 자극했다.

“흐흐흐…….”

“꺄악!”

언유광이 어깨를 살짝 밀자 제갈현지는 맥없이 쓰러졌다.

그런 그녀에게 언유광이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왜, 왜 이러니…….’

뛰어난 오성과 폭넓은 지식 때문에 가려졌을 뿐, 그녀 역시 제법 무공을 익힌 무림인이었다.

몸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머리가 시원해졌다.

“이제…….”

“안 돼요!”

제갈현지가 자신을 덮치려는 언유광을 밀쳐냈다.

저항하지 않던 그녀의 갑작스러운 반응에 언유광은 벌러덩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거부당한 것이 창피한지 오히려 벌컥 화를 냈다.

“이런 썅! 네년이 감히 날 거부할 수 있을 것 같아?!”

“아, 안… 꺄!!”

흥분한 언유광이 제갈현지의 상의를 거칠게 헤쳤다.

그 힘을 감당치 못한 그녀의 상의가 찢어졌다.

제갈현지는 본능적으로 재빨리 가슴을 가렸다.

“날 거부해봤자 네년만 더욱 고통스러울 뿐이야!”

그의 호통이 제갈현지의 뇌리에 꽂혔다.

순간 머리가 맑아졌다.

그때부터 현재 상황을 인지할 수 있었다.

환희음양고로 인해 마비되었던 이지(理智)가 조금씩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제갈세가의 비전인 천지호연심법(天地浩然心法)을 익힌 덕분이었다.

제갈세가의 직계혈족은 대부분 대천성신공(大天星神功)을 익힌다.

제갈세가의 절학 대부분이 대천성신공과 잘 어울릴 뿐만 아니라, 안정적이고 빠른 축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허나 그녀는 대천성신공이 아닌, 혈족들이 거의 익히지 않아 그 존재조차 잊힌 천지호연심법을 익혔다.

내공심법의 측면에서만 보면 대천성신공보다 못하지만 소림의 금강부동심법 못지않은 부동심과 상단전을 보호해주는 효능이 있었다.

제갈현지가 지봉이라는 영예로운 별호를 갖게 된 것에는 천지호연심법이 한몫했다.

그리고 환희음양고로 인해 뇌가 마비당한 지금, 이지를 회복한 것도 천지호연심법 덕분이었다.

허나 환희음양고로부터 뇌를 보호했을 뿐 여전히 힘이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물러선다면 이 일은 불문에 부치겠어요. 아니라면 본가에서 이 일을 간과하지 않을 거예요.”

그녀의 표독스러운 표정에 언유광은 순간 움찔했다.

하지만 이내 제갈현지가 저항할 힘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음흉하게 웃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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