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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36화 (36/314)

36화.

정확히는 문종학이 내각대학사가 된 이후였다.

청렴하고 공명정대한 그가 육부 위에 오르자 감히 예전과 같은 부정을 저지를 수 없었다.

물론 아직 힘이 부족하기에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니지만, 변화가 생긴 것은 사실이었다.

“만금전장의 뒤에 그가 있었지?”

“예. 폐하.”

황도에 염왕채를 운영하는 전장은 하나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현성이 겨눈 곳은 바로 만금전장이었다.

한 중년인이 황제의 앞에 부복하고 있었다. 천위령주가 해임되면서 새롭게 천위령을 맡게 된 인물이었다.

전전대 천위령주가 순직한 후 어쩔 수 없이 부령주 중 한 명이 천위령을 맡았다.

무위는 물론 다방면에 실력이 있었기에 천위령을 맡겼건만, 실수가 잦았다. 게다가 천위령주가 가져서 안 되는 탐욕까지 들켰다.

결국 황제는 무위는 손색이 있으나 일 처리가 뛰어난 또 다른 부령주에게 천위령을 맡겼다.

십할 만족스럽지는 않았으나 전임 천위령주와 같은 실수는 범하지 않았다.

“자네가 보기에는 어떤가? 어디까지 엮어낼 수 있을 것 같나?”

“신(臣)은 폐하의 의지를 전할 뿐이옵니다.”

“껄껄걸… 좋은 자세일세. 허나 그렇다고 해도 말해보게.”

“신의 졸견(拙見)으로는 만금전장을 흔드는 정도에서 그칠 겁니다.”

천위령주의 대답에 황제는 피식 웃었다. 예상한 대답이기 때문이다.

황제가 나직하게 말했다.

“그… 아니, 동창의 방해공작 때문인가?”

“신의 졸견으로는 그렇사옵니다.”

황제는 만금전장이 동창의 비밀사업체 중 하나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동창의 특성상 비밀리에 소요되어야 하는 자금이 필요한 것을 알기에 묵인하고 있을 뿐이었다.

허나 그것이 변질되어서 사욕을 챙기는 창구가 되었다.

실제로 동창 아니, 태감들의 주머니에 들어가거나 고관들에게 전해지는 뇌물로 사용되고 있었다. 태반은 흘러가면 안 되는 곳에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리하지 않는 것은 타초경사(打草驚蛇)의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손을 이용하는 거라면 말이 다르다.

“짐이 조금 도움을 준다면?”

“…동창 내에 있는 끈을 잘라낼 수 있습니다.”

황제는 천위령주의 대답이 마음에 드는지 미소를 지었다.

전임과 달리 당대 령주는 가정이 아닌 확언을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게 이루어졌을 때 이야기다. 확언하고 결과가 실패라면 황제는 큰 실망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황제의 실망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걸 알면서도 령주는 확언했다.

“좋군. 금의위 도독(都督)과 도찰원 좌도어사(左都御司) 그리고 호부상서를 들라하라.”

“존명!”

천위령주는 황제의 명령을 받고 사라졌다.

“한번 날뛰어봐라. 한 마리의 미꾸라지가 될지, 이무기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이현성은 자신도 모르게 황제의 관심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황제 역시 간과한 것이 있었다.

이무기가 여의주를 형성하면 용이 되어서 승천한다는 사실을.

* * *

“어찌할 게요!”

“끙… 곤란하게 되었소.”

행정권을 가진 육부, 감찰권을 가진 도찰원, 사법권을 가진 금의위조차 손을 댈 수 없는 황실의 숨은 실력자들. 그들이 바로 환관들이었다.

정확히는 십이태감. 열두감의 수장들이었다.

금의위와 함께 황제의 힘을 대표하는 동창. 그런 동창의 수장인 제독동창의 또 다른 명칭은 바로 동창장인태감(東廠掌印太監).

환관 서열로 사례감장인태감(司禮監掌印太監)의 다음이었다.

즉, 제독동창만은 못해도 그들의 영향력은 대단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만큼 환관 조직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태감 중 몇몇이 은밀히 회동을 가졌다.

“제독동창이 도와준다면 잘 피할 수 있거늘…….”

“그자는 동족임에도 어찌 그리도 유별난지… 에잉~”

사내도 아니고, 여인도 아닌 존재가 바로 환관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환관들은 서로를 동족이라 칭했다. 게다가 동족애가 무척이나 강했다.

차별 속에 의지할 것은 오직 자신들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황조가 바뀌어도 환관 조직은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그런데 당대 제독동창은 황제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했다. 그로 인해 같은 환관들에게 피해가 생길 정도였다.

당대 동창은 역대 중에서도 십이태감의 입김이 가장 약했다.

물론 태감의 입김이 아예 먹히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태태감께 도움을 청하시는 것이 어떻소?”

“…이런 일로 그분께 청을 드리는 것이…….”

모든 환관의 정점에 있는 사례감장인태감. 줄여서 사례태감(司禮太監) 혹은 태태감(太太監)이라고 부른다.

같은 태감이라도 급이 다르다.

내각대학사, 금의위 도독, 제독동창도 한 수 접어주는 진정한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권력자.

어떤 면에서는 황제보다 두려운 존재가 바로 태태감이었다.

그렇기에 태감들조차 그를 언급함에 있어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허나 조용히 덮기 위해서는 그분의 도움이 필요함을 모르지 않지 않소?”

“그렇기는 하오만…….”

염왕채. 정확히는 만금전장의 일로 황제는 금의위 도독과 도찰원 좌도어사 그리고 호부상서를 움직였다.

수사, 체포, 심문 등의 특별권을 가진 금의위(錦衣衛). 감찰권을 가진 도찰원(都察院). 재정의 행정을 총괄하는 호부(戶部).

세 부서의 장을 모았다. 보다 투명하고 확실하게 파헤치라는 황제의 의지가 담긴 것이다.

고작 전장 하나 때문에 움직이기에는 과한 인사였다. 하지만 그들은 황제의 숨겨진 뜻을 알았다.

만금전장을 일벌백계(一罰百戒)함으로써, 경고를 하겠다는 황제의 의지를.

만금전장의 뒤에는 동창의 실권자가 있다.

문제는 그 돈이 동창의 운영에 사용된 것이 아닌 자신들의 호주머니까지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손 놓고 있다가는 형장의 이슬이 될 수도 있었다.

천하의 태감들이 호들갑 떨 수밖에 없었다.

“요즘 뵙기가 어렵다고 하더이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 모두 가서 뵙기를 청한다면… 그분께서도 외면하지는 않으실 거외다.”

결국 몇몇 태감들은 최후의 보루인 태태감을 은밀하게 찾아갔다.

그러는 사이 황명을 받은 금의위, 도찰원, 호부는 거칠 것이 없었다.

이참에 황제에게 자신의 능력을 피력하기 위함이었다.

* * *

“젠장.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만금충(萬金蟲)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부자는 망해도 삼 년은 간다는 말은 남의 말인지, 줄을 잘못 선 만여해는 졸지에 길바닥에 나앉았다.

그런 때에 그를 찾아온 무리가 있었다. 그리곤 하나의 제안을 했다.

쫄딱 망한 만여해로서는 거절할 수 없는 아주 매혹적인 제안이었다. 그 후 만여해는 다시 승승장구했고, 만금전장의 주인이 되었다.

만금전장은 염왕채로 많은 민초들의 고혈을 빼먹었다. 그 결과 만여해는 만금충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이토록 어마어마한 부를 손에 넣었으니까. 다시는 그때의 처참한 꼴을 당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왜 연락이 되지 않는 거야!”

만여해는 바보가 아니었다. 한번 망해봤기 때문에 눈치가 더욱 빨랐다.

자신에게 손을 내민 자들이 동창이란 사실을 진즉에 알아차렸다. 오히려 그러한 사실을 이용해서 더욱 만금전장을 키웠다.

그동안 만금전장을 운영하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들의 도움을 받아서 지금은 북경 흑도 사대세력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이번이라고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설마… 꼬리를 자르려고? 그럴 리 없어. 내가 다치면 자신들도 무사할 수 없었다는 걸 모를 리가 없어.”

금의위가 무섭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동창은 더욱 무섭다. 눈앞의 칼보다 보이지 않은 비수가 더 위험한 법이었다.

동창은 제 안위를 위해서라도 자신을 구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비상연락망을 통해서 서신을 보냈음에도 아무런 답장이 오지 않았다.

금의위의 강도 높은 심문을 버티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호부의 집요한 장부조사 역시 언젠가 허점이 드러날 수 있었다.

자신의 입이 열리기 전에 동창이 개입하지 않는다면 남은 것은 공멸뿐이었다.

“그런 거라면 나, 만여해를 너무 만만히 봤어.”

그의 눈에 광기가 번들거렸다.

만여해라고 대비책이 없지 않았다. 그 역시 여기저기 줄을 대었다.

동창이 꼬리를 자르려고 할 때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허나 그건 소용이 없었다.

금의위와 호부가 만금전장을 조사한다면 도찰원은 관리들에 대한 감찰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목표는 만금전장만이 아니었다.

그 뒤에 있는 그림자의 뿌리까지는 아닐지라도 그림자의 가지까지는 쳐내야 하기 때문에 강도 높은 조사를 실시하고 있었다.

허나 쉽지는 않았다. 중간에 동창이 워낙 꼼꼼하게 작업을 해두었기에 쉽게 꼬리가 드러나지 않았다.

덕분에 황명을 받은 세 부서는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이대로 확실한 증거들이 나오지 않는다면 잔챙이 몇몇만 엮고 끝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세 부서의 체면은 물론 황제의 신임 역시 잃게 된다.

혼자 죽지 않겠다는 만여해. 꼬리를 자르려는 동창. 그리고 공적을 내려는 세 부서.

허나 움직이는 이들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 * *

‘어디에 숨겨두었을까?’

만금전장에 은밀하게 숨어든 자가 있었다.

이미 금의위가 들이닥쳐서 2차, 3차에 걸쳐 수색을 당한 만금전장이었다.

때문에 그곳은 이미 쑥대밭이 되었다. 그렇기에 증거가 될 만한 모든 것을 쓸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중장부를 찾지 못하면 흐지부지하게 끝이 날 수도 있어.’

은밀하게 만금전장에 잠입한 인물은 바로 이현성이었다.

가슴을 베였으나 큰 부상은 아니었기에 운신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저 만약을 대비해서 아픈 척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혹시 모를 의심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만약이란 바로 동창의 시선이었다.

만금전장의 뒤에 동창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금 상황이라면 만금전장을 뒤집는 것으로 끝날 수 있었다.

물론 그것으로도 북경 흑도를 장악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동창이 다시 마수를 뻗칠 수 있었다.

‘동창이 다시 움직이면 곤란하니,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운신의 폭을 줄일 필요가 있어.’

물론 이 일로 동창이 막대한 타격을 입을 리는 없었다. 그러나 흑도에 끼치는 영향력은 줄 수 있었다.

이번 일이 빌미가 되어서 주변이 물어뜯을 테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확실하게 동창을 엮어야 한다.

‘만금충이라면 분명 이중장부를 숨겨뒀을 거야. 문제는 어디냐는 건데…….’

이중장부의 존재를 이현성만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즉, 다른 이들 역시 찾고 있었다.

황명을 받은 세 부서는 물론 동창 역시 찾고 있었다. 결정적인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금의위만 믿고 있을 수 없었던 이현성은 한 손 거들기 위해서 잠행을 시작했다.

‘만금전장만 아니라 만금충의 비밀 장원들 역시 수색 중이야.’

각 전장의 협조를 받아서 만금충의 은닉재산을 조사 중이었다. 전장은 돈을 맡기고 빌리는 장소이지만, 귀중품의 보관 역시 하고 있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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