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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63화 (63/314)

63화.

그러자 검신(劍身)에서 빛을 밝혔다.

허나 검기(劍氣)로 그치지 않고 유형화되었다.

놀랍게도 검기성강(劍氣成罡)의 경지에 올랐다.

강기였다.

그렇다. 이현성, 그는 진정한 초절정고수가 되었다.

한발 걸친 경지가 아닌 이제 완벽하게 초절정고수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검강을 두른 암천이 허공을 갈랐다.

툭.

문 밖 3장(三丈 : 10m) 거리에 있는 나뭇가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현성의 검강이 3장 거리에 있는 나뭇가지를 베었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복잡하게 얽힌 나뭇가지 중 하나만 벴다는 것은 그만큼 검강을 완벽하게 제어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여전히 빠르구나.”

“예. 제 시작이자 끝이니까요. 허나 이제는 빠르기만 하지는 않을 겁니다.”

“허허. 좋구나. 좋아.”

이현성은 인정하고 있었다.

자신이 쾌검에 연연한다는 사실을.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다르다.

인지하지 못하는 것과 인정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이현성은 빠름에 다른 것 역시 담으려고 한다.

빠름의 한계를 벗어나겠다는 그의 의지였다.

아직 강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아니, 그조차 감당하지 못한 제 손자들과 너무도 차이가 컸다.

“그보다 내 손자들에게 가르침을 줬다고?”

“가르침까진 아니고… 어울렸을 뿐입니다. 어르신.”

“허허허… 고얀 놈. 아직도 어르신이더냐.”

“…….”

눈치가 보통이 아닌 이현성이 팽진천의 의도를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섣부른 판단은 언제나 문제가 된다.

그렇기에 입을 다물었다.

그런 그를 보며 팽진천이 미소 지었다.

“할아버지라고 부르거라. 아이들을 잘 부탁한다.”

“…!! 예. 할아버님.”

예상하고 있었음에도 이현성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무림의 절대자 중 한 명인 도왕 팽진천을 할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내각대학사의 귀빈이라는 위치도 가볍지 않으나, 도왕의 의손(義孫)은 최소한 무림에선 그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진다.

당당하게 대답하는 이현성을 보며, 팽진천은 자신의 선택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흐뭇하게 웃던 팽진천이 말했다.

“그리고 교교란 아이에게 가보거라. 걱정을 많이 한 것 같더구나.”

“아… 예. 할아버님.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거라.”

이현성은 팽진천에게 정중히 인사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돌아간 뒤 팽진천이 손을 뻗자 열린 문을 통해 무언가가 빨려 들어왔다.

3장 밖에 떨어진 나뭇가지였다.

과연 화경의 고수다웠다.

허공섭물(虛空攝物).

그것도 3장 거리에서 이리도 자연스럽게 시전하다니, 대단하다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했다.

팽진천은 이현성이 벤 나뭇가지를 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대단하군. 벌써 활검(活劍)을 제법 흉내 내다니.”

무림에서 검(劍)을 만병지왕이니, 신체의 일부라는 등으로 표현하지만 결국 사람을 죽이는 흉기다.

아무리 미사어구를 넣고 꾸민다고 해도 결코 바뀌지 않는 진실이었다.

그렇기에 무림인들은 대부분 생명을 해치는 살검(殺劍)의 경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지름길이 있는데 굳이 돌아가려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저 득도한 불문의 고승이나 도문의 진인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 활검에 이른다.

그만큼 어려운 경지가 바로 활검이었다.

빛과 그림자는 정반대의 개념이지만 동시에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도 하였다.

수많은 피를 묻힌 살수였기에 반대로 생명을 살리는 활검의 경지를 이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허나 아직은 어설퍼.”

진정한 활검의 경지와 비교할 수는 없었다.

진정한 활검지도(活劍之道)는 심검지도(心劍之道)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화경에 오른 도왕조차 깨닫지 못한, 그런 궁극에 한발 다가간 경지였다.

그러니 어찌 이현성이 벌써 닿을 수 있겠는가.

허나 ‘아직’일 뿐이었다.

팽진천은 생각했다.

‘저 아이라면… 어쩌면…….’

* * *

“문 소저. 너무 걱정 마세요. 이 대협께선 큰 어르신을 만나 뵈러갔다고 하잖아요. 곧 오실 테니 진정하세요.”

가뜩이나 외지에 있어 외로움을 느끼던 문교교였다.

비록 북궁연과 팽유화가 신경 써주고 있으나 불안감을 해소할 수 없었다.

그녀가 정신적으로 의지하는 존재는 오직 이현성뿐이기 때문이다.

허나 이틀 전, 이현성이 잠시 자리를 비운 후 돌아오지 않았다.

물론 상황은 전해받았다.

그가 깨달음을 얻어서, 무인으로서 무척 중요한 시기였기에 팽가에서 보호 중이라 전해들었다.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심장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불안한 것이다.

“고, 곧 오시겠죠?”

가족도 아니고, 연인도 아니었다.

결국 그녀와 이현성은 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으로 의지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이상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되었다.

천하의 사천당가를 상대로 호통치고, 경고하던 사내였으니 당연했다.

‘내가 그런 상황이었다면 가가도 그와 같이 행동했을까?’

북궁무한을 떠올린 팽유화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그라면 이현성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남자라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 반해 북궁연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후우… 나도 그런 사내를 만날 수 있을까?’

구문제독의 손녀이자 빼어난 미색을 가진 북궁연은 권문세가의 자제들과 젊은 관리들이 호감을 가지고 있는 여인이었다.

자신에게 호감을 드러낸 자들은 하나같이 가진 것도 많고, 능력도 출중했다.

허나 이현성과 같은 당당함을 가진 사내는 없었다.

자신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대라면 꼬리를 내릴 자들이었다.

그것을 비겁하다고 손가락질할 수는 없었다. 그것이 세상이고, 약육강식의 법칙이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싸우고, 서로를 물어뜯는 것이다.

그런 사내들만 보다 보니 자꾸만 이현성에게 눈길이 갔다.

그때였다.

“교교야. 나다. 현성 오라비다. 들어가도 되겠느냐.”

“오, 오라버니! 드, 들어오세요!”

문밖에서 들리는 이현성의 목소리만으로도 문교교는 심신이 안정되었다.

문이 열리자 멀쩡한 이현성이 안으로 들어왔다.

이현성 역시 그녀가 혼자 있지는 않을 것임을 예상했는지, 그녀들을 보고도 당황하지 않았다.

“두 분께서 함께 계셔주셨군요.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이 대협. 당연한 일인 걸요.”

그녀들은 아니라고 했으나 이현성은 그녀들에게 마음의 빚을 졌다.

어쨌든 문교교의 안위를 책임지는 것은 자신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현성이 문교교에게 시선을 옮겼다.

“내가 갑자기 자리를 비워서 걱정이 많았나 보구나. 미안하다.”

“아, 아니에요… 오라버니…….”

그녀가 수줍어하며 머리를 숙이자 이현성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막혔던 벽을 깨부쉈기 때문인지 예전과 보이는 것이 달랐다.

특히 마음의 여유로움을 가질 수 있었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혈영살객 시절에도 분명 초절정지경에 올랐으나 지금 같지는 않았다.

강제로 경지를 끌어올린 것과 깨달음을 통해 경지에 오른 것은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릇 역시 커졌다.

‘후우… 하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지.’

초절정고수가 되었다고 해도 만족하고,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

무림 백대고수는 물론 혈천십삼세의 주인들 그리고 무림의 절대자들.

그들에 비하면 자신은 아직 멀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며칠 전 보았던 도왕의 일도(一刀).

일도(一刀)에 담긴 무게는 초절정고수가 된 지금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니, 감당할 수 없었다.

그만큼 화경고수는 상식으로 판단할 수 없는 초인이기 때문이다.

“돌아가자꾸나. 이제 집으로…….”

* * *

“헉… 허헉… 헉…….”

사내들은 눈이 뒤집어진 채 달리고 있었다.

한두 명도 아닌 수십여 명이나 되니, 그 모습이 괴이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헉… 제, 젠장! 허헉… 난 헉… 그만두겠어!”

“제엔장! 헉… 나도!!”

결국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는 자가 한두 명씩 나왔다.

결국 백여 명이나 되었던 인원이 수십 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런 그들을 어두운 얼굴로 지쳐보는 자가 있었다.

“빌어먹을…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거야!”

얼굴이 일그러진 자는 바로 적룡당주인 단벽호였다.

그는 이현성에게 흑룡당처럼 가르침을 받을 기회를 청했다. 이에 이현성은 조건을 달았다.

기초훈련을 세 시진씩, 매일 하라는 것이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기초훈련을 시작한 지가 한 달도 되지 않았다.

이제 남은 인원이 팔십여 명 아니, 그보다 적었다.

백이십여 명 중 3할 이상이 포기한 셈이었다.

물론 금룡당은 4할 이상, 청룡당은 5할 이상 포기했다.

백룡당은 애초에 얼마 동참하지도 않았다.

상대적으로 적룡당의 상황은 좋은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벽호는 분통이 터졌다.

흑룡당이 그 이유였다.

“흑룡당과 본당 녀석들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흑룡당원 중 매일매일 기초훈련을 세 시진씩 해내는 인원은 고작 33명이었다.

타당으로 이동하거나 아예 흑룡방에서 탈퇴한 인원을 제외하면 흑룡당에 남은 인원이 38명이었다.

그중 구웅방과의 전쟁에서 3명이 죽고, 2명이 극심한 중상을 입었다.

즉,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인원 전원이 포기 없이 기초훈련을 해내고 있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기초훈련이 끝나면 개인훈련까지 자발적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니 다른 당주들이 흑룡당주를 부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오대당 중 유일하게 구웅방의 공격을 격파한 게 그들 흑룡당이었다.

훈련을 수행하는 마음가짐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젠장… 방주님의 명령만 없었어도 새끼들 다 뒤집어버릴 텐데…….”

우드득.

훈련을 포기하는 자에게 훈련을 강요하지 말라는 명령이 있었다.

스스로 버티는 자에게만 기회를 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흑룡당과 비교되니, 단벽호는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방주님께서 허락하실 때까지 얼마나 남으려나…….”

지금 남은 이들은 최종이 아니었다.

분명 시간이 흐를수록 포기하는 자는 늘어날 수 있었다. 아니, 늘어날 것이다.

“방주님의 명령이 있었으니 지금은 봐주지만… 나중에 두고 봐라. 이 자식들아.”

환락음양고

“신성(新星)의 등장이라…….”

봉황지회에 참석한 여인들의 가문은 사천당가의 일, 정확히는 이현성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물론 그가 최연소 초절정고수가 되었단 사실까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 사실은 하북팽가에서도 극소수만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다른 가문 혹은 문파들은 이현성의 진정한 무위를 잘 모른다.

허나 명숙들과 비교될 정도로 강하다는 것은 알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랍다.

약관도 채 되지 않은 나이에 명숙급의 무위라면 상당히 대단했다.

“본가로 끌어들일 방법이 없을까?”

각 가문은 이현성을 탐내고 있었다. 내각대학사의 귀빈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이렇다고 할 배경이 없었다.

즉, 가문에 끌어들일 기회가 있단 뜻이었다.

그리고 가문에 발을 묶는 것에 혼사만 한 것이 없었다.

그렇기에 많은 가문에서 그에게 매파를 보낼 것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구룡과 비교해도 그 가치가 결코 떨어지지 않아.”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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