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살수-16화 (16/314)

16화.

* * *

“…혼원신검(混元神劍) 등장, 독종(毒宗)의 죽음…인가.”

이현성이 상청동에 온 지도 벌써 한 달이 되었다.

그는 본격적인 수련에 앞서서 부상과 약해진 체력을 회복하는데 집중했다.

다행인 것은 본초경집주 덕분에 상처회복에 좋은 약초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귀망산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산인 만큼 약초들이 지천에 널려 있었다. 덕분에 한 달 만에 수련을 시작할 수 있을 정도로 몸을 만들 수 있었다.

이현성은 몸을 회복하는데 집중하는 한편, 또 한 가지의 작업을 함께 진행했다.

그것은 바로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정리였다.

영물이나 절세신공, 천하보검 등 알려지면서 혈풍이 불었던 굵직굵직한 사건들이니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 외에도 무림에 큰 영향을 끼친 사건들 역시 함께 적었다.

사천당가의 태상가주인 독종(毒宗)의 죽음이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그중 일부는 아니, 상당수는 혈천과 연관이 있었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산동의 고랑(孤狼) 곽호, 사천의 신룡검객(神龍劍客) 유백, 강소의 환락대부(歡樂代父)… 이들 중 3할 아니, 2할만이라도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 해.”

사람의 이름이나 별호 역시 수두룩하게 적혀 있었다.

그들은 추후 두각을 보이는 무림인 혹은 그 외 다른 분야의 대가들이었다.

강소의 환락대부의 경우 무공도 무공이지만 소주의 숨은 지배자였다. 그가 가진 재력과 세력 등은 웬만한 대문파도 비교되지 않는다.

물론 아직은 이들 역시 애송이들에 불과했다.

이현성의 목표는 이들이 꽃을 피우기 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끌어들이는 것이다.

허나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들뿐만 아니라 자신 역시 애송이였기 때문이다.

“이 서책에 적은 것 중 일부라도 손에 넣으려면 먼저 나부터 강해져야겠지.”

결국 자신이 약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었다.

그런 그가 맨 처음 손을 댄 것은 바로 기환십이결이었다.

물론 기환십이결을 모두 익힐 생각은 아니었다.

과감하게 포기할 부분은 포기하고, 도움이 될 부분만 익히기로 결정했다.

“만환결과 조환결만 내 살법에 접목시킬 수 있어도 최소 살왕(殺王)과 견줄 수 있겠어.”

기환십이결 중에서도 그가 주목한 것은 만환결과 조환결이었다.

만환결(萬幻訣)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모든 만물로 변하는 기환술이었다.

남녀노소는 물론 동물로도 변할 수 있었다.

만약 자신이 익힌 십보십변(十步十變)이라는 역체변환공과 접목하면 그 누구도 그의 진면목을 알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조환결은 자연에 녹아드는 기환술이었다.

따라서 천하의 그 어떤 은신술보다 뛰어나다.

“특히 조환결은 내가 이곳을 떠나기 전에 익혀야 하는데…….”

이곳에 지내면서 당장 익힐 수 있는 무공을 최대한 익힐 생각이었다.

그중에서도 중심에 둔 것은 은신술과 조환결의 접목이었다.

그 어떤 고수보다 기감이 예민한 무언가를 속여야 하기 때문이다.

“…귀혈삼만 손에 넣으면 당장 시급한 내공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니까.”

* * *

“…일점홍(一點紅).”

청년의 중얼거림과 동시에 무언가 허공을 갈랐다.

언제 휘둘렀는지 이미 검이 움직인 후였다.

일류를 잡아먹는 이류의 쾌검술, 일점홍.

청년의 정체는 바로 이현성이었다.

상청동에 들어올 때만 해도 소년이었던 그가 3년이 지난 지금, 훤칠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그간 잘 먹고 열심히 수련한 덕분인지, 이제 16살에 불과함에도 18, 9세의 사내로 보일 정도로 장성했다.

“일점홍은 이쯤이면 될 것 같군. 하지만…….”

지난 삼 년간 이현성은 육체만 성장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무공 역시 비약적으로 강해졌다.

일점홍뿐만 아니라 알고 있는 수많은 검법과 권법, 보법 등을 익혔다.

회귀 전에 익혔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지독하게 수련한 만큼 상당한 진전을 볼 수 있었다.

“도무지 기환십이결을 내 살법에 접목시킬 수가 없단 말이야.”

기환술은 쉬운 공부가 아니었다.

특히 기환십이결은 술법의 명문이라는 모산파의 정수였다. 간단히 익힐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살법에 섞는다는 것 역시 쉽지 않았다.

혈영살객의 지식과 깨달음을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이현성조차도 어려운 일이었다.

“답답하네. 후우. 이럴 땐 역시 상청도량심결인가.”

이현성은 세 개의 심법을 익히고 있었다.

첫 번째는 가장 오랫동안 익힌 포영심결이었다.

단전이 아닌 혈맥에 기운을 쌓기에 주력은 아니었다. 단, 유사시 가장 큰 도움을 준다.

두 번째는 혈영공(血影功)이었다.

혈살동에 입동하면 여러 무공을 익힐 기회가 있다.

이현성은 그중 혈살공이란 내공심법을 익혔다.

신공절학은 아니지만 절정심법이며, 무엇보다 살수에게 어울리는 심법이었다.

그도 나름 재능이 있는지 수련과정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덕분에 혈살공을 보완해서 혈영공이란 심법을 창안할 수 있었다.

그 후 수많은 임무(살행)를 거치면서 얻은 지식과 깨달음을 통해 혈영공은 조금씩 수정, 보완했다.

명가의 신공절학만은 못 하지만 원형인 혈살공보다 한두 수 뛰어나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익힌 심법이 바로 모산파의 상청도량심결이었다.

“상청도량심결의 이 상쾌함 때문에 익히지 않을 수가 없단 말이야.”

다행히 상청도량심결은 혈영공, 포영공과 충돌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익히는데 꺼릴 것이 없었다.

처음부터 상청도량심결을 익히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익힌 살법에 기환십이결, 특히 만환결과 조환결을 접목시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로 인해 머리가 지끈거렸다.

포기하려고 한 적도 있으나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큰 힘이 되어줄 것임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자신도 모르게 상청도량심결의 구결을 중얼거렸다. 그것만으로도 지끈거림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그 이후 이현성은 골치가 아플 때마다 상청도량심결의 구결을 읊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이제는 아예 상청도량심결을 익혀버렸다.

가부좌를 튼 이현성은 상청도량심결을 운용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뭘까? 살법과 기환술을 접목한다는 내 생각이 문제일까?’

보통 운기행공 중 잡념에 빠지면 주화입마에 빠질 수 있으나, 상단전에 기반을 둔 상청도량심결은 그럴 걱정이 없었다.

뇌를 자극해서 활성화시키기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

물론 이현성이 이런 사실을 알고 하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너무 집착하는 걸까? 미련인 걸까? 기환술이란 뭘까?’

이현성은 보다 근본적인 부분을 생각하며 자문자답했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항상 하던 일이지만 이번에는 평소보다 더욱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높고 높은 하늘은 포용하니… 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상청도량심결을 속으로 읊으며 운공 중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깨지는 아니, 열리는 기분이 들었다.

놀랍게도 상단전이 형성되면서 개화된 것이다.

허나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가 알고 있는 수많은 구결과 깨달음이 몰아쳤다.

혈영살객으로 익히고, 혹은 알고만 있었던 무공의 구결이나 깨달음이 폭풍이 되었다.

그 후 놀랍게도 기환십이결의 구결들이 합류했다.

주로 연구했던 조환결과 만환결만이 아니었다.

연구까지는 아니지만 암기하고 있던 나머지 십결 역시 폭풍에 합류했다.

이 폭풍을 감싸는 중심역할을 하는 구결이 있었다.

바로 상청도량심결이었다.

‘그렇구나… 그런 거구나…….’

폭풍은 그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안겨주었다.

그 순간 이현성은 한 단계를 넘어설 수 있었다.

“흡흡… 하…….”

가부좌를 튼 이현성의 얼굴에는 환희와 아쉬움이 깃들었다.

깨달음을 통해 무아지경에 빠져 환희에 찼고, 동시에 그 무아지경에서 벗어나면서 아쉬움이 깃든 것이다.

잠시 후 이현성의 눈이 떠졌다.

순간 그의 눈에서 안광이 번쩍였다.

그간 진전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능할까? 아니, 가능해.”

이현성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순간 그가 사라졌다.

은신술을 펼친 것일까?

아니었다. 은신술이되, 은신술이 아니었다.

단순히 기척을 숨기고 몸을 숨기는 것이 아니었다.

자연에 녹아들어서, 자연 그 자체가 된다.

그러니 어찌 은신술이라고 칭할 수 있겠는가.

깨달음을 통해 살법 등 그가 알고 있던 무공과 기환십이결이 녹아들었다.

이제 살법이라고 칭하기도 힘들고, 술법이라고 칭하기도 힘들다.

완전히 새로운 공부였다.

게다가 자연에 녹아드는 것뿐만 아니라 원한다면 어떤 형태로든 변할 수 있었다. 역체변환공과는 격이 다르다.

“…그야말로 삼라만상(森羅萬象)이구나.”

살왕조차 경악하게 만드는 절대공부, 삼라만상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현성이 얻은 것은 삼라만상 하나가 아니었다.

그가 갑자기 검을 뽑았다.

순간 그의 검이 은은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검…기(劍氣)인가.”

놀랍게도 검에 어린 기운은 바로 검기였다.

일류고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검기를 고작 16살의 나이에 발현했다.

16살의 나이에 일류고수가 된 사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명문의 후예 중에는 더러 존재했다.

하지만 그들은 가문 혹은 사문의 막대한 지원을 받았기에 가능했다.

태어나자마자 벌모세수를 받고, 영약을 밥 먹듯이 먹으며, 뛰어난 스승에게 대단한 신공을 전수받는다.

그렇게 각 가문이나 사문의 미래를 짊어질 기재가 탄생한다.

그러나 이현성은 혼자만의 힘으로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고작 반갑자(30년)의 내공과 깨달음 덕분으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지금 깨달은 수법 아니, 삼라만상과 검기를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면 ‘그것’에 도착할 수 있겠어.”

* * *

다시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검기를 통해 다시 검술을 다듬고, 삼라만상을 능숙하게 익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상청동 밖으로 나온 이현성은 귀망산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그가 이곳 귀망산을 은거지로 삼은 이유는 상청동 때문만이 아니었다. 애초에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영초 때문이다.

“이쯤인 것 같은데… 귀혈삼이 있는 곳이…….”

현재 그의 고질병인 내공 부족을 단번에 해소해줄 영약이 바로 이곳 귀망산에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귀혈삼(鬼血蔘)이었다.

영초의 대표격은 바로 산삼이었다.

오랜 시간 산의 정기를 흡수한 산삼은 일반인에게는 최고의 보약이고, 무림인에게도 최고의 영약이었다.

그런 산삼 중 최고로 치는 것이 바로 인형삼왕이었다.

수천 년간 자연의 정기를 흡수한 산삼은 흡사 아기의 형상처럼 변한다.

이에 인형삼왕(人形蔘王)이라고 칭하게 되었다.

문제는 인형삼왕이 인세에 존재한다고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희귀하다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실질적으로 천년산삼(千年山蔘)을 최고로 친다.

인형삼왕에 비교해서 부족할 뿐, 천년산삼 역시 대단한 영초였다.

그런데 이곳에 있는 귀혈삼은 인형삼왕만은 못 하지만 천년산삼을 능가하는 기운을 가졌다.

일반적으로 산삼은 산의 정기를 흡수한 양기(陽氣)의 영초다. 하지만 귀혈삼은 반대였다.

귀망산의 음기(陰氣)와 귀기(鬼氣)를 흡수하면서 음험(陰險)한 영초로 자랐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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