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쿵!
“꺄!”
“아가씨!!”
이현성이 신경을 쓴다고 썼는데, 방심한 순간 문교교가 사고를 치고 말았다.
그녀보다 조금 나이가 높아보이는 묘령의 여인과 부딪쳤고, 그 충격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그녀도 평범한 신분이 아닌지 십여 명의 호위무사들이 나타나 포위했다.
이에 금의위사들이 검파에 손을 얹었다.
허나 이현성이 손을 들어서 저지했다.
고작 이런 일로 칼부림을 해서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좋게 대화로 해결할 생각으로 이현성이 입을 열었다.
“죄송하외다. 제 누이가 실수를 한 것 같소. 내 대신 사과드리겠소. 큰일은 아닌 듯하니 양해 부탁드리겠…….”
“큰일이 아니다? 감히! 이분이 누구인 줄 알고! 그 따위 말을 하는 거냐!”
이쪽이 먼저 실수한 것도 있지만, 믿는 구석이 있는지 상대 호위무사들은 기세가 등등했다.
게다가 이쪽은 이현성을 포함해서 무인이 넷이지만, 저쪽은 열이 넘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상당히 유리하다고 생각한 듯싶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의 호위를 받는 여인 역시 말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난감할 따름이었다.
그때였다. 상대측 호위무사들이 검파를 쥐고 검을 뽑으려고 했다.
“이쪽의 실수가 있으니 사과는 드리나, 검을 뽑는다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소.”
“흥. 그런 말을 하면 누가 무서워할 줄 아나.”
결국 그들은 최악의 선택을 했다.
검을 뽑아버린 것이다.
이에 금의위사들 역시 본능적으로 검을 쥐었다. 결국은 피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문교교는 자신의 실수로 일이 커졌다는 것에 당황하고, 무서워했다.
아무리 내각대학사의 여식이라고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덤덤하기에는 아직 경험이나 정신력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황도로 오는 과정에서 몇몇 사건이 있었지만, 그때는 마차 안에 있었기에 직접 보지는 않았다. 허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위협이 될 수준은 아니지만…….’
저들은 대부분이 이류이며, 단 두 명만 일류고수였다.
그에 반해 이쪽은 이현성을 제외해도 일류 둘에 초일류고수 한 명이었다.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전력차였다.
“꼭 피를 봐야겠소?”
“나이도 어린놈이 건방지게! 놈들을 꿇려라!”
호위무사들 중 나이와 실력이 제일 나아보이는 사내의 외침에 다른 호위무사들이 움직였다.
그런 그들을 보며 이현성은 한숨이 나왔다. 더 이상은 대화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죽이지 말고, 제압해. 가능하면 멀쩡하게.”
“명(命)!”
이현성의 말에 금의위사들 역시 움직였다.
그에 상대 호위무사들은 흥분했다.
멀쩡하게 제압한다는 것은 실력 차이가 월등할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인원수의 차이가 컸다.
때문에 그들의 입장에서는 무시도 이런 무시가 없었다.
챙~!
“헉!”
“컥!”
선임 금의위사인 엄환이 일류고수를 상대하는 사이, 금의위사 두 명이 나머지 호위무사들을 제압해나갔다.
금의위는 황실이 자랑하는 고수들이었다.
게다가 이현성에게 혹독하게 가르침을 받았다.
실력이 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결과는 이미 예정된 상황인 셈이었다.
일각도 채 되기 전에 상대 호위무사들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물론 금의위사들은 너무도 멀쩡했다.
싸움에 참전하지 않은 호위무사들의 우두머리는 얼굴이 시뻘개져서 호통을 쳤다.
“이놈들! 감히 지휘사(指揮使) 어른의 따님을 위협해!!”
“…….”
호위무사장의 호통에 금의위사는 움찔했다. 그런 모습에 그는 의기양양했다.
각 성(省)은 도지휘사사(都指揮使司)라는 군정기관이 존재하며, 예하 위소(衛所)를 총괄한다.
위(衛)는 위지휘사사(衛指揮使司)를 칭하며 5개의 천호소가 소속되었다.
소(所)는 천호소(千戶所)의 줄임말로, 1,112명의 군사를 통솔한다.
지휘사는 위지휘사사(衛指揮使司)의 수장으로, 정삼품의 고관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여인은 고관의 여식이었고, 호위무사들은 지휘사가 차출한 위지휘사사의 무관들이었다.
“당장 꿇지 못하겠느냐!”
“…지휘사 어른의 따님이시라고요?”
움찔.
의기양양한 호위무사장은 이현성의 눈빛에 움찔했다.
하지만 지휘사의 총애를 받고 있는 자신을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에 강하게 나갔다.
“그렇다! 경을 치기 전에 빨리 무릎을 꿇어라!”
“저 아가씨께서 지휘사 어른의 따님인 것은 알겠소. 그런데… 그대는 누구이기에 저희 보고 꿇으라고 하시오?”
“어허! 본관은 아가씨의…….”
“본관? 지금 본관이라고 했소?”
이현성의 물음에 그는 헛기침을 하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본관은 백호(百戶)인 왕추라고 한다. 당장…….”
“혜란아. 오랜만이네. 무슨 일이야?”
“아… 연아!”
왕추라는 무관이 자신을 소개할 때, 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 왕추의 호위를 받고 있던 여인이 반응했다.
혜란이란 여인은 자신을 부른 여인을 보며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연아. 잘 왔어. 글쎄 저 불한당 같은 자들이…….”
“불한당? 누구…!! 북궁연이, 이 대협과 문 소저를 뵙습니다.”
반응한 여인은 놀랍게도 구문제독의 손녀인 북궁연이었다.
그녀는 이현성과 문교교를 알아보곤 매우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런 그녀의 반응에 왕추는 물론 우혜란은 움찔했다. 설마 아는 사람인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북궁연의 입에서 나온 말에 경악하고 말았다.
“여, 연아… 아는 자…들이야?”
“인사드려. 내각대학사 어른의 영애이신 문교교 소저와 대학사 어른의 식객이자 금의위를 가르치시는 이현성 대협이셔.”
“……!!”
“저, 저분이… 소문의…….”
북궁연의 설명에 왕추와 우혜란은 눈이 커졌다.
그리고 깨달았다.
건드려서는 안 되는 자를 건드렸다는 사실을.
지휘사도 고관이었지만, 권력의 중심인 내각대학사와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위지휘사사의 상급기관인 도지휘사사의 수장인 도지휘사(都指揮使)조차 내각대학사의 눈치를 봐야 한다.
하물며 지휘사는 내각대학사에게 말도 못 걸 정도로 차이가 크다.
게다가 금의위는 물론 젊은 무관들이 교두로 섬긴다는 이현성 역시 가볍게 볼 수 없었다.
그때 엄환이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 품에서 신패를 꺼냈다.
“소관은 금의위 시백호인 엄환이오. 귀관께서 백호시라고 들었소.”
“마, 맞습니다.”
종육품인 시백호보다 정육품인 백호가 더 높은 직위였다.
허나 금의위는 황제의 친위군으로서 본래의 품계보다 두 품계 정도 위의 대우를 받는다.
즉, 엄환은 시백호이지만 웬만한 위소의 부천호급에 해당되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 말은 지휘사 어른께서 사사로이 군사를 운용하셨단 말이오?”
“그, 그게…….”
고관이라고 해서 군부의 군사들을 사적으로 운용해선 안 된다.
그렇기에 관리들은 호위무사들을 고용해서 장원을 지키는 것이다.
그때 이현성이 나직하게 말했다.
“엄환.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 겐가. 그만 가지.”
“예. 교두님.”
“북궁 소저. 오랜만에 뵙습니다. …괜찮다면 저희는 이만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쪽 아가씨도 괜찮다면…….”
이현성의 물음에 우혜란은 목이 걱정될 정도로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가 해결(?)된 듯 싶자, 이현성은 장원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자 문교교는 북궁연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한 후 그의 옆으로 향했다.
그렇게 그들이 사라지자 우혜란은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혜란아!”
“…….”
맥이 빠졌는지 우혜란은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북궁연은 대충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사색이 된 호위무사장과 쓰러진 채 신음하는 호위무사 아니, 위지휘사사의 군사들.
어찌 지금 상황을 모를 수가 있겠는가. 순간 북궁연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언젠가 사고를 칠 줄은 알았지.’
정치를 잘 모르는 그녀의 오빠와 달리 북궁연은 다소 인맥관리를 할 줄 알았다.
구문제독의 손녀라는 막강한 배경을 가진 그녀와 친해지려는 여인은 많다.
우혜란 역시 그들 중 하나였다.
구문제독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지휘사란 직책도 결코 하찮은 자리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우혜란과도 어느 정도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까지였다.
‘그보다… 역시 멋진데?’
비록 대단한 배경은 없으나 은연중에 드러나는 위엄이 그(이현성)가 얼마나 그릇이 큰 자인지를 알려주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현성은 이미 장원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 * *
“죄송해요. 오라버니… 저 때문에…….”
굳어진 이현성의 얼굴 때문인지 문교교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이현성은 그녀의 반응은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교교야. 그럴 수도 있지. 어차피 볼 것은 다 봐서 돌아갈 참이었다. 그러니 고개를 들거라.”
민충사에서 볼 만한 것은 다 봤다.
그리고 이현성이 보려고 했던 민충당(憫忠堂) 역시 봤기에 미련은 없었다.
“하지만 다음부터는 조심해라. 일어나지 않아도 될 시비가 생겼잖니.”
“네. 오라버니.”
조금 전의 일은 그녀에게도 큰 충격이었는지 미소를 짓기는 했으나 그리 환하지는 않았다.
‘충격이 컸나 보네. …그보다 오늘 밤. 다녀와야겠어.’
* * *
어두운 밤, 민충사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담을 넘는 검은 그림자가 있었다.
얼마나 은밀한지 그림자가 여러 법당을 지남에도 민충사의 승려 중 단 한 명도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깊숙이 잠입한 그림자는 어느 법당 앞에 멈추었다. 그리곤 연기처럼 법당 안으로 스며들었다.
법당 앞 현판에는 민충당(憫忠堂)이라 적혀 있었다.
‘후… 다행히 안을 지키는 자는 없구나.’
검은 그림자의 정체는 바로 이현성이었다.
낮에 민충사에 방문했던 이유가 바로 이곳, 민충당을 둘러보기 위함이었다.
민충당에는 불경이 새겨진 석각과 경당이 가득했다.
허나 이현성이 이곳에 잠입한 이유는 석각이나 경당을 원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곳에 숨겨진 중요한 무언가를 찾기 위함이었다.
‘민충당에 숨겨져 있다는 것은 알지만, 정확히 어디인지는 모르니…….’
만약 쉽게 발견되었다면 민충사의 승려들에 의해 진즉에 발견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것은 그만큼 교묘하게 잘 숨겨져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현성에게는 비장의 패가 있었다.
‘삼라만상이라면…….’
혈영살객의 잡학과 모산파의 기환십이결이 만나면서 새롭게 창안된 공부, 삼라만상(參羅萬像).
삼라만상이라면 숨겨진 혹은 인위적으로 막혀진 장소를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현성은 삼라만상의 기운을 민충당 안에 흘렸다.
순간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거기냐.’
이현성은 소리를 죽여서 대들보 위로 올라갔다. 그리곤 대들보와 작은 보가 교차되는 부근을 살폈다.
그러자 교묘하게 가려진 작은 나무상자가 보였다.
상자의 존재를 몰랐다면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교묘했다. 그러니 지금까지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상자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그 안에는 반지가 들어 있었다.
‘귀왕인(鬼王引). 드디어 손에 넣었다.’
귀왕인, 이 반지의 이름이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하지만, 굉장한 비밀을 가지고 있는 반지였다. 그 비밀이 이현성에게는 무척이나 필요했다.
반지를 손가락에 낀 이현성이 대들보에서 내려오려고 할 때였다.
무언가 민충당 안으로 들어왔다. 삼라만상을 익힌 이현성이 아니었다면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은밀했다.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