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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19화 (19/314)

19화.

하지만 제자라면 최소 반갑자의 내공을 증진시킬 수 있었다. 그렇기에 화옥령은 제자에게 복용시키려고 하였다.

“하지만 제자는…….”

“뭔 말이 그리 많더냐. 사부가 먹으라면 먹는 거지.”

이현영은 자신이 사부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받았는지 알았다. 그렇기에 자소단처럼 귀한 영단을 차마 복용할 수 없었다.

그것을 아는지 화옥령은 이현영의 혈을 짚어 입을 벌린 뒤 강제로 넣어버렸다.

크게 놀란 이현영이 자소단을 뱉으려고 했으나 이미 침과 닿으면서 녹아버렸다.

“사…부님…….”

“뭐하느냐! 어서 냉천한월공(冷天寒月功)을 운용하지 않고! 자소단의 약기를 허공으로 날려보낼 셈이더냐! 이 사부가 진기도인(眞氣道引)을 해줄 테니 얼른 운기행공을 하거라.”

이현영은 죄송스러운 표정으로 가부좌를 틀었다.

화옥령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제자의 뒤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이현영의 등에 손을 얹었다.

자소단의 약기를 본신의 내공과 섞는 것을 돕기 위해서 진기도인을 하려는 것이다.

―시작하자꾸나.

사부인 화옥령의 전음입밀에 이현영은 내공심법인 냉천한월공을 운용했다.

이현호와 이현영이 강해지기 위해 각고하고 있을 때, 무림에 출도한 이현성은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 * *

수십의 관군과 십기의 기마병이 한 대의 마차를 호위하며 산길을 지나고 있었다.

그때 기마병 중에서도 위엄 있어보이는, 불혹(不惑:40세) 쯤으로 되어보이는 사내가 손을 들었다.

그러자 마차가 멈추었다.

관군들과 기마병들이 마차를 포위한 채 주변을 경계했다.

갑작스러운 상황 때문인지 마차 안에서 또 다른 중년 사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슨 일인가?”

“불청객인 것 같습니다. 대인(大人). 저희가 처리할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부탁하겠네.”

“예. 대인.”

마차 안에는 지체 높은 인물이 타고 있는지 기마병의 태도가 무척이나 공손했다.

그가 허리를 곧게 세우고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환! 서광! 군사 열을 이끌고 주변을 수색하라!”

“충(忠)!”

“충(忠)!”

기마병 중 두 명이 군례한 후 말에서 내렸다. 그리곤 상관의 명령대로 관군 열 명을 이끌고 주변을 수색했다.

부스럭.

“제법이군.”

“하지만 채주님께서 오신 이상 제깟 것들이 뭘 할 수 있겠습니까.”

관군들이 주변을 수색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풀숲에서 수십 아니, 족해 일백은 되어보이는 험상궂은 괴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행색만 봐도 그들이 산적임을 알 수 있었다.

머릿수가 배는 되었지만, 관군들은 경계할 뿐 두려워하지 않았다.

기마병 중 수장으로 보이는 중년 사내가 호통을 쳤다.

“이놈들! 너희는 군기(軍旗)가 보이지 않더냐! 지금이라도 물러나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흐흐흐. 소문대로 지부(知府)에게 가는 보물인가 보군. 마차만 내놓으면 살려주마.”

사내의 말에도 산적 두목은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마차를 요구했다.

사내는 기가 막혔다.

산적 따위가 관군을 우롱할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귀한 분을 모시고 있기에 천한 피를 보지 않으려 했으나 그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산적들을 제압하라! 반항하면 죽여도 좋다!”

“충!!”

마차를 호위할 십여 명을 제외한 나머지 관군과 기마병들이 산적들을 제압하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산적들은 오히려 비웃으며 박도와 도끼 등을 쥐고 싸울 준비를 했다.

그때 산적 두목이 외쳤다.

“죽이고! 뺏어라!”

“흐흐흐. 예. 채주님.”

사십여 명의 관군과 백여 명의 산적들이 격돌했다.

챙! 챙! 챙!!

“뭐, 뭐야! 고작 군졸이……!!”

“헉! 일개 산적이 내 검을 막아?”

관군들은 물론 산적들 역시 놀랐다.

서로가 서로를 무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방적일 줄 알았던 전투가 너무나도 팽팽했다.

덕분에 양측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산적 두목이 분통을 터트리며 쥐고 있던 철곤을 바닥에 후려쳤다.

쾅!!

“이 병신 같은 것들! 고작 관군 나부랭이들도 쓰러트리지 못하면서! 거웅채의 호걸들이라고 할 수 있더냐!”

“거, 거웅채(巨雄砦)!”

산적 두목 아니, 거웅채주의 외침에 관군들은 당황했다.

평범한 산적 무리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천하에는 수많은 산이 산재하고, 수많은 산적무리가 존재한다.

대부분의 산적은 탐관오리의 수탈을 버티지 못하고 곡괭이 대신 칼을 쥔 이들이었다.

허나 모든 산적 무리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산적임에도 불구하고 무공을 익혀 강력한 세를 자랑하는 곳이 있었으니, 사람들은 이를 녹림(綠林)이라고 부른다.

수많은 산적 무리 중에서 녹림채로 인정받은 곳은 고작 칠십이채.

거웅채는 녹림칠십이채 중 한 곳이었다.

녹림칠십이채 중 하나인 거웅채의 호걸들이라면 일개 관군들이 상대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관군들은 놀라워하긴 해도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애초 일개 관군들이었다면 거웅채의 녹림도들과 접전을 이룰 리가 없었다.

기마병들의 수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나직하게 말했다.

“과연 녹림이라… 좋다. 본관이 직접 상대해주마.”

“오호? 일개 군졸은 아닌 듯싶군. 허나 내 철곤을 버틸 수 없을 것이다!”

그 순간 기마병들의 수장이 말에서 뛰어내리는 동시에 달려나갔다.

이에 거웅채주 역시 철곤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채~챙!!

기마병 수장의 칼(刀)과 거웅채주의 철곤(鐵棍)이 충돌하자 요란한 소리를 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채챙! 챙! 챙챙!!

위력은 거웅채주가 살짝 우세한 듯했으나 가마병 수장의 칼의 날카로움을 무디게 만들 수는 없었다.

순식간에 십여 합을 나누었으나 쉽게 결판날 것 같지 않았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두 사람의 칼과 철곤이 빛났다.

도기(刀氣)와 곤기(棍氣)였다.

그들은 최소 일류지경에 오른 고수들이라는 뜻이었다.

그런 두 사람의 도기와 곤기는 결코 일류고수 수준이 아니었다.

쾅!!

두 사람은 충돌의 여파로 서너 걸음씩 물러났다.

“크크. 어이가 없군. 고작 군졸 나부랭이가 절정고수라니… 네놈의 정체가 뭐냐!”

“임무를 수행 중이기에 본관의 신분을 밝힐 순 없다.”

산적이라고 해도 녹림칠십이채의 하나를 이끄는 채주였다.

눈앞의 사내가 평범한 군관이 아님을 모를 수 없었다.

그때 떠오르는 집단이 있었다.

“황실고수… 금의위인가.”

“……!!”

“뭘 놀라느냐. 금의위를 제외하고 그런 실력을 가진 군졸들이 어디에 있다고.”

그랬다. 그들의 정체는 바로 황제 친위군이라는 금의위(錦衣衛)의 위사들이었다.

정확히는 금의위 백호소(百戶所)의 금의위사들과 그 휘하 금위군사(禁衛軍士)들이었다.

북방 이민족들을 상대하는 북부군이나 왜구와 치열하게 싸우는 동부군이라면 금군 중에서도 그 강함을 인정할 만했다.

그러나 이곳에 북부군이나 동부군이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금의위를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알았다면 물러나라.”

“흐흐. 지부가 아니라 황실로 향하는 보물이라면…….”

거웅채주의 눈이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지부에 향하는 보물이라면 한몫 두둑이 챙길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직접 움직였다.

그런데 원래 생각했던 지부가 아닌 황실로 향하는 보물이라면 그 수준이 다를 것이다.

“채, 채주님. 금의위라면 위험합니다.”

“이미 늦었어. 차라리 모두 죽여라!”

자신들의 정체가 거웅채임을 모른다면 몰라도, 알게 된 이상 그 어떠한 보복이 있을지 모른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살인멸구(殺人滅口)하는 것이 낫다.

인원도 자신들이 배는 많으니 결코 불가능하지 않았다.

‘금의위가 직접 움직일 정도라면 대단한 보물일 거야. 흐흐흐… 총표파자(總鏢把子)께 바친다면…….’

이 싸움으로 거웅채가 반파될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것이 분명했다.

허나 총표파자의 신임만 받을 수 있다면 그 이상의 권력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거웅채주는 설사 거웅채가 반파된다 할지라도 금의위를 살인멸구하고, 보물을 차지할 생각이었다.

“이놈!! 나 위표가 있는 이상 대인과 그분의 가족을 해할 수 없다!!”

“커억!!”

“으아악!!”

마차를 차지하려는 거웅채와 마차를 사수하려는 금의위.

그들은 사력을 다해 싸웠다.

덕분에 벌써 수십 명이 시체가 나뒹굴었다.

즉, 양측의 피해가 막심하다는 뜻이었다.

“끈질긴 놈!”

“으윽! 나의 시체를 밟고 가기 전에는 어림도 없다!!”

거웅채주는 진절머리가 났다.

그와 금의위 백호(百戶) 위표의 실력은 종이 한장 차이였다.

물론 종이 한장 차이만큼의 우위를 차지한 자는 거웅채주였다.

금의위 정통 무공을 익힌 위표는 강했으나 실전경험이 적었다. 금의위 백호가 생사를 걸 일이 흔치 않았기에 생긴 일이었다.

그에 반해 거웅채주는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 채주가 되었다.

수많은 싸움을 통해 지금의 위치에 오른 만큼 경험 또한 풍부했다.

게다가 수적 열세로 인해 금의위 쪽이 밀리고 있었으니 위표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러한 여러 악조건으로 인해 그가 밀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때 사단이 나고 말았다.

“사, 살려… 컥!”

“으아악!!”

“아, 안 돼!!!”

지척에서 마차를 지키던 금위군사들이 당하고 말았다.

그들을 벤 자들은 거웅채의 녹림도들이 아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복면인들이었다.

예상치 못한 암습에 손도 쓰지 못하고 당한 것이다.

그로 인해 마차는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고 말았다.

그런 상황에서 금의위는 거웅채에 의해 발이 묶인 상황이었다.

복면인들이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아니, 문을 여는 순간 목이 떨어졌다.

서걱!

“……!!”

단말마의 비명조차 흘러나오지 않았다.

복면인 다섯의 목이 떨어지는 것은 한순간에 불과했다.

죽은 그들의 시체 앞으로 검을 쥔 낯선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남들의 일에 관여할 생각이 없었는데… 참견한 김에 조금 더 하겠습니다.”

청년은 죽은 복면인들의 검을 발로 찼다.

“컥!”

“큭!”

청년이 발로 찬 다섯 자루의 검은 숲속으로 날아갔다.

그 직후 숲에서 단말마의 비명이 들렸다.

즉, 숨어 있던 자들이 더 있었다는 뜻이었다.

“오호? 도망치겠다? 아니, 놔주지. 지금은 저들이 더 시급해 보이니…….”

숲속에 있던 기척들이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계획의 실패로 후퇴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청년은 쫓지 않았다.

그들보다 눈앞의 녹림도들을 정리하는 것이 더 급해보였기 때문이다.

그때 청년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이미 검을 휘두른 후였다.

그 검은 바로 거웅채주에게 향하고 있었다.

쾅!!!

“이자는 제가 맡지요.”

“이이익! 감히 애송이 놈이!!”

위표는 자신 대신 거웅채주를 상대하는 청년을 보며 얼이 나갔다.

놀랍게도 청년은 거웅채주를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몰아세웠다.

절정고수인 거웅채주를 상대로 대단한 실력을 발휘했다.

청년은 어려보이는 외모와 달리, 그 솜씨가 너무도 노련하고 간결했다.

수많은 실전 아니, 살인을 해본 것처럼.

두 사람이 이십여 합을 나누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위표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외쳤다.

“서광! 마차를 보호해라!!”

“추, 충!!”

청년의 정체는 알 수 없으나 지금은 그를 믿고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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