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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14화 (14/314)

14화.

혈무곡의 부교두들이 얼마나 꼼꼼히 처리했는지 개방의 거지들까지 속아 넘어갈 정도였다.

하지만 개방이 괜히 정파의 눈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퍽!

“으… 어떤 새… 헉! 분타주님!”

“오, 오셨습니까. 분타주님.”

제법 나이가 있는 거지가 뒤통수를 문지르며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이내 얼른 고개를 숙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중년 거지의 등장에 십여 명의 거지들 모두 고개를 숙였다.

허리띠 한두 개를 두르고 있는 다른 거지들과 달리, 중년 거지만 허리띠를 세 개나 두르고 있었다.

이는 그가 개방의 삼결제자이자 분타의 책임자인 분타주란 것을 의미했다.

즉, 주변 일대의 거지들을 이끌고 있다는 뜻이었다.

구결까지 있는 개방에서 삼결제자는 너무 낮은 직위 같지만, 또 그렇지도 않았다.

개방의 구성원 대부분이 일, 이결제자인 개목과 개방으로 입문 삼년 미만인 백의개였다.

그들 중 개방에 대한 충성심과 능력을 인정받은 자만이 삼결과 분타주의 직위가 주어진다.

즉, 중년 거지의 직위가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마냥 낮다고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분타주의 직위를 골패로 딴것이 아니라는 듯 그는 매서운 눈으로 주변을 훑었다.

“이 자식! 네 이 따위면 내가 널 분타주로 추천할 수 있겠냐!”

“헤헤. 분타주님~ 왜 그러십니까~”

개목 중 새로운 분타주를 추천하는 일은 일반적으로 현 분타주의 권한이었다.

물론 장로들이 추천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리 흔한 경우는 아니었다.

중년 거지인 현 분타주는 곧 총타로 갈 예정이었다.

그렇기에 현 분타를 물려줄 인재를 찾고 있었다.

그중 눈앞에 있는 이결제자가 가장 유력했다.

개방의 제자가 된 지도 벌써 십 년에, 무공실력도 나쁘지 않고 주변 일대에 빠삭하니 그만한 자가 없었다.

하지만 오늘처럼 섣불리 판단하는 경우가 많아서 현 분타주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다시 한번 찾아봐라. 뭔가 이상하니까.”

“이미 샅샅이 찾… 아, 알겠습니다.”

“씁! 꼭 손이 올라가야 정신 차리지.”

분타의 거지들이 다시 아니, 더 열심히 탐색했다.

분타주는 역시 총타에서 불러들일 만한 인재였다.

그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부, 분타주님! 여, 여기 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오냐.”

그는 파헤쳐져 있는 땅을 발견했다.

바로 이현성이 묻혀 있던 장소였다.

혁련후 등 다른 이들에게 노출되지 않게 교묘하게 묻어두었기에 개방의 거지들도 꼼꼼히 조사한 후에야 발견할 수 있었다.

이현성은 이 흔적을 없애고 싶었으나 그럴 여유가 없었다. 개방의 거지들이 곧 들이닥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추적을 피하기 위해 움직이면서 자신의 도주 흔적만 지워가며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뭔가 묻혀 있었군. 뭐지? 뭘까?”

개방에서 주목하고 있는 인재라지만 설마 사람이, 그것도 소년이 묻혀 있다가 자력으로 나왔을 것이라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그가 아니라 누구라도 예측하지 못 할 일이었다.

결국 그는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모르겠군. 허나 결코 평범한 곳은 아닌 것이 확실해. 이 산 전체를 더 확실하게 조사해.”

“부, 분타주님! 무립니다! 저희만으로 어찌 이 산 전체를 조사하란 말씀이십니까!”

그들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동네 뒷산도 아니고, 이 정도 규모의 산을 십여 명이 조사하라는 건 죽으라는 것과 다름이 없다.

물론 분타주가 무책임하게 내린 명령은 아니었다.

“다른 분타에도 협조 요청할 테니 우는 소리 그만해.”

“여, 역시 분타주님이십니다!”

하지만 다른 분타의 거지들을 요청하기 전에 경악할 일이 벌어졌다.

개방의 거지들은 파헤쳐진 곳을 중심으로 수색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많은 아이들의 사체를 발견했다.

그 수가 무려 세 자리에 달했으니 경악을 금치 못했다.

“미, 미친!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경악한 분타주는 개방 총타에 지급으로 서신을 보냈다.

개방이 이 사실을 구대문파와 오대세가 등에 전하면서 무림은 발칵 뒤집어졌다. 이에 각 파에서는 특별 조사단을 파견하는 등 큰 소란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들은 혈천에 대한 단서를 어느 것 하나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이현성의 존재 역시 알아내지 못했다.

* * *

“후우. 찾았다. 귀망산(鬼亡山)…….”

혈무곡을 떠난 이현성의 행로는 수월치 않았다.

비록 구명지로 덕분에 내장기관까지 상하는 것만은 면했으나 철우의 대검에 찔린 상처가 아물지 못했다.

귀식대법을 펼친 덕분에 상처의 악화가 더뎠으나 동시에 회복력 역시 더뎠다. 게다가 체력 역시 돌아오기 전인 만큼 움직이는 것이 수월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현성은 부지런히 움직여야만 했다.

혈천과 개방 등의 눈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고통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의 그런 고생을 보상하듯 목적지인 귀망산에 무사히 도착했다.

“분명 인위적으로 형성한 것이 아님에도 이렇게 괴기스럽다니…….”

귀망산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음기(陰氣)와 귀기(鬼氣)가 가득한 산이었다.

그렇다고 혈무곡처럼 진법에 의해 인위적으로 음기와 귀기가 서린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꺼리는 산인 동시에 무림인들의 의심을 피할 수 있는 장소였다.

이현성이 이곳을 택한 첫 번째 이유이기도 했다.

“분명 이쯤에서 발견되었다고 들었는데… 엇! 여기 있다!”

그가 귀망산을 은신처로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이곳에 은거할 만한 공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누군가 준비한 공간이었다.

“여기가 상청동(上淸洞)이구나.”

상청(上淸)이란 옥청(玉淸), 태청(太淸)과 함께 도교에서 말하는 삼청(三淸)의 하나다.

즉, 이곳이 도교와 연관이 있는 공간이란 뜻이었다.

정확히는 상청파의 후예가 만든 장소였다.

상청파라고 하면 대부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름 식견이 있는 이들은 상청파의 다른 이름을 듣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모산파(茅山派).

바로 상청파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즉, 이곳은 모산파의 후예가 만들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도가일파인 모산파는 무공보다 부적과 술법 등으로 유명한 문파였다. 그런 그들의 마지막 은거지로 이 귀망산은 너무도 잘 어울렸다.

“청소만 하면 그런대로 지낼 수 있겠구나.”

사람이 거주한 지 제법 시일이 지났는지 먼지가 자욱했다. 그러나 청소하면 생활하는데 무리는 없을 것 같았다.

이곳에서 며칠만 지내기 위해 힘들게 온 것이 아니었다. 최소한의 힘을 갖출 때까지 머물 생각이었다.

그가 예상한 시간은 3년, 아무리 길어도 5년은 넘지 않을 예정이었다.

“우선… 운기행공부터 하자.”

이현성은 상당히 지쳐 있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수면을 최소한으로 하고, 피로는 운기행공을 잠깐씩 하여 풀었다.

그런 강행군으로 이곳까지 왔으니 지친 것은 당연했다.

긴장이 풀린 이현성은 그대로 누워버렸다.

그리고 그 상태로 운기행공을 했다.

일반적으로는 가부좌를 틀고 좌공(坐功)으로 운기행공을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당히 지쳤기에 와공(臥功)으로 대신했다.

그는 회귀 전 살수였기에 좌공 못지않게 와공에도 능숙했다.

그렇게 한 시진쯤 지나서야 눈을 떴다.

“후우. 이제 좀 살만하네. 그럼 상청동을 좀 구경해볼까?”

“본산이 아니라서 그런가? 그럴 듯한 것은 없네.”

모산파가 멸문한 지 백 년도 더 지났다.

그 후 그들의 후예들이 다시 한번 모산파를 부흥시키기 위해 은거한 장소가 바로 이곳 상청동이었다.

귀한 지보(至寶)들은 본산이 멸문할 때 대부분 소실되었다.

모산파의 후예들이 부흥에 실패한 가장 큰 이유였다.

그것을 알기에 이현성은 크게 실망하지도 않았다.

“청정경, 심인경, 영보필법, 황제음부경… 역시 도경뿐이네.”

하나같이 성인의 말씀이 담긴 도경들이었지만 힘이 필요한 이현성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부흥에 실패했다고 해도 모산파의 후예들이 나름 준비했던 장소였다.

도경들만 있을 리가 없었다.

이현성은 조금 더 세심하게 살폈다.

“역시 무공비급도 있구나… 어디 보자…….”

이현성이 가장 먼저 집은 서책은 상청검(上淸劍)이라는 검법서였다.

아무래도 검을 익혔기 때문에 가장 먼저 눈이 갔다.

하지만 이내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류라고 부르기에 부족하지 않은 검법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회귀 전에 익힌 검술 중 이보다 뛰어난 검술이 수두룩했다.

그러다 보니 상청검 정도는 그의 흥미를 끌 수 없었다.

그 외의 무공비급 중에서도 이현성을 만족시킬 만한 무공은 없었다. 전성기 시절 모산파의 상승절학은 대부분 소실되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역시인가… 하지만 모산파라면 무공보다는 술법이지.”

결국 이곳을 그의 은신처로 사용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모산파는 무학보다 술법으로 유명한 문파였다. 비록 술법을 배운 적이 없으나 알아서 나쁠 것도 없었다.

사람들은 살수를 그저 돈을 받고 살인하는 자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살수는 준비하는 자다.

살수계에서 오래 살아남는 자는 그만큼 철두철미하게 준비하는 자라는 뜻이다.

회귀 전, 그가 마지막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죽임을 당한 건 결국 준비가 소홀했기 때문이다.

“…없는 건가?”

의외였다.

술법서로 보이는 서책이 단 한 권도 보이지 않았다.

고작 일류 무공서만으로 모산파의 부흥을 꿈꾸었을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달랐다.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모산파의 유산이 남았다면 좋았겠지만 없는 이상 아쉬워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하긴… 이곳이 발견되었을 당시에도 모산파의 유산을 손에 넣었다는 말은 없었으니까.”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후 귀망산에 무림인들이 몰려든 이유는 상청동 때문이 아니었다.

다른 이유로 무림인들이 귀망산에 모여들었고, 그 과정에서 상청동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상청동에서 모산파의 유산을 얻은 자가 있다 말은 없었으니, 애초에 이곳에는 원하는 모산파의 유산은 없었는지도 몰랐다.

이현성은 더욱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간이로 만들어진 모사파의 조사전이 있었다.

모산파의 개파조사인 자허원군(紫虛元君) 위화존을 중심으로, 이십여 개의 위패와 이미 오래전에 꺼진 분향단이 놓여져 있었다.

이현성은 그 앞으로 걸어갔다.

“저는 이현성이라고 합니다. 비록 모산의 제자는 아니지만 당분간 이곳에서 지내고 싶습니다. 부디 노여워하지 말아주십시오.”

그는 모산파의 조사들을 향해 무릎 꿇고 절을 올렸다.

모산파와는 연관이 없으나, 상청동에서 지내기로 결정했기에 원주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를 표한 것이다.

비록 혈무곡이라는 지옥에서 5년간 지내면서 많이 냉정해졌으나 인성을 완전히 잃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모산파 조사들에게 예를 표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자, 그럼… 청소 좀…….”

화르륵!

이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였다.

삭을 대로 삭은 분향단에 불이 붙었다.

그것도 푸른 불(靑火)이었다.

갑작스러운 기사(奇事)에 이현성은 움찔하며 본능적으로 경계했다.

하지만 그를 위협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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