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살수-47화 (47/314)

47화.

‘절대로 질… 수 없어!’

마음을 다잡았으나 그것만으로 싸우기에 상대는 너무 강했다. 그녀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

이대로라면 약기를 흡수하기는커녕 주화입마에 빠질 것 같았다. 그때 떠오르는 구결이 있었다.

‘아… 귀왕진결!’

귀왕살무의 정수인 귀왕진결을 잊었던 자신을 자책하던 야래향은 귀왕진결을 읊으며 내공을 움직였다.

그제야 말을 듣지 않던 회령환의 약기가 조금씩 제어되기 시작했다.

순간 그녀는 무아지경에 빠졌다.

그날 야래향은 새롭게 태어났다.

삼대 살종(殺宗) 중 하나인 귀왕으로.

* * *

“단벽호가 방주님을 뵙습니다.”

“염일평이 방주님을 뵙습니다.”

“곡우경이 방주님을…….”

“모유환…….”

“묵장진이 주군을 뵙습니다.”

다섯 사내가 부복했다. 그들은 흑룡방의 핵심인 중간 간부들이었다.

흑도(黑道)라고 모두 쓰레기가 아니었다. 주인만 잘 만나면 보석이 될 만한 원석들도 있었다.

그간 굴복시킨 흑도의 인재 중 실력과 잠재력을 가진 원석이 다섯 있었다.

그들 중에는 한 집단의 수장 출신도 있고, 아닌 자도 있었다.

그들의 과거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제 이현성의 아래 다시 태어났으니까.

“단벽호, 도박장은 어찌 되었나?”

“단단히 교육을 시켜서 방주님의 가르침에 한치의 거스름도 없습니다.”

“좋군. 단벽호 그대를 적룡당주(赤龍堂主)에 임명하지. 나를 대신 본방 휘하 모든 도박장을 관할해도 좋다. 단, 문제가 발생시 자네가 책임을 질 것임을 잊지 말도록.”

“감사합니다!”

단벽호는 이현성의 위엄에 움찔했으나 그가 눈여겨본 인재답게 곧 신색을 회복했다.

일락방에 가려졌으나 제법 규모 있는 도박장을 운영하던 흑도 조직의 우두머리였다.

그런 그가 이현성의 지시로 임시로 흑룡방 휘하 도박장들을 관리했다. 그리고 지금 정식으로 적룡당주로 임명되었다. 비록 조직의 수장에서 일개 당주로 전락했으나 관리할 도박장의 수가 늘어났다.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벅차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곡우경에게는 시전(市廛)을 관리할 청룡당(靑龍堂)을 맡겼다.

시전상인들의 고혈을 빼먹을 생각은 없으나 보호비를 아예 받지 않는다면 외부에서 이상한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을 보호할 명분 역시 없었다.

대신 보호비는 상당히 낮추어서 그들의 생존을 침해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민심은 의외의 순간 힘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염일평에게는 전장을 관할하는 금룡당(金龍堂)을 맡겼다.

돈을 세탁할 곳이 필요했고, 전장의 폐해가 있으나 없다면 또 다른 폐해가 발생하기에 꼭 필요했다.

“모유환, 백룡당(白龍堂)은 본방의 안살림을 관장하는 곳이다. 잘할 수 있겠나?”

“맡겨주신 임무, 기필코 완수하겠습니다. 방주님.”

백룡당은 총관부(總管部)인 동시에 군사부(軍師部)였다. 이는 모유환의 전직 때문이다.

한때 과거 공부를 하다가 현실의 벽에 부닥쳐서 상단의 서기가 되었다.

문제는 그 작은 상단이 겉으로는 평범하지만, 실상은 장물이나 정보를 사고 파는 어둠의 상단인 암상단(暗商團)이었다.

처음에는 서기에 불과했으나 재능이 있었는지 결국 총관까지 오른 인물이었다.

사람 욕심이 끝이 없듯 암상단주가 규모를 넓히려다가 흑점 북경지부에 걸려서 무너지게 되었다.

그때 그의 재능을 아까워한 쾌활림주가 손을 쓰지 않았다면 죽었을지도 모른다.

“묵장진. 흑룡당(黑龍堂)은 본방의 칼이다. 본 방주는 녹슨 칼은 필요 없다.”

“주군. 목숨으로 칼을 갈고 닦겠습니다.”

흑룡당은 흑룡방의 유일한 무력대였다.

정확히는 다른 당에도 쓸 만한 인재들을 꾸려서 무공을 가르칠 생각이었다. 허나 그건 관할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까지만이었다.

흑룡당은 비밀무기로서 중히 사용할 생각이었다. 이런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묵장진 때문이다.

‘그가 북경에 있는 줄은 알았지만, 설마 흑도에 몸담고 있었을 줄이야.’

묵장진은 이현성이 상청동에서 명부를 작성할 때 이름을 넣었던 인물이었다.

그는 무림 출신이 아닌 군부 출신이었다. 묵가장이 비록 대장군가는 아니지만 나름 정백호와 정천호를 여럿 배출한 군부의 명가였다.

특히 묵장진의 부친은 장군이라고 할 수 있는 정천호에 올랐다. 본인 역시 정백호에 올랐다.

묵가장은 그야말로 전성기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부친이 줄을 잘못 서면서 묵가장의 명운도 끝나고 말았다.

그 충격으로 부친은 쓰러졌고, 결국 귀천(歸天)하고 말았다.

묵장진은 이를 악물고 발버둥질했다. 남은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허나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이들은 모두 그를 멀리했다. 혹시 피해를 받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흑도로 흘러 들어오게 되었다.

‘아무리 진흙 속에 묻혀 있어도 보석의 빛을 숨기기는 어려운 법이지.’

묵장진은 원래라면 수년 후, 우연히 위험에 처한 고관의 자제를 구해주면서 다시 기회를 잡게 된다.

든든한 배경 때문인지, 아니면 몰락했던 울분 때문이지 무섭게 공훈을 세우고 위로 올라간다.

물론 그가 용장(勇壯)이자 지장(智將)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미래가 나 때문에 바뀌게 되었지만… 결코 후회하게 만들지 않겠어.’

이현성을 만남으로써 뛰어난 장수가 될 미래가 바뀌었다. 흑도 방파의 당주가 되었다. 하지만 그를 썩힐 생각은 없었다.

흑룡방은 하늘을 날기 위한 하나의 발판이기 때문이다.

“그대들 오대 당주에게 최대한의 권한을 주겠다. 허나 권한을 준 이유는 책임 역시 감당하라는 의미다. 능력 하에 누리는 것은 허용하지만, 그 이상은 목숨으로 책임을 물을 것이다.”

“존명!”

“존명!”

오대 당주들은 움찔했다. 그간 겪어본 이현성은 정말 심기를 건들면 목을 벨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빡빡한 인간도 아니었다. 능력 하에 누리는 것은 허용한다고 허락했다.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너무 조이기만 한다면 분명 문제가 될 수 있기에 이현성도 한발 물러나줬다.

“별도의 명이 있을 때까지 모두 제 위치로 돌아가라.”

* * *

“허허. 역시 대단하구려. 벌써 이렇게 자리를 잡고 말이오.”

“림주님께서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이현성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아무리 이현성이 강해도 혼자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는 법. 귀백의 명으로 쾌활림이 여러 작업을 해준 덕분에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아무리 혈영살객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방파의 수장으로서 다스린 경험은 없기에 미흡한 점이 없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쾌활림은 방주의 요청대로 총관이 관리할 것이오.”

“감사합니다. 최대한 빨리 적임자를 찾아보겠습니다.”

“급한 것은 아니니 서두를 필요는 없소. 본림의 봉인이 풀린다고 해도 힘을 회복할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북경 흑도를 장악하려던 이현성은 계획을 바꾸었다.

자칫 황실의 의심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북경 흑도 삼분지계(三分之計)를 세웠다.

도박과 전장 등은 흑룡방이, 주루는 쾌활림이 그리고 청부업은 귀림이 맡기로 했다.

귀림 입장에서도 수십 년만의 부활인 만큼 힘을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다.

당대 살문의 위에 군림한 살막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쾌활림을 맡고 있던 귀백과 귀림의 살수들은 복귀할 예정이었다. 허나 당장 이현성 혼자의 힘으로 쾌활림까지 감당하는 것은 버겁다.

다행히 귀백의 배려로, 귀림의 특급살수이자 쾌활림의 총관이 당분간 맡아주기로 했다. 허나 어디까지나 당분간인 만큼 적임자의 물색이 시급했다.

‘누가 좋으려나.’

쾌활림주만이 아니었다. 림주를 보좌한 인물들 역시 준비해야 한다.

현재 쾌활림의 구성원 중 귀림 소속원이 1할 정도 된다. 그들이 귀림에 복귀하면 그만큼 공백이 생긴다.

쾌활림과 흑룡방을 분리한 만큼 흑룡방의 인력을 끌어 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즉, 그 1할 역시 이현성이 준비해야 한다.

“참, 소림주께선…….”

“아직이외다. 허나 그 아이 아니, 귀왕이라면 분명 해낼 것이오.”

귀백은 야래향을 귀왕이라 칭했다. 단순히 호칭이 바뀐 것이 아니었다. 입장이 바뀐 셈이었다.

일개 살수집단이지만 긴 역사를 알려주듯 어떤 문파보다 위계가 확실했다.

이 점이 이현성은 너무도 아쉬웠다. 그때 뭔가 떠올랐다.

‘유령곡에 대해서 알려줘야 하나.’

귀림의 입장에서는 살막만큼이나 중요한 집단이 바로 유령곡이었다. 허나 쉽게 말할 수는 없었다.

유령곡이 혈천십삼세의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유령곡의 부활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혈천의 존재 역시 밝혀야 한다.

‘아니야. 아직은 때가 아니야.’

비록 아직은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으나 결국은 남이었다. 언제 사이가 틀어질지 모른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때문에 이현성은 유령곡에 대해서는 잠시 비밀로 하기로 했다.

‘유령곡도 유령곡이지만, 흡정혈왕이 혼원신공을 손에 넣었다면 골치가 아파지는데…….’

그 시각, 흡정혈왕 석대환은 혼원신검을 붙들고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 * *

“젠장! 도대체 어디에 숨겨져 있는 거야!”

혼원신검을 손에 넣을 때만 해도 이미 천하를 손에 넣을 것 같았다.

혼원신공이라면 흡정마공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너무 무른 생각이었다.

아무리 혼원신검을 살펴도 전혀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혼원신검의 비밀을 푼다면 혼원신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만 알고 있지, 구체적으로 비밀을 풀 수 있는 방법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남의 손을 빌릴 수도 없고…….”

석대환을 별의별 짓을 다 해봤다. 피를 묻혀보고, 불에 넣기도 했다.

내공을 주입하는 등 수많은 시험을 해봤으나 아무것도 알 수 없으니 미칠 지경이었다.

결국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상황이 되었다. 문제는 외부인을 끌어들이면 흔적이 남게 된다.

혼원신공의 구결이 유출될 위험도 있지만, 자신이 혼원신공을 보유했다는 사실 역시 알려지게 된다.

물론 유령살군이 알고 있으나 그 역시 유령비에 대해 숨겨야 하기에 쉽게 입을 열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내가 혼원신공을 익힐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하는데…….”

흡정마공의 부작용으로 7할의 내공만 사용할 수 있음에도 혈천의 호법이 되었다.

물론 혈천십삼세의 하나인 석가장주라는 점이 크긴 하지만 결코 무력도 무시할 수 없었다.

특히 내공에 한해서는 다른 장로, 호법보다 심후한 편이었다.

만약 혼원신공으로 흡정마공의 부작용을 이겨낸다면?

혈천십삼세의 수위를 차지하는 것도 더 이상 꿈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혼원신공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분명 방해하려는 자가 있을 것이다.

그걸 알기에 혼원신공의 존재는 물론 익힐 때까지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안 된다.

“후… 조급해하지 말자. 절대 일을 그르칠 순 없어.”

그는 무인이기 이전에 상인이었다. 손해 보는 장사는 절대하지 않는 족속이었다.

그렇기에 석대환은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했다. 무엇이 자신에게 더 이득인지, 어떻게 해야 손해를 보지 않을지.

석대환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다 이용해야 해.”

귀환살수

— 문지기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