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그렇구나. 그구나.’
그제야 제갈현도는 이현성이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제갈세가가 오대세가에 속할 수 있었던 것은 무공보다 지략 때문이다.
보다 훌륭한 지략을 세우기 위해서는 뛰어난 두뇌에 앞서 많은 정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개방에는 못하지만 제갈세가는 정보에 신경을 많이 쓰는 가문이었다. 황실의 실세인 내각대학사. 그런 그의 은공이자 빈객에 대해 모를 수가 없었다.
‘나보다 어려 보이는데 금의위를 가르치다니… 게다가 무위가 절정으로 추정된다고 했던가.’
제갈세가의 혈족이라고 모두 정보에 밝은 것은 아니었다. 허나 제갈현도는 소가주인 만큼 열람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제법 많은 편이었다. 덕분에 아는 정보도 적지 않았다.
‘그대는… 누구냐?’
* * *
“허허… 고맙네. 선물 고맙네.”
진주언가의 본채에서는 선물 수여식이 한창이었다.
아무나 권군 언규철에게 직접 선물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름 영향력을 가진 유명인사나 가능한 일이었다.
원래라면 문태규 역시 수여식에 참석해야 한다. 내각대학사의 대리로 방문한 것이었으니까.
허나 이미 명부를 작성할 때, 선물을 전달했기에 수여식에는 불참하게 되었다.
“안평상단의 언중섭 상단주님이십니다.”
“백부님. 생신 축하드립니다. 운 좋게 구한 물건이 있어서 준비했습니다.”
“하하. 섭이구나. 고맙구나.”
안평상단주는 권군의 조카뻘이었다. 아직은 직계이지만, 다음 대에는 방계가 되는 만큼 권군에게 잘 보이려고 애를 쓰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준비한 선물이라면 범상치 않을 것이다.
안평상단주가 준비한 선물은 한 자루의 검이었다.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물건이었다.
권군은 검파를 잡고 검을 살짝 뽑았다.
현철이 섞였는지 상당히 묵직하고 단단했다. 게다가 검신(劍身)에서 예기가 느껴졌다.
명검 아니, 보검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어보였다.
“오~ 훌륭한 검이구나. 하하. 정말 고맙구나! 고마워!!”
“백부님께서 마음에 드셨다니, 고생한 보람이 있군요.”
흡족해하는 권군을 보며 언중섭은 안도할 수 있었다.
진주언가는 황보세가에 견주는 명문 권가(拳家)였다.
권갑(拳甲)이라면 몰라도 보검은 적합한 선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중섭은 힘들게 보검을 수배했고, 웃돈을 주면서까지 구입했다.
이유는 그의 조카이자, 권군의 손자 때문이다.
권군의 장손은 뛰어난 검재(劍材)를 타고났다.
권가의 후계자로서 권재(拳材)가 아닌 검재를 타고난 것은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허나 검이든, 권이든 무림세가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강함이었다.
게다가 진주언가권에 가려져 유명하지 않으나, 진주언가에는 삼절검(三絶劍)이라는 뛰어난 검술이 존재했다.
즉, 언중섭은 권군의 장손이자 진주언가의 대공자를 겨냥해서 선물을 준비한 셈이었다.
‘흐흐흐… 이제 날 무시하지 못하시겠지.’
언중섭은 만족해하며 물러났다. 그 이후로 몇몇 귀빈들이 선물을 건넸으나 안평상단주의 선물보다 눈을 끄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중원상단의 석대훈 상단주이십니다.”
“석가장의 석대훈이, 권군 언규철 가주님을 뵙습니다.”
“석 상단주가 직접 와주다니 고맙구려.”
석대훈의 등장에 좌중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석대훈이 누구인가, 천하제일 상단이라는 중원상단주였다. 동시에 천하제일의 부자인 석가장주의 친동생이었다.
게다가 석가장과 진주언가는 하루하고 반나절이면 도착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가문이었다.
그런 석대훈이 준비한 선물이 간단할 리가 없었다.
“본가에서 오랫동안 보관했던 물건인데,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습니다.”
“허허. 고맙네.”
제법 고풍적인 느낌을 주는 검이었다. 이내 좌중은 실망하는 눈치였다. 이각(二刻) 전에 안평상단주가 준비한 검에 비하면 못하기 때문이다. 허나 석대훈은 미소를 지었다.
언규철은 석대훈이 건넨 검을 쥐곤 흠칫 놀랐다.
천하의 권군이 고작 검 한 자루 때문에 놀란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쯤 되자 눈치 빠른 자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달리 보통 검이 아님을 눈치챌 수 있었다.
“이… 검은 설마…….”
“맞습니다. 승사(勝邪)입니다.”
검명(劍名)을 들었으나 좌중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무림인 혹은 무관가문 출신들은 달랐다. 그들은 경악했다.
승사검이 어떤 물건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구, 구야자의 승사검이란 말인가!!”
“뭐, 뭐라고!!”
전설적인 명장(名匠) 아니, 신장(神匠) 구야자. 월왕의 명령으로 제련한 다섯 검 중 한 자루가 바로 승사검이었다.
막사와 간장 부부의 스승이기도 한 구야자의 검이었다.
좌중이 들썩이는 것은 당연했다. 동시에 탐욕이 들끓었다. 검가도 아닌 진주언가에게는 너무도 아까웠다.
하지만 감히 권군의 앞에서 탐욕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이런 귀한 선물을 준비하다니… 허허…….”
“상가인 본가에서 보관해봤자 무의미합니다. 차라리 무림세가인 진주언가에서 중하게 써주신다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모두 놀랐다. 동시에 이해할 수 없었다.
비록 진주언가가 대단한 가문이긴 하지만 십대세가의 말석이었다. 따라서 승사쯤 되는 보검이라면 차라리 남궁세가에 선물하는 것이 득이었다.
남궁세가는 오대세가의 수좌로, 구파일방과 견줄 수 있는 무림세가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지척에 있는 진주언가와 깊은 우호를 쌓는다면 유사시 큰 도움이 된다.
그렇기에 아예 이해 못 할 일도 아니었다.
‘젠장! 망했다!’
‘승사라니! 미친놈들!’
석대훈 이후 선물을 전달해야 하는 이들은 죽을 맛이었다.
자신들이 준비한 선물들도 결코 하찮지 않으나 승사검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실제로 승사검 이후 그 어떤 감흥도 일으키지 못했다. 석대훈은 이러한 상황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미끼는 던졌으니 월척을 낚기만 하면 되겠군.’
혼원신검
“하하하. 소문의 그분이셨군요.”
문태규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던 제갈현도가 원하는 것이 있는지 먼저 운을 떼었다.
좋아하는 의형에 대해서 아는 듯 반응을 보이는 제갈현도를 보며 문태규가 환하게 웃었다.
“형님에 대해서 알고 계십니까?”
“자세히는 모르나 청학 선생님의 목숨을 구하고, 금의위를 가르친 대단한 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형님은 대단하신 분입니다!”
“아닙니다. 대단하다니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이현성은 겸양을 떨었다. 그의 성품이 자신을 내세우는 편이 아닌 이유도 있으나 왠지 제갈현도에게 많은 정보를 줘선 안 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허나 제갈현도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특히 화술은 제갈세가 출신답게 무척 뛰어났다.
“황제 폐하의 검이라는 금의위입니다. 그런 금의위가 아무에게나 가르침을 받겠습니까? 그만큼 이 대협께서 뛰어나신 분이겠지요.”
“그야… 뭐…….”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여기서 부정을 한다면 금의위를 비하하는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우 같은 놈… 당했군. 역시 제갈세가야.’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주도권을 제갈현도에게 넘겨줘야만 했다.
하지만 하늘은 그를 도와주었다.
그들이 지내고 있는 객실은 진주언가의 안쪽에 있는 별채였으나 지나다니는 사람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승사검이 그렇게 대단한 거야?”
“그런가 보지. 그러니 높으신 분들이 그렇게 열변을 토하는 것 아니겠어?”
“역시 석가장이네. 그런 대단한 걸 선물로 주고 말이야.”
“그만큼 우리 큰 어르신이 대단하신 게 아니겠어?”
승사검에 대해 빠르게 퍼졌고, 승사검의 대단함을 모르는 하인들의 귀에도 들어갔다.
고수인 이현성과 제갈현도는 진주언가 하인들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 덕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승사검이라… 석가장이 도대체 무슨 꿍꿍이지?’
‘대단하네. 승사검이라니… 자, 잠깐 석가장이라고? 그놈들이 왜?’
제갈현도는 놀라워하면서 석가장의 저의를 의심했다.
이현성은 그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다른 의심을 가졌다.
‘탐욕스러운 흡정혈왕이 승사검을 남에게 선물할 자가 아닌데…….’
흡정혈왕(吸精血王). 혈천의 수뇌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천하제일의 부자인 석가장주이기도 했다.
그렇다. 천하제일의 부가(富家)라는 석가장이 혈천십삼세의 하나였던 것이다. 사람들은 돈의 무서움을 알면서도 상인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뒤집기 위해서 석가장주는 혈천의 손을 잡았다. 그 대가로 손에 넣은 무공이 바로 흡정마공(吸精魔功)이었다.
흡정(吸精), 흡기(吸氣), 흡혈공(吸血功)의 최고봉이라는 흡정마공을 얻었다. 아무리 신공절학이 귀하고 손에 넣기 힘들다고 하지만 석가장의 어마어마한 재력이라면 결코 불가능하지 않았다.
실제로 석가장은 비밀리에 신공절학을 몇 개나 손에 넣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가장주인 석대환은 익힐 수가 없었다.
타고난 상재와 달리 무재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흡정마공은 꿈의 무공이었다.
무재가 떨어져서 익힐 수 없는 무공이기 때문이다.
‘흡정혈왕… 흡정… 아, 그렇구나.’
흡정마공은 제물을 통해서 정기를 빼앗는 마공이었다. 돈으로 제물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석가장주에게는 그야말로 적격이었다.
덕분에 그는 내공만 본다면 혈천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심후한 내공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혈천십삼세의 주인들 중에서 말석에 불과했다.
어마어마한 내공을 보유했으나 실제로 운용 가능한 내공이 7할을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이기(異氣)를 흡수한 탓에 완벽하게 융합시킬 수 없었다.
만약 강제로 7할 이상을 운용하려고 한다면 이기들이 충돌해서 폭주할 수 있었다.
최악의 경우는 주화입마 혹은 광마(狂魔)가 될 수도 있었다.
다른 혈천의 수뇌들에게 무시를 당하면서도 참는 이유였다.
반대로 그렇기에 그에게 흡정마공을 양도한 것이기도 했다.
허나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었다.
‘혼원신검을 손에 넣기 위해 뭔가를 꾸미려는 거구나.’
혼원신검을 노리는 것은 자신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흡정혈왕이 더욱 혈안이 되었을 것이다.
검 자체만 본다면 혼원신검보다 승사검이 더 뛰어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흡정혈왕은 승사검을 제물로 혼원신검을 낚으려고 한다.
혼원신검에 숨겨진 무공 때문이다.
혼원검결? 정확히는 혼원신공(混元神功)이었다. 혼원검결은 혼원신공에 포함된 검결이었다.
축기 속도와 양이 제법 뛰어나지만, 신공절학 중에서는 대단한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공의 안정성은 최고 수준이었다. 웬만해서는 주화입마에 빠지지 않았다.
허나 흡정혈왕이 혈안이 될 거라 생각한 이유는 혼원신공의 또 다른 효능 때문이다.
그건 바로 융합력이었다.
혼원신공은 오래전에 실전되었다고 알려진 전설의 북명신공, 조화신공과 함께 이기의 융합이 가능했다.
이기의 충돌로 내공 운용을 7할까지만 가능한 흡정혈왕에게는 최고의 무공인 셈이었다. 만약 흡정혈왕이 혼원신공을 익힌다면 혈천 내의 판세가 많이 바뀔 것이다.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