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그러다 보니 힘이 없는 중도의 아이들은 굶기 일쑤였고, 결국 그들 사이에 싸움과 살인이 벌어졌다.
중도라고 모두 힘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현성은 두 명의 의제들만 곁에 두었으나 식사를 거르지 않았다.
단 셋에 불과하지만, 그들은 강했기 때문이다.
물론 수십 명씩 뭉친 3대 파벌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문제는 그들이 한쪽 편에 서면 균형이 깨질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암묵적으로 3대 파벌도 그들을 건드리지 않았다.
“고맙다.”
“헤헤.”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세 소년들이 먹기에 부족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식사를 이어가고 있을 때 철우가 이현성의 눈치를 봤다.
“철우야. 왜 그래?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
“하, 할 말이 있는 건 아니고… 쟤들이 불쌍해서…….”
아직 순수함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철우를 보며 이현성은 이를 악물었다.
그런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우리가 나서면 배식을 조금 더 확보할 수 있겠지. 그럼 저들이 덜 굶을 테고. 허나 저들이 아니라고 해도 결국 누군가는 굶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피를 보게 될 것이 뻔하다. 난 나와 너희를 위함이라면 몰라도, 저들을 위해 피를 볼 생각은 없다.”
“죄, 죄송합니다. 성님. 저는… 저는…….”
철우가 고개를 푹 숙이며 사과했다.
이현성은 마음이 답답해졌다.
이 순박한 아이에게 가혹한 현실을 알려줘야 하는 상황이 답답할 따름이었다.
“네 말이 옳다. 하지만 어설픈 자비는 오히려 독이 된다. 저들도 처음에는 고마워하겠지. 허나 더 이상 도와줄 수 없을 때는 오히려 우리를 원망할 것이다. 그게 인간이란다. 철우야.”
선의가 반복되면 권리로 착각하는 것이 인간이었기에 이현성은 단호하게 일갈했다.
어린 소년의 입에서는 나오긴 힘든 말이었다.
그러나 이현성은 평범한 십대 소년이 아니었다.
이 지옥 속에서 살아남은 한 명의 악귀였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초운비는 그런 이현성의 말을 이해했기에 묵묵히 제 식사를 할 뿐이었다.
‘식사는 7할까지 줄어들 거야. 그럼 결국 상황은 지금보다 더 악화될 수밖에 없어. 우리에게도 싸움을 걸지도 모르지.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야.’
* * *
“대장! 저놈들을 언제까지 봐줄 겁니까?”
동관 일조의 13호는 동관을 장악한 1호 혁련후의 심복이었다. 이곳에서 심복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애초 혈천에서 올 때부터 어른들이 붙여주었다.
그런 13호는 자신들을 따르지 않는 이현성들이 오래전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실력은 좀 있으나 건방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3호의 말에 혁련후가 차가운 조소를 지었다.
“안 그래도 슬슬 손을 봐줄 생각이었다.”
“그 말씀은…….”
13호의 물음에 혁련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104호와 합의했다. 남관을 갈라먹기로.”
“준비시키겠습니다!”
“그렇게 해.”
지금까지는 동, 서, 남으로 힘겨루기를 했다.
혁련후는 4년 동안 혈무곡의 훈련생들을 모두 휘어잡지 못했다.
서관의 104호와 남관의 207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각기 하후세가와 문인세가의 직계혈족이었다.
배경이나 재능 그리고 힘까지 자신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그들을 누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207호가 사라졌다.
‘그 살쾡이 같은 년이 죽었을 리는 없으니 가문에 불려간 것이겠지. 그년이 없는 남관이야…….’
마음 같아서는 홀로 남관을 집어삼키고 싶었다.
하지만 서관의 104호가 뒤통수를 칠 수도 있었다.
그럴 바에는 아예 손을 잡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 섰다.
“하후광. 손을 잡는 것은 이번뿐이다. 네놈도 결국 내 부하가 되어야 하니까! 하하하!!”
혁련후는 자신이라면 혈무곡은 물론 혈살객들의 수장이 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그는 몰랐다.
그의 말을 듣고 있는 자가 있다는 사실을…….
‘그렇단 말이지. 너는 안 돼. 절대로…….’
혁련후를 은밀하게 지켜보던 눈이 은밀하게 사라졌다.
* * *
“젠장! 공녀님 대신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데…….”
215호는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는 사라진 207호 아니, 문인주희의 심복이었다.
가문의 일로 돌아간 문인주희를 대신해 혈살객의 수장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본인 역시 자신은 그 정도 그릇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렇다고 그냥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그냥 당하겠다는 뜻인가.”
“헉! 누구냐! 너, 너는……!!”
215호도 보통은 아니었다.
1호, 104호, 207호에 가려졌을 뿐 혈무곡의 훈련생들 중에서 열 손가락에는 꼽힐 인재였다.
그런 그는 본능적으로 반격의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하고는 당황해했다.
그가 공녀인 207호도 조심하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66호… 네가 왜…….”
“…하나만 묻지. 이대로 무너질 생각이냐?”
215호에게 다가온 인물은 바로 이현성이었다.
동관 사조에 속한 그가 남관 십일조, 그것도 아무도 없는 이곳에 나타난 것은 매우 놀라웠다.
하지만 그보다 그의 물음이 더 당황스럽게 했다.
“무, 무슨 소리! 이 몸이 무너질 것 같아?!”
“…넌 1호나 104호의 상대가 아니야.”
“그, 그건 해보지 않으면…….”
“아니. 넌 져. 너도 알고 있을 텐데?”
이현성의 비난에 215호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아직 어렸기에 분노를 참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 이현성의 말이 이어졌다.
“1호가 104호와 손을 잡았더군. 남관을 갈라먹기로…….”
“……!!”
그 말이 충격적이었는지 215호의 눈이 커졌다.
이내 정신을 차린 215호는 애써 부정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그, 그럴 리가 없어. 날 흔들 생각인가 본데… 어림없지. 암, 어림도 없다고.”
“믿지 않는다면서 목소리는 왜 떨리는데?”
“흑!”
215호는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런데 문득 의아해졌다.
자신과 아무런 친분도 없는 66호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해준다는 말인가? 혹시 이를 미끼로 남관을 차지하려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이현성이 215호의 생각을 모를 리가 없었다.
“난 남관 따위에 관심 없다.”
“그, 그럼 왜…….”
“1호, 그놈이 잘되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아서.”
“……!!”
그와 1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진짜 이유라면 안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 가닥의 희망이 생겼다.
“그럼 우릴 도와줄 수 있어?”
“내가 직접 돕는 것은 어렵다. 단!”
도울 수 없다는 말에 실망하던 215호는 말이 이어지자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215호의 눈빛을 받은 이현성이 나직하게 말했다.
“단,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알려줄게.”
“바, 방법이 있어?”
이현성은 손을 까딱여 귀를 대라고 손짓했다.
이에 215호는 마지못해서 귀를 가져다 댔다.
“……!!”
“뭘 그렇게 놀라? 다른 방법이 없잖아?”
“그, 그렇긴 하지만…….”
“뭘 망설여? 그 외에 남관을 지킬 방법이 없을 텐데?”
215호의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렸다.
그가 생각해도 이것 외의 방법은 없었다.
잠시 후, 흔들리던 그의 눈동자가 멈췄다.
그리고 결정했는지 곧장 움직였다.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이현성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혁련후… 너는 안 돼. 너만은 절대로…….”
* * *
“이 자식이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오겠지.”
약속한 시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04호와 서관 훈련생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상황이 이러하자 13호는 당황하고 있었다.
1호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으나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만 제왕학을 배운 그였기에 속내를 숨길 뿐이었다.
그때였다.
“우리가 좀 늦었지? 미안.”
“…그 수는 뭐지? 104호.”
그제야 104호를 필두로 한 서관의 훈련생들이 나타났다.
그런데 그들을 본 1호가 미간을 꿈틀거렸다.
그 수가 고작 2, 30명뿐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밑에 있는 이들이 못해도 7, 80명은 되었다.
그런데 반도 안 되는 수가 왔으니 1호가 짜증을 내는 것도 당연했다.
1호의 말을 예상했는지 104호는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어중이떠중이 다 끌고 와서 교두들을 불러낼 일 있어? 최정예만 데려왔으니 걱정 마.”
“…대신 남관은 우리가 조금 더 먹는다. 이의 없지?”
“그건 아니지. 후우…. 좋아. 그렇게 해라.”
“두말하지 마라.”
발끈하려던 104호가 갑자기 말을 바꾸었다.
미심쩍기는 했지만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런 사소한 점을 물고 늘어질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너희가 더 차지하니까 앞장서지?”
“…좋다.”
104호가 무슨 꿍꿍이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고작 2~30명으로 뭘하겠냐는 생각으로 애써 무시했다.
그렇게 백여 명의 훈련생들이 남관으로 향했다.
“뭐, 뭐… 컥!”
예상치 못한 습격 탓에 한 소년이 나가떨어졌다.
그 소년을 보며 또 다른 소년들은 씨익 미소지었다.
“남관 놈들을 모두 때려눕혀!”
“예! 대장!”
1호의 외침에 동관의 훈련생들은 남관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남관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십삼조에 아무도 없었다.
이상한 기분을 느끼며 그 옆에 있는 십사조를 확인했다. 하지만 그곳 역시 아무도 없었다.
“뭐야? 이 자식들 다 어디 간 거야!”
“설마 도망친 거 아니야?”
어이가 없는지 동관의 훈련생들이 헛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남관 훈련생들은 도망친 것이 아니었다.
십일조와 십오조에서 우르르 나타났다.
그들 무리 중 한 소년이 앞으로 나섰다.
바로 215호였다.
“너희 뭐야? 남관에 친구라도 있어?!”
“친구? 크크. 정신 빠진… 컥!”
동관의 훈련생 중 한 명이 215호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나가떨어진 쪽은 215호에게 주먹을 휘두른 훈련생이었다.
1호와 104호에게 밀릴 뿐이지, 215호는 제법 센 편이었다.
“배수진(背水陣)이라… 제법이야. 하지만 소용없어.”
“과연 그럴까?”
1호는 남관이 승부수를 던졌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코웃음만 쳤다.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서관에서도 일부 합류했다. 설사 207호가 있다고 해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물며 그녀가 없는 상황이었으니, 남관 훈련생들의 행동은 발악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1호가 눈짓하자 그의 심복인 13호가 외쳤다.
“쳐라!”
“와아! 가자!!”
동관 훈련생들이 십일조 방향으로, 서관 훈련생들은 십오조 방향으로 향했다.
퍽! 퍽!
챙챙!!
평범한 십대 소년, 소녀들이 아니었다.
살수로 양성 중인 아이들이었다.
그들의 싸움은 고작 십대 초반인 아이들의 싸움으로 보이지 않았다.
“흐흐흐. 제법이지만 우리 상대는 아니지!”
남관도 제법이긴 했지만, 동관의 상대는 아니었다.
게다가 일부는 서관이 맡고 있으니, 승리는 더더욱 불 보듯 뻔했다.
하지만 그때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만… 큭!”
“뭐, 뭐야! 너, 너희들이 왜!!”
십오조 방향에서 남관의 훈련생들을 상대해야 할 서관의 훈련생 녀석들이 오히려 자신들을 공격했다.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