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즉, 만금전장과 만금충의 장원 등에 숨겨진 것이 아니라면 타 전장에 보관 중일 수 있었다.
보통은 전장의 금고를 열 수 없으나 황명을 내세운 금의위에 협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만금충의 이중장부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등하불명이라고 만금전장에 숨겨져 있을지 몰라.’
가장 먼저 그리고 집요한 수색을 당할 곳은 만금전장이었다.
그렇기에 일부러 만금전장 안의 모종의 장소에 숨겼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이현성의 생각이었다.
‘음? 누구지?’
쑥대밭이 된 만금전장에 숨어든 자들이 있었다.
만여해를 포함해 만금전장의 식솔들은 심문을 받고 있기에 이곳은 텅텅 비어 있어야 정상이었다.
그렇기에 갑작스러운 기척은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이현성은 화급하게 삼라만상으로 자신을 숨겼다.
“그것을 회수할 때까지 누구도 접근하지 못 하게 하라.”
“존명!”
한두 명이 아닌 열이나 되었다. 하나같이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현성은 그들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동창?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군.’
보통 사람은 음양의 기운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럼에도 사내는 양기가, 여인은 음기가 조금 더 강했다. 무림인의 경우는 그게 더 심했다.
도가의 신공 중에는 음양의 조화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사내는 양강(陽剛)의 무공을 익히고, 여인은 음한(陰寒) 무공을 익힌다.
물론 사내 중에도 음한 무공을 익히는 경우가 있으나 흔치는 않았다.
그중 한 집단이 바로 동창이었다.
거세를 한 환관들이기에 양강의 무공보다 음한 무공이 더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살수만큼 몸놀림이 가벼운 것 역시 동창의 특성이었다.
동창의 요원들이 주변을 경계하고 있을 때, 누군가 안으로 들어갔다.
‘어쩌면 알고 있을지 모르겠구나.’
저들의 행태를 본다면 무작정 수색을 하는 느낌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현성은 저들. 정확히는 저자가 이중장부의 위치를 알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현성은 동창 요원들의 기감을 피해서 뒤를 따랐다. 그들의 기감도 대단했으나 이현성의 은신을 알아차리기에는 부족했다.
“젠장. 빨리 처리해야 해. 괜히 나에게까지 불통이 튈 수 있으니까.”
그는 만금전장을 담당하는 동창의 당두(檔頭)였다.
동창에는 일백의 당두가 존재한다. 그들은 각 실무의 책임자로 금의위 부천호급에 해당된다.
그런 그의 명령을 받고 주변에 은신한 채 주변을 경계하는 자들은 번역(番役)들이었다.
일이 잘못되면 만금전장의 담당자인 자신이 모든 것을 뒤집어쓸 수 있기에 당두는 신경이 무척이나 날카로웠다.
그는 만금장주 전속 시녀의 거처로 향했다.
알 만한 사람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녀가 만금장주의 애첩이란 사실을.
그렇기에 만금장주는 은밀하게 그녀의 거처를 자주 방문했다.
“멍청한 놈. 이곳에 대해서 우리가 모를 줄 알고 있었다니.”
만여해의 전속 시녀는 그의 애첩인 동시에 비밀창고지기였다. 빼돌린 재산은 물론 이중장부 등 중요한 물건을 숨겨둔 비밀창고의 문이 그녀의 거처에 있었다.
그녀는 만여해에게 약점이 잡혔기에 결코 그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가 이곳에 자주 방문한 것은 밀애만이 목적이 아니었던 사실을 동창은 진즉에 간파하고 있었다. 어리석은 만여해만 모르고 있을 뿐이었다.
당두는 농(籠)을 옆으로 밀었다.
“역시…….”
농이 있던 자리에 비밀통로가 나왔다. 당두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아주 은밀하게 자신의 뒤를 따르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비밀창고에 도달한 당두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허어. 대단한 놈일세. 우리의 감시를 피해 이렇게 많이 빼돌렸을 줄이야.”
은자는 아예 없었다. 금자 역시 개당 50냥에 해당되는 금원보(金元寶)로 쌓아두었다.
그리고 무기명 전표와 보석들이 가득했다.
이를 본 당두는 탐심이 번들거렸다.
“젠장. 걸리면 끝장이지.”
재화에 대한 욕망도 대단했지만, 목숨에 대한 집착이 더 심각했기에 간신히 탐심을 억눌렀다.
어차피 일만 잘 해결하면 적당한 포상이 있을 테니까.
당두는 곧 짜증을 내며 이중장부를 찾았다.
“어? 여기 있군.”
결국 만여해의 이중장부를 찾아냈다. 관리들에게 찔러준 뇌물은 물론 동창에 넘겨준 자금까지 상세히 적혀 있었다.
금의위의 손에 넘어간다면 피바람이 불 무서운 장부였다.
“그럼 이만… 컥!”
“미안하지만 이건 내가 필요해서 말이야.”
당두는 손도 못 쓰고 의식을 잃었다. 이현성은 그를 죽이지 않았다.
조금 더 확실한 증거를 남기기 위해서는 동창의 당두가 이중장부를 가진 채 체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현성은 이중장부를 확인했다.
“아깝지만… 더 이상의 흔적을 남길 순 없지.”
이곳에 쌓인 재화라면 분명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중장부에 기록이 된 재화였다.
따라서 빼돌린다면 흔적이 남는다. 그건 피해야 하는 일이었다.
재화야 북경 흑도를 장악하면 얼마든지 모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아깝지만 포기하기로 했다.
“그럼… 금의위를 끌어들여 볼까?”
* * *
“멍청한 놈들, 일을 이따위로 처리하면서 도와달라니.”
진정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권력자. 황실 십대고수의 수좌. 황제조차 섣불리 손을 댈 수 없는 괴물.
그가 바로 태태감이었다.
“곤란하게 됐어. 내 수족이 대거 잘려나갈 수 있겠어.”
태감들의 움직임이 늦었다. 태태감이 움직이기 전에 만여해의 이중장부가 금의위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기 때문이다.
태태감의 눈은 어디에든 있었다. 동창은 물론 금의위, 도찰원. 하다못해 육부에도 존재한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이중장부가 드러나기 전이라면 어떻게든 무마시켰겠지만, 지금은 아무리 그라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최소한으로 줄일 수밖에…….”
이번 일은 태태감 그의 지시로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그가 이런 작은 일에 관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허나 밑에 있는 자들은 다르다. 그러다 보니 여럿 연루가 되어 있었다.
그들이 대거 잘려 나간다면 자신 역시 운신의 폭이 줄어들 수 있었다. 그러므로 결국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이 도와줄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 제물이면 황상도 만족하겠지.”
모두를 건지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큼지막한 제물 몇을 내놓을 생각이었다.
아깝지만 더 큰 그림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해결책을 꺼낸 태태감은 심기가 불편했다.
“조만간 교육을 다시 시켜야겠어. 자리를 비울 때마다 이러면 곤란하니까.”
태태감은 칩거 중이었다. 황제의 감시 때문도 있으나 가장 큰 이유는 연공 때문이다.
황실제일고수인 태태감. 그런 그가 연공을 마칠 때면 얼마나 더 강해질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황제가 이현성의 장단에 놀아준 것도 태태감이 칩거 중일 때가, 그의 수족을 쳐낼 기회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모르는 이현성으로서는 운이 좋았다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내각대학사인 문종학의 암살미수 사건으로 인해 피바람이 분지 반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황도에는 또다시 피바람이 불었다.
* * *
“허… 역시 태태감인가.”
황제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태태감이 손을 쓸 줄은 예상하고 있었다.
기껏해야 소감(少監)과 당두급을 예상했던 것을 뛰어넘었다. 허나 이렇게 큼지막한 제물을 던져줄 줄은 몰랐다.
십이태감 두 명과 동창의 이인자인 좌첩형(左貼刑). 그 외에 고관 몇몇이 걸려들었으나 저 셋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이쯤 정리하자라…….”
태태감이 저들 셋을 내놓은 것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를 보였으니 여기서 멈춰달라는 뜻이었다.
그 이상을 원한다면 전쟁이란 의미를 담고 있었다.
태감 둘과 좌첩형이라면 태태감의 팔까지는 아니라도 다리 하나를 내놓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천천히 하자고, 짐에게는 시간이 충분하니까.”
황제의 눈이 깊어졌다. 그는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조금씩, 조금씩 황실을 갉아먹는 어둠을 지우려고 한다.
북경의 흑도를 장악하려는 이현성의 행동이 생각지 못한 황실까지 여파를 주었다.
그로 인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 황실과 연을 맺고 말았다.
은(恩)과 원(怨)을 동시에 맺게 되었다.
진주언가
“껄껄껄~ 벌써 사관(四館)을 통과한 인재가 나왔다고?”
“예. 부천주님.”
혈천의 대군사 문인윤걸. 혈천에서도 손에 꼽히는 권력자인 그답지 않게 무척이나 정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자리에 있는 자 중 그보다 못한 자가 없었다. 특히 호탕하게 웃는 노인은 이곳에 있는 십삼인 중 최상위 권력자였다.
“이름이 뭔가.”
“혁련후라고 합니다.”
“혁련후… 혹시 대호법의?”
“미력하나 노부의 손자이외다.”
혁련후. 이현성과의 악연이자 미래의 혈검살객(血劍殺客). 이번에도 그가 두각을 보이고 있었다.
정식 혈살객의 기준인 혈살사관(血殺四館)을 통과함으로써.
혁련후는 현재 오관에 입관한 상태였다. 대호법인 혁련중광의 입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자신의 뜻대로 차손이 혈살객의 수좌에 오를 가능성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이기에 다른 장로, 호법들은 심기가 불편했다. 서로 경쟁 중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장손은 혈룡대의 부대주이고, 차손은 혈살사관을 통과하다니… 역시 혁련세가로군.”
“하하… 혈룡대주가 부천주의 손자 아니오? 그에 비하면 본가는 부족하구려.”
혁련중광의 말은 엄살이 아니었다. 혈룡대주와 부대주의 차이가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크게 신경 쓰지 않던 대군사 문인윤걸의 손녀 역시 혈룡대의 부대주 중 한 명이었다.
그렇기에 혁련중광으로서는 완전히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쁘지도 않았다.
“그보다 비보(悲報)도 있었다고 들었소.”
“…황도의 끈이 잘렸다고 합니다.”
부천주와 대군사의 말에 한 중년인이 이를 악물었다. 이는 그의 실책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협력자를 물색 중입니다.”
“석 호법. 그대의 역할이 중하네.”
“…죄송합니다. 부천주님.”
중년인은 굴욕스럽게도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결코 남에게 고개를 숙일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허나 이곳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보다 못한 자는 없으며 임무를 실패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혈천십삼세(血天十三勢).
혈천주 아래에서 혈천을 지배하는 열세 집단이었다.
이 자리에 있는 십삼인(十三人)은 혈천십삼세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은 각자 천하 십삼성(天下十三省)의 하나씩을 맡고 있었다.
그중 하북성을 담당하는 자가 석 호법이었다.
석 호법의 임무는 하북성에 혈천의 그림자를 심는 것과 황실의 동향을 감시 및 파악하는 것이다.
다만 황도에 직접적으로 세력을 심는다면 황실의 눈에 발각될 수 있기에 관리들을 통해서 감시하고 있었다.
하필이면 여러 사건에 연루되어서 석 호법이 은밀하게 선을 대었던 관리들이 잘려 나갔다.
혈천십삼세에서도 말석인 그의 입장은 더욱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언제까지 나를 그리고 본가를 돈줄 취급할 수 있나 보자.’
혈천십삼세는 각자의 역할이 있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