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그로 인해 계획에 큰 지장이 생겼다.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인데… 혈무곡을 떠나는 마지막 시험이 남았다고 하더라.”
“마지막… 시험이라시면…….”
“살인…….”
“사, 살인이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현성이 말에 두 소년은 깜짝 놀랐다.
혈무곡 내에서도 살인이 공공연하게 벌어졌다.
배식에 조절이 생기자 먹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이들 셋은 3대 파벌이 알아서 양보한 덕분에 살인할 필요 없이 식사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살인해본 적이 없다는 뜻이었다.
“상대를 죽여야 끝나는 생사결(生死決)을 통해 승자만 추려서 나간다고 하더라. 그래서 귀식대법이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못하겠지만… 너희들의 생존에 도움이 될까 싶었지.”
“그럴 바에는 검술에 집중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형님.”
“그럴지도… 아니, 그게 낫겠다.”
이현성은 대충 얼버무렸다.
그리고 계획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계획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귀식대법을 필수적으로 익혀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의제들은 아직이었다.
결국 이현성으로서는 두 의제까지 데리고 나가는 계획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다… 얘들아… 준비를 마치면 반드시 너희를 구하러 올게.’
* * *
이현성의 말은 사실이었다.
보름 후 마지막 시험이 벌어졌다.
“…다. 살고 싶다면 상대를 죽여라.”
웅성웅성.
지난 5년간 혹독하게 훈련받았기에 교두나 부교두의 허락 없이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너무도 큰 충격적이었는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혈살객을 양성하려는 혈무곡 교두로서는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입 다물어라! 더 이상 주둥아리를 나불거리면 죽고 싶다는 뜻으로 알겠다!”
“…….”
죽인다고 말로만 하는 자들이 아님을 알기에 훈련생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제야 만족스러운지 부교두 중 한 명이 다시 외쳤다.
“17호, 89호. 따라와.”
“110호, 151호. 너희는 날 따라와라.”
두명씩 생사결을 벌인다면 몇날 며칠이 걸려도 끝내지 못했다. 그렇기에 교두, 부교두의 주관 하에 분산되어서 생사결을 치렀다.
“어, 어떻게…….”
“왜 하필 너야…….”
이 지옥에서도 나름 유대가 있던 이들끼리 생사결의 상대로 배정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훈련생들은 시작하지 못하고 주저했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혈천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푹! 푹!
“명을 거스르는 녀석은 죽는다.”
부교두의 창이 두 훈련생을 찔렀다.
일벌백계를 통해 명령불복종은 곧 죽음이라는 것을 모두에게 각인시켜주기 위함이었다.
그제야 훈련생들은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정에 이끌리면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 미안!”
“너, 너!!”
챙! 챙!
생사결의 대상으로 지목된 훈련생들은 결국 무기를 휘둘렀다.
그렇게 본격적인 피의 제전이 시작되었다.
“사, 살려… 컥!”
혁련후의 검에 의해 상대 훈련생의 심장이 갈라졌다.
그렇게 또 한 명의 훈련생이 죽었다. 그러나 혁련후의 표정에는 별다른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그에게 살인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애초에 그가 벤 훈련생은 그다지 유대감을 형성한 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수고하셨습니다. 대장.”
“애들은?”
“대부분 생존했습니다.”
혁련세가에서 손을 썼는지 혈무곡주는 특별지시를 내려서 그와 그를 따르는 훈련생들의 배정을 바꾸었다.
다른 파벌, 그것도 상대적으로 약한 훈련생들로 사전에 손을 썼다.
“어차피 고작 이 정도로 죽는다면 애초에 필요도 없는 놈이지.”
냉정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만인의 위에 군림할 자는 사사로운 감정에 흔들려서는 아니 되는 법이었다.
그런 면에서 혁련후는 전형적인 군림자였다.
“그쪽은 어떻게 되었지?”
“아직… 아, 이제 막 시작하려나 봅니다.”
13호의 말에 혁련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는 가문의 도움으로 한 번 더 배정에 장난질을 했다.
그때 부교두가 입을 열었다.
“66호, 80호. 나와라.”
“……!!”
“서, 성님!”
66호인 이현성의 생사결 상대는 바로 80호, 철우였다.
이현성은 고개를 돌려 누군가를 노려봤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을 비웃고 있는 누군가를 볼 수 있었다.
‘네놈 짓이냐!’
‘흐흐흐… 그래. 내 작품이었다. 소중한 의제를 죽이는 네놈의 모습을 잘 지켜보마.’
이현성의 눈빛이 닿은 곳에는 1호인 혁련후가 있었다.
그가 꾸민 짓임을 안대도 지금 와서 바뀔 것은 없었다. 이미 부교두는 명을 내렸고, 번복은 있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나…….’
죽음과 부활
“저, 저는…….”
80호 아니, 철우는 대검을 들 수가 없었다.
대검이 너무 무거워서가 아니었다. 상대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좋아하는 의형인 이현성이었기 때문이다.
이현성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더 지체했다가는 부교두가 움직일 수 있다.
아무리 자신이 숨기고 있는 것이 많다고 해도 아직 부교두와 견줄 정도는 아니었다.
결국 부교두의 손이 도파(刀把, 칼자루)로 향했다.
“하합!!”
챙!!
그때 이현성이 움직였다.
그의 검이 철우에게 향했다.
철우는 본능적으로 이현성의 검을 막아냈다.
철우는 당황했다.
설마 의형이 진짜 검을 휘두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멍하니 있지 마. 철우야. 허무하게 죽기 위해서 지금까지 버텨낸 게 아니잖아. 친구가 보고 싶다고 했잖아.”
“…….”
철우는 이현성과 달리 가족이 없었다.
아주 어린 시절 버려진 고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형제와 같은 존재가 있었다.
바로 거지패 시절의 친구였다.
철우는 그 친구를 다시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지금까지 버텨냈다.
물론 이현성은 알고 있었다.
철우의 납치를 숨기기 위해 이들이 거지패를 정리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러나 알려주지는 않았다.
철우의 마지막 희망을 짓밟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희망조차 없다면 이 지옥에서 버틸 수 없었다.
이현성 역시 그와 같은 상황이었다.
“와라! 철우야! 그간 얼마나 강해졌는지 형에게 보여줘라!”
“예! 성님! 하합!!”
결국 철우는 대검을 휘둘렀다.
고작 12살답지 않은 묵직한 파공음이었다.
채~앵!!
움찔!
이현성도 움찔 떨 정도로 묵직한 위력이었다.
‘하필 철우란 말이냐. 차라리 운비였다면 나았을 텐데…….’
사실 이현성도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
교두, 부교두들이 생사결의 배정을 친분 있는 이들 끼리 묶었다. 그렇게 서로를 죽임으로써 마지막 감정까지 없애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결국 자신의 상대는 초운비나 철우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두 아이들이 생사결을 치르면 자신은 다른 훈련생을 상대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런 기대를 무너트리고, 이현성의 상대는 철우가 되었다.
‘어쩔 수 없지… 해볼 수밖에. 실패하면 아니, 무조건 성공한다. 무조건…….’
이현성은 전의를 불태웠다.
그는 지난 5년간 오늘만을 기다렸다.
정확히는 오늘을 염두에 두고 훈련했다.
절대 실패해선 안 되었다.
챙! 챙! 채챙!
‘후우. 장난이 아니네.’
아직 미숙함이 많은 철우의 검격이었지만, 직접 겪어보니 쉽지 않았다.
이현성 역시 아직 미숙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혈운심법을 익혔다고는 하지만 12살짜리가 다루기에 대검은 너무나도 무거웠다.
그런 대검을 어색하지 않게 다루는 철우가 대견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철우의 검은 아직 너무 정직하구나. 그래서는 안 된다.’
철우의 검격은 매우 정직했다.
기본에 충실하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아직 대검을 수족처럼 다룰 정도는 아니라는 의미였다.
그렇기에 그의 검격이 어떻게 이어질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것은 실전에서 매우 큰 약점이 될 수 있었다.
때문에 경험 많은 무림인들은 변초를 많이 섞었다.
적이 자신의 검격을 예상치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고작 무공을 익힌 지 5년 그중에 대검을 익힌 지 2년 밖에 되지 않은 어린 소년 무사에게는 버거운 일이었다.
‘미안하다… 철우야…….’
결정을 내린 이현성은 벼락같이 움직였다.
푹!!
검이 가슴을 가르고 깊숙이 들어갔다.
가죽을 가르는 소리가 너무도 섬뜩했다.
그리고 검을 통해 느껴지는 감촉은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서, 성님… 아, 아악!!”
쿨럭쿨럭.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가슴에 검이 꽂힌 자도, 피를 흘리는 자도 철우가 아니었다.
놀랍게도 그는 바로 이현성이었다.
분명 철우도 뛰어난 인재였다.
혈무곡의 훈련생 중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충분히 들 정도의 실력자였다.
하지만 이현성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었다.
숨기고 있기 때문이지, 그의 진짜 실력은 혁련후와 하후광도 한 수 아래로 보았다.
그러나 지금 죽어가는 자는 철우가 아닌 이현성이었다.
그런 이현성을 바라보며 철우는 바들바들 떨었다.
의형인 이현성을 찌른 감촉이 그를 미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현성은 철우를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안했다.
그에게 무거운 짐을 넘겨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쿨럭.
“철우…야.”
쿨럭…….
“자책하지 마라… 넌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
쿨럭쿨럭.
이현성은 오히려 그를 걱정했다.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멸할 철우를 말이다.
그렇기에 마지막까지 뜻을 전했다.
“반드…시… 살아…라… 내 몫까지…….”
“서, 성니임!!!”
결국 이현성은 눈을 감았다.
그의 귀로 절규하는 철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절규는 점점 희미해져 갔다.
‘미안하다. 철우야. 진실을 말하지 못해서… 너에게 이 짐을 넘겨줘서 미안해… 이 형이… 정말…….’
결국 이현성의 심장이 멈추었다.
철우는 죽은 이현성의 몸을 부여잡고 절규했다.
그런 그를 밀어낸 부교두가 이현성의 죽음을 확인했다.
‘확실히… 죽었군.’
심장이 완전히 멈춘 것을 확인한 부교두가 이현성의 죽음을 선언했다.
초일류 고수인 부교두가 직접 확인했으니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 상황을 믿을 수 없는 자가 몇몇 있었다.
그중 한명은 검귀 교두였다.
‘죽었…다고? 그 녀석이?’
그답지 않게 눈동자가 급격하게 흔들렸다.
마음 같아서는 직접 확인하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검귀 교두와 달리 직접 확인하려는 자가 있었다.
“죽었다고? 66호 그놈이? 그렇단 말이지?”
바로 혁련후였다.
그가 검을 휘둘렀다.
확인사살을 하려는 속셈이었다.
푹!
검을 찌른 혁련후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찌른 자는 이현성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철우가 이현성을 대신해 혁련후의 검에 찔렸다.
“큭! 개자식! 지금… 지금 형님을!!”
“미친놈. 그 형님을 찌른 것은 바로 네놈이라고.”
“으아악!!”
혁련후가 실실거리며 비아냥거리자 철우는 간신히 잡고 있던 이성을 잃고 말았다.
눈이 뒤집힌 철우는 앞뒤를 생각하지 않고 혁련후에게 달려들었다.
성난 황소와 같은 모습에 혁련후도 움찔할 정도였다.
“미친 새…….”
챙! 챙!!
혁련후는 철우를 벨 수 없었다.
자신을 향해 날아온 암기를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어떤 새… 네놈이냐!”
“죽여버리겠어!!”
암기의 정체는 다른 곳에서 생사결을 마치고 돌아온 67호, 초운비가 던진 단검들이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