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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41화 (41/314)

41화.

‘진주언가의 혈겁이 그의 작품이었구나. 그런데 왜 시일이 앞당겨졌지?’

이현성이 알기에 진주언가의 혈겁은 앞으로 몇 년 후에 일어날 일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렇게 무림고수들이 몰린 지금 이런 일을 벌이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석대환으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현성이 황도에서 벌인 몇 가지 사건의 여파로 혈천에서 부여받은 석가장의 임무에 지장이 생겼다. 그로 인해 석 장주 아니, 석 호법은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혈천십삼세의 지위를 잃고, 혈천의 하부로 밀려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가진다. 그로 인해 회귀 전과 같은 끈기를 가질 수 없었다.

게다가 지금이 꼭 나쁜 것도 아니었다. 고희연에 방문한 귀빈들의 안전을 위해서 진주언가의 병력을 분산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목표를 공략하기에 오히려 더 좋은 상황이었다.

그러한 사실을 모르는 이현성으로서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문 공자, 죄송하지만 이만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예? 예 알겠습니다.”

제갈현도는 축하사절단의 대표인 가문의 장로는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문태규는 하인들의 대화를 듣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제갈현도의 갑작스러운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설사 들었다고 해도 애초 그들은 친분이 두터운 사이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붙잡을 명분도, 이유도 없었다.

“다음에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예.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제갈 공자님.”

제갈현도가 빠른 걸음으로 사라지자 문태규가 이현성에게 말했다.

“제갈 공자께서 바쁘신가 보네요.”

“그런가 보구나.”

이현성은 그저 술을 한잔 마셨다. 괜한 말을 해서 문태규까지 위험에 휩쓸리게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한편으로는 고민되었다.

‘혼원신검… 포기해야 하나?’

그의 입장에서 혼원신검, 정확히는 혼원신공과 검결은 꼭 필요했다. 하지만 당장 혼원신검을 노리기에는 위험성이 너무도 컸다.

뮨태규의 안위도 책임져야 하는 입장에서 위험을 자처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다른 이도 아닌 혈천과 관련이 있다면 연루되어서 좋을 것이 없었다.

그에게는 아직 힘이 없었다. 세력은 물론 무력, 재력, 정보력까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했으니까.

‘어쩔 수 없지. 아쉽지만…….’

이현성은 혼원신검과는 인연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태규야, 볼일이 끝났으면 내일 일찍 출발했으면 좋겠구나.”

“예? 바쁜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그건 아니지만, 느낌이 좋지 않구나.”

“형님이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그렇게 이현성은 이른 아침에 진주언가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 나무는 조용하고자 하나 바람이 가만두지 않는다.

그의 의도와 달리 주변은 이현성을 그냥 놔두지 않았다.

* * *

“구야자의 보검이라니… 부럽군.”

“한번 휘둘러만 봐도 소원이 없겠다.”

권군의 고희연에 참석한 축하객들의 화젯거리는 역시 승사검이었다. 무림인들은 물론 상인들까지 관심을 보였다. 가치가 계산이 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보물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검객들은 탐욕을 숨기기 어려웠다.

“에~잉! 돼지 목의 진주구만!”

“그러게 말일세. 진주언가에 승사검이라니…….”

마땅한 주인을 만난다면 천하를 오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승사검이었다. 아무리 권군의 가문이라지만 권가(拳家)인 진주언가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 안타깝고 짜증이 났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진주언가는 십대세가에 꼽히는 무림세가인 것을.

같은 십대세가 아니, 오대세가인 제갈세가라 해서 다르지 않았다.

“백부님. 소질 현도입니다.”

“왔느냐.”

“그런데 승사검이라니… 무슨 일입니까?”

“너도 들었나 보구나. 석가장이 무슨 생각인지, 언 가주님의 고희연 선물로 승사검을 내놓더구나.”

제갈세가의 거처로 돌아온 제갈현도는 축하사절단의 대표인 백부를 찾아갔다.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을 겁니다.”

“그렇겠지. 천하의 승사검을 아무런 대가 없이 내놓을 리가 없지. 더군다나 ‘그’ 석가장이 말이야.”

지략으로 유명한 제갈세가의 직계들답게 승사검을 내놓은 석가장의 저의부터 의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무림인이고, 사람이었다. 부러움이 없을 수 없었다.

“그보다 아쉽군요. 승사검이라면 백부님께 더 어울릴 텐데 말입니다.”

“허허…….”

백부는 부정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 역시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제갈인겸. 제갈세가의 태상가주인 신산(神算) 제갈윤호의 장남이자, 현 가주의 친형이었다.

그가 무능해서 동생에게 가주 자리를 빼앗긴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동생에게 떠넘긴 것이 옳은 표현이었다.

제갈세가 역사상 손에 꼽히는 무재를 타고난 제갈인겸은 검을 위해서 가주 자리조차 포기한 인물이었다.

덕분에 중년의 나이로 무림 백대고수에 이름을 올린 고수가 되었다.

승사검이 진주언가가 아닌 제갈인겸의 손에 들어왔다면 제갈세가의 입지는 한층 더 높아질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쉽기만 했다.

“언유광에게 승사검이라니…….”

“어쩔 수 없지 않더냐. 우리 것이 아니니.”

두 사람은 승사검의 주인이 누가 될지 예상하고 있었다.

진주언가에서 검의 재능을 보이며, 권군의 총애를 받는 자는 딱 한 명이기 때문이다.

바로 권군의 장손인 언유광이었다. 그걸 알기에 더욱 안타까웠다.

허나 권군은 결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

* * *

“아버님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허허… 나 역시 고민이 되는구나.”

진주언가의 가주인 권군과 그의 장남이자 소가주인 언중경은 골치가 아파졌다. 구야자의 보검인 승사검 때문이다.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탐을 낼 만한 보검이었다.

석가장에게서 승사검을 받았을 때만 해도 흥분했다.

검재를 보이는 장손. 보검 중에 보검이라는 승사검.

진주언가의 시대를 알리는 하늘의 계시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30년 아니, 20년 후라면 언유광이 무인으로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허나 지금은 고작 일류고수일 뿐이었다.

보물은 죄가 없으나 약자가 보물을 가진 것이 죄라고 했던가. 지금의 언유광에게 승사검은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뼛속까지 권사(拳士)인 자신이 사용할 수도 없었다.

보물인 승사검이 지금은 계륵이나 마찬가지였다.

“광이의 나이가 22살이었던가?”

“예? 그렇습니다.”

“좀 이를 수 있으나 혼인을 하기에는 적지 않구나.”

“아… 그 말씀은…….”

22살은 혼인을 하기에 적은 나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늦은 나이었다.

민초들 중에는 조혼까지 하는 상황이었다. 허나 그건 그들의 상황이었다.

무림세가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무공수련 때문에 가정을 꾸리는 시기가 대체로 늦는 편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이십 대 중후반에는 혼인을 하는 편이었다. 그런 면에 본다면 언유광은 혼인을 할 때가 되었다.

“승사검을 예물로 보내는 것이 낫겠구나. 승사검이라면 누구도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아깝지만 지금은 그보다 좋은 결정은 없을 것 같습니다. 생각하고 계신 곳이 있으십니까?”

“남궁, 제갈, 모용세가 정도겠지.”

“역시 그렇겠지요.”

그 외에도 검으로 위명한 가문이나 문파들이 있었다. 하지만 기왕이면 가문에 큰 도움이 될 가문이 나았다.

남궁세가와 제갈세가는 오대세가이며, 모용세가는 진주언가와 함께 십대세가였다.

“빙화보다는 검화나 지봉이 나을 테고…….”

“아버님께선 누가 더 낫다고 생각하십니까.”

가문, 재능, 미색 등 다방면을 고려했을 때 위명을 떨치는 여인들이 있으니 그녀들을 삼봉오화사미(三鳳五花四美)라고 칭했다. 오화와 사미의 재색(才色)은 우열을 나누기 힘들 정도로 대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뉜 것은 오화의 배경이 출중하기 때문이다.

빙화(氷花)와 검화(劍花)는 오화에 속하며, 모용세가와 남궁세가라는 막강한 배경을 두고 있었다.

그런 그녀들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여인들이 바로 삼봉이었다.

제갈공명의 재림이라 불리는 지봉(智鳳) 제갈현지.

차기 검후 후보로 거론되는 화산의 검봉(劍鳳) 화소군.

무림의 성역인 성수의가(聖手醫家)의 의봉(醫鳳) 백인혜.

여인이 아닌 사내로 태어났다면 천하를 호령했을 거란 평가를 받고 있을 정도였다.

“제갈 장로에게 내가 좀 보자고 전해라.”

“현명하신 판단이십니다.”

언규철의 결정은 지봉 제갈현지였다.

오화와 삼봉은 괜히 나뉜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진주언가의 가족이 된다면 당대는 몰라도 다음 대에는 가문이 더 커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게다가 오만하기로 유명한 남궁세가였다. 승사검이라는 패가 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제갈현지를 결정한 이유 중 하나였다.

그렇게 승사검에 대한 결정이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했으나, 그건 그들만의 어리석은 판단에 불과했다.

* * *

“젠장! 불이라니!!”

“입 놀릴 시간에 어서 불이나 꺼!!”

진주언가의 주고(酒庫)에 불이 났다. 고희연 때문에 상당히 많은 술을 구입한 상황이었다.

물론 이미 절반 가까이 소모했으나 아직도 절반이나 남은 상황이었다.

고희연은 2일 더 진행될 예정인 만큼 술이 부족하면 안 되기에 넉넉하게 준비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화재가 나고 만 것이다.

창고의 경비를 맡고 있는 무인 몇 명이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

“저, 저희도 어떻게 된 일인지.”

“경위는 나중에 따진다! 우선 불부터 꺼라!”

“명!”

다행히 진주언가의 무인 서른 명이 합류했다. 진주언가의 무인들은 각기 물동을 짊어지고 화재가 난 창고에 던졌다. 수십 동의 물동이들 덕분에 진원지인 주고의 불은 진화(鎭火)할 수 있었다.

허나 이미 불타고 있는 창고가 주고만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였다. 주변 창고들까지 불이 번졌기 때문이다.

“더 가져와!”

“예! 알겠… 컥!”

“으아악!!”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진주언가 무인들 다수가 쓰려져 있었다. 화재로 인해 무너진 창고 잔해에 깔린 것일까? 아니었다. 복면을 쓴 십여 명이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을 쥐고 있었다.

“누구냐! 감히 진주언가에서 피를 보다니!!”

“흐흐흐… 미안하지만 아직은 소란이 멈추면 안 돼서 말이야.”

그제야 깨달았다. 화재는 사고가 아닌 사건이었다는 사실을. 동시에 긴장이 되었다. 고작 십여명에 불과하지만 이런 미친 짓을 벌일 때는 그만한 능력을 갖추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원이 배나 많음에도 죽어가는 쪽은 진주언가의 무인들이었다.

“크윽! 가…주께서 복수…….”

“흐흐흐… 우리만이라면 그럴지도 모르지.”

진주언가의 무인들은 죽어가면서 복면인들을 저주했다. 하지만 그들은 비웃었다.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을 거라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각 진주언가주인 권군 언규철은 중요한 인물을 만나고 있었다.

* * *

“귀가(貴家)의 대공자와 저희 현지를 말입니까?”

제갈세가의 장로인 제갈인겸은 갑작스러운 제안에 당혹을 금치 못했다.

제갈현지가 누구인가. 태상가주가 극찬을 아끼지 않은 천재이자, 제갈세가의 자랑인 지봉(智鳳)이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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