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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17화 (17/314)

17화.

이 귀혈삼은 잘못 다루면 극독이 되지만, 잘만 다룬다면 천년산삼을 능가하는 영초가 된다.

모산파의 후예는 귀혈삼을 다룰 자신이 있기에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아… 저게 귀혈삼이구나.”

귀망산 깊은 곳으로 들어가자, 빽빽한 거목들로 가려졌기 때문인지 볕이 잘 들지 않는 음습한 지대가 나왔다.

그 중심에 붉은 기가 감도는 약초가 있었다.

이현성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저 약초가 귀혈삼이라는 사실을.

기쁨도 잠시, 이현성은 더 가까지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귀혈삼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어린아이만 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삼목금섬(三目金蟾).”

모산파의 후예는 끝내 귀혈삼을 손에 넣을 수 없었다.

당시 귀혈삼의 영기가 부족해서 기다린 점도 있으나, 실질적인 이유는 바로 귀혈삼의 수호자 때문이다.

보통 영초의 주변에는 이를 지키는 영물이 있다.

정확히는 영물 역시 영초를 노리고 영초가 성숙해질 때까지 보호한다.

귀망산의 귀혈삼을 수호하는 영물이 바로 삼목금섬이었다.

겨우 두꺼비냐고 비웃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그 크기가 웬만한 아이만 했다. 게다가 삼목금섬의 표피는 워낙 질겨서 도검도 통하지 않았다.

그것만 해도 귀찮은데, 가장 큰 문제는 삼목금섬의 독이었다.

그 독은 워낙 강력해서 절정고수를 중독시키고, 독공고수를 움찔하게 만들 정도로 강력했다.

귀망산의 귀혈삼이 무림에 알려진 후 수많은 무림고수들이 죽어갔다.

귀혈삼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죽고 죽이기도 했지만, 삼목금섬의 독에 의해 죽은 자가 더 많았을 정도다.

그들 중 지금의 이현성보다 약한 자는 없었다.

‘무공만 믿고 나서면 개죽음이지.’

이현성은 결코 어리석지 않았다.

삼목금섬과 싸워서 귀혈삼을 차지하겠다는 오만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은밀하게 귀혈삼만 훔칠 생각이었다.

물론 그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영물인 삼목금섬의 기감은 무공고수를 능가했다.

그렇기에 몇 가지 준비를 해왔다.

‘삼라만상(參羅萬像)이라면 삼목금섬의 기감을 속일 수 있어.’

이현성은 일 년 전, 창안하고 그간 익혀왔던 삼라만상을 믿었다.

살법과 기환술의 벽을 허문 새로운 공부, 삼라만상.

아무리 삼목금섬이 영물일지라도 삼라만상만은 꿰뚫어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삼목금섬이 나를 자연의 일부로 인지하면 공격하지 않겠지.’

영물의 기감을 속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허나 삼라만상이라면 말이 다르다.

단순한 은신술이 아니었다.

자연 그 자체에 녹아드는 새로운 공부였다.

아무리 영물이라도 이를 간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현성의 생각이었다.

문제는 이현성이 삼라만상을 완성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삼라만상은 일이 년 익혀서 완성할 수 있는 공부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살수의 은신술과 역체변환공은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이현성은 귀혈삼을 향해 움직였다.

오십보, 사십보, 삼십보 그리고 이십보까지 접근했을 때였다.

‘이제 조금만 더… 이런!’

그때 세 개의 눈을 가진 금빛의 두꺼비가 눈을 떴다.

영물인 삼목금섬의 예민한 감각이 무언가를 감지한 것이다. 이제부터는 더욱 신중해야 했다.

지금 그의 무위로 삼목금섬을 쓰러트리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절대 들켜서는 안 된다.

이현성은 귀혈삼까지 고작 이십보 남은 상황에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다행히 삼목금섬이 그를 자연의 일부로 인식했는지 공격하지는 않았다.

허나 더 이상 접근했을 시 과연 그때도 자연의 일부로 인식할지는 자신할 수 없었다.

‘아직이야… 아직…….’

귀혈삼과의 거리는 고작 이십보.

경공에도 나름 자신이 있는 이현성에게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영물인 삼목금섬의 도약력을 무시할 수 없기에 신중해야 했다.

이현성은 더욱 은밀하게 움직였다.

그렇게 십오보까지 접근했을 때 삼목금섬이 침을 뱉었다.

퉷!

피시식.

강력한 독이 담긴 침에 의해 땅이 녹아버렸다.

그것도 삼라만상을 펼치고 있는 이현성의 바로 앞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하아… 한 걸음만 더 걸어갔다면…….’

그 순간 이현성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삼라만상 덕분에 영물인 삼목금섬의 기감을 어느 정도 속이고 있었지만,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기 시작한 듯했다.

그러니 독침을 쏜 것이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더 이상의 움직임은 삼목금섬에게 자신의 존재를 의심이 아닌 확신시키는 것에 불과했다.

이현성은 그 상태로 가만히 기다렸다.

삼목금섬이 돌아가기를…….

허나 이각(二刻)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삼목금섬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여기까지가 한계구나… 그럼 이걸 써야겠어.’

이현성은 삼라만상 하나만을 믿는,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삼라만상을 완성했다면 몰라도 그렇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그가 믿는 것은 따로 있었다.

이현성이 품에서 술병을 꺼냈다.

입구를 단단히 밀봉한 것이 매우 귀한 술 같았다.

고작 술이 무슨 대비책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술병 안에 술이 든 것이라면 말이다.

“이거나 먹어라!!”

이현성은 술병을 삼목금섬에게 던졌다.

술병은 정확히 삼목금섬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술병은 삼목금섬에게 닿지 못했다.

삼목금섬이 먼저 독침을 뱉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현성은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술병은 삼목금섬의 독침에 의해서 녹아버렸다.

그리고 술병 안에 들어 있던 무언가가 비산(飛散)했다.

검고 찐득한 것은 절대 술은 아니었다.

그 순간 퀘퀘한 냄새가 주변으로 퍼졌다.

꿔엑!!

놀랍게도 삼목금섬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하하하! 두꺼비는 두꺼비구나. 사퇴초(蛇退草)에 자지러지는 것을 보니!!”

이현성이 준비한 비장의 패는 바로 이 사퇴초였다.

약초술을 집대성했다는 본초경집주였다.

그 안에는 수많은 약초, 독초에 대한 특징과 활용법 등이 적혀 있었다.

그중에는 어혈을 제거해주고, 고뿔을 낫게 해주며, 원기회복에도 효능이 뛰어난 약초에 대해서 적혀 있었다.

절엽철소추(截葉鐵掃帚), 음양초(陰陽草), 야관문(夜關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사람에게는 이렇게 좋은 약초가 놀랍게도 뱀과 두꺼비 등이 질색하는 냄새를 풍긴다고 해서 사퇴초라고도 불린다고 적혀 있었다.

이를 알게 된 이현성은 온 귀망산을 뒤져 사퇴초를 모았다. 그리고 푹 과서 진액을 만들었다.

사퇴초 생초(生草)의 향만으로도 질색하는데 압축시킨 진액이 얼마나 잘 통하겠는가?

이미 일반 두꺼비를 대상으로 시험해본 결과 효과는 확실했다.

내심 삼목금섬이 영물이기에 안 통하지 않을까도 걱정했으나 기우에 불과했다.

“귀혈삼은 내가 가져간다!”

바람이 잘 들지 않은 곳인 만큼 사퇴초 진액의 강렬한 향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방심할 수는 없었다.

이현성은 귀혈삼을 캐기 위해 달려갔다.

“드디어!!”

그 귀한 영초인 귀혈삼은 손에 넣은 이현성은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오랜 시간 지켜온 귀혈삼을 눈앞에서 빼앗긴 삼목금섬의 눈이 붉게 변했다. 그리고는 무지막지한 도약력으로 단숨에 삼장(三丈:9m)을 날아왔다.

“헉!!”

이를 본 이현성은 기겁하며 전력을 다해 무영풍(無影風)을 펼쳤다.

그가 알고 있는 보법 중 무영풍을 능가하는 것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심후한 내공을 요구하기 때문에 무영풍을 펼친 것이다.

미쳐버린 삼목금섬은 더 이상 영물이 아니었다.

마물(魔物) 그 자체였다.

적은 내공 소모와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무영풍이지만 미쳐버린 삼목금섬은 그보다 못하지 않았다.

이현성과 삼목금섬의 간격은 점점 좁혀갔다.

그럴수록 그의 등으로 식은땀이 흘렀다.

‘제발… 제발…….’

무시무시한 속도로 뒤따라오는 삼목금섬은 어느덧 이현성의 지척까지 따라잡았다.

그리고 그 어떤 채찍보다 섬뜩한 혀를 내밀었다.

혀가 이현성의 팔을 낚아채려는 순간!

꿔에엑!!

비명과 함께 삼목금섬의 신형이 푹 꺼졌다.

그곳에는 깊은 구덩이가 있었다.

삼목금섬의 비명이 계속 울려퍼졌다.

“하… 하… 후우… 함정이 통하지 않을까봐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이현성의 첫 번째 준비가 삼라만상이었다면 두 번째는 사퇴초의 진액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안배가 바로 이 함정이었다. 삼목금섬의 도약력을 감안해서 두어 달간 매우 깊숙이 팠다.

혹시나 하며 걱정했는데 미쳐버린 삼목금섬에게 다행히 통했다.

그러나 고작해야 구덩이에 삼목금섬을 가둔 것치곤 비명이 너무 오래갔다.

구덩이 안에 죽창을 심어놨다고 해도 삼목금섬의 질긴 가죽에는 통하지 않을 텐데 이상했다.

“소금이 이렇게 치명적이었나? 헉! 일점홍!”

사퇴초의 향이 삼목금섬을 질색하게 만들었다면 소금은 발광하게 만든다. 소금은 두꺼비에게 그 어떤 것보다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그때 삼목금섬이 구덩이에서 뛰쳐나오려고 했다.

제법 깊은 구덩이였지만 발광한 삼목금섬의 도약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이현성은 본능적으로 검을 휘둘러서 삼목금섬을 공격했다.

삼목금섬의 질긴 가죽을 뚫지는 못했으나 구덩이 안으로 집어넣는 것은 가능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으나 아직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었다.

“확실하게 끝내야지.”

이현성은 나무 뒤에 숨겨두었던 자루를 가져왔다.

그리고 구덩이 안에 뿌렸다.

그 가루에 삼목금섬은 더욱 발광했다.

그것이 바로 소금이기 때문이다.

소금이 워낙 귀하다 보니 오랜 시간을 걸쳐 준비했다고는 하지만 모으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제부터는 버텨야 한다. 삼목금섬이 죽을 때까지…….

이현성은 구덩이 위를 나무로 막고, 돌을 그 위에 올려놓았다.

“어디… 누가 이기나보자.”

“하… 영물 아니랄까봐 참 질기구나.”

삼목금섬은 한나절을 발광하고서야 잠잠해졌다.

하지만 방심할 수 없었기에 두 시진을 더 기다렸다.

그제야 돌과 나무를 옮겨 구덩이 안을 봤다.

“헉! 대단하네.”

그 섬뜩한 삼목금섬은 쭈글쭈글해진 상태로 죽어 있었다.

이현성은 삼라만상의 기운을 흘려 삼목금섬을 살폈다.

삼목금섬에게서 한줌의 생기도 느낄 수 없었다.

이로써 삼목금섬의 죽음은 확실해졌다.

구덩이 안으로 들어간 이현성은 검으로 삼목금섬을 찔렀다.

놀랍게도 그토록 질기던 가죽이 찢겨졌다.

물론 쉽지는 않았으나 살아 있을 때와 비교하면 그 차이가 컸다.

이현성이 삼목금섬을 찌른 것은 단순히 확인사살의 목적이 아니었다. 삼목금섬의 독낭을 찾기 위함이었다.

삼목금섬의 독이 워낙 강력하니, 분명 중하게 쓸 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찾았다! 조심… 조심.”

워낙 지독한 독인 만큼 삼목금섬의 독낭 채로 떼지 않으면 보관할 수가 없기에 조심스러웠다.

이내 다행히 독낭을 회수해냈다.

사실 이현성이 삼목금섬을 기를 쓰고 죽인 것은 독낭 때문이 아니었다. 독낭은 부차적인 전리품이었다.

“삼목금섬의 세 번째 눈. 삼목(三目)이…….”

삼목금섬은 눈이 세 개였다.

허나 실제로 눈이 세 개인 것은 아니었다. 세 개 중 가장 위에 있는 눈은 바로 삼목금섬의 내단이었다.

오랜 시간 자연의 기운을 흡수한 금섬이 내단(內丹)을 형성했는데, 그 위치가 이마였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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