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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39화 (39/314)

39화.

“돈은 귀신도 부리는 법. 아깝지만… 그걸 손에 넣으려면 어쩔 수 없지. 흑점에 청부해.”

흑점. 3대 정보집단의 하나이자 세상의 모든 것을 사고파는 무서운 집단이었다.

흑점에 청부해서 고수들을 수배할 생각이었다.

그는 석 호법. 혈천십삼세 중 한 세력의 주인이었다.

같은 십삼세도 모르게 은밀하게 힘을 키우고 있던 그였다. 그 정화가 바로 삼당(三堂)이었다. 허나 삼당만으로는 혈천심삽세를 누를 수 없었다.

즉, 정예고수 집단만이 아니라 절대고수의 존재가 필요했다.

혈천십삼세의 주인들과 겨눌 수 있는 절대고수가.

물론 석 호법 역시 혈천십삼세의 주인이었다. 그의 무위 역시 대단했다.

하지만 확실하게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 오래전부터 찾던 물건이 있었다.

‘이런 모험을 할 생각은 없었는데, 어쩔 수 없지. 나와 본가의 입지를 위해서 그게 꼭 필요하니까. 게다가 그가 도와준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

그런데 손에 넣기 직전에 놓치고 말았다. 자신보다 먼저 손에 놓은 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의 그라면 진주언가에 들어간 보물에 손을 대는 위험한 짓을 벌이지 않는다.

자칫 숨기고 있는 비밀이 드러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때를 기다릴 줄 알았다. 탐욕만큼이나 끈기 역시 갖춘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평소와 다른 위험한 결정을 했다.

상처 입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 그를 몰아세운 다른 자들을 발아래 두기 위해서 선택한 일이었다.

결정적으로 황도의 끈을 잃었기에 새로운 공적이 필요하므로 어쩔 수 없었다. 위험하다고 해도 강행할 수밖에 없었다.

“기필코 손에 넣고 말겠어. 기필코!”

* * *

“…다음. 명부에 이름을 적으시고, 선물은 이리 주십시오.”

수십 아니, 수백의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그들은 진주언가에 방문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자들이었다.

명문 중에 명문이자, 하북성 남부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는 진주언가였다.

그들에게 잘 보이려는 자는 많다. 허나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당연한 일이었다. 오늘이 진주언가주인 권군의 고희연이 있는 날이었으니까.

권군에게 얼굴 도장을 찍으려는 자들에게는 무조건 참석해야 하는 날이었다.

몇몇 마차는 줄을 서지 않고 그대로 진주언가 안으로 들어갔다.

이를 보며 눈을 찌푸린 자들도 있었으나 감히 불만을 토해내지 못했다. 마차에 달린 깃발을 봤기 때문이다.

‘산동악가와 하북팽가군. …과연 진주언가구나.’

다른 사람도 아닌 권군의 고희연이었다. 무림세가들이 축하객을 보내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출입이 가능했다. 그게 위명이며 권세라는 것이다.

그때 두 사내의 차례가 되었다. 진주언가의 무사는 명가답게 예를 잃지 않았으나 대수롭게 여기지도 않았다.

너무 어린 소년과 청년이기 때문이다.

“…다음. 명부에 이름을 적으시고, 선물은 이리 주십시오.”

“예.”

소년은 선물을 전하고, 명부에 이름을 적었다.

선물을 건네받은 무사는 별 감흥이 없었다. 별로 대단한 선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눈이 커졌다. 소년이 적은 이름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내, 내각대학사인 문 대인의 자제이십니까!”

“예. 문태규라고 합니다. 아버님을 대신해 언 어르신의 고희연에 방문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리고 제 의형이십니다.”

“이현성입니다.”

그들은 얼마 전 북경을 떠난 이현성과 문태규였다.

두 사람의 신분을 확인한 무사는 당황했다. 비록 무림세가 출신은 아니지만, 무려 내각대학사의 자제였다.

게다가 총관으로부터 특명이 내려왔다.

동문수학하던 친우의 아들이 방문할 것이니 맞이하는데 소홀함이 있어선 아니 된다는 말이었다.

당연히 마차를 타고 곧장 올 줄 알았지, 설마 이렇게 줄을 서서 기다릴 줄은 몰랐다.

덕분에 무척 당혹스러웠다.

“아, 안내하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이 진주언가 무사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너무 놀란 무사가 자신도 모르게 큰소리로 말했기 때문이다.

“내각대학사라면 높으신 분 아닌가?”

“그렇게 알고 있소만.”

“아니, 그런 높으신 분의 자제께서 우리처럼 줄을 서시다니…….”

“역시 대학사님이시네. 자제분께서도 겸양하신 것을 보니…….”

평범한 민초들은 관직의 이름을 알 리 없었다. 하지만 이곳이 비록 황도는 아니지만 하북성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각대학사란 직위를 아는 사람이 없지 않았다. 그런 고관의 자제가 자신들과 함께 줄을 섰다는 것에 무척이나 놀란 듯싶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보통 지체 높은 자들은 자신들처럼 줄을 서려고 하지 않는다. 실제로 조금 전 마차를 타고 들어간 자들은 모두 권력자들이 아닌가.

덕분에 내각대학사의 자제, 문태규의 방문은 빠르게 퍼졌다.

* * *

“소질 문태규가 숙부님을 뵙습니다.”

중년 사내가 문태규를 찾아왔다. 그는 진주언가의 총관이자 권군의 차남인 언중벽이었다. 내각대학사인 문종학과 같은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은 동문이기도 했다.

“허허. 와주어서 고맙구나.”

“아버님께서 직접 오고 싶으셨으나 사정이 있으셔서…….”

“그 친구가 바쁜 걸 알고 있으니 미안해할 필요는 없단다.”

가주의 고희연이었다. 그런 오늘 제일 바쁜 사람은 당사자가 아닌 총관인 언중벽이었다. 그런 그도 부족한 시간을 쪼개서 방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문수학한 친우의 아들이 방문했다. 그것도 황실의 실세인 내각대학사가 된 친우의 아들이었다.

아무리 바빠도 얼굴을 비추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친군 누군가?”

“아, 숙부님. 제 의형이십니다. 저를 위해서 함께 오셨습니다.”

“이현성입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만나서 반갑네.”

황도에서는 제법 유명인사였지만, 하북 남부에 있는 진주언가까지는 그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는지 이현성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언중벽 역시 무공을 익혔으나 이현성의 실력을 가늠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이현성이 대단한 고수란 사실을 간파하지 못한 탓이었다.

이현성으로서는 쓸데없는 주목을 받지 않아도 되기에 오히려 나았다.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자리를 오래 비울 수 없구나.”

“아, 저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미안하구나. 그럼…….”

오늘같이 바쁜 날 총관이 자리를 오래 비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이렇게 자신을 직접 환대한 것만으로도 언중벽이 무리했다는 것을 알기에 문태규는 이해했다.

그렇게 언중벽이 돌아간 후 술상이 들어왔다.

진주언가가 무림세가인 만큼 축하객의 상당수가 무인들이었다.

감히 권군의 고희연에서 소란을 피울 자는 없으나 혹시 모를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 두 사람의 술상은 그들의 객실로 내온 것이다.

두 사람 역시 북적거리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 아닌 만큼 오히려 바라던 바였다.

“제법 신경을 쓴 것 같구나. 너는 한잔할 테냐?”

“으음… 예! 저도 한 잔 주세요!”

아직 술을 마셔본 적이 없는 문태규였다. 나이가 어리다는 점도 있으나 학문을 쌓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지학을 넘었다. 술을 배우기에 충분한 나이였다. 한 번도 술을 마셔본 적이 없던 문태규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술을 받았다.

“자~ 한잔하자꾸나.”

“예. 형님!”

술을 한 모금 마신 문태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리곤 컥컥거렸다.

“우… 왜 이렇게 써! 이걸 왜 마시는 거예요!”

“하하하!! 그렇구나. 아직 네 입에는 맞지 않나 보구나.”

“형님은 괜찮으세요?”

문태규의 물음에 이현성은 미소를 짓곤 한잔 더 마셨다. 그 역시 술을 자주 마시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직 어린 문태규와 달리 술을 참맛을 알았다.

육체적인 나이는 문태규보다 고작 세살 많았으나, 다사다난한 일생을 지내온 그였기에 이런 차이를 보일 수 있었다.

“아무래도 넌 차를 마시는 게 낫겠구나.”

“우… 그러는 게 나을 것 같네요.”

언중벽이 문태규를 생각해서 독하지 않은 명주를 내어준 것이지만, 예정과 달리 이현성의 입만 호강시켰다.

딱히 술을 마시지 않아도 차와 음식 역시 매우 훌륭했기에 문태규로서는 불만스러운 점이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천천히 시간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예상치 못한 손님을 맞이하게 되었다.

“괜찮다면 실례를 해도 되겠소?”

“누구십니까?”

문을 열자 이십 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청년이 서 있었다. 학사의(學士衣)를 입고 있었으나 검을 소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경계심을 숨길 수 없었다.

이에 그는 머쓱해하며 포권을 취했다.

“제갈세가에서 온 제갈현도라고 하오.”

“아, 제갈세가 분이셨군요. 문태규라고 합니다.”

“…이현성입니다.”

그제야 문태규는 경계심을 거둘 수 있었다.

그는 오대세가의 한곳이자 지자들의 가문으로 유명한 제갈세가의 혈족이었다.

제갈세가는 무림세가였지만, 학자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가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문태규 역시 알고 있었다.

경계심을 거둔 문태규와 달리 이현성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천성검(天星劍) 제갈현도… 그를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이현성이 기분이 묘한 것은 당연했다. 그가 제갈윤호의 장손이기 때문이다.

제갈윤호. 제갈세가의 태상가주이자, 추후 창설될 무림맹의 총군사였다.

그리고 이현성 아니, 혈영살객의 마지막 암살 대상이기도 했다.

사실 이현성은 제갈윤호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그의 암살 실패로 죽었으나 자신의 죽음은 그 때문이 아니었다. 혈검살객(血劍殺客) 혁련후의 음모 때문임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하지만 제갈윤호의 손자를 만났다는 사실에 아무런 감흥이 없을 수는 없었다.

애초 살수로서 그런 감정을 가질 자격도 없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 이름 높은 제갈세가 분을 갑자기 만나 뵙게 되어서…….”

“본가가 유명하긴 하나 저는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니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명문의 후예라고 거들먹거리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허나 이게 그의 진짜 모습인지, 내각대학사의 자제가 있는 앞이라서 가식을 떠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사실 제갈현도는 범부(凡夫)가 아니었다. 제갈세가 혈족답게 뛰어난 오성과 타고난 무재(武才)를 가지고 있었다.

아직은 아니지만 십 년 후에는 천성검이란 별호를 가진 절정검수가 된다.

결코 가볍게 볼 인물이 아니었다.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내색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제갈세가의 분이 이곳은 어인 일이신가요?”

“아, 평소 청학(淸鶴) 선생님을 흠모했습니다. 그분을 뵐 수 없는 것이 아쉽지만, 그분의 자제분을 뵐 기회라… 예가 아님을 알지만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실례가 아니라면 합석해도 되겠습니까?”

청학은 문종학의 자(字)였다.

그의 청렴함과 고고함은 젊은 시절부터 유명했다. 그로 인해 불리게 된 자였다.

문태규는 이현성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거절할 명분이 없기에 이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제갈현도는 안 보는 척하면서도 이현성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그저 동행이라 생각했는데, 자신의 합석을 승낙하기 전에 문태규가 이현성의 허락을 받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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