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560화 (560/563)

제560화

제10편 외전 소피아 (16)

소피아는 허공에 떠오른 메시지를 보고 넋이 나가 버렸다.

이번 삶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하던 저장 시점이었다.

이제는 죽어도 마왕이 등장하는 지금으로 돌아온다는 소리였다.

분명 저번 삶에서도 죽기 전에 마왕과 만났었지만, 그때는 아무런 메시지도 보지 못했었다.

단지 그 이후에 마왕에게 죽어서 과거로 돌아왔었을 뿐.

그런데, 왜 이번 삶에서는 저장 시점이 나타난 것인지.

설마, 한번 죽었다고, 사자 회귀 능력이 성장했었던 건가? 마왕을 만나면 저장 시점이 만들어질 정도로?

그게 사실이라면, 이건 성장이 아니라, 저주였다.

하필 왜 지금인 건지.

이럴 줄 알았으면, 벌칙을 받더라도 미리 자살을 하는 거였는데.

주변에서는 전투가 이어지고 있었지만, 소피아는 멍하니 메시지만 바라볼 뿐이었다.

“설마, 이게 아버지가 주의하라고 말했던 반복되는 시간 속에 갇힌다는 건가?”

소피아가 과거로 돌아온 뒤에 알렉스는 그녀에게 사자 회귀에 대한 몇 가지 주의할 점을 가르쳐주었다.

그중의 하나가 죽음의 반복, 반복되는 회귀에 갇히는 거였다.

“사자 회귀가 성장하면, 특별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자동으로 저장 시점이 만들어지는 일이 생길 거란다.

그때, 정말 조심해야 한단다.

그 뒤에 바로 피하기 힘든 죽음이 닥쳐오면, 너는 끝없이 그 죽음과 회귀를 반복할지도 모른다.

물론, 조금 더 성장하면, 저장할지 안 할지도 결정할 수 있게 되겠지만, 그 전까지는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소피아는 어렸을 때 알렉스가 해준 말이 다시 떠올랐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거기다, 알고 있어도 막을 방법이 없었을 것 같은데요.”

소피아는 허탈한 얼굴로 허공을 보며 말했다.

이렇게 뜬금없이 등장할 줄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터였다.

과거에 경험해 보지도 못했으니, 그녀의 회귀도 소용없었고.

그래도 알렉스가 말했던 헤쳐 나가지 못할 죽음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소피아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았다.

아직 그녀에게는 수많은 제국군과 기사단이 있었고, 계속 반복해서 싸우다 보면, 언젠가 아버지처럼 마왕도 쓰러뜨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소피아에게는 그 사실이 와닿지 않았다.

부모님이 돌아오시지 못한 상황에서 저장 시점이라니.

두 분이 저쪽 세상에서 돌아가셨기라도 한다면, 되돌릴 방법이 없었다.

아버지를 다시 보지 못하는데, 왜 싸워야 하지?

수십 번, 수백 번 싸워서 결국 마왕을 쓰러뜨리더라도, 아버지가 돌아오시지 못하는데,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물론, 이 대륙에는 그녀의 친우들이 있었고, 제국에는 그녀의 형제자매와 프리다 황비님, 그리고, 그녀가 지키기로 맹세했던 제국인들이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를 다시 보지 못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그녀에게는 다른 생각이 조금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소피아의 귀에 고함이 들려왔다.

“소피아! 정신 차려!”

전투의 소음을 뚫고 그녀의 귀에 들려온 소리.

마나를 가득 실은 고함이었다.

소피아가 고개를 돌려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보았다.

그곳에는 다른 곳처럼 마물들과 싸우는 병사와 기사들이 보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마물들은 함정과 목책을 넘어 기사와 병사들과 섞여 들어가고 있었고,

기사들은 병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미친 듯이 마물들과 싸우고 있었다.

그런 전쟁터에서 피범벅인 채로 여제에게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다.

기사들과 함께 싸우던 검호 미겔이었다.

알렉스의 스승이었던 그는, 다른 이들과 달리, 싸우는 도중에도 여제의 모습을 살피고 있었다.

알렉스가 떠나기 전, 그에게 부탁했기 때문이었고, 부탁이 아니더라도 알렉스의 딸인 만큼, 그는 계속 여제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런데, 여태껏 문제없이 잘해오던 여제가 마왕이 등장한 순간, 얼이 빠져 버린 것이었다.

처음에는 능력으로 제국군을 보호하다가 마왕의 마나에 휩쓸린 게 아닌가 했지만, 여제의 표정을 보니, 그런 건 아니었다.

그녀는 허공을 보며, 충격에 빠져 있었을 뿐이었다.

알렉스도 저렇게 가끔 허공을 보곤 했지만, 여제처럼 충격에 빠진 적은 없었다.

어쨌거나, 여제가 무언가에 충격을 받았다면 그가 할 일은 하나밖에 없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을 다 죽일 작정이야! 네가 정신을 놓으면 어떻게 할 건데!”

미겔은 한걸음에 달려와 여제의 멱살을 잡을 듯이 들이댔다.

물론, 소피아를 호위하고 있던 루카스가 앞을 막아선 덕에 실제로 멱살을 잡지는 못했지만, 소피아를 다시 현실로 끄집어내는 데는 성공했다.

“아, 맞다, 지금 싸우는 중이었지….”

그녀가 정신을 차리는 것처럼 보이자, 이번에는 자신을 막은 루카스에게 벌컥 화를 냈다.

“싸우는 중은 무슨! 거기다, 너도 지금 뭐 하는 거야! 여제가 이상하면 네가 정신을 차리게 했어야지! 호위 대상자가 어떤 상황인지 파악도 못 하는 호위 기사라니! 우고가 괜히 기사단장을 물려줬어!”

미겔의 말에 루카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도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긴 했었다.

하지만, 소피아를 믿는 마음에 좀 더 지켜보자고 생각했을 뿐.

어두워지는 루카스의 모습에 미겔은 혀를 찼다.

아무래도 루카스는 제 아버지에게 더 배워야 할 것 같았다.

소피아가 현실로 돌아오긴 했지만, 그녀는 조금 전과 달리, 싸울 의욕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좌절한 얼굴로 마왕이 빠져나온 게이트를 쳐다볼 뿐이었다.

미겔은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그가 아는 소피아는 이런 장소에서 저런 표정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더구나, 이런 전쟁 통에 그 사정을 따져 물을 수도 없고, 방법을 안다고, 그가 해결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싸움의 주축인 소피아를 저렇게 놔둘 수도 없었다.

좌절한 이유를 알 방법도, 해결할 수단도 없었지만, 대신 그는 소피아를 다시 움직이게 할 방법은 알고 있었다.

“정신 차려! 네가 여기서 정신을 놓으면, 알렉스가 뭐라 할 것 같아!”

미겔의 말에 소피아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실망하시겠죠.”

“알렉스가 실망하기를 원하는 거야?”

전 같았으면, 이 말을 듣고, 소피아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움직였을 터였다.

“아뇨…. 하지만, 아버지는….”

하지만, 이번에는 소피아의 표정이 더 안 좋았다.

‘설마, 알렉스 쪽이었나?’

미겔은 알렉스와 발레아가 실제로 어디에 갔는지 알고 있는 몇 사람 중 하나였다.

소피아의 동생들조차 모르는 일이었지만, 알렉스는 떠날 때, 미래를 위해 몇몇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려주었었다.

그가 알려준 사람은 가족을 제외하면 검호 미겔과 사제이자, 경매장 주인인 레스티아도, 교단 대주교인 조아나. 이렇게 세 명이었다.

각각 만약을 대비해서 사실을 알려준 것이었고, 제삼자에게는 알리지 않겠다고 계약까지 걸어두었었다.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알렉스가 이유라고 생각되자, 전쟁터라서 그런지, 미겔의 머리가 평상시와 달리, 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방음벽을 펼치며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대로 외쳤다.

“알렉스가 문제가 있어 못 왔다면 찾으러 가면 되잖아!”

“네?”

“마왕만 쓰러뜨리면, 네가 직접 가도 상관없잖아!”

미겔의 말에 소피아가 다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미겔은 소피아의 표정을 보고 ‘실수를 한 건가?’ 하고 후회했지만, 다행히 실수는 아니었다.

“아…! 맞아, 그 방법이 있었어. 내가 가면 되는 거였어.”

사자 회귀라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이미 한번 삶을 살아봤기에 소피아의 시야가 좁아져 있었다.

아직, 알렉스와 발레아가 죽었다고 결정된 것은 아니었다.

거기다 다른 차원으로 넘어갈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차원을 넘을 유물이야 제국의 힘으로 다시 준비하면 될 터였고, 마물 세계의 오염된 마나는 소피아의 능력을 더 훈련하면 버틸 수 있을 게 분명했다.

능력은 부족하지만, 소피아는 어머니 발레아의 능력도, 아버지 알렉스의 능력도 다 갖추고 있었다.

시간을 들인다면 그녀도 부모님처럼 충분히 넘어갈 수 있었다.

그녀가 떠난 뒤의 제국이야 남동생에게 맡기면 그만이었다.

지혜로운 동생이니, 잘 다스릴 게 분명했다.

“마왕만 잡으면 돼. 그래! 시간은 많아. 아무리 오래 걸려도, 돌아오면 그만이야.”

자살로 인정받지 않을 정도로 잘 죽어야겠지만, 이미 자살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 뒤였다.

그 정도 위험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희망이 생겼다. 방법도 찾았고.

그렇다면 이제는 마왕만 잡으면 되는 일이었다.

지금 다시 봐도, 현재의 군대와 기사단만으로는 마왕과 마물들을 이기기는 힘들겠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한 번만 싸울 생각은 없었다.

몇 번을 싸우게 되더라도, 마지막에 가서 이기면 그만이었다.

그러기 위한 각오는 예전에 서 있었다.

소피아는 개운한 얼굴로 미겔에게 고개를 숙였다.

“미겔 경! 고마워요. 이제 정신을 차렸어요!”

소피아의 표정이 확 바뀌자, 미겔은 떨떠름한 얼굴로 방음벽을 거뒀다.

“괜찮으신 거죠?”

뭔가 생각과 다른 결론이 난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여제가 정신을 차린 듯하니, 이제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야 했다.

말도 존댓말로 바꾸고, 그가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려 할 때, 여제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부터 계획을 바꿀게요! 세 번째 작전입니다.”

미겔은 황당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여제 옆에 있던 루카스도 마찬가지로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렇게 밝은 얼굴로 세 번째 작전으로 바꾼다고 외치다니!

이해될 리가 만무했다.

여제가 밝은 목소리로 외치는 세 번째 작전.

그 작전은 앞의 두 작전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즉, 마왕을 당장 처리하기가 힘들어졌을 때, 병력을 뒤로 물리기 위한 작전이었다.

쉽게 말해, 그 작전은 후퇴하기 위한 마지막 작전이었다.

여왕은 저렇게 밝은 얼굴로 그런 작전을 말하고 있었다.

“병력은 차례로 뒤로 물리고, 검호분들은 저를 도와서 마왕의 발을 묶어주세요!”

격렬한 전투 속에서도 여왕의 목소리는 모두의 귀에 들려왔다.

그녀가 펼쳐놓은 영역 덕분이었다.

작전을 짠 장교들과 검호들은 의아한 얼굴로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바라보았지만, 병사들은 의심 없이 그녀의 말을 따랐다.

군대는 빠르게 뒤로 물러섰고, 기사들도 군인들 앞을 막으며 차츰 물러서기 시작했다.

후방에 있던 작전관들이 허둥거리는 가운데, 여제는 게이트 앞에 서 있는 마왕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마왕은 지금까지 움직임이 없었다.

다행이었다.

소피아가 정신을 못 차리는 동안 마왕이 공격해 왔으면, 진영이 붕괴하였을 게 분명했다.

마물만으로도 제국군은 허덕이고 있었으니까.

아버지 때부터 이어온 그동안의 연구로 평범한 사람들도 쓸 수 있는 유물 무기를 만들어 제국군 전체에 나누어 주는 데 성공했지만.

역시, 일반인들은 마물과 싸우기 어려웠다.

결국, 제국군은 기사단을 보조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 정도도 과거에 비하면 대단한 일이었지만, 소피아로서는 아쉬울 따름이었다.

결국, 이런 것들 때문이라도 지금은 물러서야 했다.

과거로 회귀할 수 있었을 때는 전멸을 각오하고 싸우려 했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싸울 수 없었다.

이제는 최대한 오래 싸워서 마왕의 모든 정보를 얻어내야 했다.

약점과 장점, 회복 능력의 한계와 능력까지.

회차를 줄이려면, 한 번에 많은 것을 얻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 지금은 물러서야 했다.

그렇게 제국군 전체가 뒤로 물러나고, 소피아와 루카스, 검호와 정예 기사단이 중앙에 모여 마왕에게로 나아가는 동안,

마왕을 토해낸 뒤, 가만히 있던 게이트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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