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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62화 (62/314)

62화.

‘반드시 초절정으로 가는 단서를 잡아야 해.’

회귀 전, 혈영살객이라 불리던 시절 이미 초절정지경에 올랐던 그였다.

그 당시의 기억(깨달음) 덕분에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허나 이제는 다르다.

이미 당시의 그와 지금의 자신은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 이상 당시의 깨달음에만 의지해서는 초절정지경에 오를 수 없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초절정고수가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러한 사실을 절실하게 깨달아갔다.

‘제법 빠른 검을 사용하는 아이군. 후기지수가 아닌 명숙들 중에도 흔치 않은 수준이야. 그런데…….’

팽진천은 이현성의 검을 받아내면서 내심 감탄했다.

요즘 아이답지 않은 상당한 수준의 쾌검이었다.

하지만 그냥 쾌검이 아님도 느낄 수 있었다.

‘정파의 검이 아니야. 사파나 마도의 냄새는 나지만 그들과는 조금 다르고… 그렇구나. 살수의 검이구나.’

아무리 검에서 혈향을 지웠으나 근본을 바꾸는 것은 어려웠는지, 화경고수의 안목을 속일 수 없었는지 팽진천은 이현성의 근원을 알아차렸다.

그 순간 팽진천의 눈이 가늘어졌다.

‘허나 평범한 살수지검이 아니야.’

순간적으로 팽진천은 갈등에 빠졌다.

정말 그가 살수라면 가문과 정파무림을 위해 베는 것이 낫다. 이 나이에 이런 검을 사용할 줄 아는 살수라면 수십 년 후 아니, 십 년 후면 정말 무서워질 것이다.

허나 팽진천은 도왕이자 거대세가의 태상가주였다.

평범한 사람과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봤다.

‘이 아이의 검이 사마(邪魔)가 아닌 정(正)으로 향한다면… 그럴 수 있다면 그야말로 무림의 흥복이지.’

이현성은 몰랐다.

자신도 모르게 삼도천의 입구까지 갔다 왔다는 사실을.

마음이 굳혀진 팽진천의 눈빛이 변했다. 그리고 기세 역시 바뀌었다.

이현성의 일점혈조차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막아낸 팽진천. 그의 움직임이 바뀌었다.

“으윽!!”

단순하지만 결코 피할 수 없는 팽진천의 도격.

결국 이현성은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그런 그의 귀에 팽진천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빠름이 능사는 아닐세. 그리고 빠름이라는 틀에 스스로를 가두지 말게.”

‘내가 빠름에 얽매여 있었단 말인가…….’

콰콰쾅!!

그 순간 이현성은 머릿속에서 번개가 치는 것 같았다.

자신도 모르게 쾌(快)에 얽매였다는 것이 그만큼 충격이었다.

다른 혈살오객과 달리 신공절학을 익힐 수 없었다.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 은신술에 더욱 집착했다.

은신술로 기척을 죽이고, 단숨에 적의 목숨을 끊는 쾌검을 익히는 것은 필연이었다.

그러다 보니 언제부터인지 쾌검을 익히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다.

그런 생각이 자신을 옭매고 있었다는 것을 팽진천을 통해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빠직. 빠지직.

깨달음의 벽에 금이 갔다.

초절정지경에 오르는 마지막 벽에.

그 순간 이현성의 기세가 변했다.

그런 범상치 않은 변화를 팽진천이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도대체 얼마나 괴물이야? 정말 괜찮을까?’

지금도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무위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조차 넘어서려 하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보며 팽진천은 다시 한번 갈등이 되었다.

정말 그에게 기대해도 될지, 지금 자신의 결정이 천추의 한이 되지는 않을지.

그 순간 팽진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까마득한 후배의 재능에 질투하다니… 나도 늙었군, 늙었어. 허나 내 실력도 아직은 쓸 만해.’

팽진천은 생각을 바꾸었다.

설사 눈앞의 청년, 이현성이 괴물이더라도 자신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나의 가능성 때문에 어린 후배를 짓밟는 것은 하북팽가의 후예가 할 짓이 아니었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면 하북팽가도 그 명운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냐.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마. 이곳까지 올 수 있으면 와보거라.’

그 순간부터 마냥 어린 청년이 아닌, 언젠가 자신과 같은 곳을 바라볼 후배로 보였다.

그는 몰랐다.

그 시기가 먼 훗날이 아니라 그리 멀지 않은 미래라는 것을…….

* * *

“하하. 그놈 표정 보셨습니까? 제갈 소저.”

문교교와 당령 아니, 이현성과 사천당가의 사건으로 인해 봉황지회는 원래 일정을 채우지 못하고 흐지부지하게 마무리되었다.

허나 누구도 불만을 갖지 않았다.

오히려 괜한 불똥이 튈까 우려하여 돌아가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오히려 이 상황을 즐거워하는 자가 있었다.

언유광.

진주언가의 대공자로, 소가주로 가장 유력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구룡(九龍).

특히 독룡 당천수와 창룡 양위성에게 적의와 자격지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사천당가는 물론, 당천수까지 망신당했으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당황해서 보지 못했네요. 죄송하지만 식사를 다하셨으면 저는 이만 돌아가봐도 될까요? 조금 피곤해서요.”

“아, 그럼 쉬십시오.”

진주언가의 무리에 제갈현지를 포함한 제갈세의 무리가 동행했다.

봉황지회 이후 본가로 돌아오기 전, 진주언가에 들리라는 부친이자 가주인 제갈인섭의 지시 때문이다.

언유광은 시도 때도 없이 말을 걸어왔다.

제갈현지는 진주언가의 체면을 봐서 대놓고 거절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마지못해 몇 번 상대해주었다.

특히 지금처럼 식사하는 동안은 더욱 그러했다.

물론 상대해줬다고 해도 언유광 혼자 떠들고, 제갈현지는 적당히 들어주다가 지금처럼 빠져나왔다.

‘하아… 예상보다 더 하네.’

명문세가인 진주언가라는 배경과 구룡만은 못 해도 나름 실력 있는 후기지수였다.

그 외에도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리 나쁜 상대는 아니었다.

일반적으로는 그랬다.

허나 그 정도로는 자신의 지아비로 부족하였다.

게다가 지난 며칠간 겪어본 그는 그릇이 너무 작았다.

자신을 담아내기에는.

‘그와 너무 차이나네.’

며칠 전 우연히 알게 된 사내.

내각대학사의 귀빈이긴 하지만 그 외에 내놓을 배경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는 사내였다.

뛰어난 무위도 대단했지만, 눈빛은 정말 대단했다.

그토록 지독하다는 사천당가를 눈앞에 두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런 그를 봤기 때문인지, 언유광의 그릇이 더욱 작아보였다.

‘그런 사내라면… 아,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천하의 지봉답지 않게 얼굴을 붉혔다.

정말 그녀답지 않았다.

이성적이고, 냉철한 평소의 그녀라면 언유광의 변화를 깨닫지 못할 리가 없었을 것이다.

애증(愛憎)은 한끝 차이였다.

우드득.

‘건방진 년… 네년도 그 새끼들과 다르지 않구나. 크크. 좋아. 잘난 네년을 내 가랑이 밑에서 애원하게 만들어주마.’

언유광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녀는 물론 제갈세가의 태도를 보고 어찌 모를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이 자신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을.

‘그리고 곧 죽을 늙은이가 감히 날 그 따위로 쳐다봐?’

제갈세가의 무리는 최소한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단 한 명.

대놓고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자가 있었다.

장강어옹(長江漁翁) 규염.

정파무림의 원로도 아니고 정사지간의 고수였다.

그렇기에 언유광의 눈에는 그저 출신도 불분명한 늙은이로 보였다.

비뚤어진 마음이 마음의 골을 더욱 깊어지게 만들어버렸다.

‘나 언유광이… 진주언가가 어떤 곳인지 확실하게 알려주마!’

* * *

“흡흡… 하… 하…….”

가부좌를 튼 이현성의 감겨진 눈은 떠질 줄을 몰랐다.

그가 이런 상태로 있던 것도 벌써 이틀이나 지났다.

그때였다.

이현성의 몸이 부웅 허공에 떴다.

부공삼매(浮空三昧).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머리 위에 꽃이 피었다.

그것도 두 송이나 피었다.

두 송이 중 한송이만 활짝 개화했고, 나머지 한송이는 개화하다가 멈추었다.

부공삼매에 이어서 삼화취정의 경지라니!

비록 온전하지 않은 삼화취정(三花聚頂) 아니, 이화취정(二花聚頂)의 경지였지만 이조차도 대단했다.

삼화취정은 오기조원(五气朝元)와 함께 내공과 깨달음의 심후함을 알려주는 상징과 같기 때문이다.

무림 백대고수들 중에서도 삼화취정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 자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약관을 바라보고 있는 어린 청년이 이런 경지에 올랐으니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완전한 삼화취정의 경지가 아닐지라도 대단했다.

무아지경에 빠져 있던 청년은 모르지만, 그의 호법을 서고 있는 중년 사내들은 경악하고 있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나 역시 직접 보지 못했다면 믿지 못했을 것이네.’

‘우린 어쩌면 무림의 전설이 탄생하는 것을 목도하는 것일지도 모르네.’

‘허허… 영광이군.’

그들은 벽력십팔도(霹靂十八刀).

구성원 전원이 절정지경에 오른 하북팽가의 호법대.

가문의 장로라도 함부로 지시를 내릴 수 없고, 오직 가주만 움직일 수 있는 하북팽가 제일의 무력대였다.

그런 그들이 가주의 명에 따라서 한 청년의 운공을 호위하고 있었다.

천하의 벽력십팔도가 직계혈족도 아닌 외부인, 그것도 웬 청년의 호법을 서라는 지시를 받았다.

가주의 명이었지만, 존경하는 태상가주의 지시가 있었다는 것을 알기에 불만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금세 바뀌었다.

청년이 부공삼매에 이화취정의 경지에 오른 것을 지켜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머리 위에 피었던 꽃의 환영이 이현성의 콧속으로 흡입되었다.

순간 이현성이 안광을 번쩍이며 눈을 떴다.

단전 아니, 몸 전체에 충만한 기운을 느낀 이현성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 감사합니다. 선배님들.”

“아니오. 이 대협. 영광이었소.”

이현성은 그들이 누구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완전히 기억나지 않았으나 도왕 팽진천의 가르침을 받고, 깨달음을 얻었다.

깨어난 지금, 중년 도객들이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자신에겐 호의를 가진 채.

깨달음을 수습하는 이틀 동안 호법을 서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어찌 모르겠는가.

그들을 대표로 벽력십팔도주가 나직하게 말했다.

“이 대협께서 깨어나시면 찾아오라는 태상가주님의 분부가 있으셨소. 안내하겠소.”

“예. 알겠습니다.”

이현성은 무아지경에 빠졌을 때조차 손에서 놓지 않았던 검, 암천만 쥔 채 벽력십팔도를 따라 어딘가로 향했다.

하북팽가의 중지(重地) 중 중지인 태상가주전으로 향했다.

“허허. 왔는가.”

웬만한 장정보다 건장한 노인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환대해주었다.

노인은 바로 도왕 팽진천이었다.

이현성은 고개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어르신의 가르침 덕분에 그간 깨닫지 못한 제 문제를 알 수 있었습니다.”

“허허. 아닐세. 내가 한 것은 고작 하나의 거듦뿐이었네. 벽을 깬 것은 노부의 가르침이 아닌, 자네가 그만큼 준비되었기 때문일세.”

회귀 전에도 초절정지경에 올랐다.

허나 당시에는 혈살육관의 혹독한 환경에 의해 강제로 올랐던 것이다.

부족한 부분은 살기 위한 집념, 죽지 않기 위한 발악을 통해 채웠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르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깨닫고, 인정하면서 막고 있던 단단한 벽을 부술 수 있었다.

지금의 자신은 회귀 전 혈영살객보다 강했다.

최소한 이현성 본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결실을 보고 싶구나.”

“예…….”

두 말은 필요 없었다.

이현성은 암천을 쥐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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