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그로 인해 흡사 눈이 세 개인 것처럼 보였기에 삼목금섬(三目金蟾)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이현성이 도망만 치는 것이 아니라 함정까지 준비해서 삼목금섬을 죽인 것은 바로 이 내단 때문이다.
“귀혈삼과 삼목금섬의 내단… 내공이 부족하진 않겠어.”
이현성은 오랜만에 너무나 기분 좋게 웃을 수 있었다.
* * *
“후우…….”
떠날 정리를 마친 이현성은 상청동의 입구에서 절을 올렸다.
귀혈삼과 삼목금섬의 내단을 손에 넣은 지 석 달하고 보름이 지났다.
두 귀물을 손에 넣었지만, 무식하게 그냥 복용할 수는 없었다.
그냥 복용하면 약효를 대부분 허비하게 된다. 게다가 귀혈삼과 삼목금섬의 내단은 음기가 강한 만큼 그대로 복용하면 위험했다.
이에 이현성은 여러 약초, 독초를 섞어서 탕약으로 만든 뒤 몇 번에 나누어서 복용했다.
귀혈삼을 노렸던 모산파의 후예들이 고안했던 방법이 남아 있었던 덕분이었다.
열흘에 한 번씩, 열 번을 복용하니 시간이 이렇게 흐른 것이다.
“그간 신세 많이 졌습니다. 추후 반드시 상청삼경(上淸三經)의 전인을 만들겠습니다.”
이현성은 드디어 상청동과 귀망산을 떠났다.
결국 상청파 아니, 모산파에 신세를 진 셈이었다.
그 보답으로 자신이 이곳에서 손에 넣은 상청삼경(기환십이결, 본초경집주, 상청도량심결)의 전인을 양성할 생각이었다.
차마 모산파의 부흥까지는 약속할 수 없었다.
다만 상청삼경이 후대에 전해질 수 있게 하는 것이 그가 약속할 수 있는 최대치였다.
그런 이현성의 마음을 이해하는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흡사 모산파의 조사들이 고맙다는 뜻을 전하듯이…….
“무림인들에게 더럽혀지지 않게 이곳을 막겠습니다. 이해해주세요.”
이현성은 부적을 꺼내 상청동의 입구에 붙이며 중얼거렸다.
언젠가 이곳은 알려질 것이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그리고 결국 무림인들에 의해 더럽혀질 수밖에 없었다.
이현성은 정든 이곳이 그들의 피로 더럽혀지길 원치 않았다.
언젠가 상청삼결의 전인에게 온전한 상청동을 보여주기 위해 상청동의 입구에 결계를 쳤다.
“…급급여율령(急急如律令)!”
그 순간 부적과 함께 상청동이 사라졌다.
정확히는 사라졌다기보다 눈에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삼라만상 속에 기환십이결이 녹아든 덕분에 이현성은 높은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약간의 부주결(符呪訣)을 익힐 수 있었다.
이현성은 그것을 이용해 상청동 입구에 결계를 쳤다.
“그럼 가볼까?”
그렇게 준비를 마친 이현성은 드디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학사
“합!”
한 소년이 검을 휘둘렀다.
어린 소년의 검술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힘이 담겨 있었다.
아직 앳돼 보였지만 검을 대하는 마음가짐은 진지하기 그지없었다. 그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소년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중년 사내가 있었다.
“그만!”
“후…….”
“검이 많이 늘었구나.”
“사부님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중년 사내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검뿐만 아니라 인성 역시 곧게 자란 것을 보니 사부로서 흐뭇했기 때문이다.
“호현아. 네가 열심히 한 덕분이지, 어찌 이 사부의 덕이겠느냐.”
“아닙니다. 사부님이 아니셨다면 저는 이런 훌륭한 검술을…….”
소년, 호현에게는 슬픔이 있는지 얼굴에 그늘이 졌다.
중년 사내가 그런 호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제자의 슬픔이 무엇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고 했다. 이 사부가 네 진짜 아비가 될 수는 없으나 이제 네 가족이란다. 그리고 은설이도 네게 누이가 되어주지 않았느냐. 그러니 그만 슬퍼하거라. 그분들도 네가 이렇게 슬퍼하길 바라지 않을 게다. 게다가 큰형은 세상 어딘가에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예. 이현성… 큰형님께선 분명 살아계실 겁니다.”
소년의 이름은 한호현.
한승의 조카이자 그의 제자였다.
허나 그건 대외적으로 알려진 사실일 뿐이었다.
그의 정체는 이현성의 막내 동생인 이현호였다.
살수들에 의해 가족을 잃었기에 그 배후 세력이 이 아이를 계속 노릴 것을 우려해 자신의 조카로 신분을 바꾸었다.
사실 무공까지 전수할 생각은 없었다.
의숙께 이현성이 소양지체란 말을 듣긴 했으나 심성이 어쩔지도 모르는 아이에게 무작정 무공을 전수할 수 없었다.
무공을 괜히 비인부전(非人不傳)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괜히 무공을 전수해주었다가 악인이 탄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곁에서 보니 이현성의 심정은 올곧았다.
게다가 정에 굶주려 했다.
지금은 14살이지만 당시만 해도 고작 5살이었으니 당연했다.
그는 자신과 여식인 한은설을 잘 따랐다.
특히 한은설에게서 죽은 누이의 그림자를 봤는지 무척이나 잘 따랐다.
결국 이현호를 자신의 제자로 삼고 검술을 전수했다.
그러니 어언 9년.
14살짜리 소년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검에 재능을 보였다.
“아버지. 수고하셨어요. 현이 너도.”
“아, 오셨어요. 은설 누나.”
그때 한 소녀가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이현호 아니, 한호현과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소녀였다.
한승의 여식인 한은설이었다.
한호현의 수련이 끝날 때쯤 되면 언제나 이렇게 땀을 닦을 천을 가지고 왔다.
한호련은 그녀가 건넨 천을 받아들고 땀을 훔쳤다.
“이 애비 것은 없느냐?”
“아버지는 땀을 흘리시지도 않으면서 무슨 천이 필요해요?”
“쩝… 그렇긴 하지만…….”
한승은 한호현의 수련을 지도할 뿐이었으니 땀을 흘릴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 해도 딸이 제 동생(?)만 챙기니 심통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친오누이처럼 서로를 아끼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공부는 잘되어 가느냐?”
“열심히 하고 있어요. 아버지.”
건강을 되찾은 이후, 한은설은 무슨 생각인지 의술을 익히기를 원했다.
한승은 이를 의숙인 독의에게 상담했다.
이에 독의는 반색하며 직접 한은설에게 의술을 가르쳐주었다.
다만 독의 개인적인 일이 있었기에 기초적인 부분만 가르쳐주고, 몇몇 의서를 전해주었다.
그 이후 간간히 들려서 그간 공부한 부분을 확인했다.
그리고 짧게는 며칠, 길게는 두어 달씩 머무르며 의술을 가르쳤다.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았지만 월음절맥의 영향인지 그녀는 오성이 무척 뛰어났다.
덕분에 이론적인 부분은 웬만한 의원보다 나았다.
다만 의술이란 것이 이론적인 부분만 알고 있다고 해서 다가 아니었기에 아직 배울 것이 많이 남았다.
“그래. 열심히 배우거라. 어설픈 앎은 오히려 위험한 법이다. 의술이란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인술이다. 네가 많은 환자를 살릴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예. 아버지. 명심할게요.”
한승의 딸답게 한은설은 정신적으로 매우 곧았다.
딸과 제자가 모두 잘 자라주니 그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나도 열심히 수련해야겠구나. 이 아이들의 그늘이 되어줄 수 있게.’
한은성의 아비이자 한호현의 사부인 동시에 그 역시 무인이었다.
수련에 게을리 하지 않았다.
자신이 강해져야 저 아이들이 지켜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 * *
“아니야! 한월검결은 그렇게 약하지 않아!”
“죄송합니다! 사부님! 다시 하겠습니다!!”
“좋아! 다시 해봐라!”
사제지간으로 보이는 두 여인이었다.
그중 제자로 보이는 어린 소녀가 검을 휘둘렀다.
그런데 그 검세가 범상치 않았다.
하지만 사부로 보이는 중년 여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겉과 달리 속으로는 무척이나 놀라고 있었다.
‘이런 재능이라니… 나와 달리 한월검결의 끝을 볼 수 있겠어.’
소녀가 익히고 있는 검법은 한월검결(寒月劍訣)으로, 무림에서는 한월마검이라고 불렸다.
그렇다. 두 여인은 바로 한천마녀 화옥령과 그녀의 제자인 이현영이었다.
검에 대한 재능은 그녀가 동생 이현호보다 한 수 위였다. 특히 강해지겠다는 집념도 동생보다 강했다.
눈앞에서 동생 이현호의 죽음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뛰어난 재능과 뛰어난 사부.
그리고 힘에 대한 강렬한 갈구.
그런 만큼 빠르게 진전을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공이었다.
아무리 대단한 신공을 익히고, 대단한 재능을 타고 났다고 해도 내공만은 어쩔 수 없었다.
오랜 시간 운기행공을 통해 축기할 수 있는 것이 내공이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도 있었다.
이현성처럼 영물의 내단 혹은 영약의 도움을 받으면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그러나 영물이 흔한 것이 아니었고, 영약 역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만. 오늘은 그만하면 되었다.”
“예. 사부님.”
“현영아. 수고 많았구나.”
“감사합니다. 사부님.”
두 사람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면 지금은 온화한 온기가 가득했다.
검을 잡았을 때 누구보다 진중하고 혹독한 사람이 화옥령이었지만, 그 외에는 한없이 자애로웠다.
특히 제자인 이현영 앞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그런 사부의 영향으로 이현영도 검을 쥘 때는 무척이나 차가웠으나, 검을 놓았을 때는 무척이나 상냥했다.
다른 사람이 보면 이중인격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은 상관없었다.
“내공 때문에 진전이 더디구나.”
“죄송합니다… 사부님… 제자, 더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
지금도 진전이 빠르지만, 곧이곧대로 말하지는 않았다.
제자의 자만을 막기 위함이었다.
최근 들어서 진전이 조금 느려진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15살의 소녀임을 감안하면 오히려 과한 진전이었다.
“당연한 것이니 자책하지 말거라. 그래서 네게 줄 것이 있단다.”
화옥령이 품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내서 이현영의 앞에 두었다.
이현영은 차마 그것을 줍지 못하고 사부인 화옥령만 바라보았다.
“열어보거라.”
“예. 사부님.”
작은 주머니를 열자 강렬한 약재향과 매화향이 풍겨왔다.
하나의 단환에서 풍기는 향기였다.
“사부님… 이건……?”
“자소단이다. 이 자소단이라면 네 내공을 충분히 증진시켜줄 것이다.”
이현영은 깜짝 놀랐다.
무림에 대해서는 견문이 일천하지만 자소단을 모르지는 않았다.
무림의 성약이라는 소림의 대환단만 못 하지만 화산파의 자소단(紫霄丹)이라면 매우 유명한 영단이기 때문이다.
화산파에서도 큰 공을 세웠을 때나 하사할까 말까 한 매우 귀한 영단이었기에 이현영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 자소단이…….”
“연이 있어서 가지고 있었느니라. 내 제자인 너라면 충분한 자격이 있으니 걱정 말고 복용하거라.”
놀라는 제자를 보며 화옥령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허나 곧 평소의 그녀로 돌아와서 재촉했다.
이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기에 이현영은 감히 자소단을 복용할 수 없었다.
“…저보다는 사부님께서 복용하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사부는 내공이 심후해서 자소단을 복용해봤자 큰 득을 볼 수 없단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자소단을 복용하면 최소 반갑자 이상의 내공을 증진시킬 수 있었다.
허나 화옥령은 내공이 심후한 편이었기에 지금 자소단을 복용해봤자 5년, 운이 좋아야 10년의 내공이 증진될 뿐이었다.
말이 5~10년 내공이지, 그 역시 적은 것은 아니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