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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64화 (64/314)

64화.

단순히 무위로만 보면 구룡은 이현성과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였다. 격이 다르니 당연했다.

허나 구룡은 단순히 실력만으로 선정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배경 역시 한몫한다.

그렇게 생각해도 이현성의 가치는 구룡 이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용(龍) 아니, 신검(神劍)을 손에 넣으려면 현지 정도밖에 없는데…….”

중년인은 이현성을 용조차 벨 수 있는 신검으로 비유했다.

최고의 찬사가 아닐 수 없었다.

대어를 낚기 위해서는 그만한 미끼가 필요하다.

신검으로 비유한 이현성이었다.

때문에 아무나 내세울 수는 없었다.

다행히 중년인에게는 신검조차 낚을 수 있는 미끼가 있었다.

지봉(智鳳) 제갈현지.

여류 후기지수 중 최고봉인 삼봉의 한 명이었다.

그렇다. 중년인은 제갈현지의 부친이자, 오대세가 중 하나인 제갈세가주 제갈인섭이었다.

무림 최고의 후기지수 아니, 구룡 위에 존재한 신검.

이현성의 별호는 제갈인섭의 입에서 처음으로 나왔다.

“고것이 나에게 이런 서신을 보낸 것을 보면 마음이 없진 않은 것 같은데… 허허… 언제 이렇게 다 컸을꼬.”

제갈인섭은 만약을 대비해서 무영대원 몇몇을 그녀에게 붙여주었다. 제갈현지는 그런 무영대원을 통해 하나의 서신을 전했다.

하북팽가에서 벌어진 사건의 간략한 설명과 이현성이 가문에 꼭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제갈현지 그녀 본인은 인지하지 못했지만 제갈인섭은 간파했다.

문장에 담긴 이현성에 대한 호감을 말이다.

“이건 나 혼자 판단해서 안 되겠지. 그리고 그전에 해결할 문제도 있고 말이지.”

혼례는 인륜지대사라고 했다.

하물며 제갈세가의 금지옥엽이라면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제갈인섭은 가문의 중진들과 이를 놓고 논의해야 한다.

하지만 그에 앞서 해결할 문제가 있었다.

바로 진주언가였다.

“현지 그 아이라면 알아서 잘 처신하겠지. 숙부님도 함께 계시고…….”

아무리 진주언가라도 제갈현지에게 막무가내로 혼례를 진행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게다가 무림 백대고수인 장강어옹 규염이 동행했다.

비록 신임 가주인 언중경이 초절정지경에 올랐다고 하지만 규염의 상대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제갈인섭은 안심할 수 있었다.

“부디 너희가 되지도 않는 욕심을 부리지 않길 바란다.”

* * *

“…그래서 네 말은 혼사를 없었던 일로 하자는 말이더냐?”

진주언가는 제갈현지를 포함한 제갈세가의 무리를 환대했다. 그런 그들의 환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에 제갈세가의 무리는 불편하기만 했다.

허나 만나자마자 거절의 뜻을 밝힐 수 없기에 하루를 기다렸다.

그리고 다음 날, 제갈현지는 진주언가주인 언중경에게 독대를 신청했다.

기다렸던 일이기에 언중경은 독대를 수락했다.

“…죄송합니다. 가주님.”

“제갈세가가 본가를 너무 가볍게 보는구나.”

제갈현지의 부정적인 답변에 언중경은 불편한 심사를 숨기지 않았다.

아들 언유광과 제갈현지의 혼사는 진주언가가 오대세가의 테두리에 들어갈 수 있는 좋은 반석이 되어줄 것이다. 그렇기에 진주언가로서는 이 혼사를 무산시킬 수 없었다.

언중경은 억지로라도 둘을 맺어주기 위해 그녀를 압박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 흔들린다면 지봉이 아니었다.

“그런 것은 아니오니 그만 노(怒)를 거두시지요.”

“그것이 아니라면 어찌 본가와의 약속을 이렇게 가볍게 여긴단 말이더냐?”

언성을 높이지 않았을 뿐, 언중경은 불쾌함을 숨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제갈현지는 여전히 평정심을 유지했다.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 여지를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약속이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제 와서 발뺌하겠단 말이더냐!”

결국 노를 거두지 못한 채 언중경은 언성을 높였다.

그런 그의 반응을 이미 예상했는지 제갈현지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해둔 말을 나직하게 풀어놓았다.

“제가 듣기론 권군, 전대 가주님께서 저희 백부님께 미흡한 저와 대공자님의 혼례를 제안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러셨지.”

“그리고 저희 백부님께선 혼자 결정할 수 없으셔서, 그분의 뜻을 본가에 전하겠다고 하셨다 들었습니다.”

그렇다. 양가의 혼사는 확정지었던 것은 아니었다.

언중경 역시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언중경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허나 천지신검(天地神劍) 제갈 대협께선 선친의 선물을 받지 않았더냐?”

“말 그대로 전대 가주님께서 저희 백부님께 주신 선물이지, 혼사에 대한 예물은 아니지요.”

제갈세가는 물론 제갈현지 역시 언규철 전대 가주가 제갈인겸에게 보검을 전한 것이 선물을 가장한 뇌물임을 알고 있었다.

허나 설사 그렇다고 해도 최소한 겉으로는 선물이었다.

그렇기에 뻔뻔하긴 하지만 뇌물이 아닌 선물임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최소한 예물까지 받은 상황은 아니었으니까.

언중경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렇게 된 것 그 역시 그것을 물고 늘어졌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혼사를 거절한다면 가져갔던 보검을 되돌려주는 것이 예(禮)가 아닌가.”

“…보검은 악적에게 빼앗기셨다 들었습니다.”

제갈현지의 대답에 언중경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 부친에게 받은 보검을 제갈인겸은 잃어버리고 말았다.

언중경도 그 점을 알고 있었다.

잃어버린 보검을 되찾지 못하면 그리고 되돌려주지 못한다면 이 혼사를 거절하기가 어렵다.

이 점은 제갈현지 역시 예상하고 있었는지 막힘없이 말을 이었다.

“허나 백부님께선 전대 가주님의 고희연… 즉, 귀가 내에서 습격당하셨고, 결국 선물받은 검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백부님의 잘못도 분명 있으나 그분의 잘못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언중경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

비록 제갈인겸이 검을 잃어버렸다고 해도 진주언가의 본가 안에서, 그것도 습격당해서 잃어버린 것이라면 그만의 잘못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결국 경비를 제대로 못 한 진주언가의 잘못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제갈현지는 이 흐름이 끊기기 전에 말을 이었다.

“허나 백부님의 잘못도 있기에 본가에서 다른 보검을 준비…….”

“…되었다.”

움찔.

언중경의 얼굴이 차갑게 변했다.

지금까지 평정심을 유지하던 제갈현지도 움찔했다.

단순히 화가 난 느낌이 아니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우선 돌아가거라. 나중에…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꾸나.”

“…예. 알겠습니다. 가주님.”

언중경의 축객령에 제갈현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래라면 지금 혼사에 대한 일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하지만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에 당장 마무리 지을 수 없었다.

그렇게 제갈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언중경의 눈에 광기가 번들거렸다.

“건방진 년… 감히 누굴 이기려고 들어? 네년이 아무리 똑똑해도 결국 계집일 뿐이다.”

그는 이 혼사를 무산시킬 생각이 전혀 없었다. 설사 무산된다고 해도 그냥 넘어갈 생각 또한 결코 없었다.

그렇기에 강제로라도 뜻을 관철 시킬 생각이었다.

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패륜까지 저지른 그에게 못 할 짓은 없었다.

“문제는 그 늙은이인데…….”

이 혼사를 관철 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로 인한 후폭풍 역시 가볍지 않겠지만 무엇보다 현재 그녀의 곁에는 장강어옹 규염이 붙어 있었다.

늙은 생각이 맵다고, 선친과 동시대를 살아온 규염은 무위는 물론 경험 역시 많아서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어설프게 손을 썼다가는 일을 망칠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

순간 언중경의 눈에 살광(殺光)이 번쩍였다.

“내 일을 방해하려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할 거야… 늙은이…….”

* * *

“그놈이 뭐라더냐?”

“할아버지도 참! 가주님께 그놈이 뭐예요.”

장강어옹 규염은 그답지 않게 안절부절못했다.

아침 일찍부터 언중경과 독대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제갈현지 때문이다.

그 역시 상황을 대충 알기에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고놈의 죽은 아비도 나보다 어린데 뭐가 어떠냐. 그보다, 일은 잘 해결했느냐?”

“그게…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시네요.”

“끄응. 고놈,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생떼를 쓰는구나.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이더냐. 제 아들놈을 어떻게 너와… 에잉!”

규염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오래전부터 진주언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협을 아는 만큼 정파의 기인들과 친하다고 하지만 모든 정파고수들과 친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명가라고 으스대는 자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제갈세가, 특히 태상가주인 신산 제갈윤호는 명가 출신임에도 겸손했기에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허나 진주언가는 반대였다.

십대세가의 말석에 있는 그들은 오대세가에 들기 위해서 발버둥질하며 힘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했다.

따라서 정사지간 출신인 규염이 좋아할 수 없었다.

‘그러게요. 그런데 이 기분은 뭐지…….’

분명 논리로 언중경의 지적을 모두 해소했다.

하지만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명문인 진주언가가 더 이상 억지를 부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의 체면도 있고, 이쪽은 오대세가인 제갈세가였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께름칙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내 듣기로 그 녀석은 제 아비보다 더 능구렁이라고 하더구나. 부디 조심하거라.”

“예. 할아버지.”

규염의 말이 아니라고 해도 그녀 역시 그렇게 느꼈다.

방심하다가는 곤란해질 수 있는 상대라는 것을 인지했다.

하지만 그녀는 몰랐다.

언중경은 그녀가 느끼는 것 이상으로 무서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제갈현지가 생각지도 못한 무서운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빨리 마무리 짓고, 돌아가자.’

* * *

“이젠 관계를 끊을 것같이 굴더니, 결국 네놈도 별수 없겠지. 언중경.”

천하의 진주언가주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자가 있었다.

석대환.

석가장주이자 혈천의 흡정혈왕(吸精血王)인 그였다.

그에게 언중경은 혈천에서 부여받은 임무인 하북성 장악에 꼭 필요한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그에게 도움을 주는 한편으로 원하는 것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언중경이 패륜을 통해 권력을 잡은 뒤 석대환과의 관계를 끊었다.

더 이상 석대환의 힘이 필요 없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보다 쉽게 힘을 얻은 자는 쉽고 편한 길에 대한 유혹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부장에게 전해. 그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라고.”

“존명.”

석대환은 자신의 그림자를 통해 지시를 전달했다.

그의 지시는 중원상단 안평지부장에게 전달될 것이다.

안평현에는 진주언가가 운영하는 안평상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원상단의 지부가 존재했다.

안평상단은 거대상단이 아닌 만큼 다루지 못한 물건도 많았다. 무엇보다 안평지부는 석가장과 진주언가, 정확히는 언중경과의 창구였기 때문이다.

안평지부장은 석대환의 대리자로서 언중경과 거래를 주관했다.

그간 소원했던 언중경이 다시 중원상단 안평지부장을 만났다. 그리고 한 가지를 은밀하게 요구했다.

“크크. 그놈도 급하긴 급했군. 열락음양고(悅樂陰陽蠱)를 원하다니… 기가 막히는군.”

음양고는 음고(陰蠱)와 양고(陽蠱)로 구성된 고독(蠱毒)의 일종이었다.

원래 고독은 남만의 전사들이 전쟁에 나가기 전, 자신의 생사를 부인에게 알려주기 위해 만들어진 수단이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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