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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35화 (35/314)

35화.

* * *

“흑흑흑…….”

“교 누이. 그만 좀 울어. 형님 못 쉬시겠어.”

뒤늦게 이현성이 쓰러졌다는 것을 알게 된 문교교는 기겁을 했다.

다행히 상처가 깊지 않아서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는 의원의 말에도 그녀는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애초 가슴을 베인 것조차 이현성의 계산대로였다. 자신이 다쳐야 효과가 더욱 크기 때문이다. 북궁성우가 절정도객이지만 이현성은 그 이상의 고수였다.

게다가 칼을 오랫동안 쥐지 않았던 북궁성우가 이현성을 베는 것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그러한 사실도 모르는 문교교는 눈물이 범벅이 될 정도로 울었다. 그런 그녀에게 이현성은 미안할 따름이었다.

“교교야. 크게 다친 건 아니니까. 그만 그치거라.”

“하지만 흑…….”

“정말 괜찮아. 그러니 뚝 그쳐. 계속 울면 머리 아파.”

이현성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의 손길에 문교교는 얼굴을 붉혔다.

머리를 쓰다듬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특히 남녀라면 더더욱 그랬다.

이현성은 귀여운 여동생이라고 생각했기에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이지만, 문교교는 달랐던 것이다.

이를 그냥 넘어갈 문태규가 아니었다.

“어라? 얼굴이 붉어졌네? 그러다가 피나는 거 아니야?”

“규, 너~어!”

동생의 장난 덕분에 기운을 차린 듯한 문교교를 보며 이현성은 웃음이 나왔다.

“하하하! 이러니 교교 같구나. 나는 괜찮으니, 그만 돌아가거라.”

“…예. 오라버니.”

이현성의 말에 다시 얼굴이 붉어진 문교교.

얼굴을 푹 숙인 채,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

그녀가 돌아가자 문태규가 굳은 얼굴로 물었다.

“형님. 그보다 무슨 일입니까? 도박은 뭐고, 이 상처는 도대체…….”

“그럴 일이 좀 있었다. 신경 쓰게 해서 미안하구나.”

“그런 말이 아닙니다. 혹시 제가 도와드릴 일이 없습니까?”

아직 어리기만 한 소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성숙한 사내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16세란 나이가 결코 적지 않은 나이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었다.

“고맙구나. 네 도움이 필요하면 꼭 도움을 청할게.”

“꼭이에요!”

“그래. 그럴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성숙한 사내의 모습이 보였던 문태규. 허나 곧 다시 소년의 모습을 보였다.

오히려 그런 모습이 그에게 정을 느끼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그냥 이용하려는 마음이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가 없구나.’

문종학에게 접근한 것은 그의 배경을 등에 업고 황도에 입성하기 위함이었다.

그의 가족과 친해지려고 한 것 역시 이용하기 위함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이제는 진짜 동생들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혈천에 복수를 하기 위해서 칼을 갈고 있는 지금, 이런 감정은 사치였다. 그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은 비정한 살수이니까.

하지만 그 이전에 인간이었다.

뜨거운 심장이 뛰고 있는, 뜨거운 피가 흐르는 인간.

차가운 이성, 그것은 잊으라고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나도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더더욱 칼을 갈고 있었다.

소중한 사람들이 더 이상 상처 입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이현성이 몸을 추스르고 있을 때,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교두님, 구문제독부의 북궁 공자께서 뵙기를 청합니다. 어찌할까요?”

금의위사 중 한사람이 이현성을 찾아왔다. 북궁무한이 찾아왔다는 전갈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황제의 명으로 내각대학사와 그의 식솔을 지키고 있는 금의위.

내각대학사의 은공인 빈객이 목숨의 위협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경계가 한층 강화되었다.

특히 도주한 일락방주가 구문제독의 혈육이었다.

오래전에 연을 끊었고, 북궁세가가 정보를 차단했기에 아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하지만 금의위는 황제의 검이었다. 이런 중요한 정보를 몰라선 안 된다.

백호급 이상의 금의위는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러다 보니 금의위사는 북궁무한의 방문에 조심스러웠다.

허나 이현성은 오히려 기다리고 있던 바였다.

“만나보겠네.”

이현성의 허락이 떨어지자, 잠시 후 북궁무한이 굳은 얼굴로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으나 금의위사들이 이현성의 별채를 포위했다.

만약을 대비해서였다. 그걸 아는지 북궁무한의 얼굴에 씁쓸함이 스쳐 지나갔다.

황실의 실력자 중 한 명인 구문제독. 그의 장손이자, 북궁세가의 소가주로서 이런 대우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연을 끊었다고 해도 자신의 숙부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북궁 공자.”

“예. 오랜만에 뵙습니다. 교두님.”

북궁연의 경우는 며칠 전, 민충사에서 짧지만 인사를 나누었으나 그는 임관 준비로 최근 발길이 뜸해졌다.

그러던 차에 이렇게 좋지 않은 일로 만나게 되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진심으로 사귀어보고 싶은 사내였는데… 좀 미안하군.’

그의 신분 때문이 아니었다. 무인으로서의 재능과 인품 역시 충분히 호감을 가질 만한 사내가 바로 북궁무한이었다. 인재가 모이는 황도에서도 실력과 인품 그리고 배경까지 출중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괜찮습니다. 조금 스쳤을 뿐입니다. 며칠 후면 거동하는데 지장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보다 무슨 일이십니까?”

이현성은 알고 있으나 모른 척했다. 이 상황을 의도했다는 것을 드러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도를 모른 채 북궁무한이 사죄를 했다.

“이 교두님에게 상처를 입힌 일락방주… 그가 본…가의 사람입니다.”

“예? 일락방이 구문제독부 아니, 북궁세가에서 운영하던 도박… 아니, 사업장이었습니까!”

화들짝 놀라며 되묻는 이현성을 보며 북궁무한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그리곤 바로 해명했다. 해명하지 않는다면 가문의 명예에 먹칠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만… 일락방주가 바로 제 숙부님이십니다. 물론 오래전에 절연했기에 더 이상 본가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으나… 후… 죄송합니다.”

“그…렇군요. 허허…….”

두 사람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잠시 후 이현성이 먼저 입을 떼었다. 북궁무한이 먼저 말을 이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피라는 것이 끊으려고 한다고 끊기는 것이 아니지만… 절연한 상태라면 북궁세가의 잘못이 아닙니다.”

“…….”

이현성의 말이 비수가 되어서 북궁무한의 심장을 찔렀다. 절연했다고 진정 혈연이 끊기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돌려서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북궁무한의 귀에는 그렇게 들렸고, 이현성 역시 그런 의도를 담았다.

“북궁세가의 소가주로서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미 절연한 사람 때문에 북궁 공자께서 제게 사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운이 나빴을 뿐입니다.”

북궁무한은 더욱 마음이 불편했다. 그렇기에 온 목적을 빨리 이루고 돌아갈 생각으로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금패(金牌)와 철패(鐵牌)였다.

“이건 천하전장의 금패입니다. 이 교두님의 이름으로 사백만 냥을 넣어두었습니다. 천하전장의 모든 지부에서 인출하실 수 있을 겁니다.”

“사백만 냥…입니까? 이건 왜…….”

천하전장은 전장업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큰 전장으로, 신용과 재력을 누구나 인정하기에 많은 이들이 이용하고 있었다.

은자로 사백만 냥은 금자로 이십만 냥.

금자 십만 냥 이상 맡긴 고객에게는 금패를 지급한다.

즉, 이 금패를 가지고 간다면 모든 천하전장 지부에서 금자 이십만 냥 이내로는 언제든 찾을 수 있단 뜻이었다.

문제는 사백만 냥을 자신에게 주는 이유였다.

“도박장의 운영은 불법이 아니나 일락방 수뇌들의 심문 결과 운영방식이 불법적이었다는 결과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에 일락방의 재산을 강제처분 중입니다. 그런데 일락방주가 본가의 핏줄이기에 그 재산이 본가로 전해질 예정입니다. 물론 본가는 거부했기에 국고로 환수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그중 이백만 냥은 이 교두님의 것임이 밝혀져서 준비했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사백만 냥이라시면…….”

“비록 절연했다고 해도 본가의 잘못이 없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머지 이백만 냥은 본가의 사죄입니다. 돈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지만… 죄송합니다.”

일견 북궁세가가 공명정대하게 일을 처리했다고 볼 수 있었다. 절연한 혈육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는 것을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허나 그 이면을 본다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일락방에 의해 피해를 본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이들에 대한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고 이현성에게만 보상을 했다. 그가 내각대학사의 귀빈이고, 황도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는 기인이기 때문이다.

즉, 속 보이는 대처일 뿐이었다.

“그리고 이 철패는 본가를 상징하는 신패입니다. 본가가 감당할 수 있고,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청에 한해서 한 가지를 들어드리겠습니다.”

“이러실 필요까지는 없는데… 그래도 제가 받는 것이 귀가의 마음이 편하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황실의 실력자 구문제독. 그의 가문이 빚을 졌다.

그리고 한가지의 소원을 이루어줄 수 있는 신패.

사용하기에 따라서 이백만 냥은 하찮게 만들 수 있는 가치를 가졌다. 돈만으로 보상을 끝낸다면 헐뜯는 이들이 있을 수 있기에 준비한 것이다.

예상치 못한 보상에 이현성은 놀라면서도 동시에 흐뭇했다. 그때 북궁무한이 나직하게 말했다.

“궁금한 것이 있는데, 한가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십시오. 공자.”

“도박장에 가신 이유를 여쭙고 싶습니다. 이 교두께서 도박을 즐기시는 것으로 보이지 않아서… 실례인 줄 알면서도 여쭙니다.”

예상하고 있던 질문이었다. 대답 역시 준비해두었던 이현성은 어렵지 않게 대처할 수 있었다.

“우연히 알게 되었으나… 염왕채로 인해 피눈물을 흘리는 민초들이 많더군요. 다행히 황제 폐하께서 제게 하사하신 재물이 있어서 그들에게 작은 도움을 줄 수 있었습니다. 허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더군요. 안타깝게도 제가 돈을 구할 곳이 없어서 고민하던 중 일락방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운이 좋았는지 돈을 좀 딸 수 있었지요.”

“그…렇군요.”

실제로 이현성은 쾌활림의 도움을 받아서 염왕채를 빌린 민초들을 도와주었다. 이런 질문을 예상했기에 증거를 남기기 위함이었다.

설사 북궁무한이 묻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 사실이 퍼질 수 있게 조치해놨다. 이현성은 쇄기를 박았다.

“사백만 냥이라면 더 많은 민초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두에게 도움을 줄 수는 없겠지만…….”

“…어떤 곳이기에 많은 이들에게 절망을 주고 있는 겁니까?”

황제가 하사한 재물 사백만 냥까지 쏟아붓고도 부족할 정도라면 도대체 규모가 얼마나 된다는 말일까?

북궁무한의 물음에 이현성은 눈을 빛냈다. 그리고 나직하게 말했다.

“…만금전장입니다.”

* * *

“재미있군. 이 정도까지 재미있는 짓을 꾸밀 줄은 몰랐는데?”

황제는 상소들을 살피며 가식 없이 미소 지었다.

상소 중 상당수가 염왕채로 인해 고통 받는 민초들에 대한 내용이었다. 예전 같아서는 올라올 수 없는 상소였다. 허나 우통정이 새롭게 임명되면서 그전에는 올라오지 않았던 상소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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