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559화 (559/563)

제559화

제9편 외전 소피아 (15)

오래전 고대 제국의 수도가 있었던 폐허에 수많은 군인이 몰려들었다.

봉인지 중앙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했던 곳.

전 황제 알렉스가 봉인지 여러 곳을 개척한 덕분에 이제는 신제국의 손에 들어온 곳이었다.

하지만, 오늘 이곳에 모인 군인과 기사들, 귀족들 대부분이 이곳에 처음 와보았다.

전 황제에 이어 소피아 여제까지 이 유적지를 접근 금지 지역으로 삼았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몰랐지만, 그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소피아 여제가 저번 삶에서 본 마왕의 출현 장소가 이곳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왕 출현 소식에 부모가 바로 공간 이동을 한 곳이 이 유적이었고.

그때는 어떻게 그녀의 아버지가 이곳으로 바로 공간 이동을 할 수 있었는지 몰랐지만,

이번 삶에서 사정을 들은 알렉스는 한숨을 내쉬며 소피아에게 이 유적 지하에 있는 지하 도시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 도시는 알렉스의 또 다른 힘인 죽은 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

마물과 싸울 때 외에는 사용한 적이 거의 없어서 소피아도 알지 못했던 능력이자, 장소였다.

당연히 저번 삶에서는 죽을 때까지 알지 못했었고.

이번에는 미리 들을 수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리 도움이 되는 정보는 아니었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으니, 지하 도시의 비밀 병기들은 전부 무용지물일 뿐이었다.

사실 소피아는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저번 삶에서 두 분만 공간 이동을 하신 것도, 이 유적 지하에 있는 죽은 자들을 생각하셨던 것일 터였다.

하지만, 두 분은 결국 마왕과의 싸움에서 돌아가셨으니, 지하 도시에 있는 죽은 자들은 곧 있을 마왕과의 싸움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었다.

아버지가 없으니, 쓰지도 못할 테지만.

소피아는 터만 남은 황궁에 올라서서 황궁 터를 포위하는 모습으로 진형을 갖추고 있는 제국의 군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기르고, 각지에서 모은 수만의 병사들.

그리고, 각 영지에서 보내온 기사들과 황실 기사단까지.

제국의 정예가 모두 여기에 모여 있었다.

사실, 마왕이 이곳으로 또 넘어올 것이라는 확실한 보장은 없었다.

저번 삶에서 마왕이 이곳에 나타났을 뿐이었고,

이곳이 고대 제국의 수도이자, 수백 년간 봉인지의 중심이었다는 점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소피아는 이곳에 병력을 모으는 것으로 결단을 내렸다.

저번 삶처럼 멀찌감치 물러서서 방어만 하다가는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마물들에게 밀려, 마왕과는 제대로 싸우지도 못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녀가 이번 삶에 큰 미련이 없기에 결정한 도박이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그녀의 계획에 따라, 병사들은 진영 앞에 열심히 목책을 쌓고 함정을 파내었고, 기사들은 종자들이 움직여 싸울 준비를 했다.

그동안 열심히 훈련했던 덕분인지 다들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분명 이번에도 훈련이라고 들었을 텐데.

하지만, 그녀 옆에 있는 사람은 소피아와 생각이 다른 것 같았다.

“여제께서 직접 보고 있으니 다들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 겁니다.”

그녀의 친우인 천재 기사가 그녀처럼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루카스 폰 슈폰하임.

그는 이제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젊은 천재 기사라 부르기 어려운 30대 초반의 기사였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천재로 불리는 그 실력이 쇠퇴한 것은 아니었다.

어렸을 적, 자신이 지키기로 맹세한 어린 소녀가 자신보다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된 뒤, 그는 평범한 천재에서 노력하는 천재로 변했다.

아버지만큼이나 뛰어나다는 이가 그 이상으로 노력하면 어떻게 되는지는 루카스 기사를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는 몇 년 전, 30살 초반에 벌써, 아버지 투레 백작의 실력을 넘어섰다.

당장이라도 새로운 검호로 인정받을 만한 실력.

몇몇 호사가들은 용사였던 선황제를 제외하면 제국에서 제일 강한 사람으로 그를 뽑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그런 이야기에 코웃음을 쳤고, 처음 그가 맹세했던 대로, 계속 황실 기사단에 남아있었다.

이제는 우고 기사단장에 이어, 새로운 기사단장이 되었고, 이렇게 소피아 옆에 설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기사단 쪽에서는 말이 안 나오나요? 이제 슬슬 의아해하는 사람이 나올 것 같은데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준비해온 전략은 따지고 보면 전부 마물과 마왕을 상대하기 위한 전략이었으니까.

지금 훈련을 봐도, 사람을 상대하기 위한 진형도 아니었고, 대항군으로 보이는 사람도 없었다.

여제의 말에 최연소 황실 기사단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어느 정도 나이 든 기사들은 전부 훨씬 전부터 눈치를 챈 것 같습니다.”

말을 하면서, 루카스는 조금 전에 아버지와 한 대화를 떠올렸다.

“역시 마왕인 건가?”

검호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투레 백작이 아들을 만난 뒤에 처음 꺼낸 말이었다.

“네?”

속으로 깜짝 놀란 루카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버지 말을 못 들은 척했다.

하지만, 투레 백작은 그런 아들을 보며 혀를 찼다.

마나나 검술은 천재가 무색할 녀석이 처세술은 저 모양이라니.

하는 꼴을 보니, 딴생각 말고, 그냥 여제 옆에서 검이나 휘둘러야 할 것 같았다.

투레 백작은 아들을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

“인제 와서 뭘 발뺌이냐. 딱 봐도 사람을 상대할 진형도 아닌데. 눈앞에 있는 게 마물들과 싸울 때 지겹게 본 진영과 방책이자 함정들인데, 모를 리가 없지.”

백작은 이어 뒤를 가리켰다.

백작이 가리킨 곳에는 오랜만에 모인 검호들이 그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고 있었다.

“거기다, 각지에 있는 검호들까지 전부 불러들였는데, 누가 훈련이라고 생각할까.”

솔직히 루카스는 검호들이 다 올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루카스에게는 다들 편한 어르신들이자, 친한 선배들이었지만, 전 제국 때의 일로, 전 황제 폐하와 검호들과의 관계는 그리 좋지 못했다.

그런 관계로 혹시 온다고 해도 반도 오지 않을 거로 생각했는데.

“다들 마왕과 싸울 거라는 것을 아니까 이렇게 달려온 거지.”

이렇게 모두 찾아온 이유가 있었다.

“다들 결국 알아차리셨군요.”

“알기는 몇 년 전에 알았지. 젊은 놈들이나, 기사가 아닌 이들이야 알아차리지 못했겠지만, 마물들과 싸워왔던 기사들이야 그동안의 준비가 어떤 준비인지 모를 리가 없지.”

루카스가 이번에는 진짜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도 소문이 안 났군요.”

“그런 이야기를 누가 할 수 있을까. 여제가 대륙 통일을 이야기했다는데. 그 앞에서 마왕 이야기를 꺼냈다가 욕만 먹을 테지.”

백작은 황궁 터로 오르는 여제를 보며 작게 혀를 찼다.

“거기다, 여제가 알아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고. 알렉스 황제가 정말 복이 많았는지, 여제가 정말 지혜로워.”

소피아 여제가 지혜로운 게 전 황제의 복이 되는지 이해가 안 되었지만, 전 황제에 대한 아버지의 애증을 알고 있기에, 그는 그냥 아버지의 말을 흘려 넘겼다.

“마왕을 봉인한 탑이 열리고, 이렇게 봉인지도 상당수가 해방되었으니, 전에 있던 마왕을 실제로 못 잡았던 것은 아닐 테고, 결국, 새로운 마왕이 나타난 건가?”

“그런 예언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역시 살아남은 이들이 있었군.”

예언가들을 떠올렸는지, 백작은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 뒤에 백작은 아들에게 다른 것을 물었다.

“그런데, 알렉스 전 황제가 여태 안 보이는데, 혹시 이유를 아냐?”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마왕을 쓰러뜨릴 준비를 위해 여행하고 계신다고만 들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짜 마왕이라면 알렉스 황제가 없으면 곤란한데….”

백작의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루카스는 주먹을 들어 가슴을 두드렸다.

“전 황제께서 아직도 오지 못하신 것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그분이 없다고 해도 마왕을 상대하기는 문제없습니다.”

그는 가슴을 두드리던 손을 들어, 주변을 쭉 가리켰다.

“여기 있는 기사들과 병사들이 전부 여제께서 마왕을 상대하기 위해 준비한 사람들입니다. 이미 제국은 마왕이 죽었을 때보다 몇 배는 강해져 있습니다.”

백작은 자신만만한 아들을 보고, 걱정이 더 커졌다.

분명, 그의 아들은 백작의 전성기 때보다 훨씬 더 강해져 있었다.

혹시나, 마왕도 자신이 직접 죽일 거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들은 마왕은 물론이고, 마물왕도 직접 보지 못했었다.

더구나, 알렉스 선황제가 싸우는 모습도 보지 못했고.

백작이 생각하기로는 아들 실력으로는 마왕은커녕 마물왕을 잡기에도 부족해 보였다.

사실은 루카스도 자신이 마왕을 잡을 수 있을 거로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제국이 마왕에게 진다고도 생각하지 않았고.

그가 생각하는 마왕을 죽일 이는 그가 모시고 있는 소피아 여제였다.

그가 지금까지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진정으로 제국에서 가장 강한 기사이자 능력자.

여제가 있기에 그는 승리를 장담할 수 있었다.

여제의 옆에 서 있는 지금도 아버지에게 말을 했을 때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처럼 소피아 여제를 믿고 있었다.

소피아는 그렇지 않았지만.

그래도, 소피아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그녀는 황궁터 위에 서서 제국군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친애하는 내 기사들과 나의 군대들이여.”

마나가 가득 담긴 여제의 목소리가 황궁터를 넘어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일하던 병사들도, 무기를 점검하던 기사들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들의 황제를 바라보았다.

쏟아지는 수만 명의 시선을 느끼며 소피아는 말을 이었다.

“먼저 나 소피아는 여러분께 사과하겠습니다.”

소피아는 말과 함께 모두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갑작스러운 여제의 사과에 사람들은 모두 놀란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놀란 표정들을 지었을 뿐, 소란을 피우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여제가 이어서 무슨 말을 할지 기다릴 뿐이었다.

“저는 여러분께 오랜 시간 동안 거짓말을 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이곳에 모인 이유는 훈련 때문이 아닙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싸울 상대도 대륙의 다른 나라가 아닙니다.”

여제는 말을 하면서 병사들과 기사들을 살펴보았다.

점점 더 놀라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뭔가 눈치를 채는 사람도 있었고, 미리 알고 있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있었다.

여제는 생각보다 분위기가 나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는 계속 말을 이었다.

“저희는 이 자리에서 우리의 가장 강대한 적과 싸우게 될 겁니다.

선황제께서 쓰러뜨리셨던 마왕. 우리는 그 마왕의 다음 대 마왕과 싸우게 될 겁니다.”

그녀의 말과 함께 사람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었다.

상황을 알지 못했던 이들이 갑자기 들린 마왕이라는 소리에 놀라 주변 사람들에게 묻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소란이 계속 일어나게 둘 수는 없었다.

소피아는 멈추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전 마왕이 쓰러진 지, 30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그 마왕은 이 대륙에서 이미 수백 년 동안 봉인되었던 마왕입니다.

이미 다음 대 마왕이 등장할 때가 된 것입니다.”

사실은 전 마왕이 제대로 된 마왕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지만, 그런 설명은 일을 복잡하게 만들 뿐이었다.

“우리는 이 자리에서 이 대륙으로 넘어오는 마왕을 쓰러뜨리게 될 겁니다. 나 소피아는 여러분 앞에 서서 마왕을 쓰러뜨릴 것입니다!”

소피아는 말과 함께 검을 치켜들었다.

그녀의 전용 검이 되다시피 한 검은색 검이 높이 세워졌다.

동시에 병사들 사이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만세! 소피아 여제 만세!”

“제국은 승리한다!”

“마왕도 상관없다!”

“마왕을 쓰러뜨리고 대륙 통일을!”

마지막에 이상한 구호가 들리긴 했지만, 사람들의 호응은 나쁘지 않았다.

미리, 바람잡이들을 둔 게 큰 도움이 되었다.

다행히 분위기는 확 틀어잡았으니, 이제 마왕만 상대하면 될 터였다.

그렇게 마지막 관문도 잘 통과한 제국군은 마왕을 상대할 준비를 빠르게 끝냈다.

며칠 뒤.

소피아의 걱정도 무색하게 게이트는 이곳 황궁터에 생겨났다.

다른 풍경이 일렁이는 반투명한 게이트가 황궁터 위에 나타난 것이다.

저번 삶에도 보지 못했던 다른 세상과의 문.

그 문에서 마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다른 세상이 비쳐 보이는 커다란 원형 문에서 각양각색의 마물들이 폭포가 퍼붓는 것처럼 쏟아져 내렸다.

무서운 광경이었지만, 다행히 공포에 질린 사람은 없었다.

“정신 차려!”

“훈련한 대로 하면 돼!”

그동안 제국군과 기사들은 충분히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준비된 함정과 목책, 그리고, 그동안 준비했던 실력으로 마물들의 진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렇게 첫 단추부터 제대로 끼워지는 것을 보고 모두가 기뻐하는 순간.

쿵.

마물 하나가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다른 마물보다 훨씬 큰 마물이긴 했지만, 모두가 놀란 것은 마물이 커서가 아니었다.

그 마물이 나타난 순간, 공기가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아니,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세상이 자신들을 적대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느낌.

그건 새로 등장한 마물의 거대한 오염된 마나 때문이었다.

평범한 병사들은 그 순간 모두 미쳤을지도 모르는 엄청난 마나였다.

드디어 마왕이 등장한 것이다.

마왕이 등장했는데도 병사들이 모두 정신을 부여잡고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전부 소피아의 영역 덕분이었다.

모두가 마음속으로 소피아에게 감사를 하는 동안, 소피아는 속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녀는 마왕을 보고 비명을 지른 게 아니었다.

나타난 마왕은 저번 삶에 보았던 마왕이었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마왕이 나타난 장소도, 나타난 시간도, 등장한 마왕도 전부 똑같았다.

하지만, 그 외에 달라진 게 있었다.

소피아는 멍하니 눈앞의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앞에는 정말 오랜만에 메시지가 떠올라 있었다.

<눈앞에 강대한 적이 등장했습니다. 새로운 ‘저장 시점’이 설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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