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허나 그것이 변질 되어서 지금은 누군가를 제어하려는 수단으로 바뀌었다.
몸 속에 들어간 고독은 잠들어 있다가 특별한 조건에 의해서 깨어난다.
그렇게 깨어난 고독은 뇌를 파먹기 때문에 누구도 그 고통을 참을 수 없었다.
그 외에도 깨어난 고독이 뇌를 장악해서 쌍이 되는 또 다른 고독의 명령에 의해 조종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열락음양고는 두 경우와는 조금 달랐다.
남녀의 사이를 더욱 뜨겁게 만드는 효능을 가졌다.
“하긴, 지봉을 어설픈 허수아비로 만들면 위험하지.”
석대환은 언중경이 열락음양고를 누구에게 사용하려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제갈현지를 통제하기 위해 일반적인 고독을 사용하는 것은 하책 중 하책이었다.
제갈세가가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이 크게 어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알기에 언중경은 다른 방법을 택했다.
언유광과 제갈현지.
두 남녀가 서로의 몸을 원하게 만드는 것이다.
몸이 섞이면 자연스럽게 정도 생길 것이고, 그렇다면 제갈세가 역시 언유광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다른 고독과 달리 열락음양고는 징후가 미묘하기에 알아차리기도 어렵다. 역시 그만한 것이 없을 듯했다.
일반적인 고독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물며 열락음양고는 돈이 있다고 다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물론 언중경쯤 되면 쉽지 않겠지만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시일이었다. 아무리 빨라도 수개월은 소요된다.
그러나 언중경에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
“덕분에 그의 약점 하나를 더 잡을 수 있으니 나로서도 손해볼 것이 없지.”
이것은 언중경에 큰 약점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패륜까지 저지른 그에게 이쯤은 문젯거리도 아니었다. 어차피 그 사실을 석대환이 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약점 하나 더 생겼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게다가 그냥 열락음양고가 아니지.”
언중경의 요구는 열락음양고였지만 석대환이 지시한 것은 조금 다르다.
열락음약고 대신 환락음약고(歡樂陰陽蠱)를 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기본적으로 열락음양고와 비슷한 효과였다.
환락음양고를 복용하면 서로의 몸을 원하게 된다.
하지만 한 가지 효과가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환락음양고를 복용한 남녀의 이지가 무의식중에 장악된다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환락음약고(歡樂陰藥蠱)를 환락음양고(幻樂陰陽蠱)라고도 부른다.
그 환락음양고를 조종하는 법기는 석대환에게 있었다.
즉, 석대환은 앉아서 진주언가는 물론 제갈세가까지 손바닥에 올려놓는 셈이었다.
“그보다… 뭐가 문제지?”
석대환의 차가운 눈빛이 닿은 곳에는 한자루의 검이 있었다.
혼원신검(混元神劍).
혼원검왕의 애검이었다.
그리고 그의 독문무공이 숨겨져 있는 보물이었다.
몇 개월째 조사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밝혀낼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유출의 위험까지 감수하고 외부 전문가를 통해 검사했다.
하지만 그조차 알아내지 못했다.
“젠장! 분명 혼원신검이 맞는데 말이지.”
흡정마공의 부작용을 해결할 수 있는 몇 없는 신공 중 하나인 혼원신공.
혼원신검을 손에 넣었을 때만 해도 석대환은 천하를 다 가졌다고 생각했다.
혼원신공만 익히면 흡정마공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었다.
그때는 자신을 무시한 혈천십삼세의 주인들을 발아래에 두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그의 기대를 저버리듯 혼원신검에서는 혼원신공의 구결을 발견할 수 없었다. 하다못해 혼원신공이 숨겨진 장소가 적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덕분에 근래 석대환은 심기가 불편했다.
언중경의 일만 아니었다면 오늘도 여전히 심기가 불편했을 테니 그나마 다행히 아닐 수 없었다.
“북명신공이나 조화신공의 단서만 찾았어도… 이 빌어먹을 검에 연연하지 않았을 텐데…….”
혼원신공을 능가하는 전설의 신공들이지만 동시에 수백 년 전에 실전된 절대신공들이었다.
때문에 석대환은 혼원신검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때 석대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 잠깐… 혼원신검이 이것뿐만이 아니잖아! 검집!!”
석대환의 머릿속에 스치는 것이 있었다.
바로 혼원신검의 검집이었다.
검집 역시 혼원신검의 일부였다.
만약 정말 혼원신검, 본체에 혼원신공이 숨겨져 있지 않다면?
검집에 숨겨져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왜 그걸 깨닫지 못했지?!”
지금까지는 혼원신검 자체에만 시선을 주었기에 회수하지 못한 검집은 잊고 있었다.
검집보다는 혼원신검 본체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천지신검의 방해로 회수 못 했다고 했으니 그에게 있겠지? 아니면…….”
유령곡 부곡주인 유령살군이 말하기를 혼원신검의 검집을 천지신검 제갈인겸의 방해로 회수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검집은 제갈인겸의 손에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였다.
하지만 석대환은 또 다른 가능성을 떠올렸다.
“유령살군… 그놈이 눈치채고 검집을 빼돌렸을 수도 있고.”
석대환은 제갈인겸뿐만 아니라 혼원신검을 회수해온 유령살군까지 의심했다.
그에게 제갈인겸을 도운 정체불명의 괴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석대환은 이현성을 알지 못했다.
덕분에 그의 시선은 이현성에게서 더욱 멀어졌다.
즉, 제갈인겸의 주변에서 검집이 드러나지 않으면 석대환의 시선은 유령살군에게 향할 것이다.
아직 혈천을 상대할 준비가 되지 않은 이현성에게는 다행히 아닐 수 없었다.
허나 석대환이 찾고 있는 혼원신검의 검집.
어쩌면 정말로 혼원신공의 구결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는 검집을 소유한 것은 이현성이었다.
기연이 그에게 닿을지, 아니면 혈천의 눈길을 끌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 * *
“이런, 이런… 내가 자네를 오해했군! 하하하!”
“제가 선배님을 잘 모시지 못했으니 오해하실 수도 있지요. 하하하.”
장강어옹 규염과 제갈세가의 장로 제갈인성은 언중경의 초대를 받았다.
언유광과 제갈현지의 혼사를 반대하는 입장이었기에 초대가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진주언가주인 언중경의 초대를 거절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개인의 입장이 아닌, 진주언가와 제갈세가라는 거대가문끼리의 관계 때문이다.
그런 처음과 달리 규염과 제갈인성은 기분 좋게 웃었다.
언중경의 과한 대접 덕분이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바로 술이었다.
주당(酒黨) 아니, 주귀(酒鬼)라고 불릴 정도로 술을 좋아한다.
“검남춘이나 서봉주도 좋지만 역시 분주만 한 술이 없지! 게다가 강서의 분주라니! 하하하!!”
“아니, 모태주를 두고 어찌 분주를 자랑하십니까! 숙부님!”
언중경은 정말 작정했는지 강서의 분주부터, 사천의 명주, 검남춘까지 별의 별 술을 다 내놓았다.
사천의 검남춘(劍南春), 귀주의 모태주(茅台酒), 섬서의 서봉주(西鳳酒) 등은 천하의 명주로 유명하니 말이 필요 없었다.
허나 비싸다고 좋은 술이고, 저렴하다고 나쁜 술은 결코 아니었다.
사실 화주(火酒)나 분주(汾酒), 죽엽청(竹葉靑) 등을 싸구려 술로 폄하하는 것은 진짜를 마셔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장인이 주조한 죽엽청과 분주는 고급 명주들과 비교해도 그 매력이 뒤처지지 않는다.
특히 산서의 죽엽청과 강서의 분주라면 장강어옹 규염을 정신차리지 못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하! 어찌 이 정도 술로 그리 흥분하십니까? 진짜는 아직 꺼내지도 않았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이보다 더 대단한 술이 있단 말인가?”
언중경의 말에 규염과 제갈인성은 눈만 끔뻑였다.
지금까지 내놓은 술만 해도 명주라는 이름이 부족하지 않은 대단한 술들이었다.
이보다 더 대단한 술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규염이 경악했다.
“서, 설마… ‘그걸’ 말하는 겐가?!”
“그게 뭡니까? 숙부님.”
규염과 달리 제갈인성은 아직까지 눈치채지 못했는지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런 두 사람의 앞으로 언중경이 술 단지 하나를 내놓았다.
“이, 이게…….”
“그렇습니다! 바로 30년 된 용화주입니다!”
“요, 용화주(龍華酒)라고요?!”
동충하초와 금전초 등 수백 가지 귀한 약초와 독초를 배합한 최고의 명주이자 약주였다.
반 잔만 마셔도 한겨울에 고뿔조차 걸리지 않고, 잠자리가 달라진다고 한다.
황제조차 쉽게 마실 수 없다고 하니 용화주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백 년 된 용화주라면 좋겠지만… 그건 돈이 있다고 구할 수 있는 술이 아니라서…….”
“그, 그야 그렇지만… 그래도 용화주라니…….”
규염과 제갈인성은 용화주의 술 단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평생 한 번 마셔볼 수 없는 귀한 술인 만큼 두 사람의 반응은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사실 이 용화주는 아버님께 드리기 위해 힘들게 구한 술인데…….”
“그런…….”
30년 묵은 용화주는 쉽게 구할 수도 없으며, 그 가격 또한 어마어마하였다.
하지만 권군 언규철을 위해 언중경이 구한 것이라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엄청 귀한 술이지만 진주언가에서 총력을 다했다면 아예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그로 인해 장부에 큰 구멍이 났을 테지만 그것은 두 사람과 무관했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이 술이 30년 묵은 용화주임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아버님께 드릴 수 없는 이 술을… 두 분과 함께 마시고 싶습니다.”
“우, 우리가 마셔도 되겠는가.”
“아무리 귀해도 결국 술입니다. 못 마실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받으십시오.”
술 단지 덮개를 뜯자 향긋한 주향이 그들의 입맛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술잔에 따라지는 영롱한 술의 색깔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하지만 황홀한 그 맛은 향기와 색깔조차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야! 이래서 용화주를 최고의 술이라 칭했구나!”
“저는 벌써부터 힘이 샘솟는 것 같습니다!”
“자자, 한잔 더 받으십시오.”
30년 묵은 용화주를 마신 두 사람은 황홀경에 빠졌다.
이내 언중경이 잔을 또 한 번 채워주었다.
환희에 찬 두 사람은 누가 빼앗아 먹을세라 재빨리 술을 털어 넣었다.
그리고 세 잔을 마시는 순간…….
“으음? 왜 이러지?”
“제, 제가… 좀 취, 취한…….”
명주라고 포장되었으나 그만큼 독한 술들이었다.
그런 술을 몇 병이나 마셨으니 쓰러지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쓰러진 두 사람을 내려다보는 언중경의 눈빛은 조금 전과 너무나도 달랐다.
“술 귀신 놈들… 천일취를 석 잔이나 마시다니.”
사실 두 사람이 마신 술은 용화주가 아니었다.
천일취라는 술이었다.
물론 천일취도 대단한 명주이며, 구하기 힘든 술이었다.
언중경이 천일취를 용화주라고 속인 이유는 천일취의 비밀 때문이다.
주정(酒精)으로 다시 주조한 신비한 명주 천일취(千日醉).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한 잔만 마셔도 천일을 취하게 만든다는 술이었다.
물론 실제로 천일이나 취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쉽게 깨어날 수 없는 무서운 술이었다.
한 잔만 마셔도 인사불성이 된다는 천일취를 석 잔이나 마셨으니, 저들이 기절하듯 쓰러지는 것도 당연했다.
물론 두 사람, 특히 규염은 초절정고수로서 내공이 심후했다.
그렇기에 그리 오랫동안 잠들어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며칠 안에 깨어날 일도 없었다.
그들이 깨어났을 때는 이미 거사가 끝나 있을 테니 문제될 것은 없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