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 * *
“마, 말도 안 돼!!”
도광은 절규했다. 수없이 많은 도박을 했으나 오늘처럼 처참한 적은 처음이었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의 돈을 잃은 일락방주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을 것이다.
“오늘은 이쯤 하겠소.”
“그, 그게 무슨 말이오! 이제 시작이오!”
“도박을 하고 말고는 본인의 의지요. 이곳은 돈을 따면 안 되는 도박장이었소?”
“그, 그건 아니지만…….”
도박이란 돈을 따기도 하고 잃기도 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돈을 땄다고 못 가게 하면 누가 그런 곳에서 도박을 하겠는가. 더군다나 이곳이 북경 최대 도박장이라고 하지만 유일한 도박장은 아니었다.
청년은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 제발 한 번만 더…….”
“판돈은 있으시오?”
“무, 물론이오.”
“그만! 총관, 방주님의 명이오. 따라오시오.”
건장한 사내들의 등장에 도광은 사색이 되었다. 저들의 말이 무슨 뜻인지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는 힘이 풀렸는지 주저앉고 말았다.
“사, 살려주게. 제, 제발…….”
“그건 방주님께서 정하실 일이오. 저항하지 마시오.”
칼을 쥔 사내들을 보며 도광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청년은 나직하게 말했다.
“더 이상 못 놀겠군. 전표로 바꿔주시오.”
“잠깐! 자리에 앉아.”
그때 한 중년 사내가 나타났다. 그를 본 좌중은 몸이 굳어졌다.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일락방주(一樂幇主) 도귀(賭鬼) 북궁성우.
북경 흑도의 무법자인 그의 등장은 모두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가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귀하가 누구인지 모르나 본인에게 강요할 수는 없소.”
“앉…아.”
북궁성우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으나 살기를 뿜어냈기에 모두 사색이 되었다.
결국 청년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곤 한숨을 쉬었다.
“정말 재미없는 곳이구려.”
“…패 돌려.”
“…흐흐흐. 연환검이다!”
청년과 북궁성우의 도박은 흥미진진했다.
두 사람은 세 판을 겨루었다. 북궁성우가 먼저 일승을 했고, 그 다음은 청년이 일승했다.
같은 일승이지만 돈을 딴 쪽은 청년 쪽이었다. 첫판에 청년이 잃은 돈보다 둘째판에서 번 돈이 더 많기 때문이다. 광분한 북궁성우는 세 번째 판에 돈을 어마어마하게 걸었다. 결국 판돈이 이백만 냥을 넘어섰다. 그야말로 엄청난 도박이었다.
“허, 헉!!”
“여, 연환검이라고?!”
관중들은 경악했다. 검패에서도 매우 높은 패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로써 마지막 판은 북궁성우의 승리였다. 그리고 청년은 패가망신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딴 돈으로는 판돈을 모두 갚지 못할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빚은 내 도박장에서 죽을 때까지 갚으면…….”
“…….”
북궁성우는 기분이 좋아졌다. 자신의 실력을 다시 한번 증명한 것은 물론, 이런 실력 있는 도수를 손에 넣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청년은 입을 다물고 패를 펼쳤다. 그 순간 정적이 흘렀다.
감탄은 물론 한숨조차 나오지 않았다. 너무 놀라 몸이 굳어졌기 때문이다. 북궁성우 역시 입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눈을 의심했다.
그때 누군가 입을 떼었다.
“오, 오천왕!!”
“와!!!”
“난 처음 봤어, 오천왕이 나온 걸!!”
놀랍게도 청년의 패는 오천왕. 검패 최고의 패였다.
연환검도 높지만 오천왕보다는 아니었다.
이로써 청년이 일락방에서 최고로 많은 돈을 따게 된 셈이었다. 그때 청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표로 바꿔주시오.”
“…앉…아. 앉아!!”
쾅!
북궁성우가 탁자를 주먹을 내리쳤다. 그로 인해 탁자가 박살이 났다.
이런 삭막한 분위기에 환호하던 관중들은 기겁했고, 급기야 딸꾹질을 하는 자까지 나왔다.
청년은 처음으로 눈썹을 찌푸렸다.
“돈은 필요 없소. 그리고 사람들이 더 이상 이곳에서 놀지 않겠군. 북경 최대도박장이라고 해서 기대를 했는데… 수준이 이토록 낮을 줄이야.”
“…….”
청년의 독설에 좌중은 모두 사색이 되었다. 그 누구도 일락방주인 북궁성우에게 이렇게 말한 자가 없었다.
죽여달라는 말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앉아!”
“…싫다면?”
창! 창! 창!
청년의 말에 주위를 포위한 일락방도들이 칼을 뽑았다. 허나 청년은 전혀 주눅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헛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저급한 도박장이 아직까지 운영된 것이 신기하구려.”
“감히!!”
일락방도 중 한 명이 분을 못 참고 칼을 휘둘렀다. 곧 이곳에 청년의 피가 뿌려질 거라 예상한 좌중은 눈을 감았다.
“으아악!!”
“미, 미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관중들은 돌아가지 않고 지금까지 구경한 자신들을 욕했다. 자신들의 목숨이 무사할 수 있을 거라 자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도박 수준도 낮더니, 칼 쓰는 수준은 더 낮군.”
“네…놈. 누구냐!”
“그게 중요한가? 싸우고 싶으면 덤벼.”
놀랍게도 청년은 자신을 공격한 일락방도의 칼을 피했다. 그것으로 부족해서 제압하고 칼을 빼앗았다.
일락방도들은 청년을 향해 달려들었다.
챙! 챙!
“으악!!”
“컥!”
그야말로 추풍낙엽이었다.
일락방도 중에는 북궁성우와 함께 퇴직한 병사들도 있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실력자들인데, 청년의 상대가 아니었다. 그때 청년이 나직하게 말했다.
“여긴 위험하니, 모두 돌아가시오.”
“나, 나는 이만…….”
“그, 그럼…….”
“모두… 멈춰. 움직이는 새끼는 황천길로 보내주겠어.”
차가운 북궁성우의 말에 도망치려던 관중들이 걸음을 멈추었다. 이곳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바로 북궁성우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를 보며 청년은 권태롭다는 듯 나직하게 말했다.
“참 귀찮은 자로군.”
“건방진 새끼! 죽여주마!!”
‘미친! 고작 무한이 녀석과 비슷한 나이의 애송이가 이렇게 강하다니!’
북궁성우는 경악했다.
자신이 누군가. 지금은 쫓겨났으나 북궁세가의 직계였다. 지금은 도귀(賭鬼)라고 불리지만 과거에는 도귀(刀鬼)라고 불린 절정도객이었다. 그는 평생 부친에게 형인 북궁성후와 비교를 당하며 자라왔다.
그래서 삐뚤어질 대로 삐뚤어진 그는 검가(劍家) 출신임에도 일부러 칼(刀)을 익혔다.
부친에게 가장 크게 눈 밖에 난 계기이기도 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귀(刀鬼)라 불릴 정도로 도법에 능했다. 그런 자신이 고작해야 조카뻘인 청년을 제압하지 못하니 짜증스러웠다.
쾅! 쾅! 쾅!!
두 사람의 싸움으로 도박장은 이미 반파되었다.
‘슬슬 올 때가 되었는데…….’
호각지세인 모습과 달리 청년은 절정도객인 북궁성우를 상대하면서도 딴생각을 할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그렇게 그들의 싸움이 절정에 달했을 때였다.
‘지금이다.’
북궁성우의 칼이 청년의 가슴을 베었다.
“으아악!!”
“하하하!! 죽여 주…….”
“그만!!”
북궁성우가 쓰러진 청년의 목을 베려고 할 때, 한 무리의 무사들이 들이닥쳤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북궁성우는 짜증이 났다. 가뜩이나 짜증스러운데 방해하는 자들이 나타났으니 그 성격에 오죽하겠는가.
그의 신분은 흑도의 일락방주. 허나 구문제독의 차남이기도 했다. 황도에서 누가 감히 위협할 수 있겠는가.
허나 북궁성우는 당황했다. 이곳에 있어선 안 되는 자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금의위가 이곳에는 왜…….”
“이놈!! 감히 대학사님의 귀빈을 해하려고 하다니!!”
“……!!”
일락방에 들이닥친 자들은 놀랍게도 금의위였다. 그것도 내각대학사인 문종학의 장원을 지키는 금의위들이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북궁성우의 칼에 쓰러진 청년이 바로 이현성이었던 것이다.
아무도 몰랐다. 순간적으로 이현성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가 내렸다는 사실을.
‘계획대로군.’
두 사람의 싸움으로 도박장은 반파되었다. 그러는 사이 관중 상당수가 도망을 쳤다.
그리고 그중 한 사람이 장원에 이 사실을 전했다.
도박장 손님이 왜 그런 위험한 짓을 했을까?
그건 바로 그가 쾌활림 아니, 귀림 소속이기 때문이다.
금의위를 엮어서 구문제독부가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아무리 막 나가는 북궁성우라도,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구문제독부라도 이번 일은 결코 가볍게 무마시킬 수 없었다.
새롭게 권력의 중심에 선 내각대학사 문종학의 목숨을 구해준 은공을 죽이려고 했으니까.
그것도 돈을 땄다는 이유로 죽이려고 했다. 그러니 더욱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제, 젠장!!”
“잡아라!!”
결국 북궁성우는 도망쳤다. 금의위가 끼었다면 제 형도 도움을 줄 수 없었다.
게다가 내각대학사의 귀빈이라면 더더욱 어렵다.
결정적으로 부친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결국은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모은 모든 것을 내버려둔 채로.
금의위는 그의 뒤를 쫓았으나 썩어도 준치라고 절정고수인 북궁성우를 잡는 것은 불가능했다. 대신 그 자리에 있던 일락방의 수뇌들이 싸그리 압송되었다.
이현성, 그가 원하는 대로.
‘이제 하나 해결인가.’
만금전장
“대장로님, 제 대신 약속을 꼭 지켜주세요.”
“물론이네. 소림주. 그건 걱정 말고 뜻을 이루시게나.”
야래향은 귀왕야가의 비역(秘域)으로 향했다. 귀왕인을 다루는 비법인 귀왕진결을 익히기 위함이었다.
원래는 당대 귀왕이 후계자에게 직접 전수해야 하지만, 당대는 귀왕이 타계한 덕분에 비장의 수단인 비역에서 홀로 배울 수밖에 없었다.
비역을 출입하기 위해서는 귀왕인과 귀왕야가의 피가 필요했다.
그렇기에 당대 귀왕만 출입이 가능한 곳이었다.
“그럼 대장로님, 저는 귀왕이 되어서 돌아올게요.”
“기대하고 있겠소. 소림주 아니, 귀왕.”
쾌활림주이자 귀림의 대장로인 귀백(鬼伯)이 야래향을 배웅했다.
아직 귀림의 봉문이 풀리기 전이었다. 귀왕인을 되찾았으나 귀왕진결을 익히기 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가 출도했을 때, 귀림은 다시 세상에 그 이름을 드러낼 것이다. 그렇게 야래향이 귀역 안으로 들어가자 귀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대단하군. …설마 그런 방법을 쓸 줄이야.”
야래향의 말대로 귀백은 약속을 지킬 생각이었다.
약속도 약속이지만, 그에게서 왠지 모를 기대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귀림만 부활한다면 북경 살문은 쉽게 정리할 수 있었다. 쾌활림 역시 이현성에게 넘길 수 있게 준비 중이었다.
그렇기에 일락방과 만금전장만 해결되면 된다.
그런데 이현성은 기묘한 계책으로 일락방을 무너트렸다. 그런 그를 보며 두근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문제는 만금전장인데… 과연 이번에는 어떤 수를 쓸지 궁금하군.”
일락방과 만금전장은 상황이 다르다.
북궁성우야 버린 자식이고, 뚜렷하게 잘못을 했으니 구문제독부가 움직이지 못했으나 만금전장은 다르다.
동창(東廠). 그것도 상당한 실력자가 뒤에 있었다.
하지만 기대가 되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락방을 무너트린 것처럼…….
이 사건의 전말을 모르는 사람들과 달리 숨겨진 진실을 알고 있는 귀백은 오랜만에 심장이 뛰었다.
그리고 동시에 생각했다. 그는 적이 되면 절대 안 될 사람이라고.
“그럼 슬슬 돌아가 볼까.”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