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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25화 (25/314)

25화.

내각대학사의 식객

“깨어나셔서 다행이오. 몸은 좀 어떻소. 이 대협.”

“아직 거동은 힘들지만 그리 나쁘지는 않습니다.”

퇴궐한 문종학은 이현성이 깨어났다는 전갈을 받고, 바로 그를 찾아왔다.

이현성이 의식을 잃기 전의 문종학은 내각대학사의 내정자였다면 지금은 취임만 하지 않았을 뿐, 내각대학사로 임명되었다.

즉, 종이품의 고관대작이란 뜻이었다.

여기까진 이현성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다행이오. 약속대로 이 대협의 가족에 대해서는 제가 알아볼 테니 걱정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오.”

“감사합니다. 대학사 어른.”

“대학사 어른이라니요. 마음 같아서는 장주(莊主) 정도로 부르라 하고 싶으나, 주변의 시선도 있으니 문 대인 정도로 부르시면 되오.”

“예. 문 대인.”

종이품의 고관대작이자, 실질적으로 재상의 권력을 가진 내각대학사를 그냥 문 대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식솔들에게는 이야기해두었으니 이 대협께선 내 집이다 생각하며 편히 지내십시오.”

“감사합니다.”

장원의 주인인 문종학이 은공으로 모시고, 문태규와 문교교가 형이자 오라버니라고 부른다.

식솔 중 누가 감히 이현성에게 함부로 대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이현성은 장원 아니, 내각대학사의 식객이란 신분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새로운 권력의 중심에 선 문종학이었다.

본인은 권력을 탐하지 않으려 한다 해도 세상일이란 그렇지 않은 법이었다.

그런 문종학의 식객이라면 웬만한 관리조차 어려워할 수밖에 없는 신분이었다.

게다가 그냥 식객도 아닌 목숨을 구해준 은공이었다. 이만한 배경은 없었다.

‘북경이라면 그들의 힘이 미치기는 힘들겠지.’

하북성. 그것도 북경은 무림의 힘이 미치지 못한다.

황제의 힘이 가장 강성한 지역이며, 그의 안위를 위해서 위협이 될 존재는 모두 제거된다.

그러다 보니 무관(武官)의 가문은 몰라도 무림세가나 대문파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나마 북경에서 조금 벗어난 천진에 하북팽가가 존재하지만, 하북팽가의 경우는 많은 장수를 배출한 만큼 예외 중에 예외였다.

당연히 혈천의 마수를 피하기에도 적격이라고 판단했다.

문제는 단순히 혈천의 마수만 피하는 것에 그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가 내각대학사인 문종학의 그늘에 들어온 것은 혈천의 방해 없이 힘을 키우기 위함이었다.

개인의 무력은 물론 세력 역시 키워야 했다.

‘그보다 우선 부상부터 회복하자.’

* * *

“이 대협. 몸은 좀 어떠십니까?”

내각대학사인 문종학의 장원에 한 무리의 장한들이 들이닥쳤다.

장원의 주인인 문종학은 이미 입궐했기에 어린 문태규가 대신 그들을 맞이했다.

그러는 사이 하인이 이현성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거처에서 쉬던 이현성은 무슨 일인가 싶어서 밖으로 나왔다.

반가운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많이 좋아졌습니다. 위 백호님께서는 잘 지내셨습니까?”

“소관이야 잘 지내지요.”

무리의 우두머리는 금의위의 백호(百戶)인 위표였다.

그 외에도 문종학을 황도까지 호위한 금의위사들 역시 몇몇 보였다.

황제의 친위군이라는 금의위사들의 방문에 장원의 식솔들은 당황했으나, 내각대학사인 문종학의 장원임을 애써 떠올리며 숨죽였다.

“문 대인께서는 입궐하셨기에 안 계십니다.”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아니, 저희가 이곳에 온 목적 중 하나는 이 대협께 전하려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게요?”

“예. 하사품을 이 대협께 드려라.”

위표의 명령에 군사 몇몇이 수레를 끌고 와서 이현성의 앞에 내려놓았다.

무언가가 잔뜩 실려 있는 수레였다.

이를 본 이현성은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해서 당황스러웠다.

그런 그를 보며 위표가 나직하게 말했다.

“폐하께서 이 대협께 하사하신 하사품입니다.”

“화, 황제 폐하의 하사품입니까?!”

뵌 적도 없는 황제가 주는 하사품이라고 하니 이현성은 더욱 당황스러웠다.

황제가 왜 자신에게 하사품을 하사한단 말인가?

당황하는 이현성을 보며 위표가 설명했다.

“관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대협께서 목숨 걸고 내각대학사님을 구하신 사실을 아신 폐하께서 내리신 하사품입니다.”

황금 천관에 최고급 비단 스무필 그리고 그 귀하다는 조선인삼까지 실려 있었다.

황금 일관이 금자로 백냥의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비단 한 필에 금자로 한냥부터 비싼 것은 백냥 이상한다.

게다가 조선인삼은 효능이 워낙 대단해서 부르는 것이 값이라고 한다.

즉, 수레에 담긴 재화의 가치는 평범한 사람은 평생 손에 쥘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다는 뜻이었다.

귀한 선물을 받은 것은 감사하지만 황제의 저의를 알 수 없었기에 이현성은 이걸 받아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다른 관리의 뇌물이 아닌 무려 황제의 하사품이었다.

애초 거부할 권리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황제 폐하의 하해와 같은 황은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물론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위표의 뜬금없는 말에 이현성은 어리둥절했다.

그런 그를 보며 위표가 미소지었다.

“황제 폐하의 명에 의해, 저희가 내각대학사님의 안위를 책임지기로 되었습니다.”

“저희라고 하시면… 금의위에서 말입니까?”

“예. 오는 길에 내각대학사님께 폐하의 황명을 전했습니다.”

관리가 사사롭게 사병을 양성하는 것은 안 된다.

특히 황도인 북경에서라면 더더욱 허락되지 않는다.

이는 반역의 씨앗으로 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허나 관리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경비무사를 고용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황제 역시 이 정도는 허락해주었다.

다만 권문세가의 경우는 휘하에 둔 가솔이 많기에 장원이 무척이나 컸다.

그러다 보니 고용한 경비무사의 수도 적다고 할 수 없었다. 장원의 규모와 경비무사의 수는 권문세가의 위세를 알려주는 척도이기도 했다.

물론 예외는 있었다.

권력의 중심에 선 내각대학사 문종학의 장원에는 경비무사가 없었다.

기껏해야 건장한 하인 십여 명이 전부였다.

그들이라면 도둑 정도는 내쫓을 수 있으나 내각대학사의 장원에 걸맞은 경비 수준은 아니었다.

이에 황제가 자신의 친위군이라고 할 수 있는 금의위를 배치한 것이다.

“저는 황명이 떨어지기 전까지 내각대학사님의 호위 및 장원의 경비를 총괄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부천호로 영전했으나 그냥 경비대장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부천호(副千戶)로 영전하셨군요. 경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 대협.”

부천호는 종오품의 관리였다.

일개 금군의 부천호도 높다고 할 수 있는 자리인데, 위표는 무려 금의위의 부천호였다.

그 위세는 금군의 정천호급 이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금의위사 열 명과 직속 금위군사 오십 명이 함께 배치되었다.

다른 권문세가는 이것의 몇 배나 되는 경비무사를 고용하고 있으니 많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무려 금의위이니 가볍게 볼 수도 없었다.

경비인지 감시인지 알 수는 없으나 관리의 장원에 금의위가 배치된 경우는 없었기에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 * *

“폐하. 명하신 대로 처리했습니다.”

“수고했네. 령주.”

천위령주는 황제의 사자(使者)였다.

허나 천위령의 존재는 외부에 드러나서는 안 되는 비공식적인 집단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위장 신분을 한두 개씩 보유하고 있었다.

그들은 어디에든 존재한다.

금의위는 물론 도찰원, 오군도독부(五軍都督府), 하다못해 동창에도 존재한다.

그 때문에 황제의 그림자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황제는 천위령주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내가 그런 명을 내린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군.”

“소신이 이해할 필요가 어디 있겠사옵니까. 오직 폐하의 뜻을 따를 뿐이옵니다.”

황제는 천위령주의 대답에 피식 웃었다.

그가 궁금해 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으나 천위령주의 대답이 정답이었다.

명령에 대한 의문을 가지면 안 된다.

그저 수행해야 할 뿐.

그게 윗사람을 모시는 아랫사람의 도리였다.

더군다나 천하의 주인인 황제를 주군으로 모시는 입장에서라면 더더욱 의문을 드러내면 아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제는 그의 의문을 해소시켜주었다.

“금의위를 보낸 것은 별다른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세. 대학사는 짐에게도 필요한 인재인 만큼 보호하려는 것뿐이니 말일세. 그리고 그 아이에게 재화를 하사한 것은 숨기고 있는 발톱을 보다 빨리 내밀게 만들기 위함일세.”

“발톱이란 말씀은… 죄, 죄송합니다.”

황제가 말해주는 것을 듣는 것은 허락되었지만 되묻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황제의 그림자인 천위령주라도 마찬가지였다.

황제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사람이니 실수할 수도 있지. 허나 내 사람은 그러면 아니 되네. 알겠는가.”

“죽여주십시오!!”

쿵! 쿵! 쿵!!

천위령주는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죽음을 청했다.

얼마나 세게 찧었는지 이마에서 피가 흐를 정도였다.

그때 그의 귓가에 황제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령주의 목숨은 그리 싸지 않네. 허나 두 번은 없네.”

“폐하의 하해와 같은 황은에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그만 자리로 돌아가라.”

“존명!”

천위령주는 언제나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홀로 남은 황제가 작게 중얼거렸다.

“역시 전임 천위령주만 한 자가 없구나.”

전임 천위령주는 무위나 임무 수행은 물론 황제를 보좌하는 능력까지 어느 하나 부족한 구석이 없었다.

그런 그가 임무 중에 그만 순직하고 말았다.

무척 위험한 임무였으나 그 외에 믿고 맡길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목숨으로 임무를 완수했다.

그렇게 생긴 공석에 부령주 중 한 명을 승계시켰다.

그 역시 뛰어난 인재였지만, 전임 천위령주에 비교했을 때는 손색이 있었다.

황제는 그 점이 아쉬웠으나 차차 나아질 거라 생각했다.

“…기대해보지. 짐을 흡족하게 만들지, 아니면 그냥 사라질지…….”

* * *

“저, 정말 저에게 주시는 거예요? 오라버니?”

문교교는 무척이나 고운 연홍의 비단을 품에 안고 되물었다.

이현성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주었다.

“물론이다. 네 옷 한 벌 지어 입거라.”

“하, 하지만 황제 폐하께서 하사하신 비단인데…….”

황제의 하사품은 이현성이 머무르고 있는 별채로 옮겨졌다.

의식주 모든 것을 장원에서 해결해주니 딱히 재화에 감흥이 없었다.

물론 앞으로 할 일을 생각하면 재화는 필수 불가결했다.

허나 미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그였다.

그의 기억 속에는 잠자고 있는 재화도 있었다.

그 재화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질 때까지는 수년의 시간이 남았다.

따라서 당장 급하지 않기에 가로채지 않았을 뿐 여유가 생기면 그 역시 챙길 생각이었다.

그러니 황제의 하사품에 흔들리지 않았다.

게다가 문교교가 비단을 보며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을 눈치챈 이현성이 모른 척할 수도 없었다.

“폐하께서 내게 하사하신 비단이야. 그러니 내가 어떻게 사용하든 상관없지. 게다가 비단을 품에 꼬옥 안고 있으면서 그렇게 말하면 모순이지 않아?”

“그, 그건…….”

이현성의 말에 문교교는 얼굴을 붉혔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귀여웠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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