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그러나 이대로라면 흑룡당 역시 공만 들일 뿐, 구제가 어려워질 수도 있었다.
‘실전보다 좋은 공부는 없지.’
흑룡당을 흑도에서 탈피시키기 위해서 그들을 몰아세울 생각이었다.
가혹한 상황이 주어질지라도.
그들 중 단 몇 명만 살아남는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죽기 싫으면 악착같이 살아남으라고.’
* * *
후웅!
“합!!”
“하압!!”
수십 명의 사내들이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 모습은 제법 장관이었다.
허나 이를 지켜보는 사내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대충대충 휘두르지 말고! 일도(一刀) 일도(一刀)에 혼신을 다하라!”
“예! 당주님!”
그들은 흑룡방의 유일한 무력대인 흑룡당이었다.
사혼팔도를 전수한 지 두 달.
아직도 형(形)을 익히는데 급급할 뿐, 팔도(八刀)를 전부 익힌 자는 아무도 없었다.
비록 원형인 사혼도법을 익히기 쉽게 완화시켰다고 해도 사혼팔도 역시 일류도법이었다.
사혼도법만은 못 했지만 사혼팔도도 무시할 수준의 도법은 아니란 뜻이었다.
그러다 보니 묵장진이 다그치긴 했으나 흑룡당원들이 익히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도법을 뒷받침해줄 내공심법이 너무 일천한 것이 문제야.’
주군인 이현성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묵장진은 흑룡당을 더욱 몰아세웠다. 그럼에도 성장이 더뎠다.
묵장진을 포함 서너명을 제외하곤 이류 아니, 그보다 못한 심법을 익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혼팔도가 절세도법은 아니지만 흑룡당의 입장에서는 황송할 정도로 좋은 도법이었다.
그런 사혼팔도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내공심법만 전수해도 지금보다는 더 빠른 성취를 보일 수 있었다.
그 사실을 알기에 묵장진은 안타까웠다.
그렇다고 주군인 이현성에게 먼저 내공심법을 요구할 수도 없었다.
‘주군께서 다 생각이 있으시겠지.’
이현성은 그들을 시험하고 있었다.
생사를 함께할 전우로 삼을지, 포기할 자들일지를.
무공은 비인부전(非人不傳)이었다.
특히 내공심법은 아무에게나 전수하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자신이 알고 있는 심법 중 하나를 전수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초식을 새롭게 익힐 수는 있으나 내공심법은 어렵다.
지금이야 상승무리가 담기지 않은 이삼류 내공심법이니 얼마든지 새로운 내공심법을 익힐 수 있었다.
하지만 상승무리가 담긴 내공심법을 익히면 호환되는 상위심법이 아닌 이상 함부로 익혀서는 안 된다. 오히려 내공이 충돌을 일으켜서 폐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현성은 신중했다.
기왕 전수할 것이라면 부작용이 적은 그리고 안전한 내공심법을 전수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에게나 전수할 수도 없었기에 사혼팔도만 전수한 채 지켜보는 중이었다.
그때였다.
흠칫!
“흑룡당은 수련을 멈추고, 주변을 경계하라!”
갑작스러운 묵장진의 외침에 흑룡당원들은 칼을 들고 주변을 경계했다.
하지만 긴장한 것과 달리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일각(一刻 : 15분), 이각(二刻 : 30분)이 지났음에도 이상은 없었다.
결국 경계심이 누그러졌다. 그것이 문제였다.
“당주님께서 착각하신 거… 컥!”
“경계심을……!!”
경계심이 흐트러지는 순간 기습당하고 말았다.
복면을 쓴 괴한들이었다.
흑룡당원들은 그들의 습격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자가 있었다.
“정신차려라!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
“조, 존명!!”
묵장진의 고함에 그제야 당황하던 흑룡당원들도 정신을 차리고는 괴한들을 향해 칼을 들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이십여 명이 쓰러진 후였다.
채앵!!
챙! 챙!
“누구냐!!”
“…….”
묵장진의 외침에도 괴한들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흐름을 끊어야 해… 내가…….’
머릿수가 배는 더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흑룡당은 속수무책으로 밀리고 있었다.
이미 흐름이 적에게 넘어간 상황이었다.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는 적의 흐름을 끊고, 사기를 되찾아야 한다.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 한 사람뿐이었다.
그 순간 묵장진의 칼이 은은하게 빛났다.
바로 도기(刀氣)였다.
이를 본 괴한들은 흠칫 놀라더니 세 명이 묵장진의 앞을 가로막았다.
놀랍게도 세 사람의 검 역시 묵장진의 도기와 비슷하게 아니, 조금 옅은 빛을 냈다.
묵장진만은 못 하지만 최소 일류고수란 뜻이었다.
아무리 묵장진이더라도 일류고수 셋을 간단히 떨쳐낼 수는 없었다.
‘아니, 어디서 이런 고수들이 나타난 거야.’
묵장진은 이를 악물고 칼을 휘둘렀다.
하지만 예상대로 괴한들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설상가상으로 묵장진의 발이 묶인 동안 또 다른 괴한들에 의해 흑룡당원들이 전멸하고 말았다.
흑룡당과는 격이 다른 고수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괴한들이 검을 거두며 물러났다.
“멈춰! 어딜 도망가느냐!!”
묵장진이 고함을 쳤으나 그들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그때 그의 귀로 신음이 들려왔다.
“으윽.”
“끄응…….
놀랍게도 쓰러진 수십 명은 다쳤을지언정 죽지는 않았다.
그들의 목표는 흑룡당을 지우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묵장진으로서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곧 알 수 있었다.
또 다른 복면인 아니, 흑룡방주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묵 당주.”
“예. 주군.”
“실전이었다면, 죽이지 말고 제압만 하라는 지시가 없었다면… 오늘 흑룡당은 전멸했을 것이다. 인정하는가.”
“인정… 합니다.”
그들의 정체는 알 수 없었다.
허나 그들의 습격이 주군인 흑룡방주에 의해 일어난 일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다치기는 했으나, 목숨을 잃은 자가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날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말… 진심이 아니었나.”
“…죄송합니다. 최선을…….”
“최선 따위 언급하지 마라. 결과로써 내 믿음에 응답해라.”
“예. 주군.”
그를 지그시 바라보던 이현성이 바로 돌아갔다.
그때 분해하는 묵장진의 귓가로 돌아갔다고 생각한 이현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오늘 왜 이렇게 쉽게 무너졌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라.
“무너진… 이유…….”
* * *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림주.”
“아닙니다. 귀인. 도움이 되셨다면 다행입니다.”
이현성의 앞에 앉아 있는 중년 여인은 귀백을 대신해 쾌활림을 맡고 있는 귀령이었다.
정확히는 귀림이령(鬼林二靈)이었다.
귀림은 귀왕(鬼王) 아래 귀백(鬼伯), 귀령(鬼靈), 귀혼(鬼魂), 귀영(鬼影)이 존재한다.
귀림주인 귀왕을 제외한 초절정지경에 오른 절대살수에게 주어지는 직위가 바로 귀백이었다.
귀백은 귀림의 장로이기도 했다.
귀령과 귀혼은 귀림의 특급살수다. 다만 귀령은 특급살수 중에서도 상위, 즉 절정고수였다.
그에 반해 귀혼은 절정 초입 혹은 살법으로 절정고수도 암살할 수 있는 특급살수들이었다.
마지막으로 귀영은 귀림의 일급살수로, 귀림의 살수 8할이 바로 그들이었다.
귀림은 삼대 살종답게 이급 이하의 살수는 정식 살수로 취급하지 않았다.
현(現) 귀림에서 귀령은 셋뿐이고, 눈앞의 여인은 그중 두 번째 귀령이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필요하시다면 무공비급을 몇 개 드릴 수 있습니다.”
“말씀은 감사하오나, 그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무공보다 강해지려는 의지입니다. 그리고 그 의지를 가장 극대화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실전이고요.”
쾌활림은 귀왕인을 찾기 전까지 재정 및 정보수집을 위해 귀림에서 세운 단체다.
비밀화원인 쾌활림을 필두로 몇몇 기루를 운영하는 덕분에 많은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다.
흑룡당의 상황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수백 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귀림이었다.
그들이 전리품으로 모은 무공비급도 상당히 많았다.
귀령이 임의로 유출시킬 수는 없지만, 귀인(貴人)인 이현성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면 몇 권 정도 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현성은 거절했다.
그가 무공을 몰라서 사혼팔도만 전수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죄송하지만… 몇 번 더 부탁드리겠습니다.”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흑룡당을 습격한 괴한들은 사실 귀림의 귀영살수들이었다. 정확히는 아직 쾌활림을 보호하기 위해 귀림에 복귀하지 않은 자들이었다.
일급살수들답게 수가 배 이상 차이가 났음에도 흑룡당을 제압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이현성은 흑룡당에 전수할 내공심법을 준비해뒀다.
그럼에도 아직 전수하지 않는 것은 이 시험을 통해 그들의 옥석을 가리기 위함이었다.
‘단 몇 명이라도 상관없어. 이것도 이겨내지 못하면 혈천 아니, 혈살객 그 독종의 먹이만 될 뿐이니까.’
흑룡당의 지옥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 *
“으… 으…….”
흑룡당은 귀영살수들에게 당한 부상이 그리 크지 않았기에 회복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훈련에 복귀한 뒤 며칠이 지났을 때 다시 습격받았다.
“묵 당주. 지난번과 다를 게 없군.”
“죄송… 합니다. 주군…….”
묵장진은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미 한번 당했기 때문인지 지난번보다는 더 오래 버텼다.
그러나 그래봤자 이각일 뿐이었다. 즉, 이현성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은 전혀 성장했다고 볼 수 없었다.
“지난번에 내가 한 말을 아직도 깨닫지 못했나.”
“…….”
묵장진은 대답할 수 없었다.
그의 말처럼 아직까지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현성이 차가운 목소리로 나직하게 말했다.
“마지막 기회를 주지. 오늘과 지난번에 왜 그렇게 쉽게 무너졌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봐라. 그리고 다음에도 성장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면 흑룡당을 해체하겠다.”
“……!!”
이 이상의 실망을 주면 포기하겠다는 말이었다.
“따를 생각이 없는 자에게 내 믿음과 시간을 투자할 수는 없으니까.”
이현성은 더 이상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매정하게 돌아가 버렸다.
“내가 깨닫지 못한 것이 뭐지?”
큰 부상을 입은 자는 없지만 흑룡당 전원이 경상을 입었다.
그러다 보니 당장은 흑룡당의 훈련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생겨버린 묵장진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주군이 말한 그리고 자신이 깨닫지 못한 점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에 고민은 커져만 갔다.
그럼에도 감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그를 찾아온 자들이 있었다.
“당주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한 조장? 말해보게.”
흑룡당의 조장과 그 조원들이었다. 그들의 표정이 심각한 것으로 보아 가벼운 일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 이상이었다.
“…그만두고 싶습니다.”
“……!!”
한 조장의 말에 묵장진의 눈이 커졌다.
한 조장은 물론 그의 조원들은 묵장진의 시선을 피했다.
묵장진은 그들을 설득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 당으로 보내주면 되나.”
“북경을… 떠나고 싶습니다.”
한 조장의 말에 묵장진이 눈을 부릅떴다. 흑룡당이 아니라 아예 흑룡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뜻이었다.
사실 무림뿐만 아니라 흑도 바닥도 그리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한번 발을 들이면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
당연히 탈퇴하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만약 대가를 거부하고 도망친다면 처절한 응징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래야 또다른 이탈자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