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그 결과 강자와 그들에게 굴복한 약자가 극명하게 형성되었다. 즉, 파벌이 생겨났다는 말이었다.
처음에는 파벌이 이십여 개나 되었다.
대부분 조 단위로 뭉쳤고, 몇몇은 서너 명씩 파벌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파벌은 단 세 개였다.
물론 공식적(?)으로 그랬다.
동관, 서관, 남관으로 파벌이 나뉘었지만 비공식적으로는 파벌이 더 있었다.
바로 중도(中道)였다.
특정 파벌에 속하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 섞이지 못한 이들.
실력이 뛰어나서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겠다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파벌에 끼워주기에 너무 못난 녀석들이 중도의 대부분이었다.
이현성은 중도에 속한다. 단, 후자가 아닌 전자였다.
게다가 그와 함께 다니는 초운비와 철우 역시 나름 상위에 속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각 파벌에서 가장 탐내면서도 거리를 두었다.
괜히 잘못 엮이면 골병들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만. 그간 수고 많았다. 오후에는 각자 앞으로 익힐 무기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결정은 결코 번복할 수 없으니 신중히 결정해라. 이상.”
“예!”
3년간 기초를 익혔다면 남은 2년 동안은 기본을 익힐 차례였다.
진짜 무공은 혈살동에 입동한 뒤 익히겠지만 그전까지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금의 선택이 매우 중요했다.
체질에 맞지 않는 무기를 골랐다가는 점점 도태되어 결국 낙오할 것이기 때문이다.
낙오는 곧 죽음이었다.
벌써 이십여 명이 죽었다.
앞으로는 그 수가 몇 배 이상이 될 수도 있다.
그런 만큼 살고 싶다면 발악해야 한다.
“이야기 들었지? 너흰 어떤 무기를 익힐 생각이더냐?”
“으음… 아직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성님은 어떤 무기를 익히실 겁니까?”
“나? 으음. 검을 익힐 생각이다.”
회귀 전에도 검을 익혔다.
그렇기 때문인지 이번에도 검을 익힐 생각이었다.
게다가 교두 중 검귀가 제일 뛰어나다는 점도 이현성이 검으로 고르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회귀 전의 그는 검술보다 은신술이 더 뛰어났다.
그렇기에 혈검살객이 아닌 혈영살객이라 불린 것이다.
물론 절세검술을 익힐 기회가 없다는 점이 은신술을 주력으로 삼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서, 성님. 제게 조언해주실 순 없습니까?”
“내가 본 너는 외공과 권법이 잘 어울린다. 다만 이곳에서 배울 수 있는 외공과 권법은 그리 대단하지 못할 거다. 그럼 무기를 익힌 녀석들에 비해 불리할 수밖에 없어. 그러니 우선은 곤법을 익히는 것을 추천한다. 추후 기회가 있으면 외공도 익히고.”
실제로 회귀 전 철우는 곤법(棍法)과 외공(外功)을 익혔다.
살수로서는 어울리지 않은 조합이었지만 체질에 맞지 않은 도검을 익히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 그럼 저는 성님 말씀대로 곤을 선택…….”
“형님. 철우는 곤보다 대검을 익히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대검(大劍)?”
“형님께서 철우에게 곤을 추천하신 것은 녀석의 힘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이유라면 무거운 대검 역시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곤보다는 대검이 위협적이기도 하고요.”
일리 있는 말이었다.
둔기인 곤보다야 대검이 더 위협적인 것은 사실이었다.
물론 일류고수가 되어 기를 방출할 수 있으면 조금 달라지겠지만, 괜히 검을 만병지왕(萬兵之王)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은 여러 면에서 도검류를 익히는 것이 유리했다.
다만 멀리 보면 도검이 꼭 정답은 아니었다.
체형의 특성에 적합하지 않다면 결국 일정 수준 이상에 오르기 힘들기 때문이다.
“무기의 이점 때문이라면 검(劍)보다 도(刀)가 낫지 않겠어?”
“그건 형님께서 검을 선택하셨으니까요.”
“뭐? 굳이 나와 같이 검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 앞으로를 위해 자신에 맞는 무기를…….”
“성님. 운비 말대로 대검을 선택하겠습니다. 성님과 같은 검을 익히고 싶습니다.”
회귀 전과 현실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자신의 존재로 이미 조금씩 변하기는 했으나 이 정도는 아니었다.
철우가 곤이 아닌 대검을 익힌 이상 어떠한 결과가 나올지는 예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철우에게만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저는 쌍단검술을 익힐 생각입니다.”
“뭐? 쌍단검술을?!”
첩첩산중이었다.
대검으로 익힐 수 있는 검술은 흔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찾아보면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자루의 단검을 다루는 쌍단검술은 더더욱 희귀했다.
단검술 자체가 군인이나 살수들이 익힌다.
그것도 보조의 역할을 할 뿐이었다.
그런 단검을 두 자루나 다루는 쌍단검술이 존재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예전에도 단검을 다루긴 했지만… 하아… 모르겠다.’
초운비는 암기술에 능했다. 특히 그중에서도 비수를 잘 던졌고, 유사시 단검술을 펼치기도 했다.
그의 민첩성에 잘 어울리지만 쌍단검술이라니…….
“쉽지는 않을 거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쌍단검술을 익히고 싶습니다.”
웬만해서는 자신의 뜻을 따라주는 초운비가 평소와 다르게 주장을 내세웠다.
그런 만큼 반대할 수 없었다.
“네 뜻이 그렇다면 그렇게 해. 단, 후회는 하지 마. 부교두의 말처럼 번복할 수는 없을 테니까.”
“예. 형님.”
이 선택으로 인해 미래는 너무도 큰 변화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흐흐흐. 이게 내 칼이란 말이지?”
대량생산된 만큼 그렇게 질이 좋은 무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모두에게 철제무기를 지급했다.
문제는 아직 생명의 무게를 깨닫지 못한 어린아이들에게 위험한 무기를 쥐어주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는 앞으로 사상자가 속출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감정에 따라 무기를 휘두르는 아이들이 늘어날 테고, 너무도 쉽게 부상과 살인이 발생할 것이다.
아이들이 선택한 무기 중 8할이 도검(刀劍)이었다. 그 외에는 창(槍)이나 궁(弓) 혹은 수투(手鬪)를 선택했다.
그리고 극소수이지만 철조(鐵爪)나 쇄겸(鎖鎌) 등 기형무기를 고른 녀석들도 있었다.
익히기는 어렵지만 동시에 상대하기도 힘들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어… 이 새끼가 미쳤나! 죽고 싶어?!”
“뭐야? 다시 말해봐!”
예상대로 무기에 홀린 녀석들이 보였다.
아직 어린 만큼 무기로 인한 자신감이 더욱 폭발했다.
다른 곳이라면 어른들이 나와서 경고하겠으나 이곳은 혈무곡이었다.
살수 후보를 양성하는 집단인 만큼 방관했다.
어차피 살아남는 자만 살리면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결국 피를 보았고, 큰 부상을 입은 녀석이 발생했다.
“으아악!!”
“어… 어…….”
챙그랑!
베인 소년도 당황했으나 벤 소년 역시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런 큰 부상을 입은 것도, 입힌 것도 처음이기 때문이다.
낙오되어서 부교두에게 두들겨 맞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그들이 당황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혈살객 후보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고 있지만 아직은 어린 소년에 불과했다.
그 광경을 목격한 아이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쥔 무기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깨달았다.
결국 무기를 놓쳐서 떨어트린 아이들까지 발생했다.
초운비와 철우 역시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 두 아이의 귀에 이현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흠칫.
“이곳은 죽지 않기 위해 죽여야 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라. 그렇기에 사소한 시비는 피하되, 싸우게 되면 적의 목을 벨 각오를 가져라. 아니면 살아남지 못해.”
“…예? 예. 성님.”
“예. 알겠습니다. 형님.”
의제들에게 충고하는 이현성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이 말은 두 사람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기 자신에게도 하는 충고였다.
혈영살객이라 불리며 수많은 살인을 해온 자신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회귀 전, 성인이었던 자신이었다.
현재의 자신은 아직 살인을 겪어보기 전이었다. 그렇기에 단호하게 검을 휘두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할 수 있어. 해야 해.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그렇게 무기를 고른 아이들은 처음으로 교두들을 만났다. 각 무기에 따른 사용법과 기본무공을 전수받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현성의 결정은 회귀 전과 마찬가지로 귀검 교두였다.
검귀
“이번 기수는 좀 많군.”
아이들이 도검류를 가장 많이 고를 것을 예상한 듯 교두들 역시 대부분 도검류를 익히고 있는 자들이었다.
그중 귀검 교두를 선택한 이들이 가장 많았다.
강검(强劍)과 변검(變劍)을 익히고 싶어 하는 아이들보다 속검(速劍)을 익히기를 원하는 아이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속검을 가르칠 교두는 두 명 더 있었다. 그럼에도 귀검 교두의 가르침을 받으려는 아이들이 가장 많았다.
교두 중 가장 뛰어나다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혈살객 양성은 올해가 처음이지만 원래 이곳은 혈천의 하급무사를 양성하는 장소였다.
하지만 하급무사들의 양성에 투자하는 것보다는 살수를 양성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판단에 이렇게 바뀐 것이다.
“난 많은 놈들을 가르치기 귀찮아서 말이야. 내 시험에 통과한 녀석을 제외하곤 다른 교두에게 배워라.”
귀검의 말에 아이들은 당황스러웠다.
설마 교두가 배우기 위해 온 자신들을 쫓아낼 줄은 예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만약 귀검 교두에게 버림받아서 다른 교두에게 가면 과연 그가 좋아할까?
당연히 눈 밖에 나서 좋은 대접을 받기가 어려울 것임이 불 보듯 뻔했다.
그렇기에 무조건 선택받아야 한다.
아이들은 모두 다 같은 생각을 했다.
“너, 너, 너, 너. 덤벼.”
“…예?”
“너 탈락. 나가라.”
“교, 교두님! 다,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컥!”
귀검의 시험은 파격적이었다.
아이들 중 몇몇을 고른 뒤 자신에게 덤비라고 했다.
당황한 아이들은 반문만 할 뿐 우물쭈물거렸다.
이에 귀검은 가차 없이 검을 휘둘렀다.
정확히는 검집 채로 휘둘렀기에 죽지는 않았으나 맞은 아이는 기절하고 말았다.
“이딴 정신상태로 내 가르침을 버틸 수 있겠나. 너, 너, 너.”
“이얍!!”
“으아악!!”
선례를 봤기 때문인지 지목받은 아이들은 지체 없이 귀검에게 달려들었다.
물론 귀검의 털끝 하나도 건드릴 수는 없었다.
당연했다. 삼류라고 말하기에도 부족한 아이들이 절정검객인 귀검을 건드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애초 귀검은 그들의 정신상태와 재능 등을 판별할 생각이었다.
“너, 너, 너. 탈락. 나가라. 이번에는 너, 너 너.”
탈락한 아이들은 감히 거역할 수가 없었다.
다시 기회를 달라고 했다가는 앞선 녀석들처럼 귀검의 검집에 두들겨 맞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합격시킬 생각이 없는지 줄줄이 탈락시켰다.
벌써 십여 명이 탈락했다.
그때였다.
“쓸 만한 놈이 어째 하나도 없어? 이번에는 너, 너. 그리고 너 나와.”
이번에 지목된 아이들 중 한 명이 바로 이현성이었다.
그는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고 귀검의 앞으로 나왔다.
귀검 역시 그 모습을 보았다.
‘역시 재미있는 녀석이야. 부디 넌 날 흥미롭게 해다오.’
내색하지 않을 뿐, 이현성 역시 긴장하긴 마찬가지였다. 다만 긴장하면 근육이 굳어 제 실력을 보일 수가 없기에 긴장을 풀기 위해서 노력했다.
물론 모든 것을 보일 수는 없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