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살수-1화 (1/314)

귀환살수

— 문지기 —

1화.

서장

“헉헉… 헉…….”

검은 야행복을 입고 있는 사내의 눈동자에 당혹감이 엿보였다.

‘도대체… 어찌된 것이지?’

수십여 명의 고수들이 그를 포위하고 있었다.

사내는 물론 그를 포위한 수십의 고수들 역시 호흡이 거칠었다.

그는 부상을 입었는지 전신 곳곳에 검흔(劍痕)과 혈흔(血痕)이 보였다.

“사악한 살수 놈! 기필코 죽여주마!!”

“감히 이곳이 어딘 줄 알고 이리도 어리석은 짓을 저지른 것이더냐!!”

수십의 고수들이 검은 야행복의 사내를 향해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면서도 함부로 다가가지 못했다.

살수의 손에 죽은 동료 고수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살수인 그가 이곳이 어딘지 모를 리가 없었다.

정파무림의 연합체인 무림맹(武林盟).

그 무림맹의 비처에 위치한 신산각(神算閣)이었다. 무림맹 총군사인 신산(神算) 제갈윤호의 거처이기도 하다.

그렇다. 살수의 목표는 바로 무림맹 총군사의 제거였던 것이다.

무림맹주와 비교할 정도로 그 역할이 막중한 자리가 바로 총군사였다.

신산각의 경계가 삼엄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정도일 줄은 예상치 못했는지 살수의 입술이 메말라가고 있었다.

“네놈과 함께 온 다른 살수 놈들은 이미 모두 죽었다! 네놈도 그 뒤를 따르게 해주마!”

한 무인의 말에 검은 야행복의 사내가 이를 악물었다.

‘운비야… 철우야… 흑오야. 미안하구나.’

그는 죽은 동료 아니, 의제들의 이름을 되뇌며 이를 악물었다.

이번 임무는 살수로서 그와 의제들의 마지막 임무였다.

이번 임무만 완수하면 자신들의 소원이었던 자유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런 조건이기에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위험한 이 임무를 수락했다.

하지만 결국 동생들은 모두 죽임당했고, 자신 역시 죽기 직전이었다.

‘역시… 무리였나.’

그때 달콤한 제안이 그의 마음을 자극했다.

“투항해라. 그리고 최대한 협조한다고 맹세하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원한다면 본맹에서 중히 써주고.”

“초, 총군사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찌 천한 살수 놈을…….”

“우문 호법. 난 본맹의 총군사일세. 그 정도의 권한은 있다고 생각했는데, 우문 호법께선 총군사 자리를 너무 하찮게 보는 듯하구려?”

“그, 그게 아니라… 죄, 죄송합니다. 아끼는 수하들을 잃어서 제가 너무 흥분한 것 같습니다.”

무림맹의 호법 중 한 명이자, 우문세가의 장로인 그는 자신이 너무 흥분해서 총군사의 권위에 도전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소 권위를 내세우는 법이 없는 총군사였지만 그는 무림맹 서열 10위 안에 있으며, 오대세가이 하나인 제갈세가의 태상가주였다.

서열 50위권 밖에 있는 자신이 감히 함부로 눈을 부라릴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젠장! 저 늙은이에게 찍히면 곤란한데! 가주께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그는 기가 팍 꺾이자 누구도 감히 총군사의 말을 거스르지 못했다. 그제야 총군사는 만족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마지막 제안일세. 이번에도 대답이 없다면 거절로 알고, 자네를 죽일 수밖에 없네.”

“나는… 그 제안을…….”

살수는 마음이 흔들렸는지 검을 늘어트렸다.

총군사는 살수를 그냥 죽일 수 없었다.

그간 무림맹 요인들의 암살이 그와 연관이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살수의 입을 열 수 있다면 앓았던 이를 뽑을 수 있다.

게다가 다른 이들은 살수라고 무시하지만 총군사는 다르게 생각했다.

‘암살된 고수가 모두 저 살수의 소행이 아닐 수도 있지만… 무림 백대고수가 다섯이 넘고, 그에 근접한 고수만 수십이 암살되었어. 그중 일부만 저자의 소행이라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실력이지.’

이곳에 잠입하는 과정에서 그의 손에 죽은 무인들 역시 하나같이 고수 아닌 자가 없었다.

그러므로 살수를 살려서 자신만의 비수로 만들 수만 있다면 앞으로 자신에게 큰 힘이 될 것이 당연하다.

정보와 자신만의 비수.

총군사는 두 가지를 모두 손에 넣을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흔들리는 살수를 보며 총군사가 입꼬리를 올렸을 때였다.

“…거절한다!”

“이, 이런!!”

총군사는 물론 무림맹 고수들은 살수가 투항을 거부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이 방심한 찰나를 이용해 살수가 몸을 날렸다.

총군사를 인질로 삼아 이곳을 빠져나가기 위함이었다.

그의 검이 총군사의 목에 닿으려는 순간 따끔한 무언가를 느꼈다.

그때 살수의 눈이 누군가와 마주쳤다.

자신을 비웃는 비열한 눈빛이었다.

‘너, 너는!! 그렇군…….’

그는 깨달았다.

신산각의 경계가 강화된 이유를, 임무를 실패한 이유를. 그리고 애초 이 임무가 자신을 노린 함정이었다는 사실도.

푹!

“…젠장!”

‘다시 태어나면 이렇게 이용당하며 살진 않겠어! 아니,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이용해주겠어!’

무림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살수가 그렇게 사라졌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으나 무림은 더한 공포를 느끼게 되었다.

혈천(血天)이라는 재앙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상한 아이

“헉!”

악몽이라도 꿨는지 소년은 벌떡 일어나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경계했다. 하지만 이내 소년의 눈빛이 변했다.

뭔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살아 있는… 건가?”

소년은 의아했다.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이.

살아 있다고 한들, 이런 곳에 자신이 있다는 현실을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허름한 것이 흡사 가난한 민가의 방처럼 보였다.

그의 눈이 더욱 커졌다.

이곳은 그의 기억 속에 있는 곳이었다.

그것도 이십여 년 전의 기억 속에 말이다.

“내가 왜… 이곳에… 아니, 불타 없어진 우리 집과 똑같… 뭐, 뭐야!”

이 집은 분명 자신이 팔려 간 뒤 불타 없어진 곳이다.

그런데 어린 시절 살았던 집과 아주 똑같이 재현되어 있었다. 그러나 재현된 것이 아닌, 그 집인 것 같았다.

왜냐하면 눈앞의 본인 손이 너무도 작았기 때문이다.

어린 소년의 손처럼 너무도 작았다.

손뿐만이 아니었다. 발도, 자신의 머리도… 모든 것이 소년 자신의 것이다.

“서, 설마… 내가 옛날로 돌아왔다고? 말도 안 돼. 그럼 그 기억이 전부 꿈이란 말이야?”

이십여 년이란 긴 시간을 겪었는데 어찌 꿈이라고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꿈이 아니라면 지금 이곳에, 그것도 어린 시절의 자신이 되어 있는 상황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아무리 정신력이 대단한 그라도 이 상황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렇게 혼란에 빠져 있을 때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오빠!”

“혀, 현영아!”

소년, 이현성은 눈물을 흘렸다.

오래전에 죽은 여동생이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울자 이현영은 깜짝 놀랐다.

자신에게 언제나 미소 지어주던 오빠의 눈물은 그녀를 놀라게 하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오빠! 왜, 왜 그래? 배고파서 그래?”

“아니다. 아니야.”

가난에 찌들어 있는 이현영에게 가장 무서운 일은 배고픔이었다.

이현성은 쓴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기뻤다.

이것이 어찌 된 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사랑하는 여동생을 다시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리고 꿈이라면 깨고 싶지 않았다.

“아빠가 밥 먹으래!”

“그래. 가자. 밥 먹으러.”

가난 때문에 하루에 두 끼를 먹는 일이 흔치 않았다.

하지만 자신들을 먹이기 위해 부모님께서 고생하시는 것을 알기에 너무나도 감사하고 소중했다.

방에는 침만 꼴깍꼴깍 삼키고 있는 남동생 이현호와 부모님이 앉아계셨다.

“왔느냐. 왔으면 앉거라.”

“예. 아버지.”

자리에 앉은 이현성은 밥상 위의 음식들을 보고 매우 당혹스러웠다.

흰쌀밥에 고깃국, 그 외에도 몇 가지 맛있어 보이는 찬이 놓여 있었다. 가난한 자신의 집에선 일 년에 한번 먹을까 말까 한 화려한 식단이었다.

‘아… 내일이 내가 팔려 가는 날이구나.’

그는 8살에 팔려 갔다.

전날 그 대가로 받은 은자로 푸짐하게 식사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현성은 내일 자신이 팔려 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모님은 자신의 눈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현성은 전혀 미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고마웠다. 자신을 이렇게 보내는 것이 오히려 잘되라는 의미였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다만 부모님께서는 자신이 어느 부잣집의 시동(侍童)으로 가는 줄 알고 계신 것이 문제였다.

“누, 누나. 저게 고기라는 거야?”

“응! 맞아! 정말 맛있다고!”

아직 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는 이현호에 비해 이현영은 먹어본 적이 있었다.

그래봤자 2, 3번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먹자꾸나.”

“네!”

“네!!”

오늘 상에 비싼 찬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를 모르기 때문인지 두 아이는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부모님과 이현성은 두 아이를 애잔하게 바라보았다.

‘그래, 너희가 행복하다면 나는… 됐다.’

아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전히 자신의 눈을 바라보지 못한 채 말했다.

“너도 많이 먹거라. 먹어야 힘내서 먼 길을 가지.”

“…저는 괜찮아요. 나중에도 먹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가 향할 곳은 살수 양성소다.

잘 먹야야 잘 크고 훈련도 잘 받기에 최소한 굶기지 않는다. 그리고 정 고기를 먹고 싶으면 짐승을 잡아먹으면 된다. 그렇기에 지금은 동생들과 부모님이 더 많이 드시길 바랐다.

“오빠! 어디 가?”

“응. 잠시 일하러.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테니까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알겠지?”

“응! 오빠!”

“응! 오빠!”

“넌 형이라고 해야지!”

“아, 응! 형!”

귀여운 두 동생이 살아남을 가능성은 무척 낮았다.

아니,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동생들뿐만이 아니다. 부모님 역시 곧 죽는다.

자신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 살수들이 곧 가족을 정리할 테니 말이다.

‘서른 번도 넘게 살행(殺行)을 다녀온 후에야 깨달았지…….’

식사를 마친 이현성은 부친과 따로 시간을 가졌다.

“…네가 지금이라도 싫다 하면 아비가 종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안 가게 해주마.”

“아니에요. 아버지.”

미안한 마음 탓인지 아비가 그렇게 말했으나 이미 거부권 따위는 없었다. 돈을 돌려준다고 해서 없었던 일로 해줄 그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쓴웃음을 지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아버지. 간단히 짐을 싸서 지금 도망치세요. 모두를 데리고요.”

“그게 무슨 말이냐? 갑자기 도망이라니…….”

당황하는 부친에게 이현성은 자신이 팔려 가는 곳이 어느 부잣집이 아닌 무림문파라는 사실을 밝혔다.

그리고 자신이 팔려 간 뒤 흔적을 지우기 위해 가족들을 죽일 것이라는 사실 역시 설명했다.

“그, 그게 사실이더냐! 그, 그보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

“…말씀드리기 어려워요. 그보다 시간이 없어요. 이제는 가족들과 떠나셔야 해요. 그들이 당장 들이닥치지는 않겠지만… 잠잠해지면 죽이러 올 거예요. 한시라도 빨리 도망쳐야 조금이라도 살 가능성이 높아져요.”

“그, 그런…….”

아비는 촌무지렁이였지만 멍청하지는 않았다.

어린 시절에는 나름 출세하려고 발버둥을 쳤기에 눈치도 제법 있었다.

살인멸구(殺人滅口).

아들의 말대로 무림문파라면 자신들을 죽이려 들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어린 아들의 말만 믿고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아들은 보통 아이가 아니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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