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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32화 (32/314)

32화.

귀림의 힘이 필요했다. 치사할지 모르지만, 돌려줄 수는 없었다.

그런 그를 향해 야래향은 단호하게 말했다.

“귀왕인을 돌려주신다면 귀림의 소림주로서, 귀인께서 원하시는 것을 들어드리겠어요. …그리고 어차피 귀인께서는 귀림을 차지할 수가 없어요.”

“귀림을 차지할 수 없다? 그게 무슨 뜻이오?”

그녀의 맥박이나 안색을 살폈을 때,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물론 뛰어난 살수는 맥박이나 안색쯤은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었다.

허나 삼라만상을 익힌 이현성을 속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특히 그보다 경지가 낮은 그녀라면 더더욱 그랬다.

“귀림의 주인. 즉, 귀왕이 되려면 귀왕인을 소유했을 뿐만 아니라 귀왕인을 다룰 수 있어야 해요. 귀인께선 귀왕인을 소유하셨을지 모르지만, 귀왕인을 다룰 방법을 모르시잖아요. 그것으로는 귀왕으로 인정받으실 수가 없어요.”

“…야 소저. 그대에게 알아내면 그만 아니오? 그대의 신분을 알아낸 것처럼…….”

움찔.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귀왕인을 다루는 비결 역시 그녀의 입을 통해 알아내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야래향은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하신 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저 역시 몰라요. 귀왕진결(鬼王眞訣)을…….”

“그럼 야 소저도 귀왕인이 소용없는 것 아니오?”

“지금은 모르지만 귀왕인을 가지고 간다면 귀왕진결을 익힐 수 있어요. 저희 야씨 가문의 혈족만 출입이 가능한 곳에 보관되어 있으니까요.”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곤란했다. 그가 북경에 온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귀왕인. 정확히는 귀림 때문이다.

귀림이라면 세력을 만들기에 큰 도움이 된다. 아니, 귀림 자체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그런데 귀림을 가질 수 없다면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이현성은 고민을 했다.

그녀의 심령을 제압한 후 귀왕진결을 빼오게 하면 된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독해질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이래선 혈천, 그들과 다를 게 없잖아.’

자신이 호인은 아니지만 혈천과 같은 악인이 될 생각은 없었다.

주인이 없는 기연을 먼저 선점하는 것과는 다르다. 원래 존재한 주인의 보물을 훔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현성은 한숨을 크게 쉬곤 귀왕인을 뺐다.

“후… 원래는 야 소저의 심령을 장악해서 귀왕진결이란 것을 빼오게 하려고 했소.”

움찔.

야래향은 움찔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절대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현성이 자신의 손에 귀왕인을 올려놓자 그제야 안도할 수 있었다.

“그럼… 왜…….”

“글쎄… 나도 모르겠소. 대신 아까 약속한 대로 날 도와줬으면 하오.”

“귀림의 소유권이 아니라면요.”

자신 있게 말하는 그녀를 보며 이현성은 장난기가 발동되었다.

“그대의 몸과 마음의 소유권은 가능하오?”

“그, 그건…….”

두근두근.

이현성의 장난에 야래향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귀여웠다.

조금 전까지의 표독스러웠던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어쩌면 생각보다 귀여운 여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피식거리곤 말을 이었다.

“농담이오. 내가 원하는 것은…….”

북경 흑도

빠드득…….

“이 녀석들… 아직도 찾지 못하다니… 혹, 무슨 일이라도… 아니, 제 한 몸은 지킬 수 있는 아이였지.”

쾌활림주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손녀와 같은 소림주가 지난밤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녀의 호위란 녀석들은 그것도 모르고 있었다. 뒤늦게 알아차려서 북경을 뒤지고 있으나 아직도 연락이 없었다.

“돌아오면 혼을 내야겠어. 하다못해 청홍쌍혼(靑紅雙魂)이라도 데려가든지. 혼자서 위험하게…….”

소림주는 무척이나 중요한 존재였다. 전대 림주의 유일한 혈육이자 귀왕야가의 유일한 혈손이기도 했다.

그런 그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쾌활림 아니, 귀림은 끝장이었다. 그런 공적인 것을 떠나 사적인 마음으로도 절대 있어선 아니 되는 일이었다.

그때였다.

“리, 림주님!!”

“총관, 무슨 일인데 그러는가?”

중년 미부가 다급하게 림주의 방에 들어왔다.

그녀는 쾌활림의 총관으로, 미색은 물론 셈이 빠르고 안목이 뛰어난 등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림주가 가장 신임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답지 않게 호들갑을 떨자 림주가 의아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아, 아가씨 아니, 소림주께서 돌아오셨습니다!”

“그 아이가? 후… 다행이군.”

사라졌던 소림주가 돌아왔다. 충분히 놀랄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무사히 돌아왔다면 총관이 이처럼 당황할 이유가 없었다. 누구보다 냉철한 그녀였기에 더욱 그랬다.

과거에는 소리장도(笑裏藏刀)라고 불린 정도로 겉으로는 미소를 짓지만 속으로 냉철함을 잃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그녀의 말은 총관이 왜 그러는지 알 수 있었다.

“혼자 오신 것이 아닙니다.”

“혼자…가 아니다? 그럼 혹시…….”

림주의 말에 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사내를 데려오셨습니다. 키가 훤칠하고 잘생긴 것이 아… 죄, 죄송합니다. 림주님.”

“아닐세. 자네라면 그럴 수 있지. 어디에 있는가?”

총관은 소림주의 유모였기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냉철한 그녀가 유일하게 푼수기를 보이는 것은 소림주와 연관 있을 때뿐이었으니까.

쾌활림주의 말에 평정심을 되찾은 총관이 말했다.

“소림주께서는 잠시 방에 옷 갈아입으시러 가셨고, 동행분께서는 방 하나를 내어드렸습니다. 그리고 림주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하셨어요. 곧 오실 겁니다. 동행분이랑…….”

“으음… 알겠네.”

총관은 환하게 미소 짓곤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림주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설마… 무슨 사고를 친 건 아니겠지.”

* * *

‘역시 귀림인가. 보통이 아니군.’

넓고 화려한 방에 덩그러니 홀로 남은 이현성은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을 뿐 감탄을 했다. 화려한 방 때문이 아니었다. 이곳에 오면서 만난 인물들 때문이다.

‘총관이라고 했던가. …특급. 그것도 상위에 속하는 특급살수였어.’

이 방을 안내해준 중년 미부. 쾌활림의 총관이라고 소개했으나 이현성은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무공을 익혔다는 사실은 한눈에 알아봤다. 그냥 익힌 수준이 아니라 절정고수였다.

게다가 그 수준이 청살당의 부당주를 능가했다. 물론 십대살수인 청살괴옹보다는 못했다. 청살괴옹은 비록 초절정에는 모르지 못했으나 한발 걸쳤을 정도로 강했다. 괜히 십대살수에 꼽히는 것이 아니었다.

이현성조차 그에게 죽을 뻔하지 않았던가.

전화위복으로 그간 소화하지 못한 포영심결과 함께 잠들었던 내공 일부를 제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 외에도 깨달은 바가 적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청살괴옹이 살아 있다고 해도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니 비록 특급살수 중에서 상위에 꼽힐 정도로 뛰어나다고 해도 총관이 이현성의 무위 아니, 무공을 익혔다는 사실 역시 눈치채지 못했다고 해서 이상한 게 아니다.

물론 소림주가 사내를 데려왔다는 사실에 흥분했기에 평소와 같은 냉철함을 잃은 탓도 있었다.

‘게다가 날 감시하는 자들 역시 하나같이 일급살수들이군. 청살당과는 수준이 다르군. 하지만 그뿐이다.’

청살당은 십대살문 중에서도 중간 수준에 불과했다. 그것도 십대살수인 청살괴옹이 당주로 있기 때문이지, 그가 없었다면 십대살문의 말석에나 있을 것이다.

그에 반해 쾌활림 아니, 귀림은 십대살문의 정점인 살막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살문이었다. 아무리 귀왕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그 정도 수준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니 이현성으로서는 적잖은 실망감이 들었다. 그때 문밖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귀인. 들어가도 될까요?”

“들어오셔도 됩니다.”

이현성의 허락이 떨어지자 문이 열리곤 아름다운 여인이 들어왔다. 순간 이현성이 놀랄 정도였다. 물론 그것도 한순간에 불과했다. 곧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러는 사이 여인은 안으로 들어왔다.

“어떤가요? 이제 쾌활림의 소림주답나요?”

“아름답군요. 야 소저.”

그녀는 바로 야래향. 쾌활림과 귀림의 소림주였다.

땀을 흘린 그녀는 간단히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물론 가벼운(?) 치장은 덤으로 했다.

옷이 날개이고, 치장이 무기라도 했던가.

그전에도 아름다웠던 그녀가 지금은 목석과 같은 이현성의 마음을 한순간이지만 흔들었을 정도로 빼어난 아름다움을 드러냈다. 허나 이현성의 이 정도 반응은 야래향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맥 빠지네요. 나름 자신이 있었는데.”

“…….”

귀왕인을 돌려받은 후 그녀는 이현성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다. 이곳에 오는 동안 나눈 대화만으로도 그가 매력적인 사내임을 알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자신에게 아무런 흑심을 보이지 않는 이현성에게 도전의식이 생겼다. 그렇기에 나름 준비를 했는데, 그는 여전히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여인으로서 맥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림주님께서 기다리실 거예요. 같이 가요.”

“귀왕께선…….”

“쾌활림주님이요.”

“아…….”

귀림주인 귀왕은 오래전에 타계했다. 그렇기에 귀왕인이 귀림에 돌아오지 못했다.

그렇기에 의아했다. 하지만 귀림주가 아닌 쾌활림주라고 하니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이현성은 야래향을 따라서 림주의 방으로 향했다.

‘오호. 이제 좀 귀림같군.’

총관만은 못하지만, 특급살수의 기척이 느껴졌다. 물론 이현성이 아니라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은밀했다.

그들은 야래향의 호위인 청홍쌍혼이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림주님. 저 향이에요.”

“들어오너라.”

허락이 떨어지자 이현성은 야래향과 함께 림주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때였다.

찌릿! 찌릿!

방 안에 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전신이 찌릿찌릿해짐을 느꼈다. 두 사람이 본능적으로 살기를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놀란 것은 이현성만이 아니었다. 노인 역시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물론 이현성만큼은 아니었다.

“자넨… 누군가. 무슨 의도로… 본림에 접근했지.”

“저는…….”

“하, 할아버님. 그, 그만요!”

두 사람의 살기에 야래향은 견디지 못하고 소리쳤다.

그제야 그들은 살기를 거두었다. 하지만 경계심은 거두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밖에 있던 살수들이 놀랐으나 림주가 전음으로 대기하라고 명했다.

자신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고, 소림주가 곁에 있기에 섣불리 움직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역시 귀림답군요.”

“이놈! 역시 알고 향이에게 접근했구나!!”

그는 오해를 하고 있었다. 이현성이 야래향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서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반은 맞으나 반은 틀리다. 애초 이현성은 야래향이 귀림의 소림주임을 몰랐으니까. 귀왕인이 아니었다면 계속 모르는 사이였을 수밖에 없었다. 림주의 오해를 깨달은 야래향은 얼굴을 붉힌 채로 소리쳤다.

“할아버지! 이상한 상상하지 말아욧!”

“햐, 향아… 흠흠…….”

그녀의 외침에 림주는 헛기침을 했다. 다행히 오해가 풀리는 듯하니 이현성은 가만히 사태의 추이를 지켜봤다.

그때 야래향이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귀인께 무례하시만 안 돼요. 할아… 아니, 대장로님.”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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