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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51화 (51/314)

51화.

저들은 각오한 듯싶었다.

“좋다. 팔을 하나씩 놔두고 가라… 라고 말하고 싶으나 주군께는 내가 말씀드리지. 떠나라. 그리고 앞으로 눈에 띄지 마라. 그간 너희를 이끌었던 내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자비다.”

“가, 감사합니다! 당주님!!”

그들 역시 팔 하나를 각오하고 왔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그냥 떠나라는 묵장진의 말에 당황스러움과 동시에 기뻤다.

몸뚱이만 건재하다면 얼마든지 재기할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북경 흑도를 평정한 흑룡방의 유일한 무력대가 바로 흑룡당이었다.

한 조장은 물론 그 조원들 역시 나름 이류무인들이었다.

다른 흑도방파의 문을 두드리면 분명 받아줄 것이다.

‘이딴 곳에서 더 이상 썩을 순 없이!’

북경 흑도를 평정한 흑룡방의 일원이 되었을 때, 원대한 꿈을 꾸었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너무나도 달랐다.

거칠 것 없이 살아왔던 예전과 달리, 억압된 생활이 질리기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항할 수 없었다.

흑룡당주가 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홀로 북경 흑도를 평정한 괴물, 흑룡방주가 두렵기 때문이다.

대가를 치르더라도 벗어날 생각이었는데, 몸 성하게 놔준다고 하니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그들이 시작으로, 수십 명이 탈퇴하거나 다른 당으로 보직이동했다.

덕분에 흑룡당은 마흔도 채 남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흑룡당 아니, 흑룡방의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을 때 사건이 터졌다.

* * *

“형님. 돈도 안 되는 이런 걸 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새끼가? 조장님 그리고 위에서 까라면 까는 거지! 뭔 말이 그렇게 많아?”

흑룡방, 특히 청룡당원들은 불만이 많았다.

예전에는 가만히 있어도 보호비 명목으로 돈을 갈취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보호비를 최소한으로 제한했기에 돈이 되지 않았다.

그것으로 부족해 순찰까지 해야 하니 어이가 없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불만을 드러낼 수도 없었다. 투덜거리던 다른 조가 죽도록 얻어터졌기 때문이다.

소문에 의하면 청룡당주 역시 흑룡방주에게 이 점을 이야기했다가 죽을 뻔했다고 한다.

그러니 제일 밑바닥에 있는 자신들이 입을 잘못 놀리면 얻어터지는 것으로 그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형님 아니, 조장님은 이 상황이 만족스럽습니까?”

“만족스럽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예전과 달리 녹봉도 받고 있잖아.”

“그야 뭐…….”

조장의 말에 사내가 머리를 긁적였다.

백룡당주의 골치를 썩게 만든 재정문제의 원인 중 하나는 바로 녹봉이었다.

사실 흑도방파에서 녹봉이라는 것은 따로 없었다.

고혈을 쥐어짜서 얻은 돈의 대부분은 윗대가리의 주머니에 들어간다. 그저 콩고물만 조금 떨어질 뿐이었다.

그렇다면 생활은 어떻게 하는 걸까?

애초에 그들은 돈을 내고 밥을 먹고,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리고 중간에서 적당히 챙기며 생활한다.

대신 흑도 바닥에서 살아남아 위로 올라가면 제법 힘을 가질 수 있었다.

흑도를 쓰레기로 만든 병폐 중 하나였다.

이현성은 이런 병폐를 없애고자 적지만 흑룡방도 전원에게 녹봉을 주었다.

반면 그런 이유로 당주나 대주급은 예전만큼 부를 축적하지는 못했다.

“예전 조장 새끼는 지가 처먹는 것만 알지, 우리를 챙겨나 줬냐? 방주님 아니면 어림도 없지. 너 그렇게 불만이면 나가.”

“에이. 형님. 아니, 조장님도… 말이 그렇다는 거죠.”

사실 몸은 좀 고되고, 불만스럽지만 지금의 생활이 꼭 싫은 것만은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사람들의 시선이 바뀐 것은 나름 만족스러웠다.

예전처럼 벌레 보는 듯한 경멸의 시선은 많이 사라졌다.

“어? 저 새끼들 뭐야!”

그때 청룡당원들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웬 장한들이 시전에서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

“미친X! 돈을 내라고? 죽고 싶어?!”

“흐, 흑룡방 분들이 가만히 있지… 흐흑!”

간이식당에서 국수를 파는 중년 여인이 무전취식하려는 왈패들에게 돈을 요구했다.

예전에는 무전취식을 당연하게 여겼을지도 모르지만 흑룡방이 시전을 관할하면서 많이 달라졌다.

덕분에 중년 여인은 용기를 내서 돈을 요구했지만, 상대가 좋지 못했다.

왈패들은 어이가 없었다. 자신들이 언제부터 돈을 내고 먹었다고 갑자기 돈을 내라는 것인가.

설상가상으로 흑룡방까지 언급하자 짜증이 났는지 중년 여인을 발로 찼다.

“흑룡방? 미친! 어디서 같잖은 것들의 이름을 들먹여!”

“조장님. 북경 물이 많이 흐려졌다더니 정말인가 봅니다.”

그들은 북경출신들이 아닌지 낄낄거리며 흑룡방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런 그들을 보며 중년 여인과 다른 시전상인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최근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서 살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세상은 변하지 않는 듯싶었다.

그때 이를 지켜본 청룡당의 조원들이 달려왔다.

“건방진 놈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행패야!”

“음? 저 새끼들은 뭐야?”

순찰 중인 청룡당원들의 호통에 왈패들은 두려워하기는커녕 조소를 지었다.

“아하. 흑룡방인가, 토룡방인가 하는 놈들이구나.”

“건방진……!!”

청룡당원들은 발끈했다.

상부의 명령 때문에 성질을 많이 죽였지만 이런 상황까지 참을 수는 없었다.

“조장님. 함부로 주먹을 휘두르지 말라고 했지만… 저놈들은 상관없지 않겠습니까.”

“그래! 조져!”

* * *

쾅!!

“금 조장이 당했다니! 무슨 말이야!!”

청룡당주가 버럭 화를 냈다.

순찰 중인 수하들이 당했다는 보고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흑룡방이 어디인가. 북경 흑도를 평정한 방파였다.

그리고 자신들 청룡당은 흑룡방의 다섯 당 중 하나였다. 만약 이 일이 알려지면 당주인 자신의 체면이 뭐가 되겠는가.

“순찰 중에 행패를 부리는 자들을 발견해서 한판 붙었다가…….”

“이, 이 병신 같은 새끼들이!!”

청룡당주인 곡우경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는지 소리를 고래고래 내질렀다.

“당장 잡아와! 당장!”

“아, 알겠습니다. 당주님.”

곡우경의 고함에 청룡당의 대주(隊主) 중 한 명이 급히 뛰어나갔다.

청룡당은 당주 밑에 세 개의 대(隊)를 두었다.

대주들은 비록 일류에 오르지 못했으나 실전경험이 풍부한 실력파였다.

각 대는 12개의 조를 두었는데, 한 조에 5명씩 묶었다.

당주의 직속부하들까지 포함하면 청룡당은 근 이백 명이나 된다는 뜻이었다.

청룡당만 해도 웬만한 흑도방파 수준이었다.

“젠장! 언젠가는 이런 놈들이 나타날 줄 알았다니까!”

흑도는 흑도다워야 하는데, 너무 풀어주니 자신들을 우습게 보는 놈들이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방주의 무시무시한 무위를 겪어봤으니 불만스러워도 참아야 했다.

“어떤 새끼들인지 가만 놔두나 봐라. 젠장. 다른 당주 놈들이 비웃을 것이 눈에 선하네.”

흑룡방의 오당 중 청룡당이 제일 끗발(?)이 떨어졌다.

적룡당이나 금룡당처럼 제법 돈을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고, 백룡당처럼 실권을 쥔 것도 아니었다.

하물며 흑룡당처럼 총애받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당주들 중 자신이 제일 초라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시비는 청룡당에만 일어난 것이 아니란 사실을.

* * *

“어디서 장난질이야!!”

도박장이 발칵 뒤집어졌다.

돈을 좀 잃었는지 행패를 부리는 자가 있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흑룡방이 운영하는 도박장이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절대 할 수 없는 짓을 벌이고 있었다.

덕분에 도박을 즐기던 다른 손님들은 당황해했다.

그러자 도박장을 담당하는 적룡당의 무리가 나타났다.

“손님. 심정은 알겠지만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너희 뭐야? 곤란해? 죽고 싶어!”

당주에게 당부받은 터라 나름 정중하게 말했으나 돌아오는 말은 결코 정중하지 못했다.

덕분에 적룡당원들이 미간을 찌푸렸다.

“손님. 나가주십시오.”

“어이없네? 누구보고 나가라는 거야!”

점점 행동에 거침이 없어지자 그들의 인내심도 바닥이 났다. 애초에 당주의 당부만 아니었다면 이렇게 참을 사람들도 아니었다.

결국 폭발했는지 그들이 고함을 쳤다.

“나가! 이 새끼야!”

“흑룡방 병신들이 북경을 쥐었다더니… 물이 많이 흐려졌네?”

“너… 뭐야.”

흥분했던 적룡당원들은 순간적으로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사내가 의도적으로 시비를 걸었다는 것 역시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들이 북경을 평정한 흑룡방 소속임을 알고 시비를 걸었다면 가볍게 생각해선 안 된다.

분명 그만한 준비를 했을 테니까.

“어디서 왔는지 모르지만… 넌 실수한 거야.”

“흐흐흐… 과연 누가 실수한 걸까?”

적룡당원들은 각자 칼을 쥐었다.

허튼 수작을 부리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위협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내는 피식 웃었다.

그 모습에 성격 급한 몇몇 적룡당원들이 먼저 달려들었다.

“이 건방진 새끼가! 조장님이 말씀하시는데!”

“걸어나갈 수 있을… 컥!!”

역시 사내는 보통이 아니었다. 칼을 휘두르며 달려든 적룡당원들을 너무도 쉽게 쓰러트렸다.

이에 흠칫 놀란 적룡당원들은 칼을 꽉 쥐었다.

사내가 씨익 웃으며 손짓했다.

그러자 도박하던 이들 중 이십여 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사내는 혼자가 아니었다.

이십여 명이나 되는 동료를 대동한 것으로 보아 결코 좋은 의도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적룡당원들은 움찔했다.

그때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무슨 일이야!”

“대, 대주님!”

“넌 죽었어!!”

중년 사내의 등장에 적룡당원들은 기세가 등등해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는 적룡당의 대주였기 때문이다.

그의 등장만으로 분위기가 달라졌다.

“건방진 새끼들! 누군지 모르지만 죽여주마!”

“능력이 된다면 죽여봐.”

사내가 대주의 성질을 긁었다.

결국 대주는 칼을 휘둘렀다.

챙! 채앵!!

“헉!”

“뭘 그렇게 놀라?”

사내는 제법 칼밥 좀 먹었다고 자부하는 대주의 칼을 너무도 쉽게 막아냈다.

그리고 당황하는 대주와 적룡당원들을 보며 차가운 미소를 지은 채 히죽거렸다.

“…이제 북경은 본방이 접수하겠다.”

도전자

“…누구냐?”

명상을 하던 이현성은 미세한 기척에 눈을 떴다. 그리고 창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잠시 후, 복면을 쓴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상해 보이는 인물이었으나 적의를 품고 있지는 않았다.

“이령(二靈) 님의 명을 받아서 왔습니다.”

“쾌활림에서 오셨소? 무슨 일이오?”

이현성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쾌활림을 맡아주고 있는 귀림이령의 사자라면 경계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긴장도 되었다.

금의위와 금위군이 지키고 있는 장원이기에 웬만한 이유가 아니면 사람을 보내지 않았다.

자칫 잠입을 들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보냈다면 그만큼 가벼운 일이 아니란 뜻이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흑룡방의 방도들이 습격당하고 있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습격? 누가 습격했단 말이오.”

쾌활림 살수의 말에 이현성은 깜짝 놀랐다.

흑룡방을 세우기 위해 북경 흑도방파 중 제법 힘을 가진 집단은 제압한 뒤 흡수하거나 쫓아냈다.

그렇기에 북경 흑도방파 중에서 흑룡방을 습격할 만한 집단은 없었다.

물론 그것은 흑도에 한정해서였다.

만약 금의위 등 황실세력이 움직인 것이라면 문제가 크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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