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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11화 (11/314)

11화.

이에 동관의 훈련생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서관의 대장인 104호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오늘부터 혈무곡의 대장은 나다.”

“서, 설마!!”

1호 아니, 혁련후가 눈을 부릅떴다.

손을 잡았던 104호, 하후광이 배신한 것이다.

혁련후는 이를 갈며 하후광을 노려봤다.

“너 이 새끼! 배신이냐!!”

“배신은 배신인데… 215호가 재미있는 제안을 해와서 말이야.”

“제…안?”

“자신을 우리 파벌의 3인자로 인정해주면 남관을 바치겠다고 하잖아. 거절할 이유가 없는데 어떡해?”

혁련후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215호를 바라보았다.

‘저 새끼… 제법인데? 그런데 이런 짓을 벌였다는 것은 사전에 내가 남관을 습격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는 말이잖아? 누구지? 누가 정보를 흘린 거야?!’

배신이지만, 배신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남관이 이미 그의 수중에 들어왔으니, 약조 때문에 제 살을 같이 깎아 먹을 수는 없었다.

문제는 왜 이런 일이 벌어졌냐는 점이었다.

215호가 먼저 해온 제안이라고 했으니 하후광이 먼저 한 제안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덕분에 혁련후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머릿수는 너희가 조금 많지만… 그 정도는 내가 나서면…….”

“음? 머릿수가 조금 많다고?”

“젠장! 이럴 작정이었구나!”

그때 수십 명이 남관의 입구에서 들이닥쳤다.

서관의 나머지 훈련생들이었다.

이제는 조금이 아니라 배의 차이가 벌어졌다.

아무리 실력에 자신이 있는 혁련후라도 버거웠다.

게다가 서관의 대장인 하후광도 보통 실력은 아니었으니 문제였다.

“빌어먹을! 그냥 당하지 않겠다!!”

“흐흐흐. 어리석은 선택을 하겠다? 좋다. 좋아.”

조부로부터 특명을 받아 이곳에 온 혁련후였다.

혁련세가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무조건 혈살객의 수장이 되어야 했다.

만약 하후광이나 다른 녀석에게 수장 자리를 빼앗긴다면?

자신의 꿈은 물거품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불리해도 물러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싸움은 혈무곡 삼관 전체로 번졌다.

퍽! 퍼퍽! 퍼퍼퍽!!

동관과 서관의 실력은 그야말로 호각지세였다.

그러나 남관이 서관에 붙었기에 균형이 기울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어떡하지? 그래… 하후광… 하후광만 잡자.’

전력의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 기세를 바꾸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우두머리를 제압하는 것이다.

저들의 수장은 104호인 하후광이었다.

혁련후로서는 승부수를 띄울 수밖에 없었다.

“어이! 하후광! 한판 붙자!”

“귀찮지만 상대해주마.”

하후광의 입장에서는 굳이 직접 나설 필요가 없었다.

서관과 남관의 실력자 몇 명만 움직여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수장으로서 약한 모습을 보이면 수하들을 이끌 수가 없었다. 게다가 자신이 혁련후 보다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그의 도전(?)을 받아들였다.

챙챙챙!

혁련후의 검과 하후광의 수갑(手甲)이 충돌했다.

도검의 이점은 없으나 하후광의 수공도 대단했다.

혁련후의 검술에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

혈천을 지배하는 명가의 후예들다웠다.

하지만 불리한 쪽은 혁련후였다.

‘젠장! 빨리 끝내야 하는데!’

동관이 머릿수가 밀리는 만큼 동관의 훈련생들이 더 많이 쓰러졌다.

그러니 하후광과 싸우면서 초조해지는 쪽은 혁련후였다.

비슷한 실력일 때는 이 작은 차이가 승패를 좌우했다.

실제로 혁련후 역시 빈틈을 허용하고 말았다.

“큭!”

“흐흐흐. 이제 이곳은 내 거다. 혁련후.”

생각보다 상처가 깊은지 혁련후의 일그러진 얼굴은 펴질 줄은 몰랐다.

이대로라면 하후광의 승리로 끝날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반전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이다! 작전대로 해!!”

“뭐, 뭐야! 너희가 왜… 컥!”

“이 자식들아! 우리가 호구인 줄 알았냐!!”

균형이 무너졌다고 생각했는지 새로운 일이 벌어졌다.

서관에 굴복했던 남관의 훈련생들이 들고 일어나 서관과 동관의 훈련생들을 공격했다.

이미 치고받고 치열하게 싸웠던 그들은 힘을 비축하던 남관의 훈련생들을 상대하기가 어려웠다.

이현성은 그 싸움을 은밀하게 지켜보았다.

‘…절대 네 뜻대로 되지 않을 거다. 너만큼은…….’

* * *

“어이가 없군. 결국 1호와 104호가 당했단 말인가?”

혈무곡주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이에 부교두 중 한 명이 대답했다.

“결과적으론 그렇게 되었습니다.”

“215호라고 했지? 제법이군.”

그간 주목하지 않은 인재의 등장에 혈무곡주는 어이가 없으면서도 재미있었다.

세 가문을 상대로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혈무곡주였다.

207호인 문인주희가 가문으로 돌아간 두 균형이 깨지고, 두 가문을 상대로 저울질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본인의 힘을 그리 필요치 않게 되면서 당혹스럽던 차였다.

그런 상황에서 1호와 104호가 크게 물을 먹었다. 두 가문은 다시 자신에게 의지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저희도 놀랐습니다. 215호가 제법이긴 하지만 설마 동관과 서관을 충돌시키고 빠질 줄은…….”

“살수라면 응당 그래야지. 힘만 믿고 싸우면 그게 살수란 말인가.”

혈무곡주는 기분이 좋은지 215호를 옹호했다.

215호는 104호에게 고육지계(苦肉之計)로 거짓 투항한 것이다. 그리고는 104호를 필두로 서관 훈련생들을 동관 훈련생들과 충돌하게 한 뒤 자신들(남관)은 소극적으로 싸우며 체력을 최대한 보전했다.

살아남기 위해 발악한 1호와 목표를 목전에 두고 흥분한 104호.

그 두 사람이 상황을 눈치챘을 때는 이미 상당히 큰 피해를 본 후였다.

215호와 남관으로서는 매우 유리한 상황이었지만 그들만으로는 동서 양관을 무너트리기가 힘들었다.

결국 그들을 놔줄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삼관은 불신으로 인해 서로의 손을 잡지 못하고 삼분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혁련후의 꿈을 막아버린 셈이었다.

“당분간은 배식을 넉넉히 해줘라. 먹고 힘낼 수 있게.”

“예. 곡주님.”

혈무곡주를 포함한 교두, 부교들은 새로운 인재의 탄생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단 한 명만은 다르게 생각했다.

‘정말 215호일까? 난 왠지 그 녀석이 의심스러운데 말이야.’

검귀 교두만은 이현성을 의심했다.

하지만 따로 조사하지는 않았다.

이 상황 역시 그의 흥미를 끌었으니까.

남관을 갈라먹은 뒤 이현성과 그 의제들을 밟겠다는 혁련후의 계획 역시 무산되어버렸다.

결국 이현성만 원하는 것을 얻은 셈이었다.

* * *

“제, 젠장!”

은밀하게 조부의 밀서가 전해졌다.

밀서에는 이번 일의 실패에 대한 질책이 적혀 있었다. 동시에 형에 대해서도 적혀 있었다.

자신과 달리 혈룡대의 부대주가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혈살객이 혈천의 비수이자 그림자라면 혈룡대는 혈천의 창이자 미래였다.

외부의 인재들을 긁어모아 양성 중인 혈살객과 달리, 혈룡대는 혈천 내 인재들로 양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혈천의 대호법은 혈룡대와 혈살객 모두 손에 넣기 위해서 장손은 혈룡대에, 차손인 혁련후는 혈살객에 넣었다.

“다행히 혈룡대주가 된 것은 아니지만… 부대주 역시 무시할 수는 없어. 젠장! 내가 기필코 혈살객들의 수장이 되어야 해!”

그의 형이 혈룡대주가 되는 최악만은 면했다.

그러나 부대주 역시 적지 않은 영향력을 가질 테니 혁련후로서는 안심할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이 유리해지기 위해서는 무조건 혈살객을 품어야 했다.

“66호… 그 개자식만 아니었어도…….”

남관을 무너트릴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자신뿐만 아니라 서관의 104호 역시 남관의 215호에게 농락당했다.

하지만 그는 고작 215호가 이런 일을 저질렀을 리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정도 머리는 물론 배짱도 없었다. 즉, 215호의 뒤에서 조종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뜻이었다.

혁련후는 그 존재를 66호(이현성)로 추정했다.

아니, 확신했다.

“네놈은 기필코 죽여버리겠어! 반드시!”

* * *

“후…흡!”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인 소년은 왼손을 허우적거리더니 어느새 오른손에 쥔 검으로 허공을 찔렀다. 범상치 않은 공격이었다.

그러나 막상 그러한 공격을 펼친 소년은 만족스럽지 않은 표정이었다.

“무영풍과 귀령박 그리고 일점홍의 연계가 쉽지 않네.”

소년은 바로 이현성이었다.

그는 은밀하게 수련하고 있었다.

지금은 누구에게도 보이면 안 되었다.

힘을 숨겨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으나 그가 펼친 무공, 무영풍과 귀령박 때문이기도 했다.

무영풍(無影風)은 속검 교두 중 한 명인 무영 교두가 일섬 대신 내놓은 보법이었고, 귀령박(鬼靈搏) 역시 금나수의 교두가 내놓은 수법이었다.

이현성이 이 두 절기를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이현성이 무영풍과 귀령박을 전수받은 209호와 230호에게 일점홍을 전수한 대가로 배웠기 때문이다.

무영 교두에게 무영풍을 전수받은 209호는 보법보다 일섬을 능가하는 쾌검인 일점홍이 탐났기에 거래가 수월했다.

하지만 귀령박을 전수받은 230호는 검술을 익히지 않았기에 일점홍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이에 이현성은 230호에게 앞으로 쾌검을 익힌 녀석들을 많이 만날 테니, 쾌검이 무엇인지 알면 상대하기 수월하지 않겠냐며 겨우겨우 설득해 교환할 수 있었다.

그가 이렇게 힘들게 무영풍과 귀령박을 익힌 것은 분명 이유가 있었다.

“무영풍과 귀령박은 분명 일류보법과 금나수로 보긴 힘들지만, 일점홍처럼 내공 소모가 적으면서 그 효과는 커. 분명 장차 큰 도움이 될 거야.”

그가 알고 있는 무공이 없어서 이 세 가지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었다.

회귀 전에 익힌, 혹은 우연히 알게 된 무공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몇 가지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심후한 내공을 요구했다.

아무리 그가 혈운심법과 더불어 포영심결을 익히고 있다고는 하지만 고작 4년간 익혔다.

그것으로는 만족스러운 내공을 얻을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당장 자신을 지킬 힘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임시방편으로 일점홍처럼 적은 내공만으로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무영풍과 귀령박에 목을 매고 있는 것이다.

“그보다… 이제 ‘그날’이 얼마 남지 않았군. 후우. 성공할 수 있을까?”

* * *

“귀식대법(龜息大法)은 얼마나 익혔어?”

이현성은 두 의제에게 귀식대법을 전수해주었다.

호흡뿐만 아니라 아예 심장까지 일시적으로 멈추게 만드는 기술이었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을 때 일시적으로 가사상태로 만들어 상처의 악화를 늦추기 위해 개발되었다.

살수비기라고 불리는 기술 중 하나였다.

만약을 대비해 혈살동에서 익힌 귀식대법이 아닌 다른 종류의 것을 전수했다.

그의 물음에 철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아직…….”

“운비, 너는?”

“저도 얼마 익히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귀식대법을 빨리 익히라고 하신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타고난 신체 능력 덕분에 무위가 빠르게 성장하는 철우였지만, 이런 섬세한 기술을 익히는 데에는 서툴렀다.

초운비의 경우, 민첩하고 유연하며 섬세했다.

하지만 아직 귀식대법과 같은 살수비기를 익히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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