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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13화 (13/314)

13화.

그 역시 눈이 뒤집어지긴 마찬가지였다.

생명조차 도외시하는 광견과 같은 두 사람의 모습은 너무나도 섬뜩했다.

아무리 혁련후라도 저 상태인 두 사람을 상대로 무사하기는 불가능했다.

이를 본 13호를 포함한 그의 부하들이 움직였다.

하지만 그들보다 더 빨리 움직인 이가 있었다.

그는 바로 검귀였다.

짝! 짝!

“정신 차려라. 저 녀석의 유언이 ‘살아라’인 것 같았는데? 아니었나?”

“흑흑… 성님!”

“흐흑… 흐흑… 흐흑…….”

검귀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던 혁련후는 두 사람을 쏘아보며 살기를 드러냈다.

하지만 차가운 음성에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애송아. 죽고 싶지 않으면 적당히 까불어라.”

―혁련세가가 네 목을 계속 붙여줄 거라 생각하지 말고.

검귀의 전음에 혁련후는 이를 악물었다.

자신은 혈천의 기둥인 혁련세가의 혈족이었다.

혈천의 일개 검에 불과한 자가 감히 자신에게 협박이라니… 참기 힘든 모욕감이 들었다.

검귀를 일개 검이라고 칭할 정도로 하찮은 존재는 아니었지만 혁련세가의 직계에 비해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은 혁련세가의 직계 혈족이 아닌 훈련생 1호일뿐이었다.

문제를 일으키면 곤란해지는 것은 자신이었다.

‘일개 검인 주제에 감히!! 두고 보자… 네놈을 내 앞에 무릎 꿇게 만들어 주마!’

혈검살객과 검귀의 악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 * *

“66호가 죽어? 의외군.”

보고를 받은 혈무곡주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간의 보고에 의하면 당연히 살아남는 쪽은 66호여야 했기 때문이다.

검귀뿐만이 아니었다. 곡주와 여러 고수들이 66호, 이현성을 눈여겨보았다.

“80호는 66호가 그간 동생처럼 데리고 다니던 녀석입니다. 아무래도 감정이 흔들린 탓인 것 같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

고수들 사이에서도 작은 변수가 생사를 갈랐다.

하물며 아직 미숙한 부분이 많은 훈련생들 간의 생사결이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곡주는 더 이상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쉽군. 좋은 인재였는데 말이야.’

66호 이현성은 혈무곡의 훈련생 중에서도 손꼽히는 인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빌 언덕이 없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본천에 복귀할 때 따로 챙겨갈 생각까지 한 인재였다.

하지만 죽고 말았다. 그렇기에 더 이상 흥미가 없었다.

‘67호와 80호라면 66호를 대체할 수 있겠지만… 그럼 곤란해.’

보고에 의하면 그들은 1호와 대판 싸웠다.

단순히 훈련생 1호라면 상관없겠지만 그가 혁련세가의 직계혈족이라면 말이 달라졌다.

자신이 67호와 80호를 거두면 결국 혁련세가와의 마찰까지 감수해야 했다.

그것까지 감안하면 오히려 손해였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인재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죽은 66호와 계륵이 된 67호와 80호.

혈무곡주는 아쉬웠지만 그뿐이었다.

그때 또 한 명의 부교두가 들어왔다.

“곡주님. 본천에서 지급(至急)으로 서신이 왔습니다.”

“본천에서? 얼른 줘보게!”

혈천에서 혈무곡과 같은 훈련소에 서신을 보내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하물며 지급으로 날아온 서신이었기에 중요한 내용이 아닐 리가 없었다.

서신의 내용을 모두 읽은 혈무곡주의 눈이 커졌다.

“곡주님…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본곡을 폐쇄하고 훈련생 아니, 후보생들을 이끌고 본천에 복귀라는 명이다.”

“예? 폐쇄 말입니까?!”

부교두들 역시 깜짝 놀랐다.

훈련생들을 보낼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나 혈무곡을 폐쇄할 줄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명을 내린 이유가 따로 있었다.

“거지 놈들이 무슨 낌새를 느낀 것 같다고 한다.”

“개방 놈들이 말입니까?”

정파의 정신적 지주인 구대문파.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둔다는 천하제일대방, 개방(丐幇).

거지들의 문파인 개방이 불문(佛門)과 도문(道門)인 구대문파와, 함께 정파의 기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무력도 무력이지만 방대한 정보력 덕분이었다.

천하에 거지가 없는 지역은 없다.

물론 천하의 모든 거지가 개방의 소속은 아니었다.

그러나 개방도가 아닌 거지들조차 그들에게 정보를 물어다 줄 정도였다. 그러니 정보가 많은 것은 당연했다.

그런 개방이 냄새를 맡았다?

개방 따위가 두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아직은 혈천이 드러날 때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본천에서는 혈무곡의 폐쇄를 결정했다.

양성소쯤은 얼마든지 다시 만들 수 있기에 굳이 미련 가질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때마침 훈련생들의 훈련도 마무리됐으니 딱 좋은 시점이었다.

“곧 거지들이 들이닥칠 수 있으니 본곡을 폐쇄하고, 떠날 준비를 해라.”

“존명!”

부교두들은 일사불란하게 사라졌다.

그들이 명을 받고 사라지자 혈무곡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혈무곡 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다고 한들, 혈무곡주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그의 꿈은 본천에 돌아가는 것. 그리고 진짜 권력을 갖는 것이다.

그렇기에 혈천의 유력세가들에 줄을 대려고 혈안이 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예상치 못한 기회에 복귀할 수 있게 되었으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냄새나는 거지 놈들이 날 도와주는구나! 하하하!!”

* * *

“해진하라.”

“해진(解陣)!”

혈무곡주 아니, 마광수라의 명에 부교두들은 혈무곡에 설치된 혈혈운무진을 해체했다.

이미 이곳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태울 것은 태우고, 부술 것은 다 부쉈다.

흔적을 완벽하게 지운 그들은 혈혈운무진을 끝으로 혈무곡의 존재를 소멸시켰다.

“각 교두, 부교두들은 후보생들을 이끌고 약속장소로 모여라.”

“존명!”

생사결로 인해 상당수의 훈련생들이 죽었다고 하지만 남은 혈살객 후보생들만 해도 백수십 여명이었다. 거기에 교두, 부교두까지 합치면 족히 백오십여 명은 된다.

그 수가 한꺼번에 움직이면 발각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뜩이나 개방의 거지들이 주변을 탐색 중이니 더더욱 인원을 분산해서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에 교두, 부교두들이 각기 2~5명씩 데리고 사방으로 흩어진 뒤 미리 약속한 장소에 모이기도 했다.

“…가자.”

“…예.”

“…….”

검귀의 차가운 목소리에 두 소년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67호와 80호. 즉, 초운비와 철우였다.

그들의 몸은 검귀의 뒤를 따르고 있었으나 마음은 딴 곳으로 향했다.

바로 이현성의 무덤이었다.

‘형님… 언젠가 양지 바른 곳으로 옮겨드릴게요. 이 못난 동생들을 용서하지 마십시오.’

‘성님… 성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빌어먹을! 하늘에서 이 못난 동생을 지켜봐 주십시오! 혁련후 개자식은 저희가 반드시 지옥으로 보내겠습니다!’

무덤 아니, 무덤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이곳에서 개죽음을 당한 백여 명을 한곳에 파묻었다.

마음 같아서는 의형인 이현성의 무덤을 멋지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혈무곡을 폐쇄하고 흔적을 지워야 한다는 이유로 무덤을 만드는 것을 금지당했다.

두 사람은 부교두의 말을 꺾을 힘이 없었기에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대신 철우는 자신의 목걸이를 그의 목에 걸었다.

나중에 수많은 시체 중 이현성을 찾기 위해서였다.

자신의 출신과 연관이 있는 매우 소중한 목걸이였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만큼 이현성은 그에게 아니, 그들에게 소중한 존재였다.

두 사람은 마음으로 울며 혈무곡이 있었던 산을 떠났다.

그렇게 백오십여 명이나 되는 인원이 사라졌다.

그들이 떠나고 며칠 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퍽!

땅속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놀랍게도 그것은 사람의 주먹이었다.

잠시 후, 땅이 파헤쳐지더니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허억… 허억… 죽을 뻔했네.”

땅에서 나온 인물은 놀랍게도 철우의 대검에 찔러서 죽은 이현성이었다.

안색이 무척 나빴으나 놀랍게도 살아 있었다.

대검에 가슴이 뚫린 그가 어찌 살아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후우. 아찔하네. 한치만 빗겨났어도 그대로 죽었을 텐데… 구명지로(救命之路)를 이렇게 써먹을 줄이야.”

분명 이현성의 가슴에는 검에 찔린 흔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살아 있었다.

관통상이 위험한 이유는 몸속의 내장기관에 손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장기관들 사이에도 아주 미세한 틈이 존재한다. 그 틈을 교묘하게 찌르는 초식이 바로 구명지로였다.

그러나 구명지로를 익히는 자는 없었다.

익힐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부교두가 구명지로를 알아봤다면 끝장이었겠지만… 다행이야.”

개똥도 쓸모가 있다고, 구명지로 역시 쓸데가 있었다.

적에게 포위당했을 때 자결한 척할 수 있는 살수비기로.

그러나 이런 고급비기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현성도 회귀 전에 우연하게 알게 됐을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부교두 역시 구명지로를 알지 못했다.

그렇다. 이현성은 철우가 찌르는 대검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스스로 뛰어들어서 구명지로의 틈에 찔린 것이다.

그 후 귀식대법을 통해 심장을 멈춤으로써 죽음으로 위장할 수 있었다.

그의 죽음을 확인했던 부교두도 설마 고작 13살짜리 애송이가 귀식대법을 익혔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물론 그의 죽음을 의심한 혁련후의 검을 철우가 막아주지 않았다면 진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죽었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구명지로, 귀식대법 그리고 포영심결이 아니었다면… 후우…….”

구명지로와 귀식대법이 죽음을 위장할 수 있게 해주었다면 포영심결은 그의 생명을 끈질기게 붙잡아주었다.

즉, 셋 중 하나라도 없었다면 결코 시도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이현성은 몸을 추스를 여유도 없이 힘겹게 움직였다.

그때 무언가가 자신의 목에 걸려 있음을 알아차렸다.

처~렁~

“음? 이건 철우의 목걸인데… 녀석…….”

자신의 목에 웬 목걸이가 걸려 있자 의아해졌다.

그런데 목걸이가 낯설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철우가 항상 목에 걸고 있던 목걸이였다.

이것이 왜 자신의 목에 걸려 있을까를 생각하던 이현성은 곧 깨달았다.

자신과 다른 시체를 구분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차후 자신의 시체를 찾겠다는 철우의 뜻이 분명했다.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

두 동생들을 그 지옥에서 구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꼭 구해주겠다고 다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끄응… 후우. 마음 같아서는 운기행공이라도 하고 싶지만… 개방의 눈에 걸리면 나 역시 좋을 게 없어.”

회귀 전에도 개방이 혈무곡에 대해 눈치채고 접근했다. 그로 인해 당시에도 혈무곡을 폐쇄했다.

즉, 교두와 부교두들 역시 떠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눈을 떴을 때 그들이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면 죽음을 위장한 의미가 없었다.

이 모든 사실을 알기에 할 수 있던 모험이었다.

이현성은 그렇게 회복되지 않은 몸을 이끌고 움직였다.

이 상황에서 개방의 거지들과 맞닥뜨린다면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그 와중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무단히 노력했다.

그렇게 이현성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개방의 거지들이 들이닥쳤다.

그야말로 간발의 차였다.

개방의 거지들은 주변을 탐색했으나 이렇다고 할 만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특별한 것은 없어보이는데?”

“역시 헛소문이었나 봅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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