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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31화 (31/314)

31화.

그 뛰어난 솜씨에 이현성은 서둘러 기척을 죽였다.

‘누구지? 보통 솜씨가 아닌데?’

도둑인지 살수인지 알 수 없었으나 잠행술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이라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물론 이현성에게는 미치지 못하였지만.

민충당을 살피던 복면인은 갑자기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 직후 다시 민충당의 문이 열렸다.

“아닌가? 잘못 들었나 보군.”

민충사의 승려였다. 학승이 아닌 무승인지 손에 목곤(木棍)이 들려 있었다.

그는 민충당 안을 살폈으나 이상이 없는지 밖으로 나갔다. 다시 민충당 안에 정적이 흐르자 이현성이 나직하게 물었다.

“그댄 누구지?”

“…….”

대들보의 위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이현성이었고, 또 다른 사람은 조금 전에 민충당 안에 들어온 복면인이었다.

“아혈(啞穴)을 풀어줬는데도 대답할 생각이 없나?”

“…….”

복면인으로서는 어이가 없었다. 설마 선객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이 대들보에 오른 순간 제압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

“대답하기 싫다면 강제로 알아… 여인?”

“아, 안…….”

복면을 벗기니 묘령으로 추정되는 여인의 얼굴이 드러났다.

절세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사내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부족하지 않은 미색을 가진 여인이었다.

“소저는 누구지?”

“…….”

그녀는 입을 꾸욱 다물었다.

이현성으로서는 그녀의 정체를 알아야 한다.

원치 않지만 강제로 입을 열게 할 방법을 여럿 알고 있었다.

“만약 계속 입을 다문다면 강제로 입을 열게 만들겠어.”

“…고문을 한다고 해도 입을 열지… 그, 그…….”

결코 원하는 대로 하지 않겠다는 듯 굳건한 눈빛을 보이던 여인의 눈빛이 급격하게 흔들렸다.

그녀의 시선이 닿은 곳은 바로 이현성의 손이었다. 정확히는 손가락에 낀 귀왕인이었다.

“귀왕인을 알아?”

“어, 어떻게!!”

그제야 이현성은 여인이 이곳을 찾아온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녀 역시 귀왕인을 노렸다는 사실을.

허나 자신을 제외하고 귀왕인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회귀 전의 기억에 귀왕인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고, 그로 인해 혈풍이 부는 시기는 이쯤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해야 할 이야기가 많은 것 같군. 나머지는 나가서 이야기를 하지.”

* * *

쾅!

“소림주(小林主)께서 보이지 않다니! 그게 무슨 말 같지 않은 말이냐!”

노인의 호통에 부복하던 중년인들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눈앞의 노인이 두려운 것도 있으나 자신들의 실수가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죄, 죄송합니다. 설마 소림주께서 저희의 눈을 피해 나가셨을 줄은…….”

“그걸 말이라고 해!!”

노인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기운이 풍겨나와 눈앞의 중년인들을 압박했다.

그들은 감당하기 힘든지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제야 그들을 압박하던 기운이 사라졌다.

허나 노인의 화가 풀린 것은 아니었다.

“너희의 죄는 소림주를 찾은 후에 결정하겠다. 당장 찾아라!”

“존명!”

노인의 외침에 중년인들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허나 노인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은 눈치였다.

“저런 멍청한 놈들에게 소림주를 맡겨야 한다니… 도대체 본림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꼬…….”

노인은 혀를 찼다. 허나 어쩔 수 없었다. 그게 자신들의 실상이었으니까.

그때 노인의 입에서 안타까움이 깃든 말이 흘러나왔다.

“후… 얼마나 힘들면 그 어린것이 홀로 나갔겠는가. 다 이 늙은이가 보좌를 잘 못하였기 때문이겠지…….”

* * *

“어떻게 알았지? 이 반지가 귀왕인이라는 것을?”

이현성은 제압한 묘령의 여인을 들쳐 매곤 민충사를 빠져나왔다.

그 솜씨가 얼마나 뛰어난지 한 사람을 들쳐 맸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게 민충사를 빠져나온 이현성은 인적이 드문 산속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입을 통해 들어야 할 내용을 다른 사람들까지 듣게 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그녀의 목소리에 날이 섰다.

“오히려 제가 할 말이군요. 당신이야말로 귀왕인을 어찌 알아보셨나요?”

“질문은 내가 하고, 소저는 대답만 하시오.”

“싫다면요?”

묘령의 여인은 배짱을 부렸다. 그 어떤 고문을 해도 입을 다물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허나 그녀는 사람을 잘못 봤다. 이현성이 입을 열게 할 방법은 고문 한 가지가 아니었으니까.

“그럼 강제로 입을 열게 할 수밖에…….”

“흥. 할 수 있었다면 해보시든가?”

그녀는 스스로의 인내심을 자신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고통도 견뎌낼 수 있게 훈련해왔기 때문이다.

허나 이현성의 심문은 육체적 고통을 통한 방식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지. 후회 마시오. 나 역시 사람을 상대로는 처음 해보니까.”

“사람을 상대로… 처음이라니. 그게 무슨……?!”

“곧 알게 될 것이오.”

이현성이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리곤 그녀의 백회혈을 통해 기운을 주입했다.

예상치 못한 이현성의 반응에 그녀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는 개의치 않고 기운을 계속 주입했다. 그러자 곧 반응이 나왔다.

“무슨 짓을 하려는지 모르…지만, 나는… 나는… 으으응…….”

“후… 잘되었는지 모르겠네. 삼라만상의 기운을 사람을 상대로 써먹은 적은 없었으니까.”

이현성이 여인에게 주입한 기운은 삼라만상의 기운이었다.

그가 창안한 삼라만상에는 혈영살객이었던 그의 살법, 잡학이 접목되었으나 그 바탕은 모산파의 기환술(奇幻術)이었다.

자신의 모습을 타인이 보지 못 하게 하는 것은 물론 다른 존재로 변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렇다면 상대의 정신을 조종하는 것은 불가능할까?

미혹술(迷惑術)이나 섭혼술(攝魂術) 역시 큰 줄기는 기환술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배교와 함께 기환술의 극에 도달했다는 모산파.

그런 모산파의 정수인 기환십이결.

삼라만상은 기환십이결로 새롭게 창안된 공부였다.

시험해보지 않았을 뿐, 정신을 지배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아니, 애초 기환십이결 중에는 정신을 조종하는 공부도 있었다.

“말하라. …너는 누구냐.”

“…저…는… 으윽!”

그녀의 정신력 역시 보통이 아닌지 삼라만상의 기운을 밀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포기할 이현성이 아니었다.

처음 해보는 방식이었기에 조금 미숙했다.

하다 보니 미숙함이 조금씩 보완되었고 그녀의 정신을 야금야금 장악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녀의 정신을 완벽하게 굴복시킬 수 있었다.

“너의 이름은?”

“…야…래향…….”

다행히 그녀의 정신을 굴복시켰는지 이름을 밝혔다. 심문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소속은?”

“쾌활…림…….”

그녀가 쾌활림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이현성은 살짝 놀랐다.

그도 쾌활림에 대해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북경 흑도를 지배하는 네 개의 세력 중 하나였다.

북경 최대 도박장 일락방(一樂幇). 염라대왕보다 무섭다는 염왕채를 운영하는 만금전장(萬金錢場). 그리고 비밀화원인 쾌활림(快活林).

나머지 하나는 북경 최고의 청부집단인 청살당이었다.

허나 청살당의 멸문 후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수많은 살문들이 전쟁 중이었기에 아직은 공석이었다.

즉, 쾌활림은 북경 흑도 사대세력 중 하나였다.

“일개 기녀는 아닌 듯싶은데? 네 신분은?”

“소…림주.”

비밀화원이란 꽃을 기르는 장원이었다.

허나 여기서 꽃이란 아름다운 여인, 정확히는 기녀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즉, 각계의 고위층만 허락된 최고급 기루란 뜻이었다.

일개 기녀에게 무공은 어울리지 않았다. 특히 그 무공이 호신 수준이 아니라면 더더욱 그랬다.

그렇기에 그녀의 신분이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쾌활림의 소주인인 소림주일 줄은 예상치 못했다.

“그럼 귀왕인을 어떻게 알지? 아무리 귀왕인이 십대암기 중 하나라고 하지만 알아볼 수 있을 리가 없을 텐데?”

“…오랫동안… 찾아다녔기… 때문에…….”

사람들은 귀왕인의 외형은 모르나 그 이름은 잘 알고 있었다.

귀왕인이 십대암기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십대암기를 갖고 있다는 것은 비장의 수를 하나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누구나 십대암기를 갖고 싶어 한다.

이현성은 그녀 역시 그런 자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찾아다녔다라… 왜지?”

“본림의 부활을… 위해서…….”

이현성은 그녀의 대답을 이해할 수 없었다.

쾌활림의 부활과 귀왕인의 연결점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애초 쾌활림의 부활이란 말도 이해할 수 없었다.

“본림의 부활이 무슨 뜻이지?”

“봉문한 귀림의 제약을 풀기 위해서는 귀왕인이 필요…….”

“귀, 귀림!!”

그녀의 말에 이현성은 경악했다.

설마 야래향의 입에서 귀림이 언급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귀림(鬼林)은 살막, 유령곡과 함께 삼대살종(殺宗)이었다.

그들은 수백 년간 그 명성을 유지했다. 하지만 수십 년 전, 유령곡이 자취를 감추면서 전설은 무너졌다.

설상가상으로 귀림 역시 이십여 년 전, 봉문하며 그 이름이 무림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그렇게 홀로 남은 살막이 살문의 종주로서 모든 살수들 위에 군림하게 되었다.

귀림이 봉문한 건 당대 림주인 귀왕(鬼王)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그의 상징인 귀왕인이 사라지면서 귀림 역시 봉문하게 되었다.

즉, 귀왕인은 귀림주의 권위를 상징하며, 귀림 살수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현성이 귀왕인을 찾으려고 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럼 네가…….”

“귀림의 소림주입니다.”

당대 최고의 살문인 살막(殺幕). 그런 살막과 견줄 수 있는 귀림이라면 그에게 크나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자신만의 세력이 꼭 필요한 이현성에게 귀림만 한 곳도 없었다.

그런 귀림의 소림주를 만나게 되다니, 이런 우연이 또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귀왕인을 손에 넣은 후에 귀림을 찾으려고 했는데…….”

사실 귀왕인과 달리 귀림의 은거지는 모르고 있었다.

다만 귀림에 청부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곤란할 수도 있었다.

그러던 차에 소림주를 만났으니, 곤란한 상황을 면할 수 있게 되었다.

이현성은 삼라만상의 기운을 거두었다. 그러자 야래향은 곧바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야 소저께서 귀림의 소림주라고요?”

“그, 그 사실을 어떻게!!”

그녀의 신분을 알게 된 이현성의 말투도 조금 바뀌었다.

야래향은 제 입으로 발설한 사실을 알지 못했기에 당황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이현성은 작은 미소를 지었다. 이현성은 귀왕인을 낀 손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림주의 신물인 귀왕인의 주인 앞에서 너무 뻣뻣한 것 아니오?”

“으윽! 소림주 야래향이… 귀왕인을 영접합니다.”

소림주라고 해도 감히 귀왕인의 권위에 도전할 수는 없었다.

귀왕이란 귀림의 모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귀왕과 귀왕인이 괜히 귀림 살수들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반응에 이현성은 무척이나 흡족했다.

“귀인(貴人)… 귀왕인을 제게 주세요. 제발요…….”

“왜 그래야 하오? 본인은 귀림이 필요한데 말이오.”

그녀가 귀왕인의 정식 주인일지 모르지만, 현재 귀왕인은 자신의 소유였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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